烏丸族
1. 설명
중국 북부에 존재했던 몽골계 유목 민족으로 흉노에게 멸망한 동호의 후예라고 한다.
오환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동호가 흉노에게 멸망당한 뒤에 살아남은 동호의 일파 중 내몽골의 오환산으로 들어간 무리를 오환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현재 알려진 오환산의 위치는 대흥안령 남부라고 한다. 참고로 동호의 다른 일파 중 대흥안령 북단의 선비산으로 들어간 무리가 바로 선비족이다.
처음에 흉노의 피지배민족으로 지내다가 한무제 때 상곡, 어양, 우북평, 요동의 요새 밖으로 이주해 한나라의 감시를 받아 흉노와 왕래할 수 없었기에 흉노의 압박을 받지 않아 세력이 강해지자 한나라를 여러 차례 공격하기도 했지만 범명우 등에게 번번이 진압되었으며, 신나라 때 흉노에게 세금을 바칠 정도로 약해졌다.
후한 초기에는 흉노를 따라 선비족과 함께 중국을 침입했고 세력이 강해져 흉노를 공격해 사막 남쪽의 땅으로 쫓아낼 정도였으며, 이후로는 한나라에 복속하면서 여러 차례 봉기한 적도 있었지만 모두 진압되었다. 후한 말기에 조조와 원소가 싸울 때 원소를 도와 조조에게 대항했다가 조조의 북방원정[1]으로 패해 조조에게 항복해 한나라의 내지로 옮겨 조조군에 합류하기도 했으며, 이후 위나라가 건국되고 조공을 여러 차례 바치다가 위나라에 복속되기도 했다.
그 후 오호십육국시대, 남북조시대 초중기까지 활동하였으나 세력이 크게 꺾여 한족, 선비족(모용부, 우문부), 실위 등에 흡수되면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몽골의 주요 강 중 하나인 오르혼 강과 어원이 같을 수도 있다. 오환의 원음이 오르혼일 가능성이 있다.
2. 오환족 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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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주(羯朱) - 오환족의 인물. 304년에 왕준이 사마등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사마영을 공격할 때 단무물진과 함께 왕준의 편에 서서 사마영을 공격했으며, 왕준이 업성을 함락할 때 사마영을 추격했지만 조가에 이르러서도 따라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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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연(去延), 돌귀(咄歸) - 오환족의 인물. 132년 겨울에 융말외를 따라 선비족을 공격하는 일에 참가해 공을 세워 한나라로부터 솔중왕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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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那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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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魯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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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신저(能臣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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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돈 - 후한 말, 안으로는 오환족을 규합하고, 밖으로는 원소 일족과 협력해서 조조에 대항하였다가 패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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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無何) - 안문의 솔중왕. 무하윤(無何允)이라고도 한다. 109년 9월에 구륜, 남흉노의 골도후 등과 함께 7천여 기병을 이끌고 오원을 노략질해 고거곡에서 한나라의 군사를 격파했으며, 겨울 11월에 하희, 방웅, 경기 등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방웅, 경기의 공격으로 흉노의 욱건일축왕이 격파되자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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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로(普富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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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등(審登) - 오환의 선우. 사마영이 왕준을 죽이고자 해서 304년에 화연, 왕준과 함께 계성의 남쪽에 있는 청천으로 놀러가 화연과 함께 왕준을 죽이려 모의했는데, 폭우로 인해 병기에 습기가 차서 이루어지지 못하자 심등은 왕준이 하늘의 도움을 얻은 것이라 여겨 화연이 모의한 내용을 왕준에게 발설했다. 왕준과 함께 비밀리 군사를 모은 후에 사마등과 함께 화연을 포위해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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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질거(於秩居) - 오환족의 대인. 117년에 선비족의 연휴가 한나라를 공격하자 한나라의 군사를 도와 이들을 격파해 1천 3백 명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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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말외(戎末廆) - 오환의 인물. 융말마(戎末魔)라고도 한다. 후한의 안제 때 한나라에 귀순했고 132년 겨울에 선비족을 공격해서 약탈해 크게 수확하면서 돌아왔으며, 선비족이 요동속국을 노략질하자 경엽을 다라 무려성에서 그들을 막는 공을 세워 솔중왕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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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복리도(張伏利度) - 오환의 인물. 무리 2천 명을 이끌고 낙평에 성벽을 쌓았고 유연이 초청하려 했지만 오지 않았는데, 석륵이 거짓으로 유연에게 죄를 얻은 것처럼 해서 장복리도에게 도망갔고 장복리도는 기뻐해 석륵과 형제 관계를 맺어 석륵에게 여러 호족을 거느려 침략해 노략질하게 해 향하는 곳마다 아무도 없는 것처럼 되어 여러 호족들이 두려워하고 복종했다. 그런데 무리들의 마음이 석륵에게 귀부해 그 기회를 이용한 석륵에게 체포되었으며, 여러 호족들이 석륵에게서 누가 주인 노릇에 적합한지 질문을 받아 석륵을 주인으로 추천하자 장복리도의 무리들은 모두 전조에 귀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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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지분(歆志賁) - 어양의 오환대인. 흠지분(欽志賁)이라고도 한다. 영평[2] 연간에 종족을 이끌고 봉기했다가 채융의 공격으로 격파되었고 채융이 선비족을 선물로 유인하면서 흠지분은 선비족에게 살해당했으며, 이로 인해 요새 밖에서는 놀라고 두려워해 무위에서부터 현토까지 모두 한나라에 귀부했다. 이 때 선비족에서는 돈황, 주천 동쪽의 읍락 대인들까지 요동으로 가서 한나라로부터 하사품을 받았고 청주, 서주 두 주에서 돈을 지급해 매년 2억 7천만 전을 항상 주었으며, 한동안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되어 한나라에서는 변경에 주둔하던 군사들을 모두 철수시켰다.
[1] 흔히 조조의 북방정벌이 삼국지연의에서의 비중으로 인하여 원소의 잔당 토벌에 부수된 잡어 사냥쯤으로 치부되지만, 사가들은 조조의 오환토벌이 후한 말 북방민족의 세를 크게 꺾어논 업적이라고 평하면서 조조의 오환토벌이 없었더라면 오호십육국시대가 1세기 더 빨리 도래했을 것이다라고 평가하기까지 한다.[2] 58 ~ 75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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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오환 - 위키백과 (0) | 2021.0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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