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문명/고조선 30

<펌>요순시대가 태평성대였다는 것은 허구 - 성현식 스카이데일리

요순(堯舜)시대가 태평성대였다는 것은 허구 중국 시조 헌원은 배달족에서 갈라져 나온 부류 훤원의 후손 요가 반란 일으킨 후 당나라 세워 성헌식 필진페이지 +입력 2022-07-19 09:05:40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중국인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황제 헌원의 조상도 본시 배달(倍達)족이었다. 에 “웅씨(熊氏)에서 갈라져 나간 소전(少典)의 별고(別孤)에 공손(公孫)이라는 자가 헌구(軒丘)로 유배되었는데, 그의 후손들이 헌원의 무리였다”고 한다. 즉 헌원은 배달족의 본가지가 아니라 곁가지에서 나온 부류였다.그에 대한 출생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소전의 큰 부인을 여등(女登), 후처를 부보(附寶)라고 했다. 하루는 부보가 교외로 놀러 나갔다가 갑자기 폭우를 만나 큰 번갯불이 오랫동안..

<펌> 우리 민족의 시원지 흑수 백산은 만주일까? -성현식 스카이데일리

우리 민족의 시원지 흑수·백산은 만주일까 성헌식 필진페이지 +입력 2022-11-08 12:20:24 ▲ 성헌식 역사칼럼니스트·고구려역사저널 편집인 한국 사람들은 먹고사는 데 바빠서 그런지 몰라도 “역사가 밥 먹여 주냐?”면서 참역사에 대해 관심이 매우 적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조선왕조가 5백 년간 중화를 위해 자국의 상고사를 축소·왜곡했다는 사실을 모를 뿐만 아니라 또한 분개하지도 않는다. 설사 재야사학의 강연을 듣게 되더라도 마찬가지로 축소·왜곡된 역사를 접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조선·고구리·대진국 등 우리 고대국가들이 민족의 성산(聖山) 백두산과 동만주를 시원지로 하여 만주 일대에서 활동했다는 것이다. 재야사학의 이 논리가 바로 조선왕조와 식민사학에 의해 고착된 반도사관인 것이다. 차이는 ..

<펌>단군조선의 활동무대는 산서성 남부였다 - 성현식 스카이데일리

단군조선의 활동무대는 산서성 남부였다 역사 기록들, 조선 활동지 산서성 남부 가리키고 있어 성헌식 필진페이지 +입력 2019-10-26 08:00:00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훈민정음이 완성된 후 올린 최만리의 상소와 세종대왕의 하교 및 정인지의 서문 등으로 미루어봤을 때 훈민정음의 모체가 되는 옛 전자에 관한 고서적이 당시에 분명히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서로 같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지금은 그 책이 전해지지 않는 걸까. 일단 그런 책은 민간에서 전해지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언어 관련 책이기 때문에 민간보다는 국가기관에서 관리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민족은 줄곧 대륙에서 활동하다가 만주·한반도로 들어온..

<펌>단군세가 - 위키백과

단군세가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단군세가》(檀君世家)는 조선 시대 우의정을 지낸 허목(許穆, 1595년~1682년 4월 27일)이 편찬한 책이다. 단군조선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허목은 단군세가에 단군조선뿐 아니라 부여(夫餘)와 숙신(肅愼)도 함께 기록하여 모두 단군의 후손으로 파악하고 있다.[1] 상고(上古) 구이(九夷) 시대 초기에 환인씨(桓因氏)가 있었는데, 환인이 신시(神市, 환웅을 가리킴)를 낳고 비로소 생민(生民)의 정치를 가르치니, 백성들이 그에게로 돌아갔다. 환웅(桓雄)이 단군(檀君)을 낳으니, 단군이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살면서 호(號)를 단군(檀君)이라 하고, 처음으로 나라의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였는데, 조선이란 동녘 가에 해가 뜬다는 명칭이다. 어떤 사람은, “선(..

<펌>낭야군 - 위키백과

낭야군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낭야군(琅邪郡)[1]은 진나라부터 당나라까지 존속한 중국의 옛 군급 행정 구역이다. 군국제 시행 시에는 낭야국(琅邪國)이 설치됐었다. 중심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낭야, 개양, 임기로 옮겨갔다. 한나라 이전[편집] 춘추 시대 말기에는 월나라의 서울인 낭야가 있었고, 전국 시대에서는 제나라의 영토였다. 제나라는 군을 두지 않고 5도를 설치했는데, 낭야군 일대에는 이 도가 설치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옛 낭야군의 영역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제나라의 화폐가 많이 출토돼 상업의 요지임을 짐작할 수 있다. 진나라가 제나라를 멸하고 옛 제나라 판도에 군을 설치하면서 낭야군의 연혁이 시작된다. 설립 당시 낭야군의 치소는 낭야현(琅邪縣)이었다. 진나라 말기 제나라가 부활하면서 제나..

<펌>요동도지휘사사 - 위키백과

요동도지휘사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요동도지휘사사(遼東都指揮使司), 약칭 요동도사(遼東都司)는 명나라가 요동 지방에 설치한 행정 구역으로 산동성에 예속되어 있었다. 1371년(홍무 4년) 7월, 원나라가 요양등처행중서성(遼陽等處行中書省)으로 설치했던 것을 정요도위(定遼都衛)로 칭했다. 1373년(홍무 6년), 요양부(遼陽府)를 설치했다. 1375년(홍무 8년) 10월, 요동도지휘사사로 이름을 바꾸고 치소를 정요중위(定遼中衛)로 삼으며 2주 25위를 거느리게 했다.[1] 행정구역[편집] 정요위, 개주위 위명/주명 속위명 한자 대략적 위치 비고 동녕위 東寧衛 원나라에서 설치한 동녕부가 요동으로 이동한 것으로 1380년(홍무 13년)에 설치했다. 1386년 7월 재설치했다. 해주위 海州衛 랴오닝성..

<펌> 환국과 12환국

https://7390882.tistory.com/entry/%ED%99%98%EA%B5%AD%E6%A1%93%E5%9C%8B%EA%B3%BC-12%ED%99%98%EA%B5%AD%E6%A1%93%E5%9C%8B 환국(桓國)과 12환국(桓國) 환국(桓國)과 12환국(桓國) 서기전 7197년 갑자년에 시작된 환국(桓國)은 약 2,200년이 흐른 서기전 5000년경에 환인(桓仁)이 9부(部)의 조상들을 이끌고 흑수백산(黑水白山)의 땅에 자리잡아 9족의 형 7390882.tistory.com 환국(桓國)과 12환국(桓國) 서기전 7197년 갑자년에 시작된 환국(桓國)은 약 2,200년이 흐른 서기전 5000년경에 환인(桓仁)이 9부(部)의 조상들을 이끌고 흑수백산(黑水白山)의 땅에 자리잡아 9족의 형제국들을 ..

<펌>환국 - 위키백과

환국 (의사 역사학)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한국의 역사 환국(桓國)은 고조선(또는 환웅의 시대) 이전에 존재했다고 일부 의사역사학에서 주장하는 나라로, 《삼국유사》의 특정 판본과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학계에서는 환국이라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나 일부 유사역사학자들은 《환단고기》에 등장하는 내용을 신뢰하며 환국을 한민족 최초의 국가로 주장하기도 한다.[1] 개요[편집] ‘환국’이라는 단어는 《삼국유사》에 최초로 등장한다. 《삼국유사》의 가장 오래된 판본인 〈정덕임신본〉에는 ‘환인(桓因)’이 ‘환국(桓囯)’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로 인해 《약천집(藥泉集)》[2], 《동사(東史)》[3] 등 조선 중기 이후의 사찬 역사서들 중 일부에 단군신화의 해당 구절이 ‘환국(桓國)’..

<펌> 환단고기

환단고기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이 문서에서 토론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이 필요합니다. 문서를 편집해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먼저 관련 논의를 확인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환단고기》(桓檀古記)는 이유립이 1979년에 출간한 책이다. 고대부터 전해지던 역사서 4권을 계연수가 묶은 것이라 주장하였으나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역사학계에서는 위서(僞書)로 판단하여 고중세사의 사료로 취급하지 않는다.[1][2][3] 목차 1 개요 1.1 구성 1.2 《환단고기》에서 언급된 문헌 2 출간 경위 및 경과 3 주요 내용 3.1 환국 3.1.1 건국 3.1.2 12연방 3.1.3 역대 환인 3.2 신시배달국 3.3 (단군)조선 3.4 북부여 3..

<펌>환국

환국 (의사 역사학)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시대사[보이기] 남북의 역사[보이기] v t e 한국의 역사韓國史 환국(桓國)은 고조선(또는 환웅의 시대) 이전에 존재했다고 일부 의사역사학에서 주장하는 나라로, 《삼국유사》의 특정 판본과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학계에서는 환국이라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나 일부 유사역사학자들은 《환단고기》에 등장하는 내용을 신뢰하며 환국을 한민족 최초의 국가로 주장하기도 한다.[1] 목차 1 개요 2 환국 조작설 3 환단고기의 환국 4 각주 5 같이 보기 6 참고 문헌 및 링크 개요 ‘환국’이라는 단어는 《삼국유사》에 최초로 등장한다. 《삼국유사》의 가장 오래된 판본인 〈정덕임신본〉에는 ‘환인(桓因)’이 ‘환국..

<펌> 단군 - 나무위키

단군 최근 수정 시각: 2020-11-10 07:33:09 분류 한국 신화 고조선의 군주 교주 생년 미상 몰년 미상 창업군주 전설의 영웅 전설 및 신화 속 군주 반신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단군(동음이의어)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고조선 초대 단군 檀君王儉 | 단군왕검 단군 삽화, 정인호, 1908년[1] 칭호 단군왕검(檀君王儉) 별호 신인(神人) / 신(神) / 선인왕검(仙人王儉) 이름 단군(檀君)(?) / 왕검(王儉)(?) 부왕 환웅(桓雄) / 단수신(檀樹神)[제왕운기] 모후 웅녀(熊女) / 환웅(桓雄)의 손녀[제왕운기] 아들 부루(夫婁)[4], 주몽(朱蒙)[5], 송양(松讓)(?)[제왕운기] 생몰 음력 기원전 ???년 ~ [7] 재위 음력 기원전 2,248년 ~ 기원전 1,210년[제왕운기][9] 1..

<펌> 단군조선, 하멸망, 상건국에 깊이 간여

단군세기 : 13세 흘달단군이 하나라,은나라 교체기에 관여 是歲冬에 殷人이 伐夏한대 其主桀이 請援이어늘 帝以邑借末良으로 率九桓之師하사 以助戰事하신대 湯이 遣使謝罪어늘 乃命引還이러시니 桀이 違之하고 遣兵遮路하야 欲敗禁盟일새 遂與殷人으로 伐桀하시고 密遣臣智于亮하사 率畎軍하시고 合與樂浪하사 進據關中邠岐之地而居之하시고 設官制하시니라. [단군세기]. 13세 흘달단군 갑오 16년(B.C1767) 이 해 겨울에 은(殷)나라가 하(夏)나라를 정벌하니 하나라 걸왕(桀王)이 구원을 청하였다. 이에 단제께서 읍차인 말량으로 하여금 구환(九桓)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싸움을 돕게 하니, 은나라 탕왕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였다. 이에 말량에게 어명을 내려 군사를 되돌리게 하였는데, 하나라 걸왕이 조약을 위반하고 병사를 보내 길을 ..

<펌> 구이(九夷)

구이(九夷) 고대사개념용어 중국인이 동이족에게 붙인 9가지의 종족명칭.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분야고대사유형개념용어시대고대-초기국가 정의 중국인이 동이족에게 붙인 9가지의 종족명칭. 키워드 동이(東夷) 이족(夷族)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 국어(國語) 개설 이른바 중국 본토 사방의 이민족인 동이(東夷)·서융(西戎)·남만(南蠻)·북적(北狄) 중에서 동이(東夷)에 있는 많은 이민족 혹은 대표적인 아홉 이족(夷族)을 의미한다. 내용 구이(九夷)는 흔히 아홉가지 이족(夷族)을 의미하는 말로 알려져 있다.『후한서(後漢書)』동이전(東夷傳)에 구이의 구체적 명칭으로 견이(畎夷)·우이(于夷)·방이(方夷)·황이(黃夷)·백이(白夷)·적이(赤夷)·현이(玄夷)·풍이(風夷)·양이(陽夷)가 나온다..

<펌> 신용하의 고조선의 축제 문화

▲ 고구려 ‘각저총’의 씨름 벽화. ■ 신용하의 인류 5대 ‘古朝鮮문명’ - (17) 고조선의 축제문화 건국 10월·단군 서거 3월 기념 대축제서 검술 등 9종목 ‘올림픽’… 씨름은 중국 보급 뒤 일본까지 퍼져 전국서 선발된 가수·무용수들 축하공연에 詩歌 낭송도 즐겨… 세계가 인정한 ‘한류’의 원천 고조선 문명에서는 공동의 축제문화가 매우 발달했다. 해마다 고조선 고대연방제국의 본국인 밝달조선과 후국들에서 대축제가 전국대회 형식으로 열렸다. 일찍이 단재 신채호 선생은 고조선에는 매해 10월, 3월, 5월에 대회가 열리고 이것이 후국 민족들에게 풍속 관습의 통일을 수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조선의 10월 대회는 고조선의 건국일을 10월 3일(통칭 단군 탄신일)로 생각했기 때문이고, 3월의 대회는 초대 단..

<펌> 위만조선과 한나라 전쟁

오태진의 한국사 이야기 / 위만조선과 한(漢)나라와의 전쟁 [김탁의 우리역사의 비밀] 한무제의 번조선 침공과 위만정권의 몰락 고조선의 분열과 열국시대의 개막 ③ 조한전쟁의 경과 무제는 예맥조선을 탈취하고 동북방의 고조선 세력인 위만조선을 수중에 넣기 위하여 교섭을 진행한다. BC 109년에 사신 섭하涉何를 보내어 우거에게 복속하기를 달랬으나 듣지 않았다. 당시 우거는 인근의 군소국을 병합하고 무역으로서 부를 축적하여 수천리에 달하는 영토를 가지고 강성함을 자랑했다. 교섭에 실패한 사신 섭하가 돌아가는 길에 우거는 조선의 부왕 장長을 송별사로 보냈으나 교섭에 실패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섭하는 장을 살해하고 '조선의 장수를 참하였다고 거짓 보고하고 그 공으로 요동 동부도위에 봉해졌다. 격노한 우거는 군사를 ..

<펌> 위만조선-국사편찬위원회

위만(魏滿:衛滿)조선(朝鮮) ≪전한서(前漢書)≫ 「조선전(朝鮮傳)」註 260에 이른다. “처음에 연(燕)나라註 261때부터 일찍이 진번(眞番)·조선(朝鮮) 사고(師古)註 262가 말하기를 “전국(戰國)시대에 [연나라가] 이 땅을 처음으로 침략해 얻었다.”라고 하였다.을 빼앗아 거기에 관리를 두고 장(障)새를 쌓게 하였다. 진(秦)나라註 263가 연(燕)나라를 멸망시키자 요동(遼東)의 변방 지역에 속하게 되었다. 한(漢)나라가 일어났지만 멀어서 지키기 어렵다고 하여,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浿水)註 264에 이르러 경계로 삼아 사고(師古)가 말하기를 “패수는 낙랑군에 있다.”라고 하였다.연나라에 속하게 하였다. 연나라 임금 노관(盧?)註 265이 배반하여 흉노(匈奴)註 266에게로 들어가자,..

<펌> 기자조선-한국민족문화대백과& 조선뉴스프레스

기자조선(箕子朝鮮) 단군조선에 이어 서기전 1100년경에 건국한 초기국가.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 이칭후조선(後朝鮮)분야고대사유형지명시대고대-초기국가-고조선성격국가, 초기국가 정의 단군조선에 이어 서기전 1100년경에 건국한 초기국가. 키워드 기자 초기국가 고조선 기자동래설 후조선 개설 한국 고대사회의 기원을 이루는 고조선의 하나로서, 서기전 195년위만(衛滿)에게 멸망될 때까지 900여 년 간 존속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명칭 유래 기자조선의 명칭이 ‘기자(箕子)’라는 중국 역사상의 인물과 ‘조선(朝鮮)’이라는 한국 역사상의 지역이 복합됨으로써 이 사회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많은 혼란을 가져왔다. 즉, 진(秦)나라 이전의 문헌인 『죽서기년(竹書紀年)』·『상서(尙書)』·『논어(論語)』..

[스크랩] "고조선은 중국 북경을 지배했다"

등록일 : 2014-10-22 오전 10:09:00 | 수정일 : 2016-02-01 09:58 "고조선은 중국 북경을 지배했다" 고대사학자 심백강 인터뷰- 사료로 찾은 고조선의 강역(上) 심백강 원장은 사료를 통해 우리 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다. 그는 후학(後學)들이 우리 고대사를 바르게 연구할 수 있도록 나 보다 연대가 앞선 1차 사료를 수집ㆍ정리하는 일에 평생을 바치고 있다. 그와의 인터뷰를 2회에 걸쳐 나누어 싣는다. 글 | 이상흔 조선pub 기자 아직도 우리 역사 학계에서 풀지 못하고 있는 수수께끼 중 하나가 바로 고조선(古朝鮮)의 강역(疆域) 문제다.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위치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으면서 우리 고대사는 그 뿌리인 출발부터 뒤엉켜 있는 형국이다. 우리 상고사(上古史..

[스크랩] 약수는 대서양(서해)이다.

일성록 > 정조 > 정조 18년 갑인 > 10월 11일(을축)정언(正言) 최시순(崔時淳)이 상소하여 환곡의 폐단을 진달하고 실질적인 혜택을 시행하기를 청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있는 백성은 약수(弱水)처럼 멀 정도만이 아니기에 전전긍긍하며 내 마음 걷잡을 수가 없다. 우선 더욱 유념하겠다. 그대는 사직하지 말고 직임을 살피라.” 하였다. [주-D001] 약수(弱水) : 서해(西海)의 이칭(異稱)으로, 삼신산의 하나인 봉래산(蓬萊山)과는 3만 리나 떨어져 있어 지극히 먼 거리를 표현할 때 봉래약수(蓬萊弱水)라 하며, 서로의 거리가 매우 멀어서 만날 수 없는 경우를 약수지격(弱水之隔)이라 한다. 《書言故事 地理類》 약수는 비록 봉래산에서 30만리떨어져 있다고 했다지만, 한편으로는 봉..

[스크랩] 제 3 부 분열의 시작 - 신농씨와 헌원씨의 전쟁 기록은 사실인가?

* 먼저 이 글을 보시기 전에 제가 전에 쓴 글인 수메르 왕 '주(Zu)'의 타락과 수메르와 앗시리아의 10년 전쟁의 서막 http://blog.naver.com/b4rs/130031844756 글부터 읽는 것도 좋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신화에는 신기할 정도로 서로 일치되는 내용이 많다. 그것은 '최초의 반역'에 관한 신화이다. 중국,한국에는 유망(楡罔) 혹은 '주(柱)'가 폭정을 하여 헌원(軒轅 혹은 환인桓因)이 징벌했다 전하며 수메르에는 주(Zu)가 신들에게 반역하여 니누르타(Ninurta)가 징벌했다 전하며 바빌론에는 킨구(Kingu)가 아내 티아마트(Tiamat)와 함께 반역을 하다가 마르두크(Marduk)가 징벌했다 전하며 히타이트에는 쿠마르비(Kumarbi)가 안(An:하나님을 의미)에게 ..

[스크랩] 4. 고대 지중해의 문자

4. 고대 지중해의 문자 지중해의 동쪽 연안의 여러 지역에서도 문명이 발달하였고, 다양한 지역에서 단어 문자 등 다양한 형태의 문자들이 발견되고 있다. 4.1. 크레타 문자 기원전 2,300년 이전부터 기원전 1,100년 정도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본토에 가까운 지중해 연안의 한 섬인 크레타 섬에서는 빛나는 고대 문명이 일어나고 있었고, 이들은 아직도 부분적으로 해독되지 않은 문자를 사용하였다. 이들은 문자의 여러 단계를 보여 주고 있는데, 초기의 것은 아직 해독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기원전 1,700년 경에 선형의 문자가 나타나는데, 그 중의 하나인 ‘선형문자 A’는 짧은 각문의 형태로 씌어져 있다. 여기에서는 80개 내외의 기호를 사용하여 언어를 표기하고 있으므로, 음절문자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

[스크랩] 박용숙 교수의「지중해 문명과 단군조선」

대륙사관을 지향하는 문명서래설의 박용숙 교수의「지중해 문명과 단군조선」  http://cafe.daum.net/Joseon./C8iQ/129       필자는 그의 학설이 반도사관에서 대륙사관을 열어가는 과도기상에서 그 빗장을 강단사학에서 처음 시도한 것이라 평가하고 그간 반도 내에서 상고사학을 찾고있던 우물안 개구리에 머물고 있는 반도 고고학자들을 계몽할 좋은 사례라 생각한다. 최태영 옹이 지적한 말대로 해방이후 지금까지 한국상고사는 불모지에 불과하다. 왜 그런가.이는 일제주구 관동군 헌병 보조원 출신 김창룡 특무대장을 통해 보도연맹을 비롯 113만의 정적을 좌익으로 몰아 죽인 희대의 살인마이자 자신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해방 후 친일파를 휘하로 끌어들여 반공주의 ..

[스크랩] Re:Re: 한단고기와 규원사화는 동이족의 소중한 정사다.

중국 동북공정 막는데 한단고기와 규원사화가 방책 한단고기와 규원사화는 동이족의 소중한 정사다. 이순복 칼럼니스트 한단고기와 규원사화는 정사이다. 위에 열거한 두 역사서가 하고 많은 수난을 겪어내면서 오늘날 우리들의 눈앞에서 찬연히 반짝이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주인이 되는 후학들이 자신들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자 시시비비를 가리어 위서논쟁을 버리고 있으니 실로 안타깝다. 하지만 정의는 살아서 면면히 흐르는 강물처럼 드러나고야 말 것이다. 그런데 국내적인 위서 논쟁으로 아직은 빛을 보지 못한 두 역사서 인데 위기가 닥쳐왔다. 이 위기란 중화인들의 역사왜곡이다. 이른바 동북공정인데 이것을 깨부술 수 있는 방책은 오로지 한단고기와 규원사화가 정사로 자리매김해야 하는데 안타까운 마음 한이 없다. 눈 가진 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