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가야 3

금관가야는 지중해의 카르타고인가?

머리말 '한단고기 고구려본기 중 협보가 마한의 산중에 살았는데 그를 따라서 사는 자가 수백여집이나 되었다. 여러해 동안 흉년이 들어 떠돌아 다니다가 장혁을 알게 되었다. 이에 무리를 꾀어 양식을 배에 싣고 패수를 따라 내려와 바다와 포구를 거쳐 조심조심 배를 저어 곧장 구사한국에 이르렀다. 이곳이 가라해 북쪽해안이다. 여기서 머문지 몇 달만에 아소산에 옮겨 살았다. 이 사람이 다파라국 시조이다. 협보는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의 창업공신으로 고주몽외에 실질적인 2인자로 추앙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동부여에서 온 유리가 왕이 되자 미움을 사 무리를 이끌고 남하하여 남마한의 구사한국 혹은 구야한국에 도달했다고 전한다. 구야한국은 남가라로, 전성기에는 대가라로 불렸고, (한반도) 남단뿐만 아니라 바다건너 왜 지..

광개토대왕이 경략한 임나, 가라에 대한 위치비정 II

난 본 블로그에 올린 글 ‘광개토대왕이 경략한 왜의 임나 가라는 지중해에 있었다’라는 글에서 가라는 사르데냐섬, 임나는 시칠리섬에 있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들 지역은 반달족이 450년이후 스페인의 이베리아 반도를 거쳐 북아프리카를 지나 지중해 각 섬들에 도착한 경로이다. 광개토대왕의 임나 가라 정벌은 광개토대왕 생존시의 일이므로 400년경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위의 반달족의 경략은 시기적으로 약 50년이후의 사건이 된다. 그리고 일부 서양 역사가는 훈족의 을딘 (Uldin, 광개토대왕으로 추정됨)이 아나톨리아지역을 유린했지만, 450년이후의 반달족과 같은 경로를 결코 밟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러던 중, 최근에 본 블로그에 올린 글, ‘김수로왕의 금관가야는 코카서스 산맥아래 아르메..

2019.08.03

금관가야가 아르메니아에 있었다는 보다 직접적인 증거들

지난 번 올린 글, ‘김수로의 금관가야는 코카서스산맥아래 아르메니아지역에 있었다’라는 글에서, 신라의 역사와 사산왕조 페르시아, 그리고 비잔틴제국(660년이후)의 역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금관가야가 아르메니아지역에 있었다는 것을 주장했다. 오늘은 김수로의 금관가야가 아르메니아지역에 있었다는 보다 직접적인 증거를 파헤쳐 보고자 한다.    1. 고깔모자 관련 이야기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은 본인의 저서 강역고에서 '가나(駕那)'가 기원이고 이는 가야 사람들이 끝이 뾰족한 고깔을 쓰고 다닌 데서 유래한 말이고 이를 중국인들이 삼국지를 쓸 때 변한(弁韓) 또는 변진(弁辰)으로 쓴 것은 그 모습을 형용한 것이라고 했다. 이후 한치윤 등 많은 실학자들이 이 견해를 따랐고 일본의 아유가이도 가야가 갈(冠弁)에 기원을..

과거의 생각 2019.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