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국학 - 나무위키

2019. 8. 24. 02:19신라-중,하

1신라의 교육기관
1.1. 역사1.2. 교육과정1.3. 평가
2에도 시대 일본의 교육사상/체계3. 근세・근대 일본의 학문 유파


國學

1. 신라의 교육기관

통일신라 신문왕 대에 설립한, 현대의 대학에 해당하는 고등교육기관. 발해에도 주자감이 있다. 이후 고려조선시대의 태학, 국자감, 성균관의 원조 격. 지금의 경주 향교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1. 역사

신라에서는 화랑제도라는 전통적인 교육, 인재 천거 방식이 있었고 초기 유교적 교육 또한 화랑제도 하에서 이루어졌다. 반면 고구려나 백제, 중국과 같은 체계적인 중국식 유교적 고등 교육 기관의 설치는 상당히 늦었는데, 김춘추는 648년 처음으로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나당동맹 체결건 이외에 당나라의 국학(국자감)을 견학했고 이 때 국학 설립의 필요성을 인식했으나 당시는 삼국통일전쟁의 절정기로 제도개혁의 여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34년이라 미뤄져 결국 통일전쟁이 완전히 끝난 682년이 되어서야 신문왕이 국학(國學)을 세워서 오경과 그 중에서도 특히 논어와 효경을 중심으로 하는 유교 교육을 실시했다. 

신라의 특성인 전통적인 화랑제 역시 계속 존속했기 때문에, 두 과정을 병행하는 경우를 대비해서 신라 국학은 입학 나이제한이 굉장히 널널했다. 참고대상이었던 당나라 국학의 입학연령이 14~19세로 제한됐던 반면 신라 국학의 입학연령은 30세까지였다. 입학으로부터 9년제 과정 교육기관이란 점과, 현대에 비해 빨랐던 당시의 활동연령과 평균수명까지 감안하면 굉장히 늦은 나이의 입학까지 받아들였다.

경덕왕 때 태학감, 대학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혜공왕 때 국학으로 돌아왔다.

1.2. 교육과정

국학에서는 유학 경전 교육 위주에, 그 외 행정 실무에 쓰이는 수학 등의 실용적 학문도 같이 가르쳤다.

대사 이하의 관등 소지자부터 아예 관등이 없는 15세에서 30세까지의 젊은이가 입학했는데, 학업기간은 9년이 원칙이었다. 현대 한국의 대학과 달리 일단 입학했어도 별로 자질이 없어서 인재가 될 가능성이 없으면 퇴학시켰다.

3개 과로 나눠서 교육을 했는데 예기주역논어효경을 가르치는 과, 춘추좌씨전모시논어효경을 가르치는 과, 상서논어효경문선을 가르치는 과가 있었다. 보다시피 오경 중에서도 특히 논어와 효경은 모든 과에 공통되는 과목이었다. 이 밖에도 산학박사(수학), 천문박사(천문학), 의학박사(의학), 율령박사(법학)가 있어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실무 기술을 가르치는 일을 맡았는데 예를 들어 수학 교재로는 철경천산구장산술 등을 사용했는데 구장산술은 원주율 계산법이 이미 담겨있는 책이었다. 산학을 제외한 천문 이하는 저마다 교습하는 담당기관이 따로 있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여기에는 박사와 조교가 소속되어 학생들을 가르쳤고, 학생들은 9년 기한으로 교습을 받은 뒤 그 사이의 학업 성취도에 따라 차등적으로 관직에 등용되었다. 또한 과거 제도의 초보적 단계인 독서삼품과를 실시하기도 했다.

1.3. 평가

위의 교육과정을 보면 알 수 있듯 국학의 목적은 골품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람들 중에서 유교적 교양에 충실하고 행정 실무에 강한 관료를 양성하는 데 목적이 있었는데, 이는 오래전부터 계속된 골품제에 의거한 인사 관행과 충돌하는 것이었다. 신문왕이 이룩한 중대의 강한 전제왕권이 하대로 들어서며 약화되자 그와 동시에 국학의 기능도 관료제와 함께 무력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학과 독서삼품과의 실시는 이후 고려, 조선까지 천 년 넘게 계속된, 실무능력을 갖춘 인재 등용이라는 점에 역사적 의의가 있다.

2. 에도 시대 일본의 교육사상/체계

에도 시대 중기부터 고개를 들기 시작한, 일종의 교육체계. 네덜란드와의 교류 등으로 빚어진 난학의 대척점에 있는 시스템으로, 서양은 물론, 중국-조선으로 이어지는 대륙세력의 영향까지 배제한, 일본의 오리지널을 학습하자는 국뽕 국수주의적 시스템에 가깝다. 이는 메이지 유신 전후 일본의 국가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축에 속하기도 하다. 

3. 근세・근대 일본의 학문 유파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히라타 아쓰타네(平田篤胤) 등에 의해 집대성된 학문 유파. 구체적으로는 일본의 '국체(國體)'를 탐구하여 나라를 바로잡는다는 정신에서, 일본의 고전 문학이나 일본어일본사 등을 '국문학' '국사학' 등의 입장에서 연구했다. 단, 당시에는 주로 스스로의 학문을 '고학(古學)'이라 불렀고, 국학이라는 명칭이 일반화된 것은 메이지기 이후이다. 메이지 유신의 존황양이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현재 도쿄의 코쿠가쿠인 대학(國學院大學)의 '코쿠가쿠'가 바로 이 국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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