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공통

역사 속의 제주도는 어디인가?

Chung Park 2024. 7. 13. 15:05

 

역사속의 제주도는 남북으로 천여리, 동서가 수백리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의 제주도는 동서가 길고 남북이 짧다. 그러면 역사속의 제주도는 어디일까?

 

필자는 과거의 글에서 인도남쪽의 실론섬(스리랑카)이 제주도가 아닌가 했다. (아래 글 참조)

 

 

 

그러나 이글을 쓸 당시에도, 원나라의 요청으로 제주도에서 말을 길렀다는 일화와 비해, 실론섬(스리랑카)에서 말을 기른 흔적은 없었다. 단지 노루가 있었다는 기록과 일치하는 노루는 있었다.

 

그리고 탐라국은 백제에서 배로 3달을 가야한다는 기록에, 필자가 추정하는 백제(로마제국 일부, 비잔틴제국)로부터 멀리 떨어진 인도남쪽이 가능한 지역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몽고와 고려의 위치에 대한 검토는 하지 못했다.

 

단지 조선의 세종대왕의 아들 추모영지가 인도북쪽에 있었다는 나무위키의 자료를 참고로 할 때, 이 지역이 제주지역으로 가능하다 생각했다.

 

또한 제주의 3개성의 귀족들 이야기 등을 고려하면, 타밀지역의 역사와 유사한 것은 긍정적인 요소였다.

 

그러나 고려시기의 말(horse)의 사역지 흔적이 없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런데 다른 역사적 연구에서 이태리반도 서쪽에 있는 사르디니야 섬에서 말을 기르는 그래서 종자가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Sardinia in Italy (source : Wikipedia)

 

 
 

Topographic map of Sardinia (source : Wikipedia)

 

 

사르디냐섬은 여러 가지면에서 우리 역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우리의 씨름과 유사한 레슬링의 역사가 있고, 진도개와 같은 watchdog의 종자가 있는 지역이고, 신라의 사도와 같은 제례 역사가 있고, 장보고의 청해진 중의 하나 (시실리섬과 사르디냐섬)로 판단되었다.

 

 

 

그러나 백제로부터 3개월을 가야하는 탐라국의 위치는 아니다. 그러나 섭라국의 이름과 유사하다. 탐라국과 섭라국이 다른 지역의 나라라면 섭라국의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국내 자료에서는 탐라국, 탐모라국, 섭라국 모두 지금의 제주도라 설명하는 자료 밖에 없다.

 

아래 탐라국에 대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내용을 보자.

 

 

"탐모라국(耽牟羅國)·섭라(涉羅)·담라(儋羅)·탁라(乇羅)라고도 표기되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 및 조선 초기까지 오랫동안 불려졌던 칭호이다.

 

《고려사》 지리지에 의하면 제주도 3성(姓) 시조신의 하나인 고을나(高乙那)의 15세손 고후(高厚)·고청(高淸)과 그 아우 등 3형제가 배를 만들어 타고 바다를 건너 탐진(耽津)에 이르렀는데, 이 때는 신라 성시(盛時)였다. 3형제가 들어와 조공하자 신라왕은 이를 가상히 여겨 맏아들에게는 성주(星主), 둘째에게는 왕자(王子), 막내에게는 도내(都內)라는 작호를 주고 국호를 탐라라고 했다고 한다.

 

이에서 탐라국이라는 명칭은 유래했으며, 실제로는 ‘섬나라’라는 뜻이다. 성립연대는 신라 성시라는 시기가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이므로 문무왕 때로 추측된다. 그 이전의 사회는 3성씨족의 공동연맹체적인 체제로 보이며, 신라의 삼국통일기에 이르러 3성 가운데 세력이 강성한 고씨(高氏) 씨족이 군장(君長)으로 군림해 국주(國主)가 된 것으로 보인다.

 

설화에 의하면, 처음에는 고을나·양을나(良乙那)·부을나(夫乙那) 등 3성의 시조가 모흥혈(毛興穴, 三姓穴)에서 나타나 그 자손들이 나라를 이루고 살았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사람은 키가 조금 작고 언어는 한(韓)과 같지 않으며, 개나 돼지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소와 돼지를 잘 기르며 또 노루와 사슴이 많으며, 풍속은 질박하고 비루하며, 여름에는 초옥(草屋)에 살고 겨울에는 굴실(窟室)에 산다고 한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한조(韓條)에는 “주호(州胡)"라고 지칭하면서 배를 타고 중국과 한(韓)에 내왕하며 교역을 한다고 하였다. 최근에도 오수전(五銖錢)·화천(貨泉) 등의 중국화폐가 발굴되었다.

 

 

대외관계는 제일 먼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백제와 밀접해 476년(문주왕 2) 4월에 사신을 파견해 방물(方物, 토산물)을 바치고 그 사신은 좌평(佐平)의 관등을 받았다. 498년(동성왕 20) 8월에는 공부(貢賦)를 바치지 않다가 백제동성왕이 친히 정벌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사과하고 공부를 바칠 것을 약속하였다.

 

고구려와는 가옥(珂玉)을 수출하는 등 교역을 했으나 백제에 복속된 이후로는 교섭이 두절되었다. 한편, 신라와는 662년(문무왕 2) 2월에 탐라국주 좌평 도동음률(徒冬音律)이 와서 항복함으로써 이때부터 신라의 속국이 되었다. 그리고 뒤에 일본과 가깝게 지내다가 678년 2월에 신라 사신의 경략을 받았다. 이 뒤로는 신라와 활발하게 교섭하였다.

 

한편, 중국 당나라와는 661년 8월에 왕 유리도라(儒李都羅)가 사신을 보내기도 하였다. 또, 일본과는 661년 당나라에서 귀국하던 일본사신의 배가 풍랑을 만나 탐라국에 대피했다가 귀국할 때, 왕자 아파기(阿波伎) 등 9명이 이들을 따라 일본에 간 일이 있은 뒤로 매우 교섭이 활발해 많은 왕자와 좌평이 일본을 다녀왔다. 또 680년 9월과 686년 8월에는 일본에서 사신이 왔다는 기록도 있다.

 

신라 말기에는 점차 복속관계에서 벗어나, 신진세력인 고려에 우호관계를 맺고자 하여 925년(태조 8) 11월 사신을 파견해 방물을 바쳤다. 938년 12월에는 탐라국주 고자견(高自堅)이 태자 말로(末老)를 파견해 입조하고, 고려로부터 신라의 예에 따라 성주·왕자의 작위를 받아 고려의 번국(蕃國)으로서 독립적인 체제를 유지해 나갔다. 그 후 1105년(숙종 10)고려의 지방행정구획인 1개의 군(郡)으로 개편되면서 반독립적인 체제는 사라졌다.

 

1153년(의종 7)탐라군은 다시 격하되어 탐라현이 된 뒤로는 고려조정으로부터 파견된 현령이 탐라의 행정업무를 관장하게 되었다. 이에 탐라국 체제는 없어지고, 성주와 왕자의 관직만이 남아 상징적 존재로 유지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뒤 1404년(태종 4) 5월에 성주는 좌도지관(左都知管), 왕자는 우도지관(右都知管)으로 개칭되어 존속하다가, 1445년(세종 27) 6월에 이것마저 폐지되어 이 때부터 탐라의 귀족계급은 완전히 평민화되었다."

 

(자료 : 탐라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상기 자료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점령 역사와 사르디니아의 역사가 매칭된다. (아래 자료 참조)

 

The east Germanic tribe of the Vandals conquered Sardinia in 456. Their rule lasted for 78 years up to 534, when 400 eastern Roman troops led by Cyril, one of the officers of the foederati, retook the island.........

 

In 533, Sardinia returned to the rule of the Byzantine Empire when the Vandals were defeated by the armies of Justinian I under the General Belisarius in the Battle of Tricamarum, in their African kingdom; Belisarius sent his general Cyril to Sardinia to retake the island. Sardinia remained in Byzantine hands for the next 300 years[38] aside from a short period in which it was invaded by the Ostrogoths in 551. ....

 

The dates and circumstances of the end of Byzantine rule in Sardinia are not known. Direct central control was maintained at least through c. 650, after which local legates were empowered in the face of the rebellion of Gregory the Patrician, Exarch of Africa and the first invasion of the Muslim conquest of the Maghreb. There is some evidence that senior Byzantine administration in the Exarchate of Africa retreated to Caralis following the final fall of Carthage to the Arabs in 697.[44]

The loss of imperial control in Africa led to escalating raids by Moors and Berbers on the island, the first of which is documented in 705, forcing increased military self-reliance in the province.[45] Communication with the central government became daunting if not impossible during and after the Muslim conquest of Sicily between 827 and 902.....

 

In the early 11th century, an attempt to conquer the island was made by the Moors based in the Iberian Peninsula.[51] The only records of that war are from Pisan and Genoese chronicles.[52] ........

 

 

In 1409, Martin I of Sicily, king of Sicily and heir to the crown of Aragon, defeated the Sardinians at the Battle of Sanluri. The battle was fought by about 20,000 Sardinian, Genoese and French knights, enrolled from their kingdom at a time when the population of Sardinia had been greatly depleted by the plague. Despite the Sardinian army outnumbering the Aragonese army, they were defeated.

The Judicate of Arborea disappeared in 1420, when its rights were sold by the last king for 100,000 gold florins,[62] and after some of its most notable men switched sides in exchange for privileges. For example, Leonardo Cubello, with some claim to the crown being from a family related to the Kings of Arborea, was granted the title of Marquis of Oristano and feudal rights on a territory that partly overlapped with the original extension of the Kingdom of Arborea in exchange for his subjection to the Aragonese monarchs.

 

The conquest of Sardinia by the Kingdom of Aragon meant the introduction of the feudal system throughout Sardinia. Thus Sardinia is probably the only European country where feudalism was introduced in the transition period from the Middle Ages to the early modern period, at a time when feudalism had already been abandoned by many other European countries.

 

 

In 1469, the heir to Sardinia, Ferdinand II of Aragon, married Isabel of Castile, and the "Kingdom of Sardinia" (which was separated from Corsica) was to be inherited by their Habsburg grandson, Charles I of Spain, with the state symbol of the Four Moors. The successors of Charles I of Spain, in order to defend their Mediterranean territories from raids of the Barbary pirates, fortified the Sardinian shores with a system of coastal lookout towers, allowing the gradual resettlement of some coastal areas.

The Kingdom of Sardinia remained Aragonese-Spanish for about 400 years, from 1323 to 1708, assimilating a number of Spanish traditions, customs and linguistic expressions, nowadays vividly portrayed in the folklore parades of Saint Efisio in Cagliari (1 May), the Cavalcade on Sassari (last but one Sunday in May), and the Redeemer in Nuoro (28 August). To this day Catalan is still spoken in the north-western city of Alghero (l'Alguer).

(source : Sardinia,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Corsica Sardinia)

 

필자는 고트족을 고구려, 반달족을 고트족 즉 고구려의 통제를 받는 세력으로 추정했으며, 동로마제국, 비잔틴제국을 백제로 추정했다. 그리고 백제 멸망이후의 비잔틴제국은 통일신라의 그것으로 추정했다. (아래 글 참조)

 

https://lostcorea.tistory.com/1265

 

고트족은 고구려이다 (1)

고구려에 대한 역사 자료는 매우 부실하다. 삼국사기 자료를 보면 어떤 때는 헛웃음이 나온다. 이는 우선 삼국사기의 편자 김부식의 과오가 크다.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고려에서 신라를 더 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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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고구려의 후손일 수 있는 고을나 가문, 그리고 부여씨를 가진 백제의 왕족의 후손일 수 있는 부을나 가문, 그리고 신라의 후손일 수 있는 양을나 가문이 제주도의 3개 가문이라 한 고려사 자료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복속지역임을 나타내며, 또한 Sardinia의 복속 역사, Ostrogoths, Vandals, Byzantine Empire (성왕으로 추정되는 Justinian I시기), 그리고 진흥왕 시기의 신라로 추정되는 롬바르드의 지배가 이들과 매칭된다.

 

이후의 고려와 조선에 매칭되는 시기는 필자는 아직 연구 전에 있는 관계로 잘 알 수 없으나, 고려와 조선의 시기는 사르디냐왕국과 Kingdom of Aragon, Crown of Aragon과 관계가 있는 듯 하다.

 

 

또한 상기 자료 중에,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한조(韓條)에는 “주호(州胡)"라고 지칭하면서 배를 타고 중국과 한(韓)에 내왕하며 교역을 한다"고 하였다는 내용은 주호국이 제주도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주호국은 마한의 서쪽에 있는 섬나라라 했다. (아래 글 참조) 따라서 사르디니아가 강력한 후보가 된다. 섭라국을 설명한 자료로 보인다. 백제에서 3달을 가야 하는 탐라국이 마한의 서쪽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제주도를 마한의 서쪽에 있는 섬이라 주장하는 어리석은 사학자는 없을 것이다. 단지 감추고 모른체할 뿐이다.

 

https://lostcorea.tistory.com/1528

 

마한의 서쪽 바다에 있는 주호국은 지중해에 있는 샤르데냐섬이다 (updated)

필자는 최근 '마한이 이태리 반도를 포함하였다'는 글을 썼다. 그런데 이 분석에서 빠트린 것이 있어 추가하고자 이글을 쓴다. 즉 마한의 서쪽 바다에 주호국이란 섬이 있었다는 것이다. 주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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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사르디냐섬은 다른 면에서 섭라국인 제주도의 가능성을 보인다.

 

"사람은 키가 조금 작고 언어는 한(韓)과 같지 않으며, 개나 돼지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소와 돼지를 잘 기르며 또 노루와 사슴이 많으며....."

 

 

즉 상기 자료를 보면, 섭라로 추정되는 제주도는 말, 개, 소, 사슴 등의 종자가 발달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르디냐는 이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아래 자료 참조)

 

 

"Sardinia's land is dedicated 60% to livestock, 20% to agriculture and the rest is occupied by closed forests, urban areas and areas that are not exploitable.[citation needed] Sardinia is home to nearly 4 million sheep,[120] almost half of the entire Italian assets and that makes the island one of the areas of the world with the highest density of sheep along with some parts of UK and New Zealand (135 sheep every square kilometer versus 129 in UK and 116 in New Zealand). Sardinia has been for thousands of years specializing in sheep breeding, and, to a lesser extent, goats and cattle that is less productive of agriculture in relation to land use. It is probably in breeding and cattle ownership the economic base of the early proto-historic and monumental Sardinian civilization from Neolithic to the Iron Age....

 

Sardinia boasts a centuries-old tradition of horse breeding since the Aragonese domination, whose cavalry drew from equine heritage of the island to strengthen their own army or to make a gift to the other sovereigns of Europe.[124] Today the Island boasts the highest number of horse herds in Italy.[125] ..........

 

Sardinia is home to a wide variety of rare or uncommon animals, such as several species of mammals, many of them belonging to an endemic subspecies: the Mediterranean monk seal, Sarcidano horse, Giara horse, albino donkey, Sardinian feral cat, mouflon, Sardinian long-eared bat, Sardinian deer, fallow deer, Sardinian fox (Vulpes vulpes ichnusae), Sardinian hare (Lepus capensis mediterraneus), wild boar (Sus scrofa meridionalis), edible dormouse and European pine marten. ....

 

Three different breeds of dogs are peculiar to Sardinia: the Pastore Fonnese, Dogo Sardo and Levriero Sardo. "

 

(source : Sardinia,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Corsica Sardinia)

 

 

 

Giara horses in Sardinia (source : Wikipedia)

 

 

또한 사르디냐는 구리와 납의 산지로서 수출하였다 한다 (아래 자료 참조), 주위 중국과 한(韓)과 교역을 한 물건이 이런 광산물일 수 있다.

 

"Sardinia was at the time at the centre of several commercial routes and it was an important provider of raw materials such as copper and lead, which were pivotal for the manufacture of the time."

(source : Sardinia,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Corsica Sardinia)

 

 

이러한 여러 가지 점을 고려하면, 제주도(탐라국)의  역사 내용은 스리랑카의 타밀 문명보다 사르디냐와 더 잘 매칭되는 점이 있다. 따라서 섭라국의 역사가 제주도의 역사와 더 가까운 듯하다.

 

문제는 고려와 원나라가 이 지역 주위에 있었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필자는 이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입장이다. 아직 구체적 연구에 들어 가지는 못했지만, 고려와 조선시기의 아래 일부 연구로 보면 그렇게 판단된다. (아래 필자의 글 참조)

 

 
 
 
 

 

https://lostcorea.tistory.com/1726

 

당항포는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탕헤르(Tangier)인가?

당항포, 당항성에 대해 필자는 그 위치에 대해 그동안 의문을 폼어 왔다. 신라가 중국과 통하는 주요 무역항구라는 설명으로 한반도 식민사학자들은 인천지역에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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