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를 보다가 인명을 찾고,또 찾다가 뱅글뱅글 돌다가 고구려사까지 왔습니다..
링크한 내용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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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世<長壽大帝>紀 제20세<장수대제>기(4)--초벌완역(08/07/20)
◎ 命<助多>太子如<魏>吊<弘>, 曰;“鍊丹·黃老, 總萬法以皈真, 禁殺牛馬恣一塵之不仁.” 或告于<馮>女, 曰;“牛馬者, <馮>牝也.” <馮>, 不敢問之, 厚待<助多>, 曰;“叔皇春秋己高, 文辞如是好矣.” <助多>曰;“父皇願與姊后會于<月海>.” <馮>女, 老身, 已乏觧裙之慾, 且無<賀蘭>之力, 焉能飛到<廣寒殿>乎. 然, 老欲尙熾與<助多>相通, 云矣. <助多>, 方年三十三, 以<嘉蘭>之出, 與<馮>女情宻. <馮>, 累遣使請封正嗣, 乃置東宮府僚屬. 而<助多>, 因<馮>女之{挽}, 留在<魏>未歸. 故送其東宮印冊于<魏>. <魏>亦別行冊封之禮, 云. ○ <조다>태자에게 명하여 <위>로 가서 <홍>을 문상하여서 이르길; “연단{道家에서 不老不死하는 薬을 만드는 재주}과 황로{仙家의 기술}에서는 만법이 모두 진{真}으로 귀일하여, 우마{牛馬}를 살생하는 것 같은 티끌만큼의 어질지 못함도 함부로 하는 것을 금하고 있소.”라 하였더니, 누군가가 <풍>녀에게 고하길; “우마{牛馬}라 함은 <풍>씨 집안의 여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라 하였다. 이에 <풍>녀는, 감히 그게 누구냐고 묻지도 못하고, <조다>를 후하게 대접하면서 “숙부이신 황상께서는 춘추가 높아지시더니 글로 써서 하시는 말씀도 이렇게도 멋지십니다.”라 하였고, <조다>는 “부황께서는 누님이신 후와 <월해>에서 만나시길 바라셨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풍>녀는 몸이 늙어 이미 속옷을 풀어헤칠 욕정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하란>같은 근력도 없었을 것인데, 어찌 능히 <광한전>으로 날아갈 수나 있었겠는가! 그런데도, 늙은이가 오히려 달아올라서 <조다>와 상통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조다>는, 바야흐로 나이가 서른셋으로, <가란>의 소생이어서, <풍>녀와는 정이 깊었었다. <풍>녀는 여러 번 사신을 보내 정식 후사로 삼아주길 청하더니, 결국 동궁부를 설치하고 관료들도 딸려주었고, <조다>는 <풍>녀가 붙잡는 바람에 <위>에 눌러앉아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동궁의 인장과 책봉서를 <위>로 보내주었더니, <위>도 별도로 책봉의식을 행하여 주었다 한다.
◎ 四十八年庚申, 二月, <助多>太子喪来自<魏>. <李奕>, 以後, 太子與<馮>后媾好生産, 妬者不少使刺客累伺, 至是, 為怪賊所射, 中毒而薨. 上, 哭, 曰;“父為東皇, 汝為西皇, 福已溢矣. 汝何不勅, 遂至此狀邪.” <助多>妃, 哭, 曰;“父皇雪待<馮弘>・<馮>女之殺吾夫. 安知不為報讐乎.” 上曰;“汝, 為曠夫, 而怨父. 吾豈發明哉. 但, 汝, 子已長, 不須改嫁也.” 命皇孫, 引其母而去, 葬于<黃山>. 四月, 旱甚, 祈雨. <道成>遣使来貢綾羅錦繡・孔雀等物. 命長史<王晉>荅使送逢, <魏>船執留. <魏>主曰;“弑君之賊, 叔皇何以通之.” 上曰;“来者, 不拒故也.” 十一月, 命<末曷>伐<羅><比列忽>.
○ <장수>48년{단기2813년/AD480}경신, 2월, <조다>태자의 시신이 <위>에서 도착하였다. <이혁{李奕}>이, <풍>태후와 좋아지냈던 이후에, 태자{=助多}가 <풍{馮}>후와 좋아지내면서 애를 낳음에, 시새움이 적지 않더니만 자객을 시켜서 여러 번을 엿보았었고, 이때에 이르러 괴이한 도적의 화살을 맞아 독으로 죽은 것이었다. 이에 상이, 소리 내어 울면서, 이르길; “아비는 동쪽의 황제이고, 너는 서쪽의 황제이어, 복이 이미 넘쳤었거늘, 너는 왜 조심하지 않았다가 이런 꼴이 되었느냐?”라 하였다. <조다>비가 울면서 아뢰길; “황상이신 아버님이 설욕해 주시길 원합니다. <풍홍>과 <풍>년이 죽인 것입니다. 어찌 알고서도 복수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라 하니, 상이 이르길; “네가 오래도록 지아비 없는 홀몸이 되더니 아비를 원망하는구나. 내가 어찌 내 잘못이 없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다만 너는, 아들이 이미 장성하였으니, 개가는 아니 된다.”라 하였다. 황손에게 명하여, 어미와 함께 가서, <황산>에 묻어주라 하였다. 4월, 가뭄이 심하여 기우제를 지냈다. <소도성>이 사신을 보내와서 능라금수{명주로 짜고 수놓은 비단} 및 공작 등의 물건을 바쳤다. 장사 <왕진>에게 명하여 답방 사신을 보내 만나보게 하였더니, <위>의 수군이 붙잡아 억류하였다. <위>주가 말하길; “{<도성>이는} 임금을 죽인 도적놈인데, 숙황께서는 어찌 오가게 하십니까?”라 하였다. 이에 상이 이르길; “찾아오는 자는 적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11월, <말갈>에 명을 내려서 <신라>의 <비열홀>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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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서쪽에 있었다는 것이며, 과연 서쪽이 어디일까요?
동쪽의 황제는 장수왕이고,서쪽의 황제는 조다황태자 라고 나오네요...
그럼 대륙이 너무 넓어서(제후국을 두었지만)황태자가 다스리고 있었던 증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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