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 153

동예가 있는 창해는 어디인가 (2)?

창해는 푸를 창(蒼) 또는 큰 바다 창 (滄)자를 쓴다. 한무제 당시에 예군 남려가 항복하여 세운 창해군은 푸를 창(蒼)자를 썼다. 반면 조조가 갈석산에 올라 창해를 바라보고 시를 읊었다는 창해는 큰 바다 창(滄)자를 썼다. 즉 창해는 푸르며 큰 바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재야 사학자들이 주장하는 황허강 등이 창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반면 지중해는 예전부터 푸른 색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 Carthago가 있는 튀니지아에서 푸른 색 바다색갈을 신성시하는 것도 그렇고, 터어키 아나톨리아지역에서 지중해로 흐르는 강을 Goksu (=Blue Water in Turkish)라 칭한 것도 그러하다. 지난 번 글에서 우리는 창해군이 설치된 예군 남려의 지역을 알프스산맥이 있는 론강과 라인강의 상류지역으로 ..

동예가 있는 창해는 어디인가?

우리는 역사에서 창해에 대한 아래 4번의 언급을 본다. 이 창해에 대한 위치추정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창해는 동예의 위치를 알려 주며, 또한 신라와 금관가야와 관련 있는 실직곡국의 위치도 알려 준다. 동예, 실직곡국, 파조국이 창해 3국이라 했기 때문이다. 동예는 바로 북쪽에 동옥저가 있으며, 온조가 백제를 건국하며, 위례성에 도읍을 정할 때, 백제에 매우 적대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낙랑도 초기에는 우호관계에 있었으나 곧 매우 적대적인 관계로 변하였다. 따라서 창해의 위치추정은 초기 백제의 위치와 위례성의 위치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본 글의 창해에 대한 위치추정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창해에 대한 언급은 다음의 4가지이다. 1) 진..

반달족인 Burgundians은 북부여, 동부여인가? (updated)

제목 : 반달족인 Burgundians은 북부여, 동부여인가? 필자는 지난 번 글, '반달족(Vandals)은 월지족인가?'에서 반달족의 일원인 Burgundians이 부여일지 모른다는 언급을 했다. 이번 글에서는 이에 대해 보다 상세히 분석하고자 한다. 먼저 부여에 대한 자료를 다시 한번 살펴 보자. 아래 삼국유사의 자료를 보면, 기원전 239년 홀승골성에 해모수가 북부여를 세웠다 한다. 해모수의 아들 해부루는 도읍을 옮겨 동부여를 열었다 한다. "《고기(古記)》에 이르길, 전한(前漢) 선제(宣帝) 신작(神爵) 3년 임술[10] 4월 8일에 천제가 흘승골성(訖升骨城)【대요(大遼)의 의주(醫州) 경계에 있다.】에 내려왔는데, 다섯 마리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왔다. 도읍을 세우고 왕이라 칭하고는 국호를 ..

반달족(Vandals)은 월지족인가?

Vandals족은 Huns의 migration period의 서진에 따라 Huns의 공격을 피해 게르만족의 일원으로 서쪽으로 옮겨 갔다고 서양사는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고트족이나 반달족, 그리고 Alans족 등 모두 훈족의 서진에 함께한 그룹으로 판단된다. 위키피디아 자료를 살펴 보면, 이런 정황이 곳곳에 나타난다. 사실 훈족 즉 고구려의 원래 위치가 요수인 론강유역을 점하고 있었다면, 서진이 아니라 반달족이나 Alans족 등을 동원하여 라인강 서쪽의 중국지역을 정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그동안 마한이 이태리반도, 발칸반도, 이베리아반도를 포함하지 않았나 하는 분석을 해왔다. 그런데 마한에는 목지국이 주도 역할을 했다고 한다. 목지국(目支國)은 월지국(月支國)을 잘못..

마한의 서쪽 바다에 있는 주호국은 지중해에 있는 샤르데냐섬이다 (updated)

필자는 최근 '마한이 이태리 반도를 포함하였다'는 글을 썼다. 그런데 이 분석에서 빠트린 것이 있어 추가하고자 이글을 쓴다. 즉 마한의 서쪽 바다에 주호국이란 섬이 있었다는 것이다. 주호국에 대한 자료를 보면 아래와 같다. (자료 출처 : 주호국, 나무위키) 馬韓之西, 海島上有州胡國. 其人短小, 髡頭, 衣韋衣, 有上無下. 好養牛豕. 乘船往來, 貨市韓中. 마한의 서쪽 바다 가운데 섬에 주호국(州胡國)이 있다. 사람들은 몸집이 작고 머리를 깎고 가죽옷을 입는데 상의만 있고 하의는 없다. 소와 돼지 기르기를 좋아한다. 배를 타고 왕래하고 한(韓)과 교역한다. 《후한서》 동이 열전 又有州胡在馬韓之西海中大島上,其人差短小,言語不與韓同,皆頭如鮮卑,但衣韋,好養牛及猪。其衣有上無下,略如裸勢。乘船往來,市買韓中。 또 마한의 ..

광개토태왕이 정벌한 동부여는 어디인가?

그동안 광개토태왕이 정벌한 동부여의 위치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동부여가 이태리 북부로 추정되는데, 이에 대한 확실한 논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두산 주위 10개국을 추정하면서 동부여의 위치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북부여는 북유럽의 덴마크지역으로 추정되고, 졸본부여는 론강의 지류 Jabron강 지역으로 추정되었다. 이어 비류국, 해두국, 행안국, 북옥저가 추정되었다. 특히 북옥저는 스위스 북쪽 Augusta Raurica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동부여는 3-4세기 연나라의 공격에 의해 북옥저 지역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서기 285년, 모용외의 침공에 1만여 명이 포로로 잡혀 끌려갔으며 급기야 의려왕이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국력은 크게 쇠락한다. 이때 의려왕의 자제들은 두만강 일대의 북..

마한은 이태리 반도를 포함하지 않았을까?

​삼한, 즉 마한, 진한, 변한은 우리나라 고구려, 백제, 신라 역사의 바탕이 되는 지역이다. 낙랑, 부여, 예맥, 왜, 등의 위치와도 직결되며, 또한 위만 조선 등 고조선의 일부 지역과 접한 지역이기도 하다. 위만조선은, 진(秦)나라, 한(漢)나라, 등의 위치와도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지나치는 진(晉)나라 (BC 11 c - BC 349), 3진(晉)의 위(魏) (BC 403-BC 225), 조(趙) (BC 403-BC 228), 한(韓)나라 (BC 403-BC 230)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한 또는 진한(辰韓)을 특히 진국(辰國)이라 했는데, 진국(辰國)에 대한 여러 기록과 주장으로 그 실체도 연구대상이다. 또한 진한에 있는 신라가 진한(秦韓) 즉 진(秦)나라의 유민이라는..

고구려 장수왕이 공격한 풍홍의 북연은 프랑스 Gaul지역에 있었다

장수왕은 436년 북연의 수도 화룡성을 공격하고 북연의 왕 풍홍을 고구려로 데려 왔다 한다. 고구려에 적대적인 후연을 광개토태왕이 멸망 시키고, 후연에 이은 북연이 생길 때에 광개토태왕은 북연에 축하사절을 보냈다 한다. 그리고 고씨가 왕에 올랐다 기록되었다. 이를 해석하면 북연은 고구려의 위성국이 된 것으로 보인다. 고씨의 왕이 된 것도 고구려의 힘으로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광개토태왕 시절에 동고트족 등이 이베리아반도까지 진출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가능했을 것이다. 필자는 후연의 멸망과 고구려와의 전쟁을 고트족의 진출과 더불어 해석하여, 연나라가 프랑스의 Gaul지역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본 글에서 더욱 확실해진다. 북연의 왕 풍홍은 고구려에 밀서를 보내 북위의 공격으로 위험하니 ..

한(漢)나라와 조선의 경계인 패수는 독일의 라인강인가?

제목 : 한(漢)나라와 조선의 경계가 되는 패수(浿水)는 독일의 라인강(Rhine River)인가? 우리는 패수에 대해 여러 기록이 있음을 안다. 그 중에서도 한나라와 조선 (위만조선)과 관련된 기록을 살펴 보면 아래와 같다. 1) 설문해자 권11상: 동쪽으로 흐른다는 기록 浿水出樂浪鏤方東入海: 패수는 낙랑군 누방현을 나와 동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2) 한서 권28하: 서쪽으로 흐른다는 기록 浿水【水西至增地入海】: 패수현 (패수는 서쪽으로 증지현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우선 패수는 설문해자에서는 동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하고 한서에서는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 간다 했다. 하나의 강이 동으로 서로 바다로 가는 상황은 불가능하다. 강은 높은 산에서 연원하여 바다로 들어 가는 형상이기 때문이다..

백두산 주위 10국의 하나인 조나(藻那)국은 북유럽의 Jutland인가?

백두산 주위 10국의 하나로서 조나(藻那)국이 있다. 이 조나(藻那)국에 대한 자료를 보면 아래와 같다. 글자 조(藻)의 뜻풀이는 마름 조이다. 마름은 바늘꽃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수초이다. 다른 뜻은 은화식물에 딸린 수초를 통칭한다고 한다. 즉 수초를 뜻하는 뜻이 있다. 즉 물가에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 만주지역에 있었던 지역 집단으로 서기 72년(태조왕 20) 2월 고구려 태조왕이 파견한 관나부(貫那部)의 패자(沛者) 달고(達賈)가 이끈 군대의 공격을 받아, 왕이 사로잡히고 병합되어 고구려의 행정구역으로 편성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나 [藻那]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즉 조나국은 만주지역의 한 집단으로 서기 72년 고구려 태조왕 20년, 관나부의 패자 '달고'가 이끈 군대의 ..

동서로 천리나 펼쳐있는 장백산(백두산, 태백산)은 알프스산맥에 있다

필자는 그동안 론강이 압록수 즉 요수라 추정했다. 그리고 압록수에 가까운 백두산은 몽블랑산이 아닌가 했다. 오늘은 이 백두산=태백산=백산=장백산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해 보고자 한다. 이 연구는 또한 압록수가 론강이라는 것에 대한 검증역할도 하게 된다. 먼저 백두산, 태백산, 백산, 장백산에 대한 발해고 제3권 지리고의 산천고금명 고전의 기록을 살펴 보자. (이하 출처 : 청천, 발해고 제3권 지리고, 본 블로그, 카테고리, 요수, 공유자료 참조) "∎ 太白山 今長白山也. 在吉林烏喇城東南 橫亘千里. (태백산 금장백산야. 재길림오라성동남 횡긍천리) 태백산은 지금의 장백산이다. 길림오라성 동남쪽에 있으며 동서로 천리나 뻗쳐있다. " [출처] 발해고渤海考 제3권 지리고地理考 [산천고금명山川古今名]|작성자 청천 ..

알프스산맥이 철령인가?

본 글에서는 알프스 산맥이 철령인가를 검토하고자 한다. 필자는 과거 코카서스산맥이 철령인 것으로 분석하였다. 이는 천산산맥이 총령이라는 전제하에서이다. 그리고 이 당시에는 요수를 우랄강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필자는 이제 론강이 요수라 추정했다. 따라서 총령과 철령에 대한 재추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총령에 대한 분석은 재야사학가들이, 오랍령인 우랄산맥과 연결된 총령으로 해석하여, 코카서스산맥을 총령으로 해석하였다. 필자는 이에 대한 추정을 일단 받아들이고자 한다. 따라서 철령은 자연히 더 서쪽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철령의 위쪽이 요동이 되려면, 론강을 요수로 추정하는 필자에게는 알프스산맥이 철령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에 대한 분석을 하는 것이다. 철령 이북의 땅을, 명나라가 원래 원나라 땅이었으니 반..

고구려 대무신왕이 정벌한 개마국은 동유럽에 있었다

부제 : 고구려의 개마대산은 Carpathian mountains에 있다. 개마국(蓋馬國)은 백두산 10개국 중의 하나이다. 개마고원, 개마대산 등 관련 언어가 많다. 아래 자료에서 보는 것처럼, 개마고원은 개마대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동옥저가 개마대산 동쪽에 있었다고 후한서 동이전에 전한다 한다. 그리고 AD 26년 고구려 대무신왕이 개마국을 고구려에 복속시켰다. 그 다음해에는 인접한 구다국이 고구려에 항복했다고 한다. 따라서 개마대산의 위치를 발견하면 개마국의 위치를 알 수 있고,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는 동옥저의 위치를 알게 된다. 또한 개마국에 이웃한 구다국도 그 위치를 알게 된다. "개마국은 26년(대무신왕 9) 고구려에 복속된 소국으로, 왕의 친정을 통해 왕실의 부(部)인 계루부(桂婁..

고구려 유리왕시 황룡국은 독일 서북쪽 Cherusci에 있었다

고구려 유리왕 시기 해명태자와 관련한 황룡국도 백두산 근처 10개국의 하나라고 했다. 이제 황룡국의 위치를 추정해 보자 황룡국에 대한 국내 자료는 다음과 같다. 즉 고구려의 유리왕 시절 해명태자와 관련한 이야기와 금관가야 김수로왕의 부인 황옥이 황룡국의 여자라는 이야기이다. 여기서는 고구려의 해명태자와 관련한 황룡국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서기 8년(유리왕 27) 정월에 고구려 왕태자 해명(解明)이 옛 수도인 졸본(卒本)에 거처하고 있었다. 마침 이웃 나라인 황룡국의 왕이 해명의 힘이 세고 무용(武勇)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강한 활을 선물하였다. 해명은 황룡국왕이 고구려를 업신여길까 염려하여 그 사자(使者) 앞에서 활을 당겨 부러뜨린 다음 “내 힘이 센 것이 아니라 활 자체가 굳세지 못하다.”라고 ..

북옥저는 스위스 북쪽 Augusta Raurica에 있었다.

부제 : 고주몽이 정벌한 행안국은 스위스 서쪽 Noviodunum에 있었다 고구려의 시조 추모왕 즉 고주몽이 정벌한 행안국과 북옥저의 위치를 주정하고자 한다. 고주몽은 BC 34년 비류국을 합병한데 이어, 2년후 BC 32년 부분노 장군을 시켜 행안국을 정벌했다. 그리고 다시 4년후 BC 28년 북옥저를 부위염 장군을 통해 정벌했다. 이것이 삼국사기에 나오는 기록이다. 필자는 최근에 프랑스에 있는 Rhone River가 압록수 즉 요수라 추정했다. 그리고 이어서 고주몽의 졸본부여의 졸본천은 Rhone river의 지류 Jabron river라 했다. 비류수가 있는 비류국은 프랑스 Vienne(Isere) 지역이라 추정했다. 특히 Vienne 시의 문장(Coat of Arms)은 (다른 도시가 주로 사자 ..

왜 '해모수'란 지명이 북유럽에 있는가?

요즈음 '이설의 한민족사 2'에 이어 후속 연구를 하던 중 나도 모르게 Oh My God 을 외치곤 한다. 요즈음 나에게 흔하게 일어 나는 일이다. 론강이 요수라는 것을 점검 후에 확인할 때, 백두산이 몽블랑이란 것을 깨달을 때, 갈석산을 스위스에서 발견할 때, 갈사부여를 발칸반도에서 발견할 때, 그리고 최근에 실위 지역 Schleswig(실위)를 발견할 때이다. 그런데 계속해서 OMG 를 외치게 된다. Schleswig가 있는 '덴마크'가 '대막루', '두막루'의 '대막'과 유사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 덴마크에 있는 고성의 흔적을 찾다가, 동쪽 섬에 있는 Hammershus에서 고성을 찾았다. 영락없는 고구려성곽 모습이다. 물론 후대에 일부 복원한 모습이지만 말이다. 전략적 위치에 있어서 북..

북만주의 두막루와 실위는 북유럽에 있었다

부여의 역사는 기원전 7세기부터 있었다 한다. 그러나 역사속에 나타나는 부여는 기원전 3세기부터 기록에 나타난다 한다. 아래 자료에서 보듯이 북만주 탁리국(또는 색리국)에서 탈출한 동명이 예맥의 땅에 망명하여 부여를 기원전 3세기경 건국한 것으로 전해지는 설화가 3세기 서적인 에 언급되었다 한다. 즉 북만주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3세기 서적인 에 전해지는 설화에 의하면 부여는 북만주 탁리국(다른 책에는 고리, 색리 등으로 기록)에서 탈출한 동명이 예맥의 땅에 망명하여 건국했다고 한다. 대체로 부여가 건국된 시기를 기원전 3세기로 본다."(자료: 부여, 나무위키) 우리가 알다시피 부여는 북부여의 해모수로부터 시작하여, 고구려의 전신인 고주몽의 졸본부여, 해부루, 금와, 대소의 동부여, 동부여..

광개토태왕이 정벌한 거란은 어디인가?

광개토태왕은 초기 392년에 거란을 정벌했다. 이 거란이 어디인가 하는 주제는 그래서 광개토태왕의 정벌 경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광개토왕의 정벌 기록과 훈족과 고트족의 당시 기록을 대조하며, 거란의 위치를 가늠하고자 한다. 《삼국사기》 광개토왕 본기 一年夏五月 광개토왕이 즉위하다 (AD 391) 二年秋七月 10개의 백제성을 빼앗다 (AD 392) 二年秋九月 거란을 정벌하다 (AD 392) 二年冬十月 백제 관미성을 빼앗다 (AD 392) (자료 : 삼국사기, 인용출처 : 광개토태왕/생애, 나무위키) "9월에는 반대 방향인 북쪽으로 거란을 정벌하고, 거란에 포로로 잡혔던 고구려 백성들을 되찾아 오는 것과 더불어 거란족 500명까지 전쟁포로로 사로잡아오는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사실 광개토대..

광개토태왕이 정벌한 후연은 어디 있었는가?

우선 후연과의 전쟁기록을 광개토태왕의 기록에서 살펴 보고, 이를 그 시대의 광개토태왕으로 추정되는 Alaric I의 공격경로를 살펴 보자. "후연과의 8년 전쟁과 후연의 멸망 상술한 바와 같이, 400년에 모용성은 고구려가 신라로 지원군을 파견하는 도중 조공까지 받았음에도 사신이 무례하다는 핑계로 쳐들어왔다. 후연군은 모용희를 선봉으로 신성과 남소성을 무너뜨리고 700리에 달하는 땅을 집어 삼켰으니, 사실상 요동의 방어선에 구멍이 난 셈. 신라로 대다수의 병력이 집중된 상황이라 북방으로 방어군을 파견할 수 없었던 고구려는 무력하게 땅을 내줄 수 밖에 없었으나, 다행히 직후 양평령 단등의 반란으로 후연의 요동 진출이 주춤하면서 한숨 돌린 고구려군은 남쪽 신라로 내려와 왜군을 몰아냈고, 이내 다시 북쪽으로 ..

Rhone River가 요수라는 주장의 근거

1. 론강(요수)은 압록수이다. 다른 강에 비해 유난히 파랗다. 그래서 압록수이다. The Rhône (left) meeting the river Arve in Geneva 2. 론강(요수)은 3개의 강들이 만난다. 손강(Saune river)과 이제르강(Isere river)이 합쳐진다. 그외 다른 강도 많이 합쳐진다. 3. 론강(요수)은 대요수(Great Rhone)와 소요수(Little Rhone)를 가지고 있다. "The Rhône (/roʊn/ ROHN, French: [ʁon] (listen); German: Rhone [ˈroːnə] (listen); Walser: Rotten [ˈrotən]; Italian: Rodano [ˈrɔːdano]; Francoprovençal: Rôno [ˈʁo..

이설(異說)의 한민족사 2

필자는 그동안 기존의 역사와 매우 다른 주장을 했다. 즉 이설의 역사 중 하나였다. 터어키에 백제가 있었으며, 신라는 페르시아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최근에는 상나라가 미케네문명이라고 하며, 흑해 주위의 고대국가 형성을 주장했다. 그런데 최근 광개토태왕비문을 연구하며, 이보다 더 서쪽으로 간 역사가 필자의 관심을 끈다. 그래서 이설의 한민족사 2 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렇지 않아도 터키 등을 주장하는 필자는 어떤 者로부터 정신병원에 가보라는 댓글의 핀잔을 받았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한 역사를 주장하려 하니 또 한번 미친 者가 될 형상이다. 그러나 역사를 연구하며 진실을 추구하는 필자는 그 진실을 위해 연구할 뿐이다. 나는 민족주의자도 아니고 국뽕주의자도 아니다. 단지 진실을 감추고자 하는 세력을 이기고자..

광개토태왕 비문을 통한 정벌지역 추정 (updated)

광개토태왕 비문을 보면 광개토태왕이 공취한 성이름이 나온다. 특히 백제구역에서 공취한 성이름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수묘인제도에 나오는 수묘인 출신지 성(城)이름과 지역이름도 광개토태왕시절 이미 고구려지역이었거나 새로이 확보한 지역이름으로 보인다. 그리고 국연 숫자와 간연 숫자로 그 지역의 크기를 말해주는 것 같다. 국연은 간연보다 중요시되는 것 같은데, 본국이란 이미지가 풍긴다. 그런데 그 지역명이나 성곽이름 중에 12 한국의 이름같은 것이 등장한다. 김덕중 씨가 펴낸 '태왕의 꿈'은 광개토태왕 석비 정해본으로 책에서는 광개토태왕이 옛 고조선의 지역을 찾아 다니며, 고조선이 망한 지역의 고조선 유민들을 해방시키고 돌보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고대시대에는 전쟁에 져서 나라가 망하면, 그 망한 나라 유민들..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은 로마제국을 정벌했는가?

지난 글에서 우리는 고구려 광개토태왕과 훈족의 을딘, 고트족의 Alaric I이 유사하다는 것을 개인적인 자료, 왕조사를 비교하며 알아 보았다. 이 글에서는 지난 글에 이어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정복 전쟁이 과연 훈족의 그것과 고트족의 그것과 유사성을 갖는지 알아 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알리고 싶은 것은 필자는 이미 다음/네이버 블로그 글을 통해 '로마제국은 백제이다', '사산왕조 페르시아는 신라이다' 라는 주장했고, 이를 바탕으로 본 분석을 이어 간다는 것이다. 이런 가정에 대해 이해를 원한다면 필자의 다음(blog.daum.net/lainfos)/네이버(blog.naver.com/lainfos) 블로그 글들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광개토태왕의 정복전쟁은 4가지 단계로 나눌 수 ..

나성(羅城)에 가면..

나성(羅城)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 사랑의 이야기 담뿍 담은 편지 ~ 나성(羅城)에 가면 소식을 전해줘요 ~ 하늘이 푸른지 마음이 밝은지 ~ 70년대 귀에 익었던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동해가에 있는 조국을 멀리 두고 나성에 온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많이 흘렀군요. 이제는 나성(羅城)을 떠나 하나 있는 딸래미 곁으로 와 살기 위해 금산(金山)쪽으로 이사 와서 사네요. 조국에 있는 친지 가족들에게 자주 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불효자식으로 살아 왔던 과거가 매우 후회스럽기만 하지만, 더구나 나성(羅城)에 와서 살고, 금(金)을 쫒아 온 것은 아니지만 금산(金山) 가까이 사니 조국 금산(金山)에 묻힌 부모님, 조부모님께 더욱 그리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곳 나성이나 금산이나 모두 하늘..

고구려 광개토태왕은 로마를 정벌한 훈족과 고트족의 일원인가?

서 론 그동안 필자는 최근의 글, '고트족은 고구려이다(1)'를 위시하여, '로마제국은 백제이다', '사산왕조 페르시아는 신라이다' 등의 글에서, 로마제국, 특히 비잔틴제국은 백제이다는 주장과 로마제국과 치열한 싸움을 한 사산왕조 페르시아가 신라라는 주장을 해왔다. 그리고 '상대의 신라 (BC 57-AD225)는 파르티마제국이다 (I), (II), (III)'는 글들에서 이를 어느 정도 증명했다고 판단한다. 최근의 글, '고트족은 고구려이다(1)'에서는 고구려가 유럽에 진출한 훈족과 고트족이 고구려라는 것을 백제사, 로마사에서의 전쟁사를 비교하며, 어느 정도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제,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이 이 지역에서 활동했다고 가정할 수 있는데,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역사..

고트족은 고구려이다 (1)

고구려에 대한 역사 자료는 매우 부실하다. 삼국사기 자료를 보면 어떤 때는 헛웃음이 나온다. 이는 우선 삼국사기의 편자 김부식의 과오가 크다.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고려에서 신라를 더 미화하기 위해 신라에게 부끄러운 역사는 모두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장수왕 시기의 삼국사기 기록이다. 고려 후기에는 몽고에 밀려 동아시아로 밀려 가 있어 그 전의 역사를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신라의 역사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신당서 후당서가 전부인 것으로 알았을 것이다. 물론 일차적인 왜곡은 중국 사가들이 했을 것이고, 여기에 이차적으로 김부식이 더 왜곡했을 것이다. 삼차적으로는 일제때 삼국사기를 왜곡한 자들이 한민족의 찬란한 역사를 감추기 위해 더 왜곡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광개토태..

상대 (BC 57-AD225)의 신라는 파르티마제국이다 (III)

[2] 상대의 신라(BC57 - AD 225)는 파르티마제국이다. (III) 3. 기원후 2세기의 신라와 파르티마 제국 1) 지마이사금 (AD 112-134) 시기의 신라와 파르티마제국 (1) AD 113 : 백제 (로마)와의 화해 (2) AD 115-116 : 가야와의 전쟁 (3) AD 121-123 : 왜국과 전쟁과 강화 (4) AD 125 : 말갈과 전쟁과 백제의 지원 (5) AD 120-132 : 정변의 상황 2) 일성이사금 (AD 134-154) 시기의 신라와 파르티마 제국 (1) AD 137-142 : 말갈과 전쟁 (2) AD 138 : 북쪽의 태백산에서 제사 (3) AD 141, 149, 154 : 정변의 조짐 3) 아달라이사금 (AD 154-184) 시기의 신라와 파르티마제국 (1) AD ..

상대의 신라(BC 57-AD225)는 파르티마 제국이다 (II)

[2] 상대의 신라(BC57 - AD 225)는 파르티마제국이다. (II) 2. 석탈해 등장 이후의 신라와 파르티마 제국 1) 유리이사금 (AD 24-57) 시기의 신라와 파르티마제국 (1) AD 34 : 왕권다툼과 분열된 왕국 (2) AD 36 : 낙랑과의 전쟁 (3) AD 40-42 : 맥국과의 우호관계 (4) AD 54-57 : 정변의 상황, 왕계 : 박씨 -> 석씨 2) 탈해이사금 (AD 57 - 80) 시기의 신라와 파르티마제국 (1) AD 58-76 : 백제(로마)와의 전쟁 (2) AD 73 왜와의 전쟁 (3) AD 77 : 가야와의 전쟁 (4) AD 65-67 : 박씨 가문과 김씨세력의 연합 (5) AD 79-80 : 정변의 혼란 석씨왕에서 박씨왕으로 3) 파사이사금 (AD 8..

상대 (BC57-AD225)의 신라는 파르티마 제국이다 (I)

상대(BC 57-AD225)의 신라는 파르티마제국이다(I) 1. 기원 전후 초기의 신라와 파르티마제국 1) Orodes II (BC 57-BC 37) 와 박혁거세 2) 박혁거세와 알영부인과 파르티마제국의 Orodes II와 Laodice부인 3) 신라 초기의 파르티마 - 로마의 전쟁과 신라 상황 (1) 신라 초기 시기의 로마-파르티마 전쟁 상황 (2) Carrhae 전투의 로마 패배 (3) 변한의 항복 (4) Pacorus I 의 전사와 파르티마의 정변 (5) Phraates IV(BC 37-BC2)의 집권과 금성 궁실 건축 (6) 파르티마 - 로마의 협상과 마한에의 사신 및 조문 파견 4) 동옥저의 사신과 신라 5) Phraates V의 정변과 일식현상 (BC 2, AD 1) 6) Orodes III ..

한나라(전한)를 멸망시킨 왕망의 신나라는 박혁거세의 신라이다

한무제의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지역을 이어간 박혁거세의 신라라고 하면 정신이 제정신이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사실로 판단된다. 역사를 연구하는 모든 분들의 반성을 요하는 것이다. 보다 부드러운 제목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사기를 쓴 사마천,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 조선상고사를 쓴 신채호를 포함한 모두의 자성을 바라는 의미에서 이렇게 제목을 썼다. 그럼 이제부터 하나 하나씩 이런 주장의 논거를 밝히고자 한다. 필자는 본 블로그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첬다. 1) 한무제의 한나라는 페르시아 지역의 파르티마 제국이다. 우선 한나라 (전한, 후한 포함)와 파르티마 제국은 그 존재 기간이 유사하다. 그리고 Mithridates II의 내용이 한무제와 유사한 면을 보였다. 그리고 진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