商(상)나라는 흉노의 후예가 세운 夏(하)나라를 걸왕의 폭정을 보고 단군조선과 그 제후국들과 힘을 합쳐 멸망 시킨 나라이다. 夏(하)나라를 세운 禹(우)임금이 虞(우)나라의 舜(순)임금 시절 治水(치수)하는데 도운 ‘卨(설)’이 봉토를 받아 존재했던 商(상)나라는 처음에 ‘박’이라는 지역에 도읍을 했다. 그리고 이전을 거듭하다가 商(상)나라의 蕩王(탕왕)이 夏(하)나라를 멸망 시키고 다시 ‘박’으로 도읍을 옮겼다. 그 이후 또 여러 번 도읍을 옮긴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고대서 ‘山海經(산해경)’을 번역한 김모씨는 이 ‘박’이란 지역을 이라크의 ‘바그다드’로 추정했다. ‘산해경’에서 夏(하)나라 商(상)나라 周(주)나라는 ‘대황서경’편에 나오는데, 대황서경은 서아시아 지역을 말하는 것을 근거로 삼고 또한 음의 유사함을 근거로 삼은 것 같다.
그럼 과연 이라크의 ‘바그다드’가 상나라의 도읍지 ‘박’이 될 수 있는가?
우선 ‘바그다드’에서 ‘다드’는 도시를 의미한다 한다. 따라서 ‘바그’를 ‘박’으로 추정한 셈이다. 그리 무리한 추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라크는 오래전부터 메소포타미아문영을 가진 지역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메르 문명이 있던 곳이다. 따라서 아주 가능성이 먼 곳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런 이라크에 대해 더 알아 보자.
이라크 (Iraq)란 이름은 수메르의 도시 Uruk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Uruk (Urug)에서 Ur는 수메르어로 city 도시라는 말이라 한다. 성서의 아브라함이 우르지역에서 이스라엘지역으로 왔다고 한 그 우르(Ur)지역이다. 아랍민요에서는 ur가 deeply rooted, well watered, fertile뜻이라 한단다.
唐(당)지역에 살았다고 하여 唐堯(당요)라 불리웠던 ‘唐’(당)이라고 나라이름을 칭한 堯(요)임금은, 자신의 어여쁜 두 딸을 주며 舜(순)임금을 회유했다 한다. 그리고 그 행동을 지켜 보고 나서 舜(순)임금에게 나라를 맡겼다 한다. 이 舜(순)임금이 나라 이름을 ‘虞’(우)라 했다 한다. 그런데 환단고기에 나오는 고대 12환국의 이름 중에 우리가 잘 아는 ‘수밀이국’ (수메르문명)이 있고, 또 ‘虞婁(우루)국’이 있다. 이 우루국이舜(순)임금이 세운 虞(우)나라로 짐작된다. 우루 즉 Uruk(Urug), 즉 이라크이다. 따라서 舜(순)임금이 세운 虞(우)나라, 즉 虞婁(우루)국이 이라크지역이 되는 것이고, 舜(순)으로부터 왕위를 이어 받은 夏(하)나라의 禹(우)가 세운 지역이 이라크가 되는 것이고, 夏(하)나라를 멸한 商(상)나라의 지역이 이라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商(상)나라의 수도 ‘박’이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라는 비정은 이러한 추리로 보면 매우 가능성이 큰 것이다. 지난 글에서 하상주나라가 이집트지역일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여기서는 하상주가 이집트에서 이라크지역에 걸쳐서 있을 수 있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보다 상세한 언급은 조금 아래로 미룬다.
그럼 이라크의 역사를 보며 그 가능성을 더 검토해 보자.
이라크는 BC 6000년부터 역사를 갖는다. 아카디언, 수메리언, 앗시리언, 바빌로니언의 역사이다.
이중 BC 4000 - BC 3100시대를 Uruk시대 즉 수메르시대라 한다 이 시대는 그 지역의 다른 언어와 연관성이 없는 isolated language를 사용했고, 도시국가를 운영했으며, 천문, 수학 등 고도의 학문이 있었으며 쐐기 문자인 수메르 문자로 점토판에 기록하여 놓았다.
BC 3100년 이후로는 수메리언말 아카디언말이 혼용되어 사용되었다 한다. 성서의 대홍수(노아의 방주)를 언급한 ‘길가메시’가 이시기에 나온다.
BC 2335-BC 2124 아카디언 제국의 시대
BC 2035 - BC 1750 : Old 앗시리언 왕국 (하나라 시기와 유사)
BC 1595 힛타이트왕국 (이집트 힉소스왕국 침입과 비슷)
BC 1595 - BC 1000 약600년간 독립된 언어 kassites 말을 쓰는 고대 이란 자그로스산맥 서쪽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중남부 바빌론지역을 지배했다. (상나라 시기와 유사)
이때에 북부지역은 앗시리언이 지배했고, 남부는 sealand dynasty가 있었는데 남부지역은 BC 1380년 상기 중남부 지배세력에 흡수되었다.
BC 1365 - BC 1020 Middle 앗시리아제국
BC 1200 - BC 900 혼돈시대, 앗시리아와 Elam제국이 주도
Elam제국은 독립된 언어 사용, Susa , Anshan지역
BC 935 - BC 605 New 앗시리아 제국
BC 630 - BC 539 New 바빌론 제국
Elam제국의 역사
고엘람시대 (BC 2700 - BC1600년경) 이란고원 소재 여러 왕국들의 연방 국가 체제,
중심지는 고대 도시 안샨
중 엘람시대(BC 1500년경 - BC 1100년경): 전성시대, Susa 가 중심지 (상나라 시기와 유사)
BC 539년 아케메네스제국(BC 550-BC330)에 멸망됨
BC 13세기의 Kassites 왕국 (source : Wikipedia)
BC 2000년경의 중근동 지역 (source : Wikipedia)
BC 1000 년경의 중근동 지역 (source : Wikipedia)
이러한 역사를 보면
1) 하나라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Old 앗시리언제국이 있었고,
2) 상나라와 비슷한 시기에 독립된 언어를 사용하는 이란 자그로스산맥을 넘어온 사람들이 중남부를 지배했으며, 또 엘람제국이 수사를 중심으로 동남부 지배.
3) BC 1046 - BC 771년 기간의 서주와 BC 771-BC 256기간의 동주로 나타나는 주나라 시기에는 역시 여기에서도 앗시리언제국과 Elam제국, 바빌론제국 등의 혼란시기를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이집트에서와 같이 이라크에서도 夏(하)商(상)周(주)나라와 유사한 역사 구분을 나타내고 있다.
다시말하면 이집트에서 이라크에 걸친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지난 번 글에서 이집트 국기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공교롭게도 이라크의 국기색이 이집트의 그것과 거의 똑 같다. (아래 그림 참조)
이라크 국기 (source : Wikipedia)
지난 글에서 夏(하)나라가 검정색을 선호하는 玄夷(현이), 商(상)나라가 백색을 선호하는 白夷(백이), 周(주)나라가 적색을 선호하는 赤夷(적이)라 했다. 그리고 이집트와 이라크의 국기가 흑색, 백색, 적색의 3색기이다.
따라서 이들 모두 단군조선의 제후국이며, 이라크, 이집트지역이 단군조선으로부터 멀지 않은 제후국지역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堯舜(요순)임금시대의 이야기에서도 나타난다.
唐(당)나라의 堯(요)임금이 舜(순)에게 두딸을 시집보내며 舜(순)을 회유하였는데, 당시 舜(순)은 아버지가 재가하여 계모 밑에서 자랐다. 계모의 아들인 이복 동생 이름이 ‘ 象’(상)이라 했는데, 唐堯(당요)에서 벼슬을 하는 舜(순)을 아버지와 이복동생이 못마땅해 하였다. 왜 단제 밑에서 벼슬을 하지 않고 이웃나라인 당요 밑에서 벼슬을 하느냐는 것이다. 즉 단군조선이 요의 당나라에 가까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후 舜(순)은 왕에 올라 단군조선과 제후국들을 공격했다는 말이 있다. (10개의 태양설화)
그리고 舜(순)의 이복동생 이름이 코끼리 象(상)인데, 코끼리가 있는 지역에서 출생한 것으로 짐작된다. (고구려 왕들에서도 이름을 태어난 지역의 이름과 결부한 일이 많았다.) 중앙아시아와 가까운 지역에서 코끼리가 있는 지역은 인도뿐이다. 즉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문명, 인더스문명이 모두 연관된 한 권역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백색을 숭상하는 商(상)나라는 순장의 풍습이 있어 나라가 부침을 거듭했다. 훌륭한 왕이 죽으면 그 신하들 모두가 순장을 당해 나라가 뒤흔들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에서 이웃세력들과 겨루며 벗어났다가 다시 오는 부침의 역사로 인해, 도읍지가 여러 번 옮겨졌을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이란의 자그로스 산맥의 주위지역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구려와 백제의 뿌리인 부여가 백색을 숭상하여 흰옷을 입고 순장의 풍습이 있었으며 형사취수의 풍습이 있었다. 그리고 상(은)나라 역법을 사용했다. 또한 상(은)나라는 갑골에 점을 치는 풍습이 있었는데 부여는 전쟁시 소를 죽여 굽이 벌어지는 것으로 길흉을 점치는 우제점법으로 상나라의 갑골점법과 동일한 성격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부여는 상(은)나라를 계승한 국가로 보이며, 그 위치가 상(은)나라와 멀지 않은 곳에서 건국하고 융성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부여는 국력이 강하여 선대로부터 한번도 패하지 않았다고 하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부여의 역사는 BC 2세기보다도 더 많이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부여를 이은 고구려와 백제가 그 건국일화를 보건데, 또한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건국하고 융성하였을 것으로 판단되는 바, 중앙아시아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가 있었을 것이라는 그동안의 나의 추론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참 고로 우루국의 위치에 대해 나와 생각이 같은 지도를 싣는다. 다른 10개 한국 위치에 대해 동의하는 것은 아니고 후일 검토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 지도에서 물론 조선의 위치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 수메르의 언어 유사성을 참조 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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