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오리엔탈 커낵션

2013. 5. 18. 15:34고대 문명/수메르, 바빌로니아,엘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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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세계화 > 한국의 역사 | 2012-01-01 (Sun) 12:08 http://blog.dreamwiz.com/skrc/13780852
솔본  
 '오리엔탈 커넥션'

1851년..어느 가을날..

파리는 피비린내 나는 혁명의 시대를 뒤로하고 빅토르 휴고가 의회에서 연설한
유럽연합에 대한 이야기로 온통 술렁거리고 있었다..

앗시리아 학자인 율리우스는 자신의 서재에서 늙은 집사가 막 들여보낸 신문을 집어들었다.

그의 관심은 정치가 아니라 푸코라는 학자가 자신이 고안한 28Kg짜리 진자로
지구자전을 증명해 보인 뉴스였다..

'결국 푸코가 해냈군....."

율리우스는 신문을 접고는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해를 바라보았다.

파리의 가을햇살은 그가 태어난 함부르크보다  포근하기는 했으나 젊은 앗시리아 학자
의 수심어린 마음을 감싸주기에는 부족하기만 했다.

오후 나른한 햇살이 자신의 책상위에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4천년전의 이름모를 한 메소포타미아
점토판들 위를 비추자 한 줄의 쐐기문자(cuneiform)가 유난히 밝게 빛났다.


(1x: ED IIIb) wr. sa??a-mah "an official, the senior chief administrator of a temple household

'SANGA -MAH'..

율리우스는 나즉히 이 쐐기문자를 발음해 보고서는 이내 한 숨을 내쉬었다.
그는 4천년전의 이 문자를 읽을 수도 있었고 그 뜻을 알 수도 있었으나 이 쐐기문자를 만든
주인공들의 언어는 주변의 엘람어나 아카드어 그리고 후대에 바빌론의 언어들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율리우스는 10년에 걸쳐 연구한 자신의 이론이 어쩌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잠시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해 여름, 율리우스는 이 쐐기판의 문자들이  셈어가 아님을 알았고 그 보다는 오히려
투라니안(Turanian: 투르크계 몽골어)계와 닮아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에게 쏟아질 질문과 비난은 뻔한 것이었다.

도대체 그 점토판의 글자들이 아카드어나 아람어가
아니고 심지어 바빌론어도 아니라면 무어냐는 것.

그러나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그 쐐기글자들이 투라니안계라면 도대체 터어키나
몽골 그 어디냐고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 케케묵은 앗시리아학자들인 것이다.

우두커니 앉아서 점토판을 들여다 보던 율리우스의 어깨위를 넘어 햇살은 일몰전 자신의 마지막
짦고 환한 빛줄기를 그 옆에 아카드어로 새겨진 점토판 그 마지막 문장을 비추었다.

"사르곤, 수메르,아카드의 왕"...

율리우스는 문득 이 점토판의 쐐기문자 체계를 '수메르어'라고 불러야 한다고 느꼈다.
수메르는 앗시리아인이 셈어로  '이방인'이라고 부르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이 점토판들이 셈어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셈어를 사용한 앗시리아인들이 이들을 정복하고
'이방인'이라고 부른 '수메르'(sumer)라는 이름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이 '수메르'인들이 자신들을 무어라 불렀는 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1855년 율리우스는 자신이 '수메르어'(Sumerian Language)라고 명명한 이 쐐기문자들에
대한 연구를 Ecriture Anarienne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반응은 의외였다..

모두가 의아해 하면서도 일단 율리우스가 '수메르어'라고 부른 그 이름을 순수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율리우스로서는 이 수메르어와 친연성이 있는 어군을 하루 속히 찾아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홍콩에서 무역을 하던 제이콥은 친형 율리우스의 논문을 받아보았다.
율리우스의 연구는 모험심 많은 제이콥에게도 늘 흥분되는 일이었다.

제이콥은 종종 이집트에서 왕들의 무덤을 발굴해 한 몫 챙긴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에게도 언젠가는 그러한 행운이 올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한 제이콥에게 친형 율리우스의 '수메르'는 새로운 기회일 수도 있었다.

율리우스의 연구대로라면 인류 최초문명의 여명을 열었던 이 미지의 왕국이 이집트나  
바빌론이 아닌 바로 이 아시아계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제이콥은 형의 주장을 믿었다.
만일 수메르의 언어가 투라니안계라면 그것은 터어키와 몽골 그 어디 쯤이리라..

제이콥은 홍콩에서 수 많은 국제 상인들을 통해 수메르어와 닮은 언어를 발견하려 했다.
하지만 결과는 늘 만족스럽지 못했다..

1856년..

제이콥은 홍콩에서 프랑스 선교사 페론(Feron)과 그를 따라 홍콩으로 온  한 아시아 남자를
만났다.

페론 신부는 제이콥에게 그 남자는 '조선'에서 왔다고 소개했다.
페론 신부를 따라 온 조선 남자는 사제 품의를 받으러 로마로 가는 길이었다.

제이콥은 조선국의 사람을 처음 보았다.

제이콥은 그 조선 남자의 헤어 스타일에 눈이 갔다.

" 당신의 그 머리를 묶은 건 무업니까?"

제이콥의 호기심어린 질문에 그 조선 남자는 '상투'라고 알려주었다.

그 순간 제이콥의 눈이 번쩍 띄었다..

'상투'..

그것은 바로 수메르어로 머리(head)를 뜻하는 'SANG DU'가 아닌가.

(90x: Old Akkadian, Ur III, Old Babylonian, unknown) wr. sa?-du; sa?du "head" Akk. qaqqadu

제이콥은 연달아 몇가지를 물었다..

"혹시 'SANG-GA MAH'라는 말의 뜻을 알겠는가?

조선의 남자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그것이 곧 우리 국왕을 부르는 말이라 대답했다.

제이콥은 한대 맞은 느낌이었다..

제이콥은 이미 중국어를 비롯 그 어떤 나라말로도 집정관을 뜻하는 말에 'SANG-GA'라는
용례를 찾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이콥은 그 조선남자를 통해 조선어의 개략적인 부분을 파악한 후 1867년 한국을 몇차례
탐험하면서 이제까지 자신이 찾아 본 그 어떤 언어보다 조선어와 수메르어가 유사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제이콥은 당장 이러한 사실을 형 율리우스에게 알리고 미국의 부호 E. F. B. Jenkins
로 부터 조선탐험에 대한 투자금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당시 조선은 청과 일본을 제외하고는 외국과 무역을 폐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867년 4월30일..

제이콥은 미국인 젠킨스가 지원한 자금을 바탕으로 100여명의 중국인과 20여명의
동남아인을 태운 배를 타고 조선에 도착했다.

그는 자신을 러시아 군대라고 둘러댔다.

그날 밤..

제이콥은 조선의 덕산군에 도착해 조선 왕가의 묘에 대한 도굴을 시작했으나 조선관군
의 방어로 실패하고 말았다..

그의 완전한 이름은 Ernst Jakob Oppert (December 5, 1832 ? September 19, 1903)
'어니스트 제이콥'오페르트'였으며 '수메르 언어'라는 이름을 명명하고 그 언어가
셈어가 아닌 투르크-몽골계언어임을 밝힌 그의 친형 앗시리아 학자
는 '율리우스 오페르트 Julius Oppert (July 9, 1825 - August 21, 1905)였다.

도굴꾼 제이콥 오페르트는 훗날 독일로 돌아가 "은둔의 나라 조선'을 비롯, 조선에 대한
몇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솔본-

* 송준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11-12 10:00)
출처 : www.coo2.net  우리 역사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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