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 153

북위 효문제와 프랑크왕국의 Clovis I왕 비교

I. 머리말 필자는 그동안 프랑스지역이 중국사의 지역이라 추정했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추정을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일환으로 프랑크왕국의 Clovis I이 북위의 효문제라는 추정을 분석하며 보이고자 한다. 아래 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위 효문제에 대한 기존 자료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이는 위키뿐만 아니라 나무위키 자료도 대동소이하다. 그나마 위키백과 자료가 더 나아서 아래 인용한다. 이러한 배경은 우선 중국자료의 부실함 내지 일부러 삭제하는 역사왜곡에 기원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다음과 같은 면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1) 북위와 백제의 전쟁 2) 북위와 고구려와의 결혼동맹 관계 3) 493년 북위의 낙양 천도 4) 507년 전쟁과 한성 및 횡악 5) 북위와 토욕혼과의 전쟁 6) 효문제와 선무제의 재위..

당항포는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탕헤르(Tangier)인가?

당항포, 당항성에 대해 필자는 그 위치에 대해 그동안 의문을 폼어 왔다. 신라가 중국과 통하는 주요 무역항구라는 설명으로 한반도 식민사학자들은 인천지역에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인천으로 배웠는데, 요즈음은 당항성은 경기도 화성에, 당항포는 남해 경남 고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10세기부터 13세기까지 존재한 대하(大夏) 또는 서하(西夏)라는, 탕구트족이 세운 나라가, 당항(黨項)이라 불리는 다른 이름을 가진다는 자료를 보고 실마리를 잡은 것으로 느꼈다. 대하는 송나라와 요나라와 등거리 외교를 하며, 요나라, 금나라로부터 하국공, 송나라로부터는 서평왕의 칭호를 받으며 존재했으나, 1227년 몽고의 침입에 의해 망한다. 그리고 한때 토번의 공격을 물리쳤다는 기록도 있다..

강거(康居)는 중앙아시아가 아니라 이베리아 반도에 있지 않았을까?

제목 : 후백제의 견훤이 공격한 강주(康州)(Kangju)는 이베리아 반도에 있지 않았을까? 강거(康居)의 강(康)은 강주(康州)와 같이 지역이름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은 강(康)지역, 즉 강거지역이 어디에 있었는가에 대해 알아 보고자 한다. 중공사가들은 중앙아시아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들이 왜곡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하나라, 주나라, 송나라, 흉노, 고구려, 발해에서 강왕(康王)이란 칭호를 쓰는 왕이 나타나는데, 이들 왕이 강(康)지역을 지배한 왕으로 판단되는 바, 이를 바탕으로 강거지역을 추정해 보고자 한다. 또한 통일신라도 경명왕시에 920년 강주장군 윤원이 고려에 항복했다 하고, 후백제의 견훤이 강주(康州)를 공격했으며, 아들 양검을 강주도독으로 임명하였다 기록되어 있는..

의문의 역사 : 금강산은 어디일까?

조수미의 '그리운 금강산'이란 가곡을 듣고 있노라면, 우리의 명산인 금강산이 어디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 가곡이 1960년대 지어졌지만, 나운영 작곡의 동요 금강산과 함께 금강산 관련 곡으로 애창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금강산이 정말 일만 2천봉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른다. 북한에 위치한 것도 있지만, 정선의 금강도를 제외하고는 이에 관련 자료가 없어 보인다. 필자는 한반도의 지명이 일제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판단할 때, 실제 금강산이 어디에 있었는지 추정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언급하는 금강산은 현재 북한에 있는 금강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선조 대대로 내려 오는 금강산의 위치를 말하는 것이다. 필자는 현재 한국에 사는 분들에게는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역사적 지명이 현재의 한반도에 있다..

북아프리카의 마우리족은 누구인가? (2)

II.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마우리족과 로마의 전쟁 (AD 54-AD 180s) 로마제국시대의 역사에서 마우리족과 충돌 역사가 자주 등장한다. 로마제국 역사에서 Revolts (반란) 또는 Raids(약탈) 등의 표현은 이들과의 전쟁을 의미한다. 그런데 아래에서 보듯이 주로 Raids, 즉 약탈의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지역적으로는 이베리아 반도 남쪽 또는 북아프리카지역에 한정되는 특징을 보인다. 신라시대에 왜국의 세력은 신라에 대한 약탈 성격의 전쟁을 많이 했지만, 신라가 수전에 약해 그러했다. 그래서 주로 신라의 영토에서 왜의 침입에 당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아래 로마 자료를 통해 마우리족의 활동을 다섯 단계의 기간에 걸쳐 살펴 보고자 한다. 1) Nero황제 시대(재위 :..

북아프리카의 마우리족은 누구인가? (완결)

그동안 북아프리카의 마우리족에 대해 기원전 220년부터 반달왕국시대 전까지, 즉 로마제국의 지배시기까지 살펴 보았다. 그 결과, 여러 가지 양상을 보였다. 기원전의 시대는 월지족의 모습부터, 협보가 있었던 구야한국의 모습, 그리고 왜국, 변한, 가야, 남마한 등의 모습도 보였다. 이제 반달왕국 시대를 넘어, 비잔틴제국, 그리고 사라센제국의 우마이야왕조의 지배시기를 거치면서 이에 대한 분석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10세기에 들어 Fatimid Caliphate시기부터는 서하의 시기로 판단되는 바, 이는 별도의 연구를 통해 차후 알아 보고자 한다. IV. 비잔틴시대의 마우리족과 반달왕국, 비잔틴의 전쟁 서로마제국이 사라진 후, 반달왕국이 이 지역을 지배했다. 그러나 반달왕국, 비잔틴제국 시기에도 이들은 더 내..

북아프리카의 3-5세기 마우리족은 왜국인가 가야인가?

부제 : 북아프리카의 마우리족은 누구인가? (3) III. 북아프리카에서의 마우리족, 베르베르족과 로마 전쟁 (3세기 - 5세기) 1) 296-297 시기 아틀라스 산맥에서의 마우리족과 로마와의 전쟁 로마 황제 Diocletian의 co-emperor인 Maximian이 296-297 2년기간에 걸쳐 마우리족에 대한 원정을 하였다고 기록된다. 북아프리카의 산악지역이니 아틀라스산맥으로 추정된다. (아래 자료 참조) "While m​any Mauri were part of the Roman empire, others resisted Roman rule. As Gibbon related for the years 296–297, "From the Nile to Mount Atlas, Africa was in a..

북아프리카의 누미디아왕국은 왜국인가 협보가 세운 구야한국인가?

지난 글에서 키메리언과 Dardanians, Trojans, Etruscans 등과의 연관성의 가능성에 대해 살펴 보았다. 그리고 로마의 포에니전쟁이 로마지역의 세력이 북아프리카에 진출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조선왕 준왕의 한(韓)지역에의 남하와 고구려 협보의 남하에 따른 구야한국이 북아프리카에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을 하였다. 이제 북아프리카 지역이 이러한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는가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한다. 북아프리카의 Berber(유목민)족 유전자 분석에 의하면, 현재 바스크 및 샤르디니아가 가장 근접했다 한다. 샤르디니아는 과거부터 북아프리카와 함께 페니키아문명권이었으니 이해가 가나, 바스크지역이 거론된 것은 다소 의외이다. 필자는 바스크지역이 여러 모로 한민족과 가까운 모습을 확인했..

Dardanians, Trojans과 구야한국

부제 : 구야한국은 키메리언의 후손인가? (II) 구야한국은 키메리언인가? 에 대한 1차 검토를 지난 글에서 하였다. 견이, 견융, 흉노, 단군조선 등의 검토를 거쳐서, 이들이 서로 연관성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중앙아시아에서 출발한 스키타인의 일종인 키메리언이 상기의 견이, 견융 등의 개와 관련된 이름이 키메리언의 모습과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키메리언의 고깔 모자 모습, 말에서 뒤로 활을 쏘는 배사법 활쏘기 등이 우리의 가야와 고구려의 모습과 닮은 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늑대와 관련된 중앙아시아에서 발칸반도, 이태리 의 로마 문화권이 이 키메리언의 이동과 유사한 현상을 보임을 또한 관찰하였다. 따라서 이들 늑대 문화권의 키메리언이 혹시나 견이, 견융, 흉노, 조선과 관련되지 않나 하..

견이, 흉노는 키메리언인가?

부제 : 구야한국은 키메리언의 후손인가? (I) 구야한국의 개구 자를 보면서, 견이가 생각났고, 견이를 보면서 키메리언이 개를 끌고 전장에 다니는 사진이 생각났다. 키메리언은 스키타인의 일종으로 중앙아시아에서 서진하여 유럽까지 온 것으로 지난 글 키메리언 시리즈에서 필자는 알게 되었다. 그전부터 혹시 이들이 견이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최근 구야한국을 보면서 다시 견이 생각이 났고, 그래서 이번에 키메리언과 견이, 구야한국에 대한 상관관계를 알아 보자고 결심하게 되었다. 만약 이들이 같은 부류라 한다면, 우리가 모르는 견이, 구야한국에 대한 많은 역사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흉노의 모돈선우가 서역 26개국을 정복했다는 기술을 보았지만, 그들 26개국이 어떤 나라인지에 대한 기록이 없었다. ..

금관가야는 지중해의 카르타고인가?

머리말 '한단고기 고구려본기 중 협보가 마한의 산중에 살았는데 그를 따라서 사는 자가 수백여집이나 되었다. 여러해 동안 흉년이 들어 떠돌아 다니다가 장혁을 알게 되었다. 이에 무리를 꾀어 양식을 배에 싣고 패수를 따라 내려와 바다와 포구를 거쳐 조심조심 배를 저어 곧장 구사한국에 이르렀다. 이곳이 가라해 북쪽해안이다. 여기서 머문지 몇 달만에 아소산에 옮겨 살았다. 이 사람이 다파라국 시조이다. 협보는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의 창업공신으로 고주몽외에 실질적인 2인자로 추앙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동부여에서 온 유리가 왕이 되자 미움을 사 무리를 이끌고 남하하여 남마한의 구사한국 혹은 구야한국에 도달했다고 전한다. 구야한국은 남가라로, 전성기에는 대가라로 불렸고, (한반도) 남단뿐만 아니라 바다건너 왜 지..

김수로왕 부인 허황옥과 카르타고의 Dido 여왕

제목 : 김수로왕 부인 허황옥과 카르타고의 Dido 여왕 I. 머리말 우리는 김수로왕의 부인이 된 허황옥이 인도에 있는 아유타국의 공주가 와서 금관가야의 부인이 되었다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다. 아유타국이 어디에 있던 간에 일반적으로 인도에서 한반도까지 오는 것은 어려운 경로라는 판단들은 하는 것 같다. 필자는 김해(金海)라는 명칭에서 이미 한반도의 김해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고 판단했다. 바다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김수로왕과 석탈해의 다툼에서 바다 건너에 신라가 있다고 하는 기록을 보면 당연하다고 추정된다. 그러면 이러한 김수로왕의 부인이 된 허황옥 공주는 어디서 왔는가, 그리고 김수로왕의 금관가야는 어디인가가 궁금해지는데, 본 글에서는 허황옥 공주가 어디서 왔는가에 대해 주로 살펴 보..

김수로왕, 협보, 석탈해, 일성왕, 아달라왕 모두 백인이었다

부제 : 왜국도 지중해에 있었다. 1. 김수로왕은 백인이었다. 뇌질 청예와 정견모주 : 최치원의 석리정전 - 최치원의 석리정전: 정견 모주의 아들, 뇌질 청예(수로왕), 뇌질 주일(이진아시, 대가야) (조선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인용) ​ ​ "신라의 학자 최치원이 여러 고을을 돌아다니며 기록들을 수집하여 쓴 석이정전(釋利貞傳)의 내용에 따르면 가야산의 여신 정견모주(正見母主)가 하늘의 신(神)인 이비가지(夷毗訶之)에 감응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한 명은 이름이 뇌질주일(惱室朱日)이었고, 다른 한 명은 뇌질청예(惱窒靑裔)라고 하였다. ​금관가야의 시조가 된 뇌질청예(김수로왕)는 여신 정견모주를 닮아 얼굴이 희고 갸름했으며 대가야의 시조가 된 뇌질주일(이진아시왕)은 이비가지를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글고..

백제의 한수, 한성은 요서인 프랑스 동부에 있었고, 백제의 한산과 한강은 북부 이태리에 있었다.

부제: 백제의 수도(capital) 한성(漢城) 및 한수(漢水)는 요서(遙西)인 프랑스 동부에 있었다 부제 : 백제의 한산과 한산성, 신라의 북한산주는 이태리 북부에 있었다. 부제 : 횡악은 알프스산맥이다. 백제의 한성은 한수, 한산과 연관이 있을까? 모두 한수 한(漢)자이다. 필자는 이 한(漢)이 한나라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즉 한나라가 위치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두 가까운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산은 온조가 백제를 세운 지역이며, 한성도 온조왕 시기에 언급된다. 또한 한산과 한수는 근초고왕 시기에 다시 언급된다. 한산으로 수도를 옮겼으며, 한수이북의 백성을 동원하여 성을 쌓았다 했다. 한성백제가 475년 망할 때에 수도 한성이 함락된 지..

구사한국은 지중해에 있었나?

1. 남마한의 구야한국과 한단고기 기록 '한단고기 고구려본기 중 협보가 마한의 산중에 살았는데 그를 따라서 사는 자가 수백여집이나 되었다. 여러해 동안 흉년이 들어 떠돌아 다니다가 장혁을 알게 되었다. 이에 무리를 꾀어 양식을 배에 싣고 패수를 따라 내려와 바다와 포구를 거쳐 조심조심 배를 저어 곧장 구사한국에 이르렀다. 이곳이 가라해 북쪽해안이다. 여기서 머문지 몇 달만에 아소산에 옮겨 살았다. 이 사람이 다파라국 시조이다. 협보는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의 창업공신으로 고주몽외에 실질적인 2인자로 추앙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동부여에서 온 유리가 왕이 되자 미움을 사 무리를 이끌고 남하하여 남마한의 구사한국 혹은 구야한국에 도달했다고 전한다. 구야한국은 남가라로, 전성기에는 대가라로 불렸고, (한반도)..

신라 지마이사금이 공격한 가야는 시실리에 있었는가?

1. 신라 지마이사금의 가야 전쟁 (AD 115-116) 《삼국사기》 지마 이사금 (112 - 134, 22년) 본기 四年春二月 가야가 남쪽 변경을 침범하다 (115) 四年秋七月 가야를 친히 정벌하다가 황산하에서 퇴각하다 (115) 五年秋八月 가야를 치다가 큰 비 때문에 중단하다 (116) (자료 : 지마이사금, 삼국사기, 출처 : 나무위키) 1) 지마이사금이 싸운 가야의 특징 a) 신라 남쪽의 가야 필자는 신라가 이태리반도에 있었다 추정함. 따라서 이태리 반도의 남쪽에 있는 가야로 추정 b) 가야를 공격할 때 바다를 건넜다는 표현 없다. 가야는 여러 나라가 있으나, 그 중 이태리반도의 남쪽에 있으면서 특별히 바다를 건넜다는 기록이 없으므로, 이태리반도에 접한 시실리가 아닐까 한다. c) 황산하 : 황산..

북해에 접한 한민족의 역사

부제 1: 천리에 걸쳐 있는 백두산 부제 2: 험한 지형에 둘러 쌓인 왕험성과 평양(平壤) 부제 3 : 서안평의 특수 지형 부제 4 : 고구려의 서해와 남해 의문의 한 중 일 역사에 대해 이어집니다. III. 북해에 접한 한민족의 역사 최근에 쓴 글 ‘두만강은 남북으로 흘러 북해에 이른다’라는 글에서 근대 조선의 조상 익조 이행리의 여진족과의 갈등 국면에서 두만강을 따라 가다거 북해에 이르렀다 했다. 즉 두만강은 남북으로 흐르며, 북해에 이른다는 것이다. 필자는 패수 또한 서북면으로 흘러 바다에 들어 간다는 고구려 사신의 말을 빌어 패수가 라인강이라 추정했다. 요수 즉 압록강을 프랑스의 론강으로 추정하는 필자는 패수를 라인강으로 추정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반도나 중공대륙 어디에 서북으로 ..

의문의 한 중 일 역사 (1) (2022년)

어언 호랑이 해도 다 지나간다. 지난 글, ‘호랑이와 한민족사’에서 이해가 가기 전에 이루고자 했던 목표가 있었지만 다 이루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러나 또한 중요한 몇가지 역사적 기록에 의거해서 현재의 한중일 역사가 의문이라는 단서를 잡은 것은 매우 중요한 진일보라 생각한다. 오늘은 이해를 마무리 하는 의미에서 현재의 한중일 역사가 강력한 의문을 제시한다는 것을 한중일 사학자분들께 말씀드리고자 한다. 필자는 이러한 진실의 현실적 영향을 걱정하기 보다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정도(正道)라는 생각에 이러한 연구를 진행하고 글을 쓰고자 한다. 한중일 역사에서 의문시되는 점은 먼저 현재의 한중일 지리적 위치에 대한 강력한 회의이다. 언제 어떻게 현재의 한중일 지리적 위치가 정해졌는지는 아직 아는 바 없다. 차후 ..

두만강은 남북으로 흘러 북해(北海)에 이른다

그동안 두만강에 대해 고민해 왔다. 요수인 압록강이 프랑스의 론강이라면, 두만강은 중국과의 경계인 라인강이 되어야 하는데, 두만강에 대한 자료를 찾기가 힘들었다. 삼국시대에도 고려시대에도 두만강이란 명칭은 없었다. 단지 이씨 조선에 와서 두만강이 언급되는 것으로 보인다. 세종 때의 4군 6진은 압록강에 4군, 두만강 유역에 6진을 두었다 했다. 그리고 숙종 때의 백두산 정계비도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두만강의 위치에 대해 특별한 언급들이 없는 것이다. 단지 중공 사가들이 두만강이 아니라 토문강이라고 하는 것만 들었다. 그래서 고민이 많이 되었는데, 최근 인테넷에서 우연히 청화수님의 글을 보고 두만강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청화수님의 글 중 '이성계 선조들 이야기' 편에서 익조 이..

흑해주변의 카자르칸국은 발해의 일부인가?

발해의 일부라 판단되는 Khazar Kaganate(650/660 - 969/1050)는 여러가지로 발해의 특성과 일치한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검토는 후일 발해에 관한 연구에서 본격적으로 하고, 여기서는 Pechenegs지역에 이전에 있던 나라로서, 특히 말기에 관한 역사에 집중하고자 한다. Khazar Khaganate(650/660-969/1050)는 흑해 주변의 방대한 영토를 확보한 국가로서, 여러 튀르크계 민족이 혼합된 국가이며, 따라서 종교도 Tengrism, Buddhism, Judaism, Muslim, 샤머니즘 등이 혼재하였다. 발해 역사에서도 기독교가 있었다고 언급된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Khazar Khaganate (650-850) (source : Wikipedia) 1) 카..

고구려 - 수, 당 전쟁은 유럽에서 있었다

필자는 요수를 프랑스의 론강으로 추정했다. 따라서 요서는 이 강의 서쪽 즉 프랑스지역이 된다. 따라서 중국사는 이 프랑스 지역에서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요동의 역사, 동이의 역사는 요수의 우측, 즉 론강의 우측에 있는 역사로 추정한다. 이와 관련 하여 필자는 그동안 많은 자료들을 검토하며, 이를 증명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 필자가 증명하지 못한 것이 있다. 즉 고구려와 수, 당의 큰 전쟁이다. 이는 누가 보아도 요수를 건너서 공격해 온 수나라, 당나라의 공격이며, 고구려가 잘 막아낸 역사이다. 그만큼 역사를 숨기고자 하는 역사 왜곡자들에게는 이 사실을 숨겨야 한다. 이것이 그대로 들어 나면 역사왜곡이 들통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 듯 하다. ..

신라는 이태리반도에도 있었다

I. 서론 그동안 신라의 위치에 대해 고심해왔다. 파사이사금이 있으니 페르시아 지방에 있는 것 확실하여, 그동안 페르시아 역사로 비교하며, 신라가 사산왕조 페르시아라는 것을 밝혔었다. 그러나 분명 이태리반도에도 있었던 것으로 짐작 되는데, 결정적인 자료가 부족하여 망설였었다. 그리고 그동안 의문을 품은 채 미루고 있었는데, 이제 확실하게 판단되어 이글을 쓰게 되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최근 신성로마제국 역사를 보면서 요나라의 역사를 공부하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 살수, 을지문덕 장군이 이룬 살수대첩의 장소를 스위스 북쪽 Saar river로 확인하게 된 것이다. 또한 진흥왕 시기의 고구려 지역에 대한 점령이 이태리 북부 롬바르드왕국이라는 확인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동안 신라에서의 태백산(발해 지..

해금은 바이올린의 원조이다

우리 주위에서 국악기로 연주되는 해금은 해족에서 연유하였다 한다. "중국의 『문헌통고』(文獻通考)에 따르면 "해금은 오랑캐 중 해족이 좋아하는 악기다. 현도(絃鼗)에서 나온 것으로 모양도 같다"고 했다. 해금은 후에 북송을 통해 고려에 들어갔는데 이후 토착화가 잘 되었는지 당악기가 아니라 향악기로 취급된다. " (자료 : 해족, 나무위키, 인용출처 : 필자의 티스토리 블로그, Hidden Corea, 카테고리, 해족) "해금은 해족이 만든 해족 고유의 현악기였으며, 한국에서는 고려시대에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료 : 해족, 위키백과, 인용출처 : 필자의 티스토리 블로그, Hidden Corea, 카테고리, 해족) 즉 해금은 해족이 만든 고유의 현악기로, 고려시대에 전해졌는데, 향악기로 취급된다 ..

돌궐은 북유럽의 누구인가?

I. 머리말 필자는 그동안 돌궐의 정체와 위치에 대해 계속 연구해 왔다. 지난 3개의 글, "돌궐은 북해의 Saxons족인가?", " 바이킹은 한민족과 연관이 있는가?", "바이킹의 활동지역과 한민족 연관성(2)"에서, 돌궐이 Saxons족 또는 바이킹의 선조들과 관련이 있을 수 있음을 밝혔다. 그런데, 사실, 필자는 511년경 Danish King Chlochilaicus이 프랑크왕국 북쪽 해변을 raids한 기록을 보고, 돌궐이 Saxons족이 아닌 Danes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이들이 후에 바이킹이 되기에, 바이킹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이킹의 선조격인 Danes와 Saxons족의 연관관계를 찾지 못한 필자에게는, 돌궐의 잦은 중국 침입의 역사가, 프랑크왕국에게 자주 침범한 ..

바이킹 활동지역과 한민족 연관성 (2)

지난 글, '바이킹은 한민족과 관련이 있는가?'라는 글에서 바이킹의 문화를 살펴 보며, 한민족과의 연관성을 살펴 보았다. 특히 마한과의 연관성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마한이 중부유럽과 이태리반도에 걸쳐 있고, 백두산 주위 10개국의 하나인 해두국이 마한의 거수국이었으니, 다른 조나국(Juteland로 추정)이나 주나국도 마한의 거수국이 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하며, 그러한 면에서 바이킹의 마한과의 연관성은 설명될 수 있다고 본다. 즉 바이킹의 한민족과의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서쪽의 바이킹이 덴마크의 Danes와 연관이 있다면, 북부여지역으로 돌아간 두막루가 Denmark로 추정되므로, 더욱 한민족과의 관련성은 확실해진다. 본 글에서는 8세기 이후의 바이킹의 활동지역에 대해 살펴 보며, 그..

바이킹은 한민족과 관련이 있는가?

I. 서론 필자는 최근 돌궐의 위치 연구에 여념이 없다. 돌궐의 위치가 기존의 사학계에서 주장하는 Gokturk가 아니라 프랑스 북부 지역에 있다는 확신에 근거한 것이다. 그 확신은 거란의 별종인 실위지역이 지금의 덴마크 반도지역이나 그 북쪽으로 추론 되는바, 실위에 관련 신당서 문서에는 실위의 서쪽에 돌궐이 있고, 실위의 동쪽에는 흑수말갈이 있다고 기록했기 때문이다. 돌궐은 흉노의 별종이라 한다. 흑수말갈은 최근에 필자가 쓴 글에서 모스크바 지역의 흑수에서 출발한 흑수말갈은 이 지역에서 출발하여 흑해지방까지 진출하고 미구에는 지금의 판노니아지방으로 이동한 마자르족 즉 말갈이 아닌가 한다고 추정했다. 따라서 돌궐은 실위의 서쪽이므로, 북해의 서쪽이나 발트해 북쪽에서 본 서쪽으로 바이킹 지역으로 추정되는 ..

돌궐은 북해의 Saxons족인가?

본 글은 최근 필자가 쓴 글 'Gokturk는 고구려인가?' 라는 글을 쓰면서, 지금 사학계에서 주장하는 돌궐의 위치를 Gokturk 위치로 보는 것에 대한 의문을 제시했다. 만약 Gokturk가 고씨계 튀르크라고 하는 고구려라면, 돌궐의 위치는 다시 추정되어야 한다. 그래서 관련 자료를 보던 중, 아래 실위 관련 기록중 돌궐은 실위의 서쪽에 있었다는 기록을 보고 확신을 갖게 되어 이글을 쓰게 된다. 필자는 실위를 덴마크지역으로 추정한 바 있다. 그리고 평소 프랑스 지역을 중국의 역사지역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이는 요수 즉 압록수가 프랑스의 론강이라는 추정과 깊은 연관이 있다. 아울러 필자는 패수는 라인강으로 추정했다. 최근 '강동6주는 독일의 엘베강 동쪽에 있었다' 라는 글을 쓰면서, 또한 흑수말갈지역..

고려의 강동6주는 독일의 엘베강 동쪽에 있었다.

필자는 얼마 전 '요나라의 역사는 신성로마제국의 역사에 숨어 있다"라는 글에서 요나라의 지역이 프랑스 론강인 요수 주위에 있었다 주장했다. 그리고 이 당시 서양사의 역사는 신성로마제국을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신성로마제국의 역사에서 고려와 거란의 3차에 걸친 전쟁의 역사가 어떻게 기술되었는지 살펴 보고자 한다. 그러면서 고려가 거란과의 전쟁에서 확보한 강동6주 지역은 어디인지 추정해 보고자 한다. 방법론상으로는 먼저 신성로마제국의 역사를 살펴 보면서 이에 해당하는 고려사를 대비하며 검토하고자 한다. I. 여요 전쟁 시기와 신성로마제국의 전쟁 시기의 유사성 먼저 여요전쟁 시기는 1차 전쟁이 993, 2차 전쟁이 1010년, 3차 전쟁이 1018년 시작했다. 이와 유사한 시기에 신성로마제국 역사에서도..

고구려의 수나라에 대한 살수대첩의 살수는 패수인 라인강의 지류 Saar river이다

필자는 이미 라인강을 패수라 추정했다. 따라서 살수는 패수의 지류라고 밝혀진 바 라인강의 지류에서 찾아야 한다. 그동안 살수를 찾지 못해 여러 가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신성로마제국에서 요나라 역사를 찾던 중, 고려와 거란의 전쟁 기록과 신성로마제국과 슬라브족의 전쟁 기록을 보면서 우연히 Saar river 를 알게 되었고, 이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살펴본 후, 결국 살수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신라와 고구려의 살수에서의 전쟁 기록, 신라의 태백산에서의 제사 내용, 그리고 스위스에서 발견한 신라하의 존재 등의 연관관계를 살펴 본바, 이를 거의 확신하게 되어 이글을 쓰게 되었다. 우선 살수 관련 자료를 살펴 보면 아래와 같다. 블로거 방랑자 님이 잘 정리하여 놓아 이를 인용한다. 필자의 네이버 블..

후백제의 견훤은 불가리아 1제국의 Simeon왕인가?

필자는 비잔틴제국을 백제라 판단했다. 서로마제국도 일부는 백제로 판단했다. 단 비잔틴제국은 백제 멸망 후에는 신라로 판단했다. 통일신라의 세력은 유럽 역사에서 무슬림으로 나타난다. 스페인지역의 무슬림화는 통일 신라가 고구려의 남부인 서고트왕국의 점령으로 판단된다. 위키피디아는 750년경 우마이야왕조가 아바스왕조에게 쫓겨 나서 스페인지역으로 갔다고 했으나, 필자는 이런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한다. 망명 일부 세력이 다른 지역을 점령할 힘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약간의 연대 차이도 난다. 우마이야 왕조가 막을 내린 것은 750년경이고, 스페인의 서고트왕국은 8세기 초까지 존재했다. 고구려 멸망 후 이 지역까지 신라가 점령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고구려도 부흥운동이 있었으니까. 발해고를 보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