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민족사에 나오는 수군(水軍) 기지 즉 강이나 호수 또는 바닷가에 접한 곳에 대해 알아 보고자 한다.
보통 수군(Marine) 기지에 대해서는 진(鎭, 진압할 진, 또는 津, 나루 진)을 끝으로 하는 지명이름이 등장한다.
바다에 접한 대표적인 지명이 통일신라 장보고 장군이 설립한 청해진(凊海鎭)이다. 주위 해적들이 신라인을 잡아서 노예로 파는 것을 보고, 당나라에서 돌아와 청해진을 설립하고 무역로 해상을 지배했다고 한다. 즉 당과, 신라, 왜 등의 무역 해상로를 지켰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반도 한민족사를 주장하는 제도권 사학자들은 청해진이 전라남도 완도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청해’와는 연관성이 없다.
재야사학자 고 이중재씨는 중공의 내륙 북서부에 있는 청해성(靑海省)의 명칭을 고려하여, 중공 청해성의 강에 있는 수군기지가 아닌가 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중공의 청해성은 바다에 접한 것이 아니므로 후에 지명을 옮겨 지은 것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당, 왜와의 무역로로서 청해진의 역할을 고려할 때, 내륙에 위치하는 것은 잘못된 추정으로 판단된다. 강에 있는 수군기지는 ‘패강진’(浿江鎭)과 같이 강이름에 진을 붙였을 것이다.
필자는 청해진이 지중해에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그것도 당시 역사를 고려할 때, 시실리섬(Sicily island)과 샤르데냐 섬(Sardinia island)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백제의 한성(漢城)백제 이후의 웅진(熊津)백제 시기의 임시적인 수도 웅진(熊津)이 바다에 접한 수군기지로 판단된다. 나루 진(津)을 쓴 것을 보면, 항구이거나, 수군 기지로서는 규모가 작을 수도 있다고 본다. 한성백제가 고구려에 의해 멸망한 후 피난처로서 옮긴 웅진은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후에 웅진성(熊津城, 웅진 castle)이란 명칭이 있는데, 웅진과 다르다고 하는 설도 있다.
한반도 한민족사를 주장하는 제도권 사학자들은 충남 공주가 웅진이라 추정한다. 그러나 공주는 내륙도시이므로 맞지 않는 추정이다.
필자는 웅진을 터어키의 서해안에 접한 Izmir로 판단한다. 웅진성은 Constantinople로 추정한다.
이외에도 신라와 당나라의 주요 무역항인 당항진 (당항성)이 있다.
신라, 고구려, 백제, 말갈의 전투지인 장령진(長嶺鎭)은 장령성(長嶺城, Jangryung castle)에 있는 군사기지로 보인다. 진(진압할 鎭)은 군사기지의 의미로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라가 왜적에 대비하여 설치한 것을 고려하면 바닷가에 가까운 곳으로 판단된다.
여기서 잠시 장령, 장령성, 장령진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한다. 장령(長嶺)은 길 장(長)자, 재(Pass 뜻) 령(嶺)자이다. 즉 길게 뻗은 고개길이라는 것이다.
령(嶺)은 총령(蔥(파 총)嶺), 철령(鐵(쇠 철)嶺), 천문령(天(하늘 천),門(문 문, door)嶺), 죽령(竹(대나무 죽)嶺), 계립령(鷄(닭 계)立(설 립)嶺), 청목령(靑(푸를 청)木(나무 목)嶺), 장령(長嶺) 등에서 보듯이 좁은 길로 되어 있는 산 사이에 있는 Pass이다. 이곳은 좁은 길로 인해 군사적으로 방어하기 쉬운 곳이다. 초소나 감시탑(Watch Tower)이 있었을 것이다.
총령은 파미르고원(Pamir mountains)에 있다고도 하고, 최근 재야사학계는 오랍령이 우랄산맥(Ural mountains)에 있으므로 이의 연장선상에 있는 Caucasus mountains에 있다고도 한다. 코카서스산맥에는 중앙과 우측 딱 두 곳만이 통과하여 지날 수 있는 Pass가 있다.
철령은 요나라와 고려의 분쟁지역으로 요동 즉 압록수(요수)의 우측에 있다고 한다. 따라서 압록수를 어디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철(Iron)의 생산지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필자는 철의 산지 Noricum (in Austria) 근처의 Pass가 아닌가 한다.
천문령은 ‘발해’(=대진국)를 건국한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들을 이끌고, 698년, 당(唐)나라 군대와 천문령에서 싸워 이겨 발해건국을 가능하게 한 지역이다. 천문 즉 하늘의 문이란 이름으로 보아, 그리고 후일 당나라 공격시, 눈이 많이 와서 군사들이 얼어 죽어 철군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매우 높은 산악 지역에 있는 Pass로 보인다. 필자는 Alps mountains의 높은 지역에 있는 Pass로 추정한다.
장령(長嶺)에 대해서 역사기록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보자.
1) 고구려 태조왕 4년 (AD 115) :
서하, 남구, 하성, 안평, 장령, 도성, 둔유, 평곽, 하양, 고현, 남소 등에 성(城, castle)을 고쳐 쌓아 서쪽과 남쪽을 대비하다.
(고구리사 초략기록)
2) 신라 일성 이사금 (삼국사기 기록)
4년 2월 (AD 137) : 말갈이 장령을 공격하다.
6년 8월(AD 139) : 말갈이 장령을 습격하다
7년 2월(AD 140) : 장령에 목책을 세우다.
3) 신라 아달라 이사금 (삼국사기 기록)
4년 3월 (AD 157) : 장령진에 순행하다.
4) 고구려 산상왕 1년 (AD 197)(고구리사 초략 자료)
발기의 반란으로 요동태수 공손도에게 서쪽 영역을 빼앗기다.
빼앗긴 고구려 서쪽 영역 지역 : 개마, 구려, 하양, 도성, 둔유
장령, 서안평, 평곽군
5) 신라 소지 마립간 15년 7월(AD 493) (삼국사기 기록)
임해와 장령진을 설치하여 왜적에 대비하다
6) 백제 무령왕 7년 5월 (AD 507) (삼국사기 기록)
장령성을 축조하여 말갈의 침입에 대비하다
이를 종합하면, 백제와 신라는 말갈과 접하여 있었고, 장령성이 그 사이에 있었으며, 고구려의 서쪽에 또한 장령이 있었고, 장령진은 바닷가에 가까와 신라가 왜에 대비하여 세운 군사기지이다.
고구려의 서쪽 지역에 장령, 서안평이 있었다. 서안평은 압록수의 하구에 있었다고 했다. 서안평을 고구려 미천왕이 점령하자, 낙랑군과 대방군은 중국과 통로가 막혀 결국 고구려에게 멸망(AD 313-314)하였다.
압록수를 프랑스의 Rhone river로 보면 그 하구(河口, 바다와 접하는 곳)에 있는 서안평은 마르세이유(Marseille) 근처일 것이다. 이곳에서 이태리로 통하는 길은 Napoleon route 80 밖에 없다. 따라서 이 근처에 Rhone Alps의 일부인 장령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이 지역에서 고구려와 요동태수 공손연, 신라와 말갈/왜, 백제와 말갈 사이에 전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압록수로 추정되는 프랑스의 Rhone river와 합류하는 Arve river
그러나 한반도의 압록강을 압록수, 요수로 본다면, 신의주 근방에서 이러한 백제, 신라, 말갈, 왜와의 전투가 있는 것으로 되어 백제와 신라를 한강이남으로 추정하는 그들의 주장과 거리가 멀어진다.
일부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중공의 요하를 압록수로 본다면, 이 하구에 장령이 있게 되고, 이곳에서 백제와 신라가 말갈과 싸웠다는 정황이 된다. 그리고 신라가 왜에 대비하여 성을 이곳에 쌓은 것이 된다. 중공의 이 지형은 장령이 있을 지형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또한 재야사학자 성현식님이 주장하는 압록수를 중공의 산서성에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 경우, 압록수가 남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 가는 바다가 없고, 장령진에 왜가 출몰한다는 것, 즉 왜가 산서성까지 출몰한다는 어이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포(浦, 물가 포)는 바닷가나 호수 등에 있는 수군기지를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벌포(伎 (재주 기), 伐(칠 벌) 浦)는 백강(白江, white river)의 하구(mouth)에 있는 바다에 접한수군 요새지로서, 백제가 망하기 전, 충신 성충이 꼭 지켜야 하는 곳이라고 의자왕에게 말한 지역이며, 결국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이 지역을 통해 침범해 수도 사비성을 함락하여 백제를 멸망시켰으며, 후에는 신라와 당나라가 싸우는 나당전쟁시에 이곳에서 해전을 벌여, 신라가 이긴 곳이다.
필자는 기벌포가 현재 터어키 남부해안에 접한 항구 Phoenix(modern Finike)라 추정했다. 백강은 터어키의 Aksu river (meaning white river in Turkish)라고 추정했다.
한반도 한국사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금강의 하구에 위치한다고 추정한다. 한반도 금강은 서로 흐른다. 그러나 당나라 소정방은 백강의 동안(東岸)을 통해 올라갔다고 했으니, 백강은 남북으로 흐른다. 따라서 한반도 금강의 흐름은 백강의 흐름의 역사적 기록과 맞지 않는다.
일부 사가는 기벌포가 백강의 상류에 있다고도 주장한다. 상기 Aksu river의 상류에는 Egidir lake가 있고 이 호수에 침입한 적을 막기 위한 Egidir castle(백제의 임존성 추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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