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파사이사금 - 삼국사기

2020. 7. 30. 10:43신라 상(BC69-356)

파사 이사금

재원

파사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유리왕의 둘째 아들이다.[혹은 유리의 아우 나로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왕비는 김씨 사성부인이다. 그녀는 갈문왕 허루의 딸이다. 애초에 탈해가 죽었을 때 신하들은 유리의 태자 일성을 왕위에 오르게 하려 하였다. 그러나 누군가가 말하기를 “일성이 적자이기는 하지만 사람됨과 총명함이 파사만 못하다”고 하여, 마침내 파사를 왕위에 오르도록 한 것이다. 파사는 절도있고 검소하며 물자를 아끼는 생활을 하였고, 또한 백성을 사랑하였으므로 백성들이 그를 칭송하였다.

 

2년 봄 2월, 왕이 직접 시조묘에 제사를 지냈다.

 

3월, 왕이 주와 군을 순행하여 창고를 풀어 백성들을 구제하고, 옥에 갇힌 죄수를 조사하여 두 가지의 사형죄에 해당하는 자가 아니면 모두 석방토록 하였다.

 

3년 봄 정월,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지금 나라 창고가 비었고 병기는 무디어 졌다. 혹시라도 홍수나 가뭄 또는 변방에 변고가 생기면 이에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마땅히 유사로 하여금 농사와 양잠을 장려하고 군사를 훈련시켜 의외의 상황에 대비토록 하라.”

 

5년 봄 2월, 명선을 이찬으로, 윤량을 파진찬으로 임명하였다.

 

여름 5월, 고타 군주가 푸른 색의 소를 바쳤다. 남신현에서는 하나의 보리 이삭에 여러 가닥이 생겨나 크게 풍년이 들었기 때문에 여행하는 사람들이 식량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6년 봄 정월, 백제가 변경을 침범하였다.

 

2월, 길원을 아찬으로 임명하였다.

 

여름 4월, 객성이 자미 성좌에 들어 갔다.

 

8년 가을 7월, 왕이

 

“내가 부덕함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맡았다. 우리 나라는 서쪽으로 백제를 이웃하고 남쪽으로 가야에 접하였으나, 나의 덕망은 백성들을 편안히 살게 하지 못하고, 위엄은 외국을 두렵도록 하기에 부족하였으니, 마땅히 성과 보루를 수리하여 외적의 침략에 대비하라”

 

는 명령을 내렸다.

 

이 달에 두 곳, 즉 가소성과 마두성을 쌓았다.

 

11년 가을 7월, 열 명의 사신을 파견하여 주주와 군주들을 조사하고, 공무에 성실하지 않거나 농토를 많이 황폐하게 한 자가 있으면 직급을 내리거나 사직토록 하였다.

 

14년 봄 정월, 윤량을 이찬으로 임명하고, 계기를 파진찬으로 임명하였다.

 

2월, 왕이 고소부리군에 행차하여 나이 많은 백성을 직접 위문하고 곡식을 주었다.

겨울 10월, 서울에 지진이 있었다.

 

 

15년 봄 2월, 가야의 적군이 마두성을 포위하자 아찬 길원을 보냈다. 길원은 기병 1천을 거느리고 그들을 격퇴하였다.

가을 8월, 알천에서 군대를 사열하였다.

 

 

17년 가을 7월, 남쪽에서 폭풍이 불어와 금성 남쪽에 있는 큰 나무가 뽑혔다.

9월, 가야 사람들이 남쪽 변경을 습격하였다. 성주 장세를 보내 방어토록 하였으나, 그가 전사하였다. 왕이 노하여 정예병 5천을 거느리고 출전하여 그들을 물리쳤다. 노획한 물자가 매우 많았다.

 

 

18년 봄 정월, 군사를 동원하여 가야를 치려 하였으나, 그 임금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였으므로 이를 중지하였다.

 

 

19년 여름 4월, 서울에 가뭄이 들었다.

 

 

21년 가을 7월, 우박이 내려 날던 새가 죽었다.

겨울 10월, 서울에 지진이 있었다. 민가가 쓰러지고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22년 봄 2월, 성을 쌓고, 이를 월성이라 이름지었다.

가을 7월, 왕이 월성으로 옮겨 거주하였다.

 

 

23년 가을 8월, 음집벌국과 실직곡국이 국경 문제로 다투다가 왕에게 와서 결정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왕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여기고, 금관국 수로왕이 나이가 많고 아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를 불러와 물었다. 수로가 의견을 내어, 다투던 땅을 음집벌국에 주도록 하였다. 이에 왕은 6부로 하여금 수로왕을 위하여 연회를 베풀도록 하였다.

 

5부는 모두 이찬으로 우두머리를 삼았는데, 오직 한기부만은 직위가 낮은 자를 우두머리로 삼았다. 수로가 노하여 그의 종 탐하리를 시켜 한기부의 우두머리 보제를 죽이고 돌아갔다. 보제의 종이 도망하여 음집벌주 타추간의 집에 의탁하였다. 왕이 사람을 보내 그 종을 찾았으나 타추가 돌려 보내지 않았다. 왕이 노하여 군사를 동원하여 음집벌국을 공격하니, 그 우두머리가 자기의 무리와 함께 스스로 항복하였다.

 

실직․압독 두 나라 왕이 항복해왔다.

 

겨울 10월, 복숭아와 오얏나무 꽃이 피었다.

 

25년 봄 정월, 많은 별들이 비오듯 떨어졌으나, 땅에 이르지는 않았다.

 

가을 7월, 실직이 배반하자 군사를 보내 토벌 평정하고, 남은 무리를 남쪽 변경으로 옮겨 살도록 하였다.

 

26년 봄 정월, 백제가 사신을 보내 화해를 요청하였다.

 

2월, 서울에 석 자 깊이의 눈이 내렸다.

 

27년 봄 정월, 왕이 압독에 행차하여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3월에 압독으로부터 돌아왔다.

 

가을 8월, 마두성주에게 명령하여 가야를 정벌토록 하였다.

 

29년 여름 5월에 홍수가 났다. 백성들이 굶주리므로 10도에 사신을 보내 창고를 열어 구제토록 하였다. 군사를 보내 비지국․다벌국․초팔국을 정벌하여 합병하였다.

 

30년 가을 7월에 메뚜기 떼가 곡식을 해쳤다. 왕이 산천에 두루 제사를 지내고 기도를 올렸다. 메뚜기 떼가 없어지고 풍년이 들었다.

 

32년 여름 4월에 성문이 저절로 무너졌다.

 

5월부터 가을 7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았다.

 

33년 겨울 10월에 왕이 별세하였다. 사릉원에 장사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