Vandals족은 Huns의 migration period의 서진에 따라 Huns의 공격을 피해 게르만족의 일원으로 서쪽으로 옮겨 갔다고 서양사는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고트족이나 반달족, 그리고 Alans족 등 모두 훈족의 서진에 함께한 그룹으로 판단된다. 위키피디아 자료를 살펴 보면, 이런 정황이 곳곳에 나타난다. 사실 훈족 즉 고구려의 원래 위치가 요수인 론강유역을 점하고 있었다면, 서진이 아니라 반달족이나 Alans족 등을 동원하여 라인강 서쪽의 중국지역을 정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그동안 마한이 이태리반도, 발칸반도, 이베리아반도를 포함하지 않았나 하는 분석을 해왔다. 그런데 마한에는 목지국이 주도 역할을 했다고 한다. 목지국(目支國)은 월지국(月支國)을 잘못 읽은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월지국에 대한 서양사에서의 흔적을 찾는 것은 마한이 유럽에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필자는 그동안 반달족이 월지족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져 왔다. 순우리말 반달의 Half-moon이란 뜻과 월지(月支)의 Part of moon이란 뜻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월지족은 흉노에 의해 서진을 계속했다고 동양사에서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서양사에서는 동양으로부터 진출한 민족은 Huns(훈족)와 Bulgars (부여족)만 기술된다. 동양사에서는 부여족과 월지족이 천산산맥 서쪽으로 이동한 것이 공통으로 언급되는 상황이다. 필자는 천산산맥이 코카서스산맥인 총령일 수 있다고 한 재야사학자들의 판단을 수용했다. 그래서 알프스산맥이 철령이 되는 것이다. 코카서스산맥에서 이동한 인도유럽인들의 이동 역사도 유물을 통해 인정되고 있는 서양사학계이다. 즉 월지족, 또는 부여족의 이동역사가 유럽에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반달족이 월지족인가에 대한 분석은 이러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는 광개토태왕 시기의 고트족과 훈족의 활동이 고구려의 그것으로 판단되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 또한 '황두실위'라는 키워드에서 북만주가 북유럽이라는 연구 결과도 얻었다. 따라서 동유럽에 있었던 반달족, 수에비족 등에 관심을 더 가지게 되었고, 최근에는 토욕혼에 대한 연구에서 수에비족이 선비족이라는 연구 결과를 얻기도 하였다. 그래서 본 글에서는 반달족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이 반달족이 월지족이 아닌가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고자 한다. 반달족이 월지족이라면, 목지국(월지국)을 포함한 마한의 영역을 보다 자세히 파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울러 서양사에서 서진해 왔다고 하는 Bulgars 즉 부여족의 위치를 파악함으로써, 북부여, 동부여 위치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는 이들과 연관된 고구려, 백제의 영역, 그리고 신라의 영역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1. Vandal족의 원천 및 이동의 역사
Vandals족에 대한 기록은 오로지 서양사에서만 존재한다. 그래서 아래 위키피디아 자료를 자세히 살펴 보고자 한다.
반달족은 기원전 2세기 폴란드지역 오데르강 하류과 비스툴라강 사이로 이동해 와서 보다 남부인 Silesia지역에 기원전 120년경부터 정착한 것으로 기술된다.
반달족은 Burgundians, Varini, Carini, Gutones 등을 포함하는 게르만민족 중 주요한 그룹의 하나로 Pliny the Elder에 의해 언급된다. Ptolemy는 Elbe강에 살던 Suebi족이 Oder강쪽으로 진출하여 Semnones남쪽에 살고 있는 Silingi족이 나중에는 Vandals족으로 취급된다고 언급하였다. Strabo와 Ptolemy는 같은 지역에 사는 Lugii족을 언급하고 Vandals족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즉 Lugii족이 Vandals족인 것이다. 이들은 문화적으로도 동일한 그롭으로 묘사된다. Lugian은 초기 켈트족 아래 그리고 후에 게르만족 아래 있었다. 그러나 Ptolemy는 Lugii족과 Silingi족은 별개로 구분한다.
Jordanes는 고트족과 반달족이 남부 스칸디나비아에서 기원전 2세기에 오데르강과 비스툴라강 사이에 정착하고 BC 120년경 Silesia지역에 정착했다고 언급한다. Paulus Orosius도 원래 스웨덴 스톡홀름지역에 살았던 반달족은 고트족과 Suiones(Swedes)족과 같은 부류라 언급한다.
"The Vandals were a Germanic people who first inhabited what is now southern Poland. They established Vandal kingdoms on the Iberian Peninsula, Mediterranean islands, and North Africa in the 5th century.[2]
The Vandals migrated to the area between the lower Oder and Vistula rivers in the 2nd century BC and settled in Silesia from around 120 BC....
The earliest mention of the Vandals is from Pliny the Elder, who used the term Vandili in a broad way to define one of the major groupings of all Germanic peoples. Tribes within this category who he mentions are the Burgundiones, Varini, Carini (otherwise unknown), and the Gutones.[18]
Tacitus mentioned the Vandilii, but only in a passage explaining legends about the origins of the Germanic peoples. He names them as one of the groups sometimes thought to be one of the oldest divisions of these peoples, along with the Marsi, Gambrivii, Suebi but does not say where they live, or which peoples are within this category. On the other hand, Tacitus and Ptolemy give information about the position of Varini, Burgundians, and Gutones in this period, and these indications suggest that the Vandals in this period lived between the Oder and Vistula rivers.[19]
Ptolemy furthermore mentioned the Silingi who were later counted as Vandals, as living south of the Semnones, who were Suebians living on the Elbe, and stretching to the Oder.[20].............
Germanic and Proto-Slavic tribes of Central Europe around 3rd century BC. (source : Wikipedia)
(By Hxseek at English Wikipedia, CC BY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815159)
Tribes of Central Europe in the mid-1st century AD. The Vandals/Lugii are depicted in green, in the area of modern Poland. (source : Wikipedia)
(By Karl Udo Gerth - Own work,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819588)
The Lugii, who were also mentioned in early classical sources in the same region, are likely to have been the same people as the Vandals.[5][23][24][25] The Lugii are mentioned by Strabo, Tacitus and Ptolemy as a large group of tribes between the Vistula and the Oder. Strabo and Ptolemy do not mention the Vandals at all, only the Lugii, Tacitus mentions them in a passage about the ancestry of the Germanic peoples without saying where they lived, and Pliny the Elder in contrast mentions the Vandals but not the Lugii.[19] Herwig Wolfram notes that "In all likelihood the Lugians and the Vandals were one cultic community that lived in the same region of the Oder in Silesia, where it was first under Celtic and then under Germanic domination."[24]
Walter Pohl and Walter Goffart have noted that Ptolemy seems to distinguish the Silingi from the Lugii, and in the second century the Hasdings, when they appear in the Roman record, are also distinguished from the Lugii.[26]
Medieval sources
Both Jordanes in his Getica and the Gotlandic Gutasaga tell that the Goths and Vandals migrated from southern Scandinavia to the area between the lower Oder and Vistula prior to the 2nd century BC, and settled in Silesia from around 120 BC.
According to Paulus Orosius, the Vandals, who lived originally in Scoringa, near Stockholm, Sweden, were of the same stock as the Suiones ("Swedes") and the Goths.[27]
Migrations of the Vandals from Scandinavia through Dacia, Gaul, Iberia, and into North Africa. Grey: Roman Empire. (source : Wikipedia)
(By O.Mustafin (talk · contribs) - This file was derived from: Vandals Migration ua.PNG:, CC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0548282)
The Vandal Kingdom at its greatest extent in the 470s (source : Wikipedia)
(By Hannes Karnoefel - changed wikimedia map,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0495959)
(source : Vandals, Wikipedia, 본 블로그, 카테고리, Vadals,펌글 참조)
즉 반달족은 고트족과 같은 부류로서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폴란드 Oder river와 Vistula river사이에 BC 2세기경부터 정착한 것이라 한다. 고트족과 반달족이 남부 스칸디나비아반도에 그 원천이 같다는 것은 의미 심장하다. 즉 고트족의 서진에 반달족이 같이 동참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달족은 고트족과 함께 서진을 계속하여 결국 아프리카 북부에 반달왕국을 세웠다. 동로마의 Justinias 황제가 북아프리카를 점령할 때까지 존속하였다.
2. 월지족의 서쪽 이동 역사
이제 반달족일 지 모르는 월지족에 대한 자료를 보자. 아래 자료에서 보듯이 월지는 기원전 2세기 흉노묵돌선우에 밀려 서진을 한 것으로 기술된다. 위의 반달족은 기원전 2세기 경 남부 스칸디나반도에서 폴란드지역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즉 묵돌선우 시기의 흉노 위치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우리는 흉노 묵돌선우시 대대적인 정복으로 서역 26개국을 정벌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동으로 동호를 습격하여 취하였다 했다. 동호의 일부는 선비산으로 숨어 들어가 이후 선비족이라 불렸다 한다. 우리는 Suebi족이 선비족임을 이미 파악했다. 즉 선비산이 Suebi족의 원천인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있는지도 모른다. 동호를 이은 유연이 파노니아지역에 있었던 Avars족과 유전자가 같다는 것은 동호와 유연의 위치가 그리고 선비족이 유럽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Suebi족은 Elbe river 서쪽에 있었었다.
또한 묵돌선우는 서로 월지를 대패시키고 그 영토들을 흉노의 영토로 흡수했다 하고, 일부 월지세력은 더 서진하여 대월지라 했다 한다. 이때 반달족이 점하고 있던 풀란드 Oder river와 Vistula river사이에 있는 지역을 확보한 것일 수 있다. 반달족은 그런데 Burgunians, Varini, Gutones 등으로 이루어졌다 했다. Burgundian은 기원후 2세기경 라인강변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처음 언급된다. 이후 또 다시 5세기경 프랑스 동남부 Savoy지방으로 이동해서 정착했다.
묵돌선우는 북으로 정령(실위의 선조) 등을 정벌했다 한다. 실위는 북유럽 발틱해에 접한 세력으로 추정된다. (필자의 글, '실위는 북유럽의 Schleswig지역이다' 참조) 황두실위를 고려하면 더 북쪽의 스칸디나비아반도 전역이 실위 지역일 수 있다. 따라서 흉노의 묵돌선우가 점령한 서역 26개국은 서유럽일 수 있다는 필자의 추정이다.
이를 감안하면 반달족의 일부 Burgundians의 서진은 월지족의 서진과정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의 차이가 다소 있지만, 이후 계속되는 반달족의 서진 역사는 월지의 서진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Burgundians은 사용 언어가 Vulgar Latin이라 한다. Vulgar는 Bulgars 즉 부여족을 의미한다. 필자는 부여족의 서진 과정이 월지의 그것과 유사한 점을 안다. 즉 천산산맥 서쪽으로 이동한 동양사에서의 역사가 같은 것이다. 이 천산산맥이 총령인 코카서스산맥이라면 이러한 서진은 BC 10세기의 유럽으로의 이전을 믜미한다. 그러므로 폴란드 지역에 정착한 반달족은 이미 천산산맥에서 서쪽으로 이전한 월지족일 수 있다.
"중국 사기의 글에는 묵돌 선우(재위: 기원전 206년 ~ 기원전 176년) 말기에 월지는 흉노에 대패하여 중앙 아시아로 이동하면서, 월지의 영토들도 흉노의 영향권으로 들어갔다. 이때 일부가 남아서 서쪽으로 간 세력은 대월지(大月氏)라고 이름을 바꿨다고 하며 남아 있던 부족들은 소월지(小月氏)라고 불렸다고 쓰여있다.
기원 전 162년 흉노의 노상 선우의 공격을 받고 월지의 왕이 살해되었다. 월지는 더 서쪽의 아무다리야 강 주변 소그디아나로 이동하여 대하를 멸망시키고 이곳을 중심으로 무역을 하며 살아갔다. 기원전 130년경 전한의 장건이 반흉노 동맹을 제안하러 가지만 대월지는 단호하게 동맹을 거절하였으며, 서기 1세기 경 대월지는 인도 아대륙으로 진출하여 쿠샨 제국을 건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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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말로리 같은 학자들은 월지가 오손과 함께 인도이란인에 속한다고 가설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자료 : 월지국, 위키백과, 본 블로그, 카테고리, 월지국, 펌글 참조)
상기 월지족 자료에서 말로리 같은 학자들은 월지가 오손과 함께 인도이란인에 속한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필자가 쓴 글, '프랑스 남부 Occitania는 오손왕국인가?'에서 월지가 오손왕국을 멸망 시켰는데, 그 월지가 Burgundina Kingdom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월지가 Burgundians을 포함한 반달족일 수 있다는 것이다.
3. 반달족의 이동과 훈족과의 연대
훈족의 아틸라 Gaul지역 공격은 반달족의 권유에 의한 것이라 기술된다. (아래 자료 참조)
"The historian Jordanes states that Attila was enticed by the Vandal king Genseric to wage war data-on the Visigoths. At the same time, Genseric would attempt to sow strife between the Visigoths and the Western Roman Empire."
(source : Battle of Charlons (451), Wikipedia), 필자의 네이버블로그, 카테고리, Huns, 펌글 참조)
즉 반달족의 훈족과의 동행은 이미 고트족과 반달족의 원천이 같은 스칸디니비아반도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점에서 출발하면 그리 놀라운 추정이 아니다. 필자는 고트족이 훈족이며 고구려라고 이미 추정했다. (필자의 글, '고트족은 고구려이다(1)', '남프랑스와 이베리아반도에 있었던 서고트왕국은 북위이며 고구려이다' 참조).
그러므로 필자는 반달족의 북아프리카 점령이 훈족의 전략과 일맥 상통하지 않았을까 판단하고 있다. 북아프리카와 시실리섬, 코르시카섬, 사르데냐 섬, 발레아레스제도 섬, 펠로폰네소스, 크레타 섬 등에 대한 반달족의 도이(島夷)지역 점령은 장수왕 시기의 왜에 대한 공격이 아닌가 추정하는 것이다. 필자는 그 연유에 대해 광개토태왕 시절 Alaric I의 아프리카 원정의 실패를 추정하고 있다.
Alaric I시절 태자 Ataulf는 이태리 남부에서 아프리카 원정에 실패한 것으로 기술된다. 아래 위키피디아 자료에서는 Alaric I이 세운 Puppet King, Attalus가 북아프리카에 가서 식량을 구하러 간 원정이 실패한 것으로 기술된다. 그러나 409년 - 415년 기간의 Attalus은 고트족 Balt Dynasty의 Ataulf가 410-415년 재위한 것과 동일하다. Ataulf는 광개토태왕이 태자 '련'을 세운 409년과 동일한 연도에 Alaric I에 의해 세워진 서로마제국 Honorius을 대신한 왕으로 기술된다. (아래 자료 참조)
즉 Attalus가 Ataulf이고 Alaric I의 태자라면 광개토왕을 이은 장수왕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 당시 Alaric I이 시실리아섬을 갔다 온 후 병사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적에 의해 죽었을 수도 있다고 기술된다. 광개토태왕이 왜의 임나지역인 시실리섬, 왜의 가라지역 (Carthago?)을 점령한 시점이 Alaric I이 이태리 남부에 간 시기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수왕은 이때의 사고에 대한 복수로 반달족을 동원해 북아프리카와 여러 도이섬들을 공격한 것인지도 모른다. 위에서 언급한 반달족과 고트족이 그 근원이 같은 스칸디나비아반도라는 것을 고려하고 훈족의 Attila와 반달족의 연합을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추정이라고 본다.
"In 410, during Honorius's reign over the western Roman Empire, Rome was sacked for the first time in almost 800 years.[2]....
In 409, Alaric returned to Italy to claim more gold and land to settle in, as feudatory vassals of the Empire, which Stilicho had promised him. Honorius refused to fulfill his former general's promises and Alaric marched on Rome,[22] which bought him off after a short siege with Rome on the verge of famine.
A palace revolution in Honorius' court led meanwhile to a change of ministers, and those hostile to the Goths were replaced by officers favorable to Alaric, who began peace negotiations. While the embassy was absent, a new change occurred at Ravenna, and Honorius disclaimed the peace which was on the verge of being concluded.[23] The enraged Alaric returned to Rome and forced the Senate to elect Priscus Attalus as emperor, who ratified Alaric's former treaty with Stilicho.[24]
In 410, the Eastern Roman Empire sent six legions (6,000 men; due to changes in tactics, legions of this period were about 1,000 soldiers, down from the 6,000-soldier legions of the Republic and early Empire periods)[25] from Ravenna to aid Honorius, but Alaric ambushed the legions on the way, and only a handful of them reached Rome.[26] To counter Attalus, Honorius tried to negotiate with Alaric in addition to restricting grain shipments to Rome from North Africa. Attalus dispatched an army to conquer Africa and restore the grain supply to Rome, but the governor, Heraclian, who was loyal to Honorius, wiped out this force as soon as it landed on the coast.[27] As Rome was dependent on North African grain for sustenance, the populace was faced with the prospect of famine, and they blamed Attalus for the impending calamity. Growing desperate, Attalus searched for means of pacifying the people, but found himself, in consequence of conciliatory expenditures, incapable of satisfying his debt to Alaric, and thus alienated both Romans and Goths. In turn he came out to be exploited in political terms.
Confronted with the increasing unpopularity and truculence of Attalus, Alaric dethroned him in 410 and proposed to renew negotiations with Honorius.[28] Honorius, overconfident at Attalus' fall and the victory of his general Heraclian over Attalus' African expeditionary force, refused negotiation, and declared Alaric the eternal enemy of the Republic.[29] The infuriated Alaric turned on the defenseless Rome and sacked the city."
(source : Honorius, Western Empire, Wikipedia, 필자의 네이버블로그, 카테고리, 로마제국, 펌글 참조)
지도 : 훈족과 고트족, 반달족의 정벌 지도 (source : Wikipedia)
4. 반달족의 일원인 Burgundian은 월지족이며 부여족인가?
Burgundiones은 Varini, Carini, Gutones 등과 함께 반달족의 일원이다.
그런데 Burgundians은 또한 오손을 멸망 시킨 월지족이다.
그러면서도 Burgundians은 Vulgar Latin언어를 사용하는 부여족이다.
Burgundians은 'Hammershu'(해모수) 지명이 있는 발틱해 Bornholm섬에서 폴란드 지역으로 이동했다 한다. (필자의 글, '해모수란 명칭이 왜 북유럽에 있나?' 참조)
즉 Burgu란 이름은 부여의 왕 '해부루'의 부루에 해당하는 부루(Burgu)인지도 모르며, 부여의 또 다른 명칭이라는 사슴이라는 뜻의 '부루'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에 대한 연구는 북부여와 동부여에 대한 위치 추정이 가능할 수 있다.
필자는 동부여가 이태리 북부지역에 있지 않나 추정했다. (필자의 글, '광개토태왕이 정벌한 동부여는 어디인가?' 참조). 실제 Burgundians 왕국은 Western Alps지역 즉 스위스, 이태리, 프랑스의 국경이 만나는 지점에 있었다고 기술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연구는 또 하나의 큰 주제가 되므로 별도의 글로 미루고자 한다.
5. 본 글의 분석이 의미하는 것
반달족이 월지족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우리는 목지국이 월지국이란 것을 믿는다. 따라서 이미 BC 2세기에 등장한 반달족 즉 월지국은 마한의 일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중마한'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들었다. 즉 마한의 북쪽에 내륙에 걸친 지역에 있는 중마한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해두국도 이의 일원일 것이다. 실제로 마한의 거수국인 해두국은 압록곡에 위치했다고 하는데, Western Alps지역에 존재한 Burgundians왕국의 역사에서 'Aedui'라는 부족이 언급된다. 즉 반달족인 월지국이 중마한의 일원이라는 해석이다. 따라서 필자가 추정한 마한이 이태리 반도, 발칸반도, 이베리아 반도를 포함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본다.
이러한 필자의 주정은 아래 고서 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월지가 중마한이라는 기술과 일치하고 있어 그 신뢰성을 높혀 준다고 하겠다.
"2대 모수리(慕漱離) (1대 북부여 해모수 단군에 이은 단군)
첫해(丁未 기원전 194년)에 번조선(番朝鮮)왕 기준(箕準)이 오랫동안 수유 (須臾)에 있으면서 일찍 많은 은혜를 베풀어 백성들이 다 부유하였다. 뒤에 떠돌아 다니던 도적에게 패하여 도망하였는데 바다로 들어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기원전 146년에 위만(衛滿)이 기준을 배신하고 거짓으로 중국군이 쳐들어 온다고 하여 패수 번한성(沛水番韓城; 彰武市 後新秋)에 입성하여서, 기후의 후손인 번한왕 기준(箕準)을 내몰고 번한왕이 되었고 기준은 황해도로 옮겨가 금마(金馬) 마한에 정착하였다】
이에 제가(諸加) 무리들이 상장(上將) 탁대(卓大)를 받들어 많은 사람들이 길을 떠나 바로 월지(月支)에 이르러서 나라를 세웠다. 월지는 곧 탁이 난 고향인데 이것을 중마한(中馬韓)이라 한다.
【중마한(中馬韓) 월지는 웅백다(熊伯多) 마한 조선의 개국지, 영변의 달지국(達支國)과 같은 곳으로 본다. 우리말 달지가 중국말 월지(月支)로 바뀐 것으로 본다. 따라서 중마한 탁의 월지국은 청천강 패수 일대이다】
이에 변(弁)·진(辰) 두 한이 또한 각각 그 무리들이 봉함을 받은 백리 땅을 가지고 도읍을 세우고 스스로 나라 이름을 지었으나 모두 마한(馬韓)의 정령 (政令)을 듣고 사용하니 대마다 반(叛)하지 않았다. "
(자료 : 북부여, 닷컴삼국지,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낙랑 옥저 부여, 펌글 참조)
그리고 반달족이 월지족이라는 것은 북아프리카의 반달왕국이 지금도 달(moon)을 포함한 국기를 가졌다는 것은 Vandals이 우리말 반달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한민족의 역사가 서유럽에서 북아프리카에서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동안 연구한 바에 의하면 Suebi족 즉 선비족, Vandals 즉 월지족의 역사가 중부유럽에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고대 12한국에 있었다고 언급되는 '선비국'과 '월지국'이 이 중부유럽에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판단한다.
마지막으로 훈족과 함께한 고트족, 반달족, 수에비족, Alans 등은 훈족에 밀려서 서쪽으로 이동한 게르만민족이 아니라 훈족, 고트족과 함께한 그룹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훈족과 고트족의 리드 아래 주도적으로 서역 정벌의 역사를 쓴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것이 고구려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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