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싸늘한 대통령 표정이 국익에 부합했는지는 모르겠다. 한·미·일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일본에서 고노담화는 여전히 검증 대상이라는 주장이 다시 나오기 시작하였다. 기어코 초등학교 교과서에 “독도는 한국이 불법점유한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내용을 기입하였다. 군 위안부 문제 역시 일본이 한국에 할 만큼 했다는 내용이 외교청서에 실릴 예정이다. 일본의 역사 인식은 우리를 아프게 한다. 그러니 한·일관계 회복은 먼 산의 지는 해와 같은 형국이다.
우리가 북한의 무인기로 떠들썩한 사이, 미국의 척 헤이글 국방부 장관이 2주 전 주말 일본을 방문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지켜주겠다고 공약한 부다페스트 합의를 이행하지 못하자, 일본 조야에서는 과연 센카쿠를 중국이 강제 점령할 경우 미국이 일본을 지켜줄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에 헤이글 국방장관은 일본에 이지스함 2척을 추가 배치하여 총 7척을 배치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아베 총리가 헌법해석 변경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미 국방장관은 “평화와 안정에 공헌하기 위해 더 적극적 역할을 하려는 일본의 노력을 지지하고 환영한다”고 일본의 손을 번쩍 들어준다. 게다가 일본의 무기 수출에 대한 지지도 표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센카쿠는 미·일 동맹의 적용 대상이라고 확인한다. 이쯤 되면 한·일간 불협화음은 미·일 동맹의 작은 불편함도 못되는 것 같다. 이것이 강대국 국제정치의 이기적 속성과 북한의 위협 속에서 살아야 하는 안보 약소국의 설움이라고 할지언정, 우리 이웃이나 동맹이 한국을 고려하지 않은 채 너무 막 나가는 것은 아닌가라는 불손한 생각이 들 정도이다.
결국, 우리는 한·일관계에서 파생되는 역사적 정체성과 동맹관계에서 확보해야 하는 안보이익 사이에 갈팡질팡하게 되었다. 일본이 자신의 과거사를 적극적으로 부정하거나, 미국이 전략적 이익에 따라 반성 없는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지지하더라도 우리는 별다르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와중에 우리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시기를 최대 2년 연기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을 미국 측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미 양국이 2015년 12월로 예정된 전작권 전환을 또다시 연기할지 여부를 협의 진행하던 중에 나온 것이다. 더욱이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 한·일간의 안보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들린다.
더 나아가 일본과의 안보 협력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고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이것을 “미국 견제가 아니야?”라고 비판하기보다는 “미국을 견제하면 어때?”라는 담대한 세계관이 필요하다. 그러한 안보관의 지향점이 한국의 국익과 안보강화라면 이도 중요한 사고의 전환이다. 결국 미국만 바라보는 안보와 외교의 끝이 대한민국 국익에 직결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세계관도 한국사회에 설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안보 의존이라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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