室韋
1. 소개
자바이칼과 다싱안링(大兴安岭)그리고 샤오싱안링(小兴安岭) 동쪽에 잡거했던 목축·수렵·유목민에 대한 명칭.
2. 간략한 역사
실위는 5~6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역사의 무대에 모습을 나타낸다. 5세기 오락후라는 명칭으로 북위에 조공을 시작하며, 수나라 때 남실위, 북실위, 발실위, 심말달실위, 대실위 등으로 나뉘었으며, 당나라 때 오소고, 아례, 새갈지, 동실위, 대실위, 남실위, 몽올실위 등 22부로 나뉘었다.
실위는 자바이칼의 아르군 강 유역 서부에서 활동하던 초기 선비계 집단과 언어적으로 친연성을 가지는 종족들로도 구성되어 있는데, 러시아 학계에 의하면 이들은 고고학적으로 부르호토이 문화와 미하일로프카-글라드콥스키 문화로 양분된다.[1]
남북조-수대 실위의 구체적인 위치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있다. 대략적으로 본다면 남실위는 눈강 중하류 및 서쪽 각 지류, 북실위는 남실위의 북쪽, 발실위는 북실위의 서북쪽, 심말달실위는 발실위의 서남쪽, 대실위는 심말달실위의 서북쪽 수천 리에 분포했다.[2]
7세기에 이르러 남실위는 거란, 해족 등 주변 종족들과 섞여 현재의 랴오닝 성 북부 인근인 당나라 변방 송막(松漠)지역을 약탈하며 깔짝(...)거렸지만, 존속기간 내내 주변 세력들의 영향하에 있다가 결국 10세기에 야율아보기의 요나라에 완전히 토벌당하고 통제를 받는다. 9세기 후반 위구르 제국이 붕괴된 후 역병으로 인해 몽골리아의 공백이 발생하자 몽골어계 종족들의 이주가 시작되며, 그 중 몽골부는 12세기에 몽골리아에 정착했다. 거란이 붕괴되자 몽골부를 비롯한 종족들은 금나라의 변경을 공격하거나 다른 부족들을 정복하면서 세력을 키워나간다.
《위서》와 《구당서》는 동호, 《신당서》는 따르면 동호(東胡)의 북변에 있으며 대개 정령(丁零)의 후예였다고 기록한다.
한국사와의 연관성으로는 고구려 북쪽에 접경하여 철을 고구려에 의지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황두실위의 경우에는 고구려가 도독을 두어 통제한 정황도 있다.(李玟洙, 「高句麗 遺民 李他仁의 族源과 柵城 褥薩 授與 배경에 대한 고찰」『大丘史學』,2017) 북부여의 후신인 두막루가 실위와 흑수말갈 근처, 혹은 사이에 위치한 세력이다.
3. 몽골의 기원
실위의 일파인 몽올실위가 카마그 몽골로 이어지고, 몽골 제국의 뿌리가 되었다.
몽골은 집사나 원조비사 같은 책을 편찬할 때부터 이미 자기들이 실위에서 나온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4. 기타
한편, 실위의 일파인 황두실위는 눈이 파랗고 머리가 노랗다고 하여 아리안의 일파로 보기도 하며, 시위가 해체된 후 여진으로 편입되었는지 이후 송막기문과 거란국지에 금발을 한 여진족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물론, 백인의 형질을 가졌다고 해서 모두 인도유럽어족 계통의 민족인건 아니고, 케트족이나 품포콜족[3]같은 예니세이어족 계통 민족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예니세이계 민족들은 선사 시대에 시베리아로 진출한 토하라인과 혼혈하여 백인과 다소 유사한 형질을 가지게 된 바 있다.
실위에 대해 알기 좋은 책으로 몽골인 그들은 어디서 왔나가 있다.
[1] 두 문화는 남쪽의 말갈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2] S. P. 네스테로프 이래 러시아의 고고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미하일로프카 문화를 북실위로, 제야 저수지 부근의 글라드콥스키 문화를 발실위로 추정하고, 장지우허나 팡좡요우 같은 사학자들은 대흥안령에 있는 석실을 기준으로 이르후리산, 반고하 일대로 비정한다.[3] 17세기 경까지 몽골 북부에 살았던 예니세이어족 계통의 민족이다. 오호십육국시대에 후조를 건국했던 갈족과 동계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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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실위 - 위키백과 (0) | 2021.0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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