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기타

마한은 이태리 반도를 포함하지 않았을까?

Chung Park 2021. 4. 18. 09:04

​삼한, 즉 마한, 진한, 변한은 우리나라 고구려, 백제, 신라 역사의 바탕이 되는 지역이다. 낙랑, 부여, 예맥,  왜, 등의 위치와도 직결되며, 또한 위만 조선 등 고조선의 일부 지역과 접한 지역이기도 하다. 위만조선은, 진(秦)나라, 한(漢)나라, 등의 위치와도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지나치는 진(晉)나라 (BC 11 c - BC 349), 3진(晉)의 위(魏) (BC 403-BC 225), 조(趙) (BC 403-BC 228), 한(韓)나라 (BC 403-BC 230)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한 또는 진한(辰韓)을 특히 진국(辰國)이라 했는데, 진국(辰國)에 대한 여러 기록과 주장으로 그 실체도 연구대상이다. 또한 진한에 있는 신라가 진한(秦韓) 즉 진(秦)나라의 유민이라는 기록도 있어 진한(辰韓)이 진한(秦韓)일 수도 있다고 본다. 로마제국을 대진(大秦)제국이라 칭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 나라의 역사에서 삼한의 위치가 주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특히 한반도 역사관을 식민 사관으로 판단하는 재야 사학자들은 식민 사관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려면 이러한 삼한의 위치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연구해야 한다. 

 

필자는 이설의 한민족 역사를 주장하는 사람으로서 필자의 이설의 한민족사가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기 위해서도 삼한의 위치에 대한 검증이 매우 필요하다. 그래서 비록 자료가 많지 않지만, 기존 자료에 근거해 그 위치를 가늠해 보고자 한다.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과 현재의 국가 영역을 옹호하는 논리는 분리 되어야 한다. 역사와 연관된 영토 전쟁에 휘말리면 작금의 중공의 역사 왜곡 같은 일이 벌어지고, 일본의 역사 왜곡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우리가 당해 왔던 치욕을 합리화 해주는 어리석은 일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역사의 진실을 위해 우리는 과감하게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삼한 중에서 마한은 54개국으로 그 중심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진한 12개국, 변진 12개국이니 마한에 비하면 그 규모가 작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우리는 마한의 위치를 가늠하면, 그 동쪽에 있는 진한과 진한 남쪽에 있는 변한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마한, 진한, 변한의 위치에 대한 자료를 아래에 모아 보았다. 

 

 

1. 마한은 위만조선의 남쪽에 있었다. 고조선의 준왕은 BC 198년이후 삼한의 왕이 되었다. 

" 기록에 따르면, 기자의 후손으로 고조선의 왕인 준왕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남쪽으로 갔다. 후한서에서는 준왕이 마한의 왕을 격파하고 한왕이 되어 삼한을 지배하였다고 기록했다. " (자료 : 마한, 나무위키)

 

2. 삼한은 대방 남쪽에 있고 동서간으로 바다에 막혀 있으며, 남쪽은 왜와 접하고, 진한은 예전의 진국(辰國)이다. 

 

"한(韓)은 대방(帶方) 남쪽에 있고 동서간으로 바다에 막혀 있다. 남쪽으로 왜(倭)와 접하고 사방 4천리다.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의 세 종류가 있다. 진한(辰韓)은 예전의 진국(辰國)이다. 마한은 서쪽에 있는데 그 백성은 정착하여 농경을 하는데 누에 치는 법을 알고 면포(綿布)를 만든다. (자료 : 삼국지, 위서동이전)"

 

(인용출처 : 마한, 나무위키)

 

 

3.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고 그 북쪽에 예맥과 접했다. 변진은 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그 남쪽은 왜와 접해 있다. 

 

"한(韓)은 세 종족이 있으니, 첫번째는 마한(馬韓), 두번째는 진한(辰韓), 세번째는 변진(弁辰)이다. 마한(馬韓)은 서쪽에 있는데, 54개의 나라가 있으며, 그 북쪽은 낙랑(樂浪), 남쪽은 (倭)와 접하여 있다.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는데, 12개 나라가 있으며, 그 북쪽은 예맥(濊貊)과 접하여 있다. 변진은 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역시 12개 나라가 있으며, 그 남쪽은 왜와 접해 있다."   (자료 : 후한서 동이열전) (인용출처 : 마한, 나무위키)

 

 

4. 마한은 진한의 서쪽, 낙랑의 남쪽, 왜의 북쪽에 있다

 

"韓有三種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辰. 馬韓在西, 有五十四國, 其北與樂浪, 南與倭接. 
한(韓)에는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진(弁辰)의 3 종(種)이 있다. 마한(馬韓)은 서쪽에 있는데 54개 국이 있다. 북쪽으로 낙랑, 남쪽으로 왜(倭)와 접한다." (자료 : 마한, 나무위키)

 

 

5. 마한은 고구려와 예맥에 가까이 있으며, 현도성, 부여, 한나라와 가깝다

 

"十二月 王率馬韓穢貊一萬餘騎 進圍玄菟城 扶餘王遣子尉仇台 領兵二萬 與漢兵幷力拒戰 我軍大敗


12월, 임금이 마한(馬韓)과 예맥의 1만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나아가 현도성을 포위하였다. 부여 왕이 아들 위구태(尉仇台)를 보내 병사 2만 명을 거느리고, 한나라 병사와 힘을 합쳐 막고 싸우니 우리 군사가 크게 패하였다."

 

《삼국사기》권15 태조 대왕 69년 (자료 : 마한, 나무위키)

 

 

6. 온조 시기의 백제는 마한의 동북쪽에 위치 하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온조왕 24년 가을 7월에 왕이 웅천(백제와 마한의 경계)에 목책을 쌓자 마한 왕이 사신을 보내 "왕이 애초에 강을 건너와 발 붙일 곳도 없었을 때 내가 동북쪽의 땅 1백 리를 주어서 살게 해줬는데 마땅히 이에 보답할 생각은 하지 않고 성과 연못을 크게 만들고 우리 강토를 침범하니 이것을 어찌 의리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항의하자, 온조왕은 부끄러워하며 쌓았던 목책을 허물었다고 한다. "

(자료 : 온조, 나무위키)

 

 

 

 

7. 마한은 진한의 초기 신라를 속국으로 하고 있었다. 

 

"진, 변 두 한(韓)은 나의 속국이다. 근래 몇 년 동안 공물을 바치지 않으니 사대(事大)의 예가 어찌 이런가?
辰卞二韓爲我屬國. 比年不輸職貢 事大之禮 其若是乎

 

삼국사기 신라 본기에서 발췌. 신라의 성장을 견제하는 마한 왕의 발언이다."

(자료 : 마한, 나무위키)

 

 

우선 이러한 삼한의 위치 정보에 대강 들어 맞는 지형이 어디일까 생각해 보자. 

 

지구상 이 지형을 가질 수 있는 곳은 3군데이다. 인도차이나 반도, 인도반도, 그리고 지중해에 있는 이태리반도, 발칸반도, 이베리아반도의 조합이다.  이중에서 압록수인 요수를 찾고, 패수를 찾아서 지형에 맞을 때, 위만조선이 있던 압록수 계곡의 왕검성을 찾고, 그 이남에 있는 마한을 찾아야 한다. 

 

인도차이나반도 주위에는 요수인 압록수와 패수의 지형이 될 만한 강이 없다. 

 

인도반도에도 동남쪽으로 흐르는 강과 이웃한 서북쪽으로 흘러 서쪽 바다로 흘러 가는 패수를 찾을 수 없다. 

 

필자는 지중해 위 지역에서 요수인 압록수의 지형 조건에 맞는 론강이 요수임을 찾았고, 패수의 조건에 맞는 다뉴브강과 라인강을 찾았다. 그래서 위만조선의 왕검성은 이태리반도의 북부지역, 라인강과 론강의 상류지역에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따라서 마한은 이 지역의 남쪽 즉 이태리반도를 포함하지 않을까 추정한다. 이러한 바탕위에서 마한과 진한, 변진, 그리고 백제, 신라, 낙랑, 예맥, 고구려, 한나라, 진나라 등을 추정하고자 한다. 

 

한반도 역사관은 요수 및 압록수의 형상에서 맞지 않는다. 그리고 동남쪽으로 흐르는 패수, 서북쪽으로 흘러 서로 흘러 바다에 들어가는 패수란 강이 없다. 따라서 한반도 내에서 삼한의 위치를 논하는 것은 현재 한반도에 거주하는 한민족에겐 아쉽지만 허황된 일임을 받아 들여야 한다. 그리고 언제 어떻게 한반도로 오게 되었는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연구해야 한다. 

 

마한, 진한, 변진의 삼한이 동서가 바다로 둘러 싸였다고 했다. 그리고 마한의 동쪽에 진한이 있고 진한의 남쪽에 변진이 있다고 했다. 따라서 현 중공내 에서는 삼한의 위치가 있을 수 없다. 재야 사학자 중에  환단고기를 주장하면서도 마한은 한반도에, 진한은 중공 요하지역에, 그리고 변한은 그 서쪽에 위치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이 또한 허황된 주장이다. 삼한에 대한 기초적인 위치정보도 맞지 않는다. 중공지역에서는 삼한의 지형에 맞는 위치를 찾을 수 없다. 

 

일부 재야 사학자는 남북 아메리카가 한반도라 주장하기도 한다. 요수인 압록수의 지형 조건과 패수의 지형조건을 갖춘 강을 찾고, 그리고 압록수의 동남쪽 상류에 있는 천리에 걸쳐 있는 백두산를 찾아야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한민족 역사론도 근대 조선사에서의 진출은 모르겠으나, 한민족 고대사와 관련하여서는 역시 허황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필자는 이러한 추정에서 출발하여, 지중해에서 삼한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상기 1번의 자료는 위만조선의 남쪽에 마한이 있다고 했다. 위만에 조선을 빼앗긴 고조선의 준왕은 남쪽으로 내려가 마한왕을 격파하고 한왕이 되어 다스렸다 했다. 필자는 패수를 건너 연나라에서 도망친 위만의 행로는 패수인 라인강을 건너 론강의 상류와 라인강의 상류에 있는 왕검성을 차지한 것으로 추정했다. 필자의 본 블로그 글, '요수인 압록수는 프랑스의 론강이다', '한나라와 조선의 경계인 패수는 라인강인가?', '광개토태왕이 정벌한 연나라(후연)는 프랑스 Gaul지역에 있었다', 그리고 '장수왕이 공격한 풍홍의 북연은 프랑스 북부 Gaul지역에 있었다' 등의 글에서 이러한 주장을 밑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이의 남쪽은 이태리 반도가 되며, 마한이 이태리 반도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마한의 거수국인 해두국이 백두산 주위 10국의 하나인데, 천리에 걸쳐 있는 백두산은 알프스 산맥이라고 추정했다. 그리고 동부여 대소왕의 아우가 갈사부여로 가면서 가는 길에 만난 해두국왕을 죽이고 그 주민들을 거느리고 갈사로 가서 갈사부여를 세웠다고 했다. 필자는 동부여를 이태리 반도 북부지역에서 중부유럽에 이른 지역으로 추정하고, 갈사부여는 발칸반도에 있다고 추정했다. 따라서 마한은 이태리반동와 일부 중부유럽 내륙지역을 포함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기 6번 자료에서 온조 시기의 백제는 마한의 동북쪽에 있다고 했다. 위례성의 조건, 즉 동으로는 높은 산이 있고, 서로는 바다에 막혀 있으며, 남으로는 기름진 땅이라는 조건을 갖춘 지역은 그리고 마한의 동북쪽 즉 이태리 반도의 동북쪽은 아드리아 해안으로 추정된다. 즉 이  Dalmatia지역, Illyrian지역에 위례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는 또한 마한의 일국이었으므로 발칸반도도 마한으로 판단된다. 

 

상기 4번 자료에서 마한의 북쪽에는 낙랑이 있다고 했다. 낙랑은 요수인 론강의 동쪽에 있던 현도군, 요동군의 동쪽에 있었던 낙랑군과 더 동쪽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임둔군, 진번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낙랑군이 아닌 최리의 낙랑국은 발칸반도 위쪽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 대무신왕은 이 근처의 갈사부여를 통합하고, 최리의 낙랑국을 통합했다.  즉 마한의 북쪽에 낙랑이 있었다는 조건을 만족시킨다. 따라서 발칸반도를 마한이 포함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상기 4번 자료에서 마한의 남쪽에는 왜가 있다고 했다. 이태리 반도의 남쪽에 있는 시실리섬, 그리고 코르시카섬, 샤르데나섬 등은 신라, 백제사에서 보면 왜(=sea peoples, 도이(島夷), Dorian) 의 근거지로 판단되며, 발칸반도의 남쪽에 있는 크레타섬, 펠로폰네소스 반도도 왜(=sea peoples, 도이(島夷), Dorian)의 지역으로 판단된다. 즉 마한의 조건에 이태리반도, 발칸반도가 들어 맞는 것이다. 

 

동예는 동쪽으로 바다에 접했으며, 그 북으로는 동옥저가 있다 했다. 발칸반도의 동북쪽이 아닌가 한다. 트라키아, 모에지아도 스키타이인으로서 예맥일 수 있다고 본다. 예족은 낙랑과 동일족이라 했으므로, 이에서 멀지 않은 발칸반도 북쪽에 낙랑이 있는 것이 된다. 발칸반도 서쪽에 자리 잡은 위례성의 온조가 낙랑과 동예로부터 많은 침략을 받은 것은 이들 지역에 온조 백제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즉 토착민과 외부세력과의 충돌로 보인다. 

 

 

상기 3번 자료에서 이들 예맥이 진한의 북쪽에 있다고 했다. 따라서 진한은 현재 터어키가 있는 소아시아 지역이라 추정된다. 신라의 모체로 판단되는 초기의 사산왕조 페르시아는 소아시아의 중간 북쪽에서 출발하였다고 위키피디아는 말한다. 즉 진한에 있는 사로국이 여기가 아닌가 한다. 소아시아 북쪽에는 흑해가 있다. 흑해 위쪽의 지역도 역사적으로 고구려의 영역인 것을 고려하면, 과거 예맥의 지역일 것으로 생각된다. 

 

사로국은 마한에도 있었다고 한다. 마한의 사로국에 대해서는 보다 더 연구가 있어야 하겠지만, 이태리 반도의 일부가 아닐까 한다. 

 

상기 3번 자료에서 진한의 남쪽에 변진이 있고 그 남쪽에 왜가 있다고 했다. 소아시아 남쪽에 있는 아르메니아 등의 가야가 변진, 즉 변한이라고 추정한다. 필자는 아르메니아 지역이 가야의 지역임을 여러 글을 통해 밝혔다. 소아시아 남쪽에 있는 사이프러스섬은 왜, 도리언, 도이의 지역이다. 

 

상기 자료 5번은 마한과 고구려, 예맥이 합하여 압록수의 우측에 있는 한(漢)나라 현도군을 공격했는데, 부여왕의 왕자 위구태가 한(漢)나라에 합세하여, 태조왕 시기의 고구려의 공격이 실패했다고 했다. 즉 한나라, 현도군, 고구려, 부여, 마한, 예맥이 모두 멀지 않은 것에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한나라가 라인강의 서쪽에 있다고 했으며, 라인강 동쪽, 다뉴브강 북쪽에 고구려가 있으며, 부여는 북부여는 독일북부, 덴마크지역으로 추정하였다. 즉 이태리반도, 발칸반도의 마한, 발칸반도의 예맥과 지정학적으로 모두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이다. 

 

즉 필자의 추정이 상기 6번까지의 자료와 모두 합치하는 것이다. 진한의 진국, 진시황의 진나라 등에 대해서는 보다 더 연구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