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먼제국>
박용숙 저
머릿글
한반도에는 적어도 4세기 이전에 국가가 존재했던 것을 보여주는 유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해마다 개천절이면 어김없이 반만년의 역사를 기념하지요. 이는 정말 희극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 가운데 누구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도 한반도 여기저기를 파면서 반만년 역사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찾는 물건들은 나타나지 않고 엉뚱한 물건들만 쏟아져 나옵니다. 이집트, 크레타, 소아시아(켈트양식)의 물건들이 우리 땅속에 묻혀 있으니 이를 어찌 생각해야 할까요? 그뿐 아닙니다. 인도, 중앙아시아의 물건도 있고 동남아시아나 중국의 남북조 시대 물건도 있습니다. 발굴상황을 보면 이 물건들은 대략 5세기경에 이 땅에 묻혔습니다.
5세기 즈음에 한반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우리 조상이 이집트나 소아시아로 쳐들어가 약탈을 했다고 할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전설적인 도깨비들을 모두 동원하여 감쪽같이 그것들을 훔쳐다가 한반도에 묻었다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유물의 실체는 그런 가정을 우스꽝스럽게 만듭니다. 그것들은 거의 신성한 제기나 의례기구들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4,5세기경에 어떤 종교세력이 한반도로 밀려 왔다고 말해야 이치에 맞습니다.
그렇다면 그 종교의 실체는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종교가 샤머니즘입니다. 19세기 초에 서구 학자들이 발견한 샤머니즘이 미개 종교가 아니라 깨달음(해탈)을 유도하는 방법의 종교였다는 사실은 이제 정설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샤머니즘 시대는 태양을 신으로 숭배하고 천문학을 교리로 믿었던 제정일치의 사회였습니다. 태양신(우리 용어로는 옥황상제)은 많은 천문박사와 음양(무巫)박사를 거느리는데, 그 박사들이 바로 샤먼입니다. 샤먼은 태양신인 사제와 함께 세계를 지배합니다. 샤머니즘은 일종의 사원국가 형태로 구현되며, 인종을 초월하는 특수한 이념으로 세계를 지배했던 종교입니다. 그렇다면 이 종교는 어떻게 한반도로 왔을까요? 필자는 이 해답을 얻기 위해 여러 기록과 유물을 찾아보면서, 그 종교가 실은 지중해라고 해야 할 쪽에서 동진하여 한반도에 이르렇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가본 곳은 지중해 입니다. 그곳은 미술사가들이 말하는 이른바 켈트 양식의 황금유물이 만들어진 본고장입니다. 토로스산맥은 오늘의 터키 땅 한가운데에서 동서를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그곳 중부 지역에 7,000~8,000년 가량되는 고대유적 차탈휘위크가 있습니다. 1958년에 영국의 제임스 멜라트경이 그곳을 발견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지요. 그런데 똑같은 이름이 우리의 <환단고기>에 적혀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거의 같은 소리인 '사타여아'라고 부른곳에서 인류의 시조인 나반과 아만이 혼인을 했다고 적었습니다. 신전으로 보이는 유적 안에서는 천문을 상징하는 소머리(우두상)와 활활 타오르는 불이 그려진 벽화가 발견되었고, 그곳에 천문대와 연금술이 숙련된 승려 집단이 있었음이 학자들에 의해서도 확인되었습니다. 이 정황은 수메르, 바빌로니아, 이집트, 인도 모헨조다로의 유적에서도 똑같이 발견되며, 그들은 모두 태양신을 믿었습니다. 영국의 고고학자 앤드루 콜린스가 그곳에 살던 도시민들이 오늘의 동아시아인을 연상케 하는 인종이었다고 밝힌 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흑해와 코카서스 산맥으로 시선을 옮겨야 합니다. <환단고기>에는 기원전 3,400년경 환인이 차탈휘위크에서 구이九夷를 대동하고 흑수와 백산 사이의 땅으로 갔다고 써있습니다. 흑수는 흑해이고 백산은 백인종의 고향인 코카서스 산맥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구이'는 무엇을 말할까요? 헤로도토스는 이집트의 아홉신관이 전지전능한 존재였으며 우주에 관한 고도의 지식이 있었고 직접 천문을 관찰했다고 썼습니다. 아흡신관이란, 사제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이도 이와 다르지 않는 사제계급을 의미합니다. 오늘의 용어로 말하면 샤먼들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인은 백산을 가리키는 삼위태백에 있었는데 이곳은 천문대 기능을 했던 피라미드와 다르지 않습니다. 헤로도토스의 언급은 최초의 종교가 샤머니즘과 마찬가지로 천문신을 숭상하는 동이교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 고전 <서경>은 고대 세계를 구주로 나누고 그중 하나를 옹주라고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 옹주의 자리에 대해서 "흑수를 따라 삼위에 이르면 그 삼위에서 남해로 들어간다"고 적었습니다. 흑수가 흑해이고 삼위가 삼위태백임을 의미한다고 할 때, 여기서 말하는 남해는 어디일까요?
삼위태백이 있는 코카서스에서 남쪽이란 결국 자그로스 산맥니아 티그리스 강을 타고 들어가는 페르시아 만이 됩니다. <서경>이 중국 땅에서 일어난 역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고 소아시아의 일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오늘의 중국 땅에서 흑해를 찾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중국의 고문헌인 <이아爾雅>는 <논어>나 <서경>같은 책이 한자가 아니고 과두문자(올챙이문자)로 쓰여졌다고 했습니다. 중국의 고대 역사가 설형문자(쐐기문자)를 사용했던 서아시아 문명권에서 일어났음을 말합니다. 1897년 러시아의 고고학자 베세로브스키가 흑수와 백산 사이에서 기원전 3천년대의 마이코프 유적을 발굴했습니다. 이곳은 오늘날 그루지아 공화국의 영토로 마이코프 유적은 코카서스 산맥에서 발원한 쿠반 강이 서쪽 흑해로 들어가는 연안입니다. 그곳에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인물들이 거주했다는 사실이 유물을 통해 밝혀졌으며 그들이 이집트, 수메르는 물론 인도 모헨조다로 지역과도 무역을 했다는 사실도 입증되었습니다. 환인이 구이를 거느리고 그곳에서 세계를 통치했다는 <환단고기>의 기록과 일치하는 지점입니다.
이제 시선을 환인의 서자 환웅이 천부인과 승려 3,000명을 이끌고 내려갔다는 신시로 옮겨가 봅시다. 그곳은 오늘날 시리아의 중심부 알레포에서 서남방으로 약 55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고대유적 '이브라Ib-La'입니다. 거대한 접시를 엎어 놓은 모양의 이 유적은 1964년 이탈리숭의 파올로 마티에가 발굴하였고 그곳이 기원전 3,000년경의 고대도시 '델 마르두크' 신전 터였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중심부에는 아크로 폴리스가 있고 그곳에 수많은 수도승이 거주했습니다. '신시'라는 기록이 우연히 나온것이 아니지요. 게다가 '마르두크'의 뜻이 지팡이(낫)이므로 이것 역시 환웅의 천부인과 대응됩니다. 성서는 이 낫을 가리켜 만국을 지배하는 쇠지팡이라고 했습니다. 유적에서 발굴된 점토판은 마르두크신이 수메르 문명 새대의 영웅 사르곤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환웅이 곧 사르곤입니다. 그렇다면 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태어난 왕검의 역사도 그곳 어디에서 펼쳐졌을 것입니다.
왕검은 신시를 버리고 강화의 마리산으로 갔습니다. <환단고기>의 고조선기는 이곳을 아사달이라고 적어서 요긴한 정보를 남겨 주었습니다. 마리산은 오늘날 시리아의 심장부에서 유프라테스 강변을 따라 남쪽으로 나있는 마리 mari의 유적지와 대응됩니다. '강화'가 유프라테스 강이고, 마리가 mari임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겠지요? 마리 유적지에는 이슈타르 여신전의 터가 남아 있으며, 이 여신의 이름은 아스카르테라고 불렀습니다. 눈치빠른 독자라면 아슈타르케가 '아사달' 로 옮겨진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테지요. 결정적인 단서는 그곳에서 발견된 다곤Dagon이라는 신의 이름입니다. 어원이 불분명했던 단군이라는 이름의 본래 소리를 짐작케 합니다. 성서학자들은 '다곤'이 불레셋 사람들의 주신이며, 이 신은 처음 시리아 지역에서 숭되기 시작해서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고 합니다. 적어도 기원전 2,000년경에는 다곤(단군)이라는 이름의 신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불레셋 사람들은 누구 일까요? 성서에는 이 사람들이 람세스3세(기원전 1,188년) 때 이집트를 침입했다고 써 있습니다. <환단고기>에도 이와 같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이집트를 인종의 특징을 반영하여 남국이라고 쓰는데, 제21세 단군 소태 때(기우너전 14~13세기)에 이집트로 들어가 그곳에 후국(고리후)를 세웠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이집트 람세스2세가 반격하자, 고조선은 마리의 아사달을 버리고 다시 환웅 시대의 이브라(신시)로 돌아갔다고 썼습니다.
불행하게도 기원전 7세기경에 시리아 지역에 천재지변이 일어나 많은 신전과 왕궁이 무너졌습니다. 신시도 무너져 단군조선은 북쪽의 소아시아 반도로 천문대(부도, 샤머니즘 시대의 신전)을 옮깁니다. 단군 보을때입니다. 옮긴 곳은 오늘의 터키 중서부에 있는 사르디입니다. <환단고기>는 사르디스를 진晉이라고 쓰고 그곳에 천문대가 있다고 암시했는데, 사마천도 <환단고기>와 똑같이 진을 언급합니다. 사르디스는 'Asia' 'Anatole'로 적으며 그 뜻은 '솟아오르는 태양'입니다. 이 개념이 그리스 신화에서는 올림프스라고 표현됩니다. '진'도 천문대가 있는 곳, 해가 떠오르는 부도를 뜻합니다. 고조선은 이곳에서 기원전 6세기경에 막을 내리고 그곳의 사제 계급(구이)이 새 부도를 세우기 위해 중앙아시아의 박트리아, 소그디아나 지역으로 옮겨갑니다. 진은 곧 조선이고 조선은 오늘날 로마 교황청과 같은 기능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두뇌집단인 샤먼(구이)들이 만장일치의 의사결정을 통해 세계를 지배했던 것이지요. 이후 세계사는 열국들이 세계국가(교황청)의 지위를 얻기위해 부도(조선)을 두고 치열한 각축을 하는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새로운 곳에서 일어난 샤먼 사제단이 대월지이며, 그들이 포스트 고조선 세력입니다. 우리의 삼국사는 이곳에서 시작했습니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북부여의 해모수가 메디아 제국의 영웅이며, 오늘의 카스피해(가섭원)남쪽에 있는 고대도시 헝그마타나성에 도읍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헝그마타나 성은 우리 쪽에서 홀승골 성이라고 기록되며, 주몽은 이곳에서 부여의 태자 대소에게 쫒기어 오늘의 중국 신강성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들어옵니다. 거기에서 졸본부여의 공주와 혼인하며 고구려를 세운 것이지요. 졸본부여의 중심지는 누란이며, 중국은 이를 '소월지'라고 적습니다. 사마천의 기록에는 한의 무제가 기원전 2세기경에 그곳을 침략하여 한사군을 두었다고 썼습니다. 조선이 기원전 2세기경에 중원에 있었음이 드러나지 않습니까? 고구려는 이곳을 기점으로 잃어버린 고조선을 되찾기 위해 소아시아의 사르디스로 진출하게 됩니다. 하지만 곧 알렉산드로스의 정벌로 그 뜻을 접어야 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알렉산드로스의 헬레니즘 시대는 단명했는데, 304년에 부도(구이) 세력이 중앙아시아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중국은 이를 서진이라고 기록합니다. 구이가 중국의 서쪽에서 일어났다는 뜻이지요. 고구려, 신라, 백제의 역사무대가 여기입니다. 그들이 바로 부도를 지키거나 운영하는 삼한입니다. 고구려는 태조대왕 부터 15대 미천왕 때까지 오늘의 우즈베키스탄을 일컫는 소그디아나 지역(사마르칸트)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박트리아, 소그디아나의 구이세력은 자중지란으로 불과 10여년 만에 종지부를 찍고 샤면 사제계급(구이)들이 뿔뿔이 흩어져 오늘의 중국땅으로 옮겨와 세력 다툼을 벌이게 됩니다. 이 시대를 중국은 오호십육국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 와중에 서진시대의 종실인이 다시 부도를 세우게 되어 중국이 이를 동진이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서쪽의 부도세력이 동쪽으로 옮겨 왔다는 뜻이지요.
이 진晉은 대개 남경 일대와 사천성의 성도와 섬서성의 장안 그리고 산둥의 광고로 옮겨 다녔던 것으로, 이 진이 다름 아닌 신라, 백제, 고구려의 삼한(3기능)을 대표하는 주체입니다. 처음 이 진의 세력은 감숙성, 섬서성의 동쪽에서 청해에 이르는 오아시스 일대에 근거를 두고 전개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누구나 당황하겠지요. 이곳이 중국의 고유 영토라는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국이 중국사의 실체라고 말하는 한나라(후한)는 이미 기원후 3세기 중반에 지도상에서 사라져 버린 상황입니다. 그러니 그 빈터에서 우리의 고대사를 말하는 진의 역사가 전개된다고 해서 하등 이상할 일이 아닙니다.
동진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이미 사원국가 형태의 통치방식(샤머니즘)은 식상해 졌고 바야흐로 불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사제계급의 대리자였던 고구려는 이때 장안을 근거지로 둥황에 군사기지를 두고 있었는데, 북위가 동진을 대신하여 세계국가(천하국)의 지위를 얻게되자 고구려의 장수왕은 427년에 한반도(평양)로 근거지를 이동합니다. 그런가 하면 양자강 하류 지역의 남경에서 양나라를 세웠던 백제 세력은 많은 유민들을 그곳에 남겨두고 468년경에 한반도의 중서부로 옮겨 옵니다. 이 일은 <삼국사기>의 백제 개로왕기사에서, 개로왕이 동극에다 나라를 세웠다고 씀으로써 사실상 말뚝을 박아놓은 상황입니다. 극極이라는 말은 지자기의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천축이라고 씁니다. 중원에서 볼 때 동극은 한반도임이 분명합니다.
신라는 이보다 앞서는 350년경에 집안현에 나타나 그곳에 부도를 건설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집안현 태왕릉과 그일대의 고분군들이 신라의 부도인 것입니다. 중국인이 집안을 태양, 부도를 의미하는 Jin과 비슷한 소리로 '지안Jian'이라고 발음한다는 사실도 이를 뒷바침합니다. 이 중국식 표기 Jian이 동이를 가리키는 진이며 뒤에 발해가 이를 국호로 삼았지요. 집안에 부도를 건설했던 인물은 신라 제17대 내물이사금으로, 당시 실세는 그의 부친 말구각간이라고 추정됩니다. 그는 서진이 망하자 환웅이 그랬던 것처럼 중앙아시아에서 기술자 집단을 거느리고 이동하여 집안에 부도를 세웠던 것입니다. '각간'에서 '角'은 소뿔을, '干'은 흉노의 사제를 말하는 칸khan을 의미합니다.
신라가 샤머니즘 시대의 세계국가를 상징하는 부도를 세우자 고구려는 이를 그대로 방관하지 않았습니다. 469년에 장수왕은 1만 말갈병을 거느리고 신라의 실직주를 공격하여 점령합니다. 김부식은 그곳을 소머리주(우수주)라고 써야 함에도 조선의 역사를 숨기기 위해 이를 불교용어인 실직이라고 쓰고 그 위치도 지금의 삼척에다가 옮겨놓았습니다. 신라가 한반도의 붙박이 나라임을 굳히기 위해서입니다. 실직은 산스크리트어로 'siddhi'를 옮긴 글자로 보통 실지라고 번역됩니다. 브라만 승려들의 수도장을 일컫는 말입니다.
신라는 고구려에 밀려서 다시 제21대 소지마립간 때(488년)에 오늘의 경주 첨성대 앞쪽에 샤먼부도(천문대)를 건설하고 그 이름을 나을신궁이라고 부릅니다. '나을'은 날(日) 주그 태양을 뜻합니다. 이 '신궁'이 태양신을 모시는 신전이었던 것이지요. 법흥왕, 진흥왕 이후 부도(샤먼) 세력은 불교세력에 져서 그 잔존세력이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가게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책에서는 논증의 실감을 더하기 위해 서술 순서를 거꾸로 해서 먼저 한반도에서 출발하여 지중해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을 선택하였씁니다. 이 점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고대사 여행을 떠나 봅시다.
저자의 글샤머니즘이라는 지도의 발견5
여는 글헝클어진 고대사의 실마리13
제1장태양신과 샤머니즘25
고대사는 천문학과 천문대의 역사 27 │ 옥황과 상제가 있는 곳, 부도 30
구이라고 불리는 샤먼들과 신단수 32 │ 신주단지와 비밀의례 35 │
샤먼들은 부도를 바다라고 했다 38
제2장한국 고대사는 샤머니즘 문명의 역사다41
샤먼들의 낙원이었던 한반도 43 │ 경주의 본래 명칭은 해동이다 49
한반도의 첫번째 나라, 나을신궁 51 │ 여섯 가야는 샤먼의 세력 53
가야 고분은 샤먼의 신전이다 57 │ 경주의 고분에 묻힌 샤먼의 신상 61
제3장태왕릉은 신라의 금성이다67
고구려의 경당은 샤먼 수도승의 아카데미였다 76 │ 세계를 지배하는 황금지팡이와 황금관 79
나라의 언덕에서 관을 쓴다 84 │ 나라의 언덕에서 관을 쓴 광개토대왕 87
제4장샤먼 제국의 심장부, 조선의 발상지로 가다 91
삼한과 조르주 뒤메질의 3기능 체계 96 │ 고구려라는 말은 고리에서 나왔다 116
샤먼 제국은 어떻게 운영되었나 119
제5장조선역사의 첫번째 연고지는 소아시아다 133
중국 최초의 지도에 중국 역사가 없다 135 │ 황하 문명은 동이 샤먼 문명이다 137
졸본부여와 흉노 145 │ 누란이 낙랑이고 조선이다 147
타클라마칸 사막에 있던 선선국과 신라 152 │ 흉노의 오방제도 153
카스피 해 동쪽과 해모수의 나라 156 │ 동옥저는 오늘의 이란 땅에 있다 158
제6장북부여와 동부여의 위치 165
흑해, 코카서스와 북부여 167 │ 북옥저, 흑수말갈, 속말말갈 171
해모수는 메디아의 영웅 프라오르테스이다 174 │ 일본 고대사의 스사노오와 엘람의 기비 177
대월지국 박트리아 181 │ 주몽이 대천사로 임명되다 184
동부여의 해부루와 부여 제국의 관계 186
예맥에서 페르시아 제국이 일어나다 190 │ 신라 역사는 카파도키아에서 시작된다 191
서라벌과 계림국은 카파도키아에 있었다 194
부여제실의 파소와 소아시아의 데메테르 여신은 같은 인물이다 196
제7장지워진 고조선 역사199
고조선의 요람, 터키의 차탈휘위크 201 │ 소호김천과 태호복희의 고향도 터키 땅이다 205
환인의 나라 고조선 207 │ 성서가 전하는 천사의 고향 아라라트 산은 화백회의의 장소이다 213
고조선 시대의 에덴의 동쪽과 다물 215 │ 우리가 평양이라고 말하는 신들의 도시 이브라 218
제8장기원전 3000년대의 고조선 역사225
환웅, 황제, 사르곤 227 │ 요임금과 왕검조선이 있는 곳, 이브라 232
배수가 그리지 못한 기주는 오늘날 이라크의 키시 239
단군왕검의 아사달은 이슈타르 신전이다 240 │ 단군은 다곤의 이두 표기이다 244
순임금과 요임금의 갈등 246 │ 우임금, 수메르의 대홍수를 다스리다 250
제9장기원전 13세기 전후의 고조선253
아사달조선은 이집트와 전쟁을 했다 255 │ 오나라는 엘람이다 262
제22세 단군 색불루라는 인물 264 │ 색불루가 주나라의 역사를 만들다 269
사마천이 전하는 주나라 271 │ 아시리아, 주나라는 고조선의 제2기능이다 275
베일에 가린 아시리아 제국 276
제10장진 陳, 진 晉은 후기 고조선의 이름이다281
초나라는 이집트이다 283 │ 포스트 단군조선과 진 286
진 陳이 제3기능이고 진 晉은 제1기능의 이칭이다 288 │ 고조선의 멸망이 주나라의 멸망이다 291
고조선의 최후 293 │ 사제의 스캔들은 지진과 같았다 297
제11장지중해에서 만나는 춘추전국시대의 일곱 나라301
진 晉과 페르가몬 303 │ 조와 트로이 321 │ 위와 리디아 323 │ 한과 리키아 324
진과 마케도니아 325 │ 노와 로도스 326 │ 담국과 다마스쿠스 328 │ 정과 크레타 329
제나라와 제라스 333
제12장고조선의 마지막과 단군 고열가 335
사마천은 고열가를 문공이라고 적었다 338 │ 쌈지를 잃은 고열가는 어디로 가야 하나 344
쌈지를 잃은 공자는 동이로 가지만 346
제13장후기 쌈지조선의 역사와 고구려355
부여의 대소가 주몽을 쫓는다 358 │ 동명성제 주몽은 방상씨 가면을 썼다 361
후기 고조선과 동명성제의 다물흥방 363 │ 사마천이 전하는 조나라와 고구려의 무휼 373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다물흥방의 좌절 375 │ 수태고지와 구자의 수로왕 377
대무신왕과 마케도니아 진 378 │ 온조가 힌두쿠시를 넘어 백제를 건국하다 381
석탈해의 다물흥방과 박트리아 진출 385
제14장알렉산드로스 텍스트와 진시황 387
알렉산드로스와 진시황 389 │ 사마천이 기록한 진시황 394
알렉산드로스와 진시황제는 둘이 아니다 395 │
과연 진시황제가 세계의 문자를 하나로 통일했을까? 397
진시황제의 불로초와 바다는 부도 이야기다 404 │ 둔황은 샤먼 제국 시대의 샤먼 신전이다 407
진시황릉은 진대가 아니라 후한 때 만들어졌다 410 │ 사마천의 힘양은 바빌론이다 414
가락국은 펀자브, 인더스 강에서 일어났다 416
제15장알렉산드로스 이후의 역사421
대무신왕의 소아시아 진출 425 │ 쌈지도와 헬레니즘 간의 전쟁 428
한의 유방과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431 │ 유방의 세가와 시리아의 왕가 433
기원전 3세기 전후의 박트리아, 소그디아나, 졸본부여 437 │ 중산국이라는 이름의 쌈지 441
흉노의 등장과 중산국 박트리아 443
제16장온조계의 다물흥방과 파르티아447
흉노의 모돈 칸과 졸본부여 449 │ 모돈 칸이 대무신에 이어 다물흥방을 하다 451
한나라와 위만조선, 지중해에서 전쟁을 하다 455 │ 한의 무제와 조선이라는 이름 459
장건은 정말 동쪽에서 서쪽으로 갔을까? 463 │
한 무제는 서역을 정벌한 것이 아니라 요동을 공략했다 466
사가들이 중국에 옮겨놓은 서아시아의 나라들 471 │ 후한은 졸본부여 터에서 일어났다 475
중산국과 졸본부여의 밀월시대 476 │ 한나라가 멸망하자 왕망이 흉노가 되다 479
제17장백제 제국의 종말485
백제는 샤먼 대제국이었다 487 │ 백제의 역사는 전쟁으로 시작하고 전쟁으로 끝난다 496
한나라가 시리아에서 중원으로 옮겨오다 498 │ 고구려의 태조왕이 새 둥지를 튼다 501
알렉산드로스 이후의 금성 신라 507 │ 벌휴 이사금은 타클라마칸 사막에 있었다 509
《삼국지연의》에서 고구려의 수난 511 │ 촉의 어원은 고리이다 517
서진이라는 이름은 서쪽에 있는 쌈지, 서진을 가리킨다. 520 │ 옛날의 구이가 오호십육국이다 528
제18장쌈지의 역사가 동아시아로 가다531
동진과 고구려는 하나의 쌈지다 533 │ 삼성퇴의 유물은 쌈지도의 것이다 537
김부식이 숨긴 고구려―동진 시대의 제2기능 539 │
파르티아가 무너진 뒤 백제계와 고구려계가 다시 맞서다 547
광고 시대의 쌈지와 고구려, 백제, 신라 558 │ 위가 동진의 자리를 빼앗다 561
고구려 장수왕이 쌈지의 황금유물과 함께 한반도로 오다 565
광개토대왕이 죽자 신라 금성이 흔들리다 568 │ 백제 무령왕은 양나라에 줄을 섰다 570
무령왕릉은 제천의식을 행하는 소도였다 572
소지 마립간이 추문을 일으키자 지증 마립간이 대륙에서 오다 576
제19장샤머니즘의 몰락과 불교의 승리579
법흥왕과 불교입국 582 │ 선덕여왕과 황룡사 구층탑 585 │ 고구려는 어떤 나라인가 591
장수왕 이후의 고구려 594 │ 고구려가 서안에 장안성을 쌓았다 601
평양, 중원의 장안, 대월지의 장안은 하나의 고리이다 606 │ 수양제와 요동정벌 613
서부대인 연개소문과 천리장성 616 │ 중국이라는 말은 중산국에서 왔다 624
이세민의 고구려 정벌 627 │ 샤먼 제국 최후 629
닫는 글고대사의 왜곡과 시간의 엇갈림631
부록샤먼 제국의 통치구조 634 │ 주석 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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