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 7

12환국 중 양운국, 일군국의 위치 추정

지난 필자의 글, '광개토태왕의 비문을 통한 정벌 지역 추정' 에서 추정한 것을 수정하는 글이다. 이중에서 특히 일군국, 양운국 등의 위치 추정을 수정하고자 한다. 구다천국과 구다국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수정하는 글을 올리고자 한다. 1. 일군국 : 저족, 양운국 : 강족이라는 기록 : 죽서기년, 단군세기 아래 자료에서 보면 일군국은 저족이며, 양운국은 강족이라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즉 단군세기 자료에 의하면, 기원전 1289년 욕살 고등이 귀방을 공격하여 멸망 시키자, 일군국, 양운국이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 했다. (자료 : 환단고기 진서론 3, 유튜브 자료 sceenshot) (자료 : 환단고기 진서론 3, 유튜브 자료 sceenshot) (자료 : 환단고기 진서론 3, 유튜브 자료 scee..

안-사의 난 (755-763)은 현재의 중공지역에서 있었는가? (I)

I. 머리말 필자가 안록산과 사사명의 난에 관심을 가지고 분석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1) 안록산과 사사명의 난의 기간에 중국 전국에 걸친 내전이 있었다. 그 와중에 낙양, 장안이 언급된다. 따라서 그동안 프랑크역사가 중국역사로 추정하는 필자에게 프랑스에서 낙양 장안의 위치에 대해 불확실했던 점이 이 분석후 보다 확실해질 것이다. 2) 750년 전후 이 기간동안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 기간이다. (1) 아랍에서는 우마이야왕조가 압바스왕조로 바뀌는 기간이다. 그리고 우마이야왕조가 이베리아 반도로 피난했다고 서양사는 전하나, 필자는 이미 700년 즈음에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한 우마이야 왕조는 고구려의 서고트왕국을 무너뜨리고 통일한 신라의 문무왕 세력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우마이야왕조가 압바스왕조..

중국사 2023.12.13

안록산의 난 자료 정리와 위치 정보 - 나무위키 자료

------------------------------------------------------------------------------------------------------------------------------------------------------------- *************** 자료 : 안록산의 난 (나무위키) ************* 1) 천보 14재(755) 11월 10일 범양에서 거병한 안록산은 본거지에 일부 병력을 남겨두고 15만 병력에 투항한 거란, 해의 기마병력 8천여를 선봉에 내세워 남하를 시작했다. 2) 안록산의 휘하 부장이였던 평로병마사 사사명 및 최건우, 채희덕, 안사의, 하천년, 이일월 등 군사[1]급 부장들 다수 동조 3) 안록산의 아들 안경종: 수도..

사사명의 난 자료 정리와 위치 정보 -나무위키 자료

사사명의 난(758-763) 자료 정리와 위치 정보 2. 758년: 사사명, 재봉기 ​ 1) 사사명은 안록산이 가장 신임하던 부장으로서, 반란 초기부터 독자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별동대의 지휘를 맡을 정도였다. 그런 사사명이지만 757년 안록산이 그 아들 안경서에게 사망하고 당의 반격으로 인해 하북으로 쫓겨나자 더이상 연에 희망을 걸기 어렵다고 생각하게 된다. 거기다 안경서가 사사명의 세력이 자신보다 더 강성한 것을 시기해 그 전력을 흡수하려 시도하자 사사명은 결국 장악하고 있던 13개 군과 8만여 병력을 이끌고 당에 항복한다. 당숙종은 매우 기뻐하면서 사사명에게 귀의왕, 범양절도사직을 내리고 안경서 토벌에 동참할 것을 명했으며, 사사명은 이에 따라 하북에 남아있던 안경서 세력권을 제압했다...

홀본부여와 송양의 비류국은 어디 있었는가?

I. 머리말 필자는 송양의 비류국이 프랑스의 Vienne지방이 아닌가 했다. 그런데, 아래 청회수님의 비디오(7분 06초 화면)에서 삼국사기에 송양의 비류국이 바다 한쪽에 있었다고 말했다 한다. 그래서 다시 추정하고자 한다. https://youtu.be/nwExLfEwIac?si=Whr3YSIjVPcxEoCo (청화수, 백제 진짜 시조? 온조왕 비류 의문의 정체) "삼국사기 : 추모가 재사 등에게 일을 맡기고 홀본천에 이르니 토양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산하가 견고해 마침내 도읍으로 정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었으므로 비류수가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추모가 어느 날 비류수가에 있었는데, 비류수 가운데로 채소 잎이 떠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이리하여 추모는 비류수 상류에 사람이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