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적으로 지대가 낮고 평탄하며, 건조하지만 강이 흐르는 곳은 토지가 비옥했다. 또한
비단길의 주요 통로 중 하나였으므로
고대부터 농업과 상업이 발달했다.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에
페르시아에 편입되어 옆동네
박트리아와 함께 번영을 누렸으며, 이 때는 소그디아나라고 불렸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후에는 헬레니즘 세계의 최전방이 되어
셀레우코스 왕조와
박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헬레니즘 왕조들은 거의 단명하였지만 트란스옥시아나는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 스텝 유목민들,
중국 등의 문화가 한데 모이는 교역과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후
이란 지역에 들어선 강대국
파르티아와
사산 왕조의 지배를 받으며 번영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트란스옥시아나는 북방 스텝 지대, 혹은 더 멀리 동쪽의
몽골 쪽에서 쳐들어오는 유목민들이 서방으로 진출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교두보이기도 했으므로 그 침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5~6세기 사산 왕조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에프탈[1]이나
돌궐 제국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일대를
페르시아어로 투르키스탄이라고 부르게 된 것도 그만큼
튀르크인들의 영향력이 점점 강해졌기 때문이다.
이후 트란스옥시아나는 8세기 들어 사산 왕조를 멸망시킨
아랍 무슬림 세력에 의해 정복되었고,
압바스 왕조가
탈라스 전투에서
당을 격파하면서 확고한
이슬람 세계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이 지역의 주도세력은
칼리파들이 통치하는 아랍 중심지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문(文)에서는 페르시아인들이, 무(武)에서는 튀르크인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독자적인 발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사만 왕조,
카라한 왕조,
가즈니 왕조,
셀주크 왕조 등 여러 강국들이 출현하였는데, 특히 셀주크 왕조는 이란은 물론
이라크,
아나톨리아,
힌두스탄까지 세력을 뻗치는 강대국이 되었다.
셀주크 왕조가 약화된 후에는 동쪽의
서하와 서쪽의
호라즘 왕조에 의해 번갈아 지배를 받았으나, 이슬람의 재앙
칭기즈 칸이 도래한 이후에는 모두 사이좋게
몽골 제국의 말발굽 아래 깡그리 짓밟혀 버렸다. 몽골 제국이 엄청나게 거대해지면서 비단길의 주요 통로라는 입지는 더욱 강화되었지만, 워낙 심하게 파괴되었던 데다
일한국이나
원나라의 지배층과 달리 이곳을 차지한
차가타이 한국의 지배층은 옛날 습성을 버리지 못하여 과거와 같은 번영은 누리지 못했다.
그러나 14세기 정복자
티무르에 의해
티무르 제국의 중심지가 되고 트란스옥시아나는 마지막 황금기를 맞는다. 흔히 티무르는 무자비한 파괴자였으며 그가 죽은 뒤 티무르 제국은 금세 막장이 되었다고들 생각하지만, 사실 티무르는 적들에게 무자비했을지언정 자기 중심지 발전에는 관심이 많았고, 그 후계자들도 나름 안정기를 유지했다. 그러나 역시 오래 가지는 못하고 16세기경 우즈베크족의 침공에 의해 무너졌다.
하지만 트란스옥시아나를 차지한 우즈베크 족의 지배 역시 순탄치 않았는데, 북쪽에서는 몽골이나
카자흐 같은 유목민들의 위협이 끊이지 않았던 데다 그걸로 모자라 자기들끼리도 박터지게 싸워대서 도저히 안정이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쪽의 이란과도 관계가 거의 단절되어 이슬람 세계에서 고립되었고, 지리상의 발견과
대항해시대의 시작으로 비단길의 영향력이 결정적으로 쇠퇴한 것 역시 중요한 요인이다. 이후 19세기 들어
러시아 제국이 중앙아시아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러시아 영향권으로 편입되었고, 이후
소련 내의
사회주의 공화국이었다가 소련 붕괴 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으로 독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