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백제의 위례성은 어디이고 한산, 한성은 어디인가 (I)?
백제는 초기 온조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BC 18)하였다. 하남 위례성이니 강아래라는 것이다. 위례성 북쪽으로는 강(한수?)이 흐르고, 동쪽에 높은 산 부아악 (한산)이 있고, 서쪽은 큰 바다이며, 남쪽은 기름진 땅이라 했다. 그리고 고구려에서 남으로 가서 한산에 도읍했다고 했다. 그런데 기원전 5년에 한산으로 수도를 옮긴다고 했다. 그리고 이후 389년을 지냈다고 했다. 따라서 위례성, 한산 등의 위치는 가까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강(한수?)이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선, 한산(漢山)을 키워드로 찾아야 하고, 지형상 동쪽은 높은 산, 서쪽은 큰 바다, 남쪽은 기름진 땅이며, 고구려의 졸본 부여의 남쪽이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만족 시키는 위치는 대략 3곳으로 추정할 수 있다. 즉 마한의 지역이면서 가능한 지역은, 1) 이태리반도 2) 발칸반도 3) 이베리아 반도 등이다.
Map of Europe in AD 400 (source : Wikipedia)
우선 우리 역사에서의 자료를 바탕으로 위례성, 한산의 위치를 검토하고자 한다. 백제 초기 온조왕 시기의 위례성, 한산의 자료를 먼저 살펴 보고 (I), 그 다음으로 한성백제 (또는 위례성백제)가 끝나는 시기인 개로왕 시기와 북위와 전쟁을 한 동성왕 시기의 역사자료를 살펴 보며(II) 그 위치를 가늠하고자 한다. 그 다음으로는 백제 온조왕 시기부터 개로왕 동성왕 이후 시기까지의 주위 상황, 즉 말갈, 낙랑, 고구려 등을 보며, 위례성과 한성의 위치를 가늠하고자 한다 (III). 이어서 필자가 추정하는 지역인 이태리 반도, 발칸반도, 그리고 이베리아반도의 당시 역사 (서양역사)를 살펴 보며, 위례성과 한산의 위치를 가늠하고자 한다 (IV). 마지막으로 이러한 상황을 모두 검토한 결론이 도출되는 지역이 어디인가를 추정하고자 한다 (V). 본 글에서는 (I)에 해당하는 백제 초기 역사자료에 나타난 위례성과 한산 자료를 바탕으로 일단 그 위치 추정을 해 보고자 한다.
I. 백제의 초기 위례성, 한산에 대한 검토
1. 온조 시기의 백제는 마한의 동북쪽에 위치
"삼국사기에 따르면 온조왕 24년 가을 7월에 왕이 웅천(백제와 마한의 경계)에 목책을 쌓자 마한 왕이 사신을 보내 "왕이 애초에 강을 건너와 발 붙일 곳도 없었을 때 내가 동북쪽의 땅 1백 리를 주어서 살게 해줬는데 마땅히 이에 보답할 생각은 하지 않고 성과 연못을 크게 만들고 우리 강토를 침범하니 이것을 어찌 의리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항의하자,[15] 온조왕은 부끄러워하며 쌓았던 목책을 허물었다고 한다. " (자료 : 온조, 나무위키, 필자의 다음 블로그, 카테고리, 백제, 펌글 참조)
마한의 동북쪽에서 백제가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마한과 백제의 경계가 웅천이라고 했다. 마한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 백제 건국의 위치가 정해진다. 그리고 웅천이 어디 있느냐도 중요한 관건이 된다.
마한이 필자가 추정한 바와 같이 가능성이 제일 큰 이태리 반도라면 (본 블로그 글, '마한은 이태리 반도를 포함하였다' 참조), 마한의 동북쪽은 이태리반도 동북쪽, 또는 파노니아지역 또는 Dinaric Alps의 서쪽 Illyrians지역일 수 있다.
그리고 웅천은 어디인가가 문제인데, 이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단지 현재로서는 웅진 등 웅진성 등과 연결된 강지역이 아닌가 추측한다. 웅천은 곰이 나타나는 강이라고 추측되는데, 곰은 높은 산이 있는 서유럽 각지역에 있었다. 즉 알프스산맥에도 있었을 것이고, Dinaric Alps지역에도 있었을 것이고, 피레네산맥에도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백제의 한성백제 이후 웅진백제의 지역이 터어키 아나톨리아지역 소아시아의 서해안지역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이곳은 진한에 보다 가까운 지역이므로 마한에 있던 백제지역이라 판단하기 어렵다. 즉 웅천은 곰이 나타나는 높은 산이 있는 지역으로 판단할 때, 알프스 산맥이나 발칸반도 서쪽지역일 가능성이 많다.
2. 위례성 북쪽으로는 강(漢水)이 흐르고, 동쪽에 높은 산(漢山, 부아악(負兒嶽))이 있고 서쪽은 큰 바다이며 남쪽은 기름진 땅이다.
"그리고 부아악(負兒嶽)[10]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던 중 한수 이남의 땅이 나라를 세우기 좋다는 생각을 하고, 하남 위례성에 터를 잡고 십제(十濟)를 건국했다.
...마침내 오간·마려 등 10명의 신하와 함께 남쪽 지방으로 떠났다. 백성 가운데 그들을 따르는 자가 많았다. 그는 한산에 도착하여 부아악에 올라가 거주할 만한 곳을 찾았다. 비류는 바닷가에 거주하기를 원하였다. 10명의 신하가 간하여 말했다.
"이곳 하남 땅만이 북쪽으로는 한수가 흐르고, 동쪽으로는 높은 산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비옥한 들이 보이고, 서쪽은 큰 바다로 막혀 있습니다. 이러한 천험의 요새는 다시 얻기 어렵습니다. 이곳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비류는 듣지 않고 백성들을 나누어 미추홀로 가서 터를 잡았다.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10명의 신하로 하여금 보좌하게 하고, 국호를 십제라고 하였다. 이때가 전한 성제 홍가 3년이었다. 비류는 미추홀의 토지가 습기가 많고, 물에 소금기가 있어 편히 살 수가 없다고 하여 위례성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곳 도읍이 안정되고 백성들이 태평한 것을 보고는 부끄러워 하며 후회하다가 죽었다. 그의 신하와 백성들이 모두 위례로 돌아왔다. 그 후 애초에 백성들이 즐거이 따라 왔다고 하여 국호를 백제로 바꾸었다."
(자료 : 온조, 나무위키, 필자의 다음 블로그, 카테고리, 백제, 펌글 참조)
이 자료는 하남 위례성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지형을 묘사하고 있다. 위례성 위에는 한수가 흐르고, 동쪽으로는 높은 산이 흐르며, 서쪽으로는 큰 바다가 있고, 남쪽으로는 비옥한 땅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부아악, 한산에 올라 주변 지형을 살폈다고 했다.
이런 지형은 이태리 북동부 지형도 될 수 있고, 프랑스 동남부 Massif central지역도 될 수 있다고 본다. 단 Dinaric Alps지역은 같은 지형을 갖추었으나 지역이 남북으로 긴 협소한 면을 보인다. 부아악이란 한산이 사람들이 오르기 비교적 용이한 지역임을 짐작할 때, 매우 높은 고산지역은 아닐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 면에서 판단할 때, 부아악이 알프스산맥이나 Dinaric Alps가 아닌 프랑스 동남부의 Massif Central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Massif Central에는 갈석산이 있다고 필자는 추정했으며, 동쪽의 높은 산은 비교적 멀리 있는 알프스산맥을 가리키며, 서쪽의 바다는 비교적 멀리 있는 대서양을 말하게 된다. 남쪽에는 비옥한 땅이 있지만 또한 지중해란 바다가 있다.
그리고 한수와 한산이라는 단어가 고민을 주는 단어이기도 하다. 모두 한(漢)나라 한자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한수와 한산이란 지명은 한나라를 대표하는 강과 산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명칭을 가질 만한 곳은 어디인가? 필자는 본 블로그 글, '한(漢)나라와 조선의 경계인 패수는 독일의 라인강인가?'라는 글에서 한(漢)나라 지역을 라인강 좌측 지역으로 추정했다. 따라서 Alps산맥이나 Dinaric Alps산맥 근처에 한수와 한산이 있다고 추정하는 것은 무리이다. 즉 프랑스의 Massif Central 지역에 한수와 한산이 있다는 추론이 된다. 이 지역에 가까운 강은 Loire River이다.
Map of Loire River(르와르강) in France (source : Wikipedia)
그러면 이 지역에 한(漢)나라가 중심적인 지역이었을까? 한(漢)나라라 하면 넓은 지역을 우리는 상상한다. 즉 진(秦)나라 이후 분열된 중국을 통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라리 오호십육국시대의 한조(漢趙)의 위치를 가늠하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다.
한조(漢趙)는 AD 304-329기간 존재한 나라로서 흉노족 출신의 유연이 세운 나라이다. 초기에는 흉노족 전체를 관장하던 유연이 한(漢)나라를 세우고, 319년에는 흉노족의 후예를 다시 알리는 의미에서 5대조 유요는 나라이름을 조(趙)로 바꾸었다. 이들의 수도는 평양(平陽)과 장안(長安)이었다. 물론 화북지방에 있었다 한다.
우리는 묵특선우의 흉노가 한(漢)나라를 많이 괴롭힌 역사를 안다. 즉 흉노는 한(漢)나라의 북쪽에 있었다. 더구나 상기 오호십육국시대의 한(漢)나라를 세운 유연은 남흉노 선우의 자손이라 한다. (자료 : 한조(漢趙), 전조(前趙)(오호십육국시대), 나무위키,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한조, 펌글 참조)
즉 한나라와 남흉노의 경계선 지역을 포함한 나라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따라서 Loire River가 이 지역에 해당하는 한수(漢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이 지역에서 가까운 산은 Massif Central 밖에 없다. 따라서 이곳에 한산(漢山)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이곳은 필자가 추정하는 고구려 고주몽의 졸본부여의 졸본천인 Rhone River의 지류인 Jabron river에서 서남쪽으로 내려간 지역이다.
그러나 이 지역이 마한의 동북쪽이 되려면 이베리아 반도에 마한이 있었어야 한다. 이는 추가적인 서양사 연구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베리아반도 내지 프랑스 남부에 이후의 백제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이것 또한 추가적인 서양사 연구가 있어야 한다.
또한 시기적으로 이 시기에 이 지역에서 백제의 건국이 가능한 것인가? 온조왕 시기는 BC 18-AD 28년 기간이다. 이때의 중국은 전한(BC 206-AD 8)말기이며, 후한(AD 25-220)이 세워지는 시기이다. 그 사이에는 왕망의 신(新)나라(AD 8 - 23)가 있었다. 따라서 중국의 한창 혼란기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온조가 고구려에서 내려와 새 나라를 세울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다. 서양사에서는 로마제국이 BC 27에 시작하는 시기이다.
또한 온조의 백제는 말갈과 낙랑과 심한 전쟁을 겪었다. 따라서 이들 나라가 주위에 있어야 이들과 마찰을 설명할 수 있다. 서양사에서도 이 지역 주위에 이런 역사가 있었는지 검토가 있어야 한다. 이는 보다 후편에 가서 더 분석될 것이다.
3. 위례성은 고구려의 남쪽에 있었다
"삼국유사에서도 『고전기(古典記) 』라는 사서를 인용하는데 여기서는 주몽의 셋째라고 기록 되어있다.
『고전기(古典記)』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동명왕(東明王)의 셋째 아들 온조가 전한 홍가(鴻嘉) 3년 계묘(기원전 18)에 졸본부여에서 위례성에 이르러서는 수도를 정하고 왕이라 칭하였다. 14년 병진(기원전 5)에 한산(漢山)으로 수도를 옮겨 389년을 지냈다."
(자료 : 『삼국유사』 제2권 기이 제2 남부여ㆍ전백제ㆍ북부여)
(인용출처 : 온조, 나무위키, 필자의 다음 블로그, 카테고리, 백제, 펌글 참조)
졸본 부여에서 남으로 내려와 위례성에 수도를 정했다가 기원전 5년 한산(漢山)으로 수도를 옯겼다고 한다. 그리고 389년을 백제 수도로 있었다 한다. 초기에 수도를 옮긴 것을 보면 가까운 곳일 가능성이 많고, 산으로 갔다는 것은 주변국 침략으로부터 보다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한산에 있는 성을 한성이라 했는지 추정은 가나 역사적 자료는 없어 보인다.
4. 초기 백제는 고구려의 남쪽 한산에 있었다.
"해동고승전에서는 한국의 고대 사서인 기로기(耆老記)를 인용한 대목에서 백제의 건국이 등장하는데 이 기록에는 비류와 온조가 힘을 합쳐 나라를 세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로기(耆老記)≫에 이르기를,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은 고구려 여자에게 장가들어 두 아들을 낳아, 이름을 피류(避流)와 은조(恩祖)라 하였다. 두 사람은 뜻을 같이하여 남쪽으로 가서 한산에 이르러 나라를 세웠다.”
해동고승전 제1권 석마라난타
...............
고구려의 왕자였다는 전승을 따르자면, 고구려에서 지내던 온조왕은 후에 부여를 떠나 고구려로 온 이복 형인 유리가 태자가 되자, 친형 비류와 어머니를 모시고 고구려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갔다. "
(자료 : 온조, 나무위키, 필자의 다음 블로그, 카테고리, 백제, 펌글 참조)
부여의 유리가 고구려로 와서 비류와 온조, 그리고 소서노인 어머니까지 남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부여가 북유럽에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본 블로그 글, '반달족인 Burgundians은 북부여, 동부여인가?' 참조). Rhone River에 있는 졸본 부여에서 남으로 내려 오는 길을 상상해 보자. 이태리 반도 북부로 내려 오려면 높은 알프스 산맥을 건너야 한다. 어머인 소서노를 모시고 가기 어려운 여정이다. 발칸반도로 가기 위해서도 알프스산맥을 거쳐야 하고, 너무 멀어 이동에 따른 위험이 많이 있다. 그러나 프랑스 남부지역으로의 이동은 비교적 용이한 경로가 된다. 비류는 바닷가(미추홀)에 나라를 세웠다 한다. 프랑스 남부지역 지중해 바닷가 마르세이유 등이 가능한 지역이라고 본다. 마르세이유는 역사가 깊은 항구도시이다.
5. 백제의 시조는 '우태' 또는 '구태' 이름이다.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 구태와의 관계
한편 외국 기록인 위서 백제전, 북사 백제전, 주서, 수서, 책부원귀 등에서는 구태가 백제의 시조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위의 우태와 음이 통하는 듯 해서 동일인물로 보기도 한다. "
(자료 : 온조, 나무위키, 필자의 다음 블로그, 카테고리, 백제, 펌글 참조)
중국 사서에는 백제의 시조가 우태 또는 구태라 한다. 우태 또는 구태는 동일인물이라 추정하고 있다. 필자는 이 우태 또는 구태가 Augustus(아우구스투스)를 한자음으로 음차한 것이 아닌가 한다. 즉 Augustus가 온조가 아닌가 하는 추정이다. 이는 로마사 초기 자료의 상세한 검토를 요한다. 후에 추가될 것이다.
6. 삼국사기의 온조왕 자료
《삼국사기》 시조 온조왕 (BC 18 - AD 28) 본기
一年 백제가 건국되고 온조왕이 즉위하다 (BC 18)
一年夏五月 동명왕의 사당을 세우다 (BC 18)
二年春一月 말갈에 대한 방어 대책 마련을 지시하다 (BC 17)
二年春三月 을음을 우보에 임명하다 (BC 17)
三年秋九月 말갈을 크게 격파하다 (BC 16)
三年冬十月 겨울에 우레가 일어나고 복숭아, 오얏꽃이 피다 (BC 16)
四年 흉년이 들고 전염병이 돌다 (BC 15)
四年秋八月 낙랑에 사신을 보내 우호 관계 맺다 (BC 15)
五年冬十月 사냥하여 사슴을 잡다 (BC 14)
六年秋七月 일식이 나타나다 (BC 13)
八年春二月 말갈을 크게 격파하다 (BC 11)
八年秋七月 백제와 낙랑의 우호 관계가 단절되다 (BC 11)
十年秋九月 신기한 사슴을 잡아 마한에 보내다 (BC 9)
十年冬十月 말갈이 북쪽 국경을 침입하다 (BC 9)
十一年夏四月 말갈이 낙랑의 부탁을 받고 병산책을 공격하다 (BC 8)
十一年秋七月 목책을 설치하여 낙랑으로 가는 통로를 차단하다 (BC 8)
十三年春二月 호랑이가 성 안으로 들어오다 (BC 6)
十三年 왕의 모후가 죽다 (BC 6)
十三年夏五月 하남 위례성으로 천도를 계획하다 (BC 6)
十三年秋七月 하남 위례성으로 백성을 이주시키다 (BC 6)
十三年秋八月 마한에 사신을 보내 도읍 옮긴 사실을 알리다 (BC 6)
十三年秋九月 성과 대궐을 쌓다 (BC 6)
十四年春一月 도읍을 옮기다 (BC 5)
十四年春二月 백성을 위로하고 농사를 장려하다 (BC 5)
十四年秋七月 한강 서북방에 성을 쌓고 주민을 이주시키다 (BC 5)
十五年春一月 궁궐을 새로 쌓다 (BC 4)
十七年 낙랑이 침입하여 위례성을 불태우다 (BC 2)
十七年夏四月 사당을 세우고 국모를 제사지내다 (BC 2)
十八年冬十月 말갈을 격파하고 추장을 생포하여 마한에 보내다 (BC 1)
十八年冬十一月 낙랑을 공격하기 위해 구곡까지 행차하다 (BC 1)
二十年春二月 천지신명에게 제사지내다 (AD 2)
二十二年秋八月 석두와 고목 2성을 쌓다 (AD 4)
二十二年秋九月 말갈을 격파하다 (AD 4)
二十四年秋七月 웅천책을 세우자 마한이 항의하다(AD 6)
二十五年春二月 한성의 민가에서 말이 소를 낳다 (AD 7)
二十六年秋七月 마한 병합을 계획하다 (AD 8)
二十六年冬十月 마한을 기습하여 합병하다 (AD 8)
二十七年夏四月 마한을 멸망시키다 (AD 9)
二十七年秋七月 대두 산성을 쌓다 (AD 9)
二十八年春二月 다루를 태자에 임명하고 군사에 관한 일을 맡기다 (AD 10)
二十八年夏四月 서리가 내리다 (AD 10)
三十一年春一月 민가를 남부와 북부로 편성하다 (AD 13)
三十一年夏四月 우박이 내리다 (AD 13)
三十一年夏五月 지진이 일어나다 (AD 13)
三十一年夏六月 지진이 일어나다 (AD 13)
三十三年 큰 가뭄이 들고 백성들이 굶주려 도둑이 생기다 (AD 15)
三十三年秋八月 동부와 서부를 설치하다 (AD 15)
三十四年冬十月 마한 잔당의 반란을 진압하다 (AD 16)
三十六年秋七月 탕정성을 축조하고 주민을 이주시키다 (AD 18)
三十六年秋八月 원산과 금현의 두 성을 수리하고 고사부리성을 쌓다 (AD 18)
三十七年春三月 달걀만한 우박이 내리다 (AD 19)
三十七年夏四月 흉년이 들어 고구려로 도망간 사람이 많이 나타나다 (AD 19)
三十八年春二月 지방을 순방하다 (AD 20)
三十八年春三月 농업과 잠업을 권장하고 백성의 부역을 줄이다 (AD 20)
三十八年冬十月 천지신명에 제사지내다 (AD 20)
四十年秋九月 말갈이 술천성을 공격하다 (AD 22)
四十年冬十一月 말갈이 부현성을 습격하다 (AD 22)
四十一年春一月 북부의 해루를 우보로 임명하다 (AD 23)
四十一年春二月 위례성을 수리하다 (AD 23)
四十三年秋八月 아산벌에서 사냥하다 (AD 25)
四十三年秋九月 기러기가 왕궁에 모여 들다 (AD 25)
四十三年冬十月 남옥저 구파해 일행이 귀순하다 (AD 25)
四十五年 큰 가뭄이 들어 초목이 마르다 (AD 27)
四十五年冬十月 지진이 일어나서 백성의 가옥이 손상되다 (AD 27)
四十六年春二月 온조왕이 죽다 (AD 28)
(자료 : 온조, 나무위키, 필자의 다음 블로그, 카테고리, 백제, 펌글 참조)
온조 시기를 보면, 백제는 말갈과 치열한 싸움을 하였고, 낙랑과도 초기에는 우호적으로 지내다가 이후 적대적으로 변해 치열한 전쟁을 하였다. 또한 당연히 고구려 남쪽에 있으므로 고구려와 가까이 있었고, 남옥저 일행이 귀순하는 것을 보면 마한을 점령한 이후에는 남옥저와 근접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관련국들의 위치 추정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특히 낙랑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므로 별도로 낙랑에 대한 연구를 추후 하고자 한다.
7. AD 118년, 부여왕의 아들 위구태가 한나라와 함께 현도성을 포위한 고구려 마한 예맥과 싸웠다.
즉 부여, 한나라, 고구려, 마한, 예맥이 모두 현도성과 가깝다는 것이다.
"十二月 王率馬韓穢貊一萬餘騎 進圍玄菟城 扶餘王遣子尉仇台 領兵二萬 與漢兵幷力拒戰 我軍大敗
12월, 임금이 마한(馬韓)과 예맥의 1만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나아가 현도성을 포위하였다. 부여 왕이 아들 위구태(尉仇台)를 보내 병사 2만 명을 거느리고, 한나라 병사와 힘을 합쳐 막고 싸우니 우리 군사가 크게 패하였다.
《삼국사기》권15 태조 대왕 69년 (AD 118)"
(자료 : 마한, 나무위키,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춘추전국/삼한, 펌글 참조)
고구려 태조왕 시기인 이때는 후한 시기이다. 즉 후한도 전한과 마찬가지로 패수(라인강)의 좌측에 있었다는 증거이다.
부여는 요수(론강)의 북쪽에 있는 북부여와 동북쪽에 있는 동부여의 가능성이 있다. (본 블로그 글, '반달족인 Burgundians은 북부여, 동부여인가?' 참조). 그러나 부여왕의 아들을 위구태라 하는 것을 보면 로마제국의 왕을 상징하는 Augustus를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부여도 로마제국의 일부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부여(=Burgundians)가 알프스산맥으로 이동한 시기가 AD 118년 이전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마한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보면, 상기 온조왕 시기에 마한을 병합하였다는 것은 마한의 일부일 수 있다. 고구려와 같이 싸운 마한은 중유럽에 있었던 중마한일 수도 있다고 추정한다. 이 당시 현도성은 요수인 론강의 우측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예맥은 알프스산맥 주위에 있었던 창해군이 있던 지역의 예맥이 아닌가 한다. (본 블로그 글, '동예가 있던 창해는 어디인가?' 참조)
이상으로 백제 초기의 자료를 바탕으로 위례성, 한산에 대한 위치 추정을 나름대로 해 보았다. 이어서 백제의 개로왕, 동성왕, 그리고 그후의 시기 위례성과 한산의 자료를 바탕으로 다시 그 위치를 추정해 보고자 한다. 그런 후에 주변국과의 위치를 고려하고, 서양사에서의 자료를 검토하며, 그동안 추정한 위치를 확인하고자 한다. 본 글은 이상의 분석으로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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