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漢)나라와 조선의 경계인 패수는 독일의 라인강인가?

2021. 3. 30. 01:17한민족 역사/공통

제목 : 한(漢)나라와 조선의 경계가 되는 패수(浿水)는 독일의 라인강(Rhine River)인가? 

 

우리는 패수에 대해 여러 기록이 있음을 안다. 

 

그 중에서도 한나라와 조선 (위만조선)과 관련된 기록을 살펴 보면  아래와 같다. 

 

 

 

1) 설문해자 권11상: 동쪽으로 흐른다는 기록

浿水出樂浪鏤方東入海: 패수는 낙랑군 누방현을 나와 동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2) 한서 권28하: 서쪽으로 흐른다는 기록

浿水【水西至增地入海】: 패수현 (패수는 서쪽으로 증지현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우선 패수는 설문해자에서는 동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하고 한서에서는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 간다 했다. 하나의 강이 동으로 서로 바다로 가는 상황은 불가능하다. 강은 높은 산에서 연원하여 바다로 들어 가는 형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의 언급은 각각 다른 강을 말하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같이 패수로 언급하느냐를 고려해 볼 때 이 두 강이 매우 인접하고 있어서 착각을 줄 수 있다고 할 수 있고, 또한 그 강의 원천인 산이 같은 산일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위의 기록을 필자는 해석하고자 한다. 의도적인 왜곡적인 오기는 아닐 것이라 판단한다. 따라서 다른 기록을 보면 우리는 패수에 대한 추정을 더 신중히 해야 한다고 본다. 한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하나의 패수가 동(東)으로 바다로 들어 가고 또 다른 패수는 서(西)로 바다로 들어 가는 지형이 있는 곳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점인데, 패수를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3) "삼국지 권30 오환선비동이전 가운데 인용된 위략을 보면

 

燕乃遣将秦開攻其西方取地二千餘里至滿潘汗為界....及漢以盧綰為燕王朝鮮與燕界於溴水..
 

연 (燕)나라가 장수 진개를 보내 조선을 공격하여 서방 2천여리를 취하고 만번한(滿潘汗)을 경계로 하였다. 한(漢)나라에 이르러 노관을 속국 연나라의 왕으로 삼고 조선과 연나라의 경계를 패수(溴水: 선학들이 패수의 오자라고 했음)로 삼았다.

즉, 이는 처음에 만번한을 경계로 하였고, 나중에 한나라에 이르러 패수를 경계로 하였다는 말입니다."

 

 

 

또한 패수는 조선과 연나라의 경계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의 조선은 위만조선을 일컫는다. 또한 이후 한(漢)나라 시기에도 패수를 조선과 경계로 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패수의 위치는 한(漢)나라와 연(燕)나라의 위치와도 관련이 된다는 것이다. 연나라와 관련 이야기는 노관과 위만의 망명이야기와도 관련이 있다. 즉 한나라의 속국이 된 연나라의 왕이었던 노관이 흉노로 망명하였다 한다. 즉 흉노가 한나라와 연나라 가까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위만이 연나라에서 망명하여 동으로 패수를 건너 왕험성에 수도를 정했다는 것은 패수가 남북으로 흐르는 형상을 가졌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패수의 우측에 조선의 왕검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고려하면 한반도의 패수 주장은 이미 위의 1),2),3) 조건에서 탈락하게 된다. 맨 아래 한반도의 패수 주장 지도를 보면, 남북으로 흐르는 형상의 강이 없다. 설사 있다 하여도 바로 서쪽에 연나라와 한나라를 추정하는데, 어림도 없다는 것이다. 한반도 서쪽에는 바다가 있다. 연나라와 한나라가 서해 바다에 있다는 주장이나 마찬가지 주장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부끄러워 해야 할 것이다. 

 

 

4) "사기 조선열전

 

始全燕時嘗略屬真番朝鮮為置吏築鄣塞秦滅燕屬遼東外徼漢興為其逺難守復修遼東故塞至浿水為界

 

연(燕)나라는 전성기 때에 진번조선(真番朝鮮)을 공격하여 자기 땅으로 삼아 장새를 쌓고 관리를 두었다. 진(秦)이 연(燕)을 멸하여 요동 밖 徼로 삼았다. 한(漢)이 일어나자 그곳이 너무 멀어 지키기가 어려워 요동의 옛 성을 수리하여 패수를 경계로 삼았다.

이는 위략에 나온 기록과 같은 사건을 기록한 것인데, 진(秦)나라는 연(燕)나라가 뺏은 만번한(滿潘汗)을 요동 밖 徼로 삼고, 한(漢)나라는 이곳이 너무 멀어서 영토를 뒤로 물려 패수로 삼았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만번한(滿潘汗) 즉 위만 조선의 수도인 번한성 보다 패수가 서쪽에 있다는 말입니다."

 

 

사기 조선열전을 좀더 봅시다. 

 

滿亡命聚黨千餘人 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渡浿水 居秦故空地上下鄣......都王險 

 

위만이 그 무리 천여명과 망명을 하였는데 상투를 틀고 오랑캐 복장을 하고 동쪽으로 달아나 요새를 빠져나와 패수를 건너 진(秦)의 옛 빈터 상하장(上下鄣)에 거하였다....왕험성에 도읍하였다.

 

 (자료 : 인용출처 : 패수는 동쪽으로 흘렀는가 서쪽으로 흘렀는가?  역사자료,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blog.naver.com/lainfos), 카테고리, 패수, 펌글 자료 참조)

 

 

상기 주장을 고려하면 패수는 또한 진(秦)나라와도 관련이 된다. 연나라가 진번조선을 공격하여 자기땅으로 삼았는데, 진(秦)나라가 연나라를 멸하고 요동밖 세력으로 삼았다. 즉 요동지역과도 연관이 된다. 그리고 위만은 패수를 건너 진(秦)의 옛 빈터 상하장에 왕험성에 도읍하였다 했다. 

 

즉 패수는 요동지역보다 더 동쪽으로 지나 패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왕험성은 패수의 동쪽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진나라가 이 지역을 과거 점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점을 고려하면 아래 한반도와 중국의 패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말해 준다. 

 

맨 아래 지도에서 보면, 한반도 주장 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요수인 압록수는 그들이 주장하는 패수 대동강의 북쪽에 있다. 이런 역사적 기록을 무시하거나 몰랐던 사학자들이란 말이다. 진정 부끄러워 해야 한다. 

 

또한 중국의 동북부 지역에 패수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틀렸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들이 패수라 주장하는 대릉하나 난하 모두 그들이 주장하는 요수인 요하의 좌측에 있다. 상기 역사적 기록에는 분명히 요동에서 더 동쪽으로 가서 패수가 있다고 했다. 엄연히 반대의 위치이다. 이들도 더 공부하여 주장해야 할 것이다. 

 

패수의 동쪽에 있는 왕험성은 진나라의 고공지 상하장이라 했다. 상하장의 장자 한문 뜻풀이를 보니 보루 즉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튼튼히 쌓은 구축물이라는 뜻이 있다. (아래 자료 참조). 즉 왕험성은 이미 다른 글에서 확인 했듯이 강의 험함을 이용한 지역 (험독현)에 있었는데, 또한 진나라때부터 그 구축물이 요새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즉 고조선시대 이미 성곽도시로 존재했다는 말이다. 따라서 아래 6)의 자료에서 말하는 평양(平壤)은 BC 2311년부터 선인 왕검이 살던 곳이라는 기록과 일맥 상통한다. 

 

鄣고을 이름 장/막을 장
1. 고을의 이름 2. 장애() 3. 보루(: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튼튼하게 쌓은 구축물) 4. 둑(높은 길을 내려고 쌓은 언덕) 5. 병풍() 6. 밭두둑길 7. 지경(: 땅의 가장자리, 경계) 8. 칸막이(둘러싸인 공간의 사이를 가로질러 막음) 9. 막다 10. 가로막히다 (자료 : 네이버 사전)

 

 

5) 요사(遼史) 권39 지리지

遼 河 出 東 北 山 口為 范 河 , 西 南 流 為 大 口 , 入 于 海 ; 東 梁 河 自 東 山 西 流 ,與 渾 河 合 為 小 口 , 會 遼 河 入 于 海 , 又 名 太 子 河 , 亦 曰 大 梁 水 ; 渾 河 在 東 梁 、 范 河 之 間 ; 沙 河 出 東 南 山 西 北 流 ,徑 蓋 州 入 于 海 。

산의 동북에서 나오는 요하는 범하라 하고. 서남으로 흐르는 줄기를 대구라 하여 바다에 이른다. 동량하는 산의 동에서 서로 흘러 혼하와 합쳐져 소구를 이르고 요하와 만나 바다에 이른다. 태자하라 하기도 하고 대량수라고도 한다. 혼하는 동량하와 범수의 사이에 있다. 사하는 산의 동남방에서 나와 서북으로 흐른다. 개주를 들러 바다로 들어간다.

 


有 蒲 河 ; 清 河 ; 浿 水 , 亦 曰 泥 河 , 又 曰 蓒 芋 濼 , 水 多 蓒 芋 之 草 ; 駐 蹕 山 , 唐 太 宗 征 高 麗 ,駐 蹕其 巔 數 日 , 勒 石 紀 功 焉 , 俗 稱 手 山 , 山 巔 平 石 之 上 有 掌指 之 狀 , 泉 出 其 中 , 取 之 不 竭 。 又 有 明 王 山 、 白 石 山 -- 亦 曰 橫 山 。 天 顯 十 三 年 , 改 南 京 為 東 京 , 府 曰 遼 陽 。

포하, 청하, 패수가 있는데 패수를 니하라고 한다. 한우락이라고도 한다. 물에 한우라는 풀이 많이 있어 불려진 이름이다. 주필산은 당태종이 고려를 칠 때 그곳에서 수일동안 머물며 필(고관이 통행할 때 일반인의 통행금지)하고 그 기념비를 세웠는데 수산이라고도 한다. 산꼭대기의 평석의 모양이 손가락을 닮았다. 그 산중에 샘이 나오는데 먹어도 마르지 않았다. (중략) 천조 13년 남경을 동경이라 고치고 요양부라 하였다.

 

(자료 : 인용출처 : 성훈, 패수는 하남성 황하 부근에 있었다.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blog.naver.com/lainfos), 카테고리, 패수, 펌글 자료 참조)

 

 

상기 자료에서는 요하가 우선 동북의 산에서 출원한다는 기록이다. 따라서 맨아래 지도에서 보는 중국의 요하는 서북쪽에서 강이 기원한다. 따라서 이 요사의 기록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중국에는 3대 큰 강이 있는데, 황허, 장강, 그리고 요수인 압록수라 했다. 중공 사가들은 이를 현재의 황허강, 양자강, 란찬강이라 주장한단다. 란찬강은 메콩강의 상류를 말한다. 그러면 요동이 어느 지역이 되느냐? 동남아시아나 중공 남부지역이 된다. 요서에 있는 한나라 등은 버어마지역 등이 된다. 과연 그들이 주장하는 현재의 주장과도 일치하지 않는 엉터리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낙양의 동북쪽 3.6천리에 요동이 있다고 아래 후한서 군국지 8)번 자료에서 말한다. 그러면 낙양은 버마 남쪽이나 인도양 바다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낙양 즉 뤄양은 란찬강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얼마나 중공사가들이 엉터리 주장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란찬강은 티베트에서 발원하는데, 강이 서북쪽에서 시작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남으로 흐른다. 역사적 기록에서 요수는 동남쪽 산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서남으로 흐르다가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 간다고 했다. 즉 역사적 기록에 있는 요수의 강줄기와도 맞지 않는다. 

 

이러한 강의 흐름은 중공 동북부의 요하로 주장하는 요하도 그 흐름이 맞지 않는다. (맨 아래 그림 참조) 중공 동북쪽의 요하는 서북쪽에서 흘러 동남쪽으로 흐르다가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 간다. 

 

요사의 두번째 자료에서는 패수를 니하(泥 河)라고 한다고 했다. 한우란 풀이 많아서 그렇다 했다. 그러나 니(泥)의 뜻은 진흙이다. 즉 진흙이 많은 강이라는 의미이다. 진흙은 강이 범람할 때 생기는 흙이다. 따라서 매우 자주 범람하는 강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라인강과 다뉴브강은 유럽에서 가장 범람하는 강으로 꼽힌다. 

 

 

 

 

 

6) 단제 평양(平壤)과 요 평양(平陽)

BC2311(제위 23:庚辰年) 도읍(都邑)을 왕검성(王儉城: 則江之平壤)으로 옮기고 국호(國號)를 조선(朝鮮)으로 정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高句麗)

AD.,247년 기록에서 “「평양(平壤)」이란 선인(仙人) 왕검(王儉)이 살던 곳이다. 혹은 왕(王)의 도읍 터 왕검(王儉)이라”고한다.

《고려사(高麗史)》에서,

AD.960년, 서경(西京:平壤府)을 서도(西都)라 했다가

AD.997년에는 호경(鎬京)으로 고쳤다.

AD.1290년 다시 서경유수(西京留守)라 했으며,

AD.1369년에는 만호부(萬戶府)를 설치했다가 후에 평양부(平壤府)라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평양(平壤)은 장안(長安)이며 호경(鎬京)이며 낙랑(樂浪)이다. 

 

 

 

요 방훈(放勳은,


B.C., 2,377(甲申年)에 태어났으며,

21세 때인 B.C., 2,357(甲辰年)에 제지(帝摯)가 붕어하여 제위(帝位)에 올라 도읍지(都邑地)를

산서 임분(臨分:기冀)의 평양(平陽)에 두고, 제요(帝堯)라고 하였고

제요(帝堯=“요”임금: B.C., 2,356~2,260) 도읍지(都邑地) 평양(平陽)=산서(山西) 임분(臨分)이다.

 

(자료 : 인용출처 :  단제 평양(平壤)과 요 평양(平陽)은 같은가? by 돈마니,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blog.naver.com/lainfos), 카테고리, 패수, 펌글 자료 참조) 

 

 

 

이 자료에서는 평양(平壤)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준다. 즉 평양(平壤)은 호경(鎬京)이었으며, 장안이었으며, 낙랑이었다는 기록이다. 또한 고려의 서경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본 자료에서 평양은 왕검성이었으며, 패수의 동쪽에 있었다고 했다. 즉 패수의 동쪽에 주(周)나라의 수도 호경(鎬京)이 있었다는 것이며, 장안이었다는 것이며, 고려의 서경이 있었다는 것이다. 주나라의 수도 호경(鎬京)에 대해 아래에서 좀 더 자료를 살펴보자. 

 

 

 

"기원전 771년 견융이 주나라를 침략하여 유왕을 살해하여, 제후들이 그의 뒤를 이어 평왕을 옹립했고, 곧 이어 호경(鎬京)에서 부도(副都) 낙읍(洛邑)으로 수도를 옮겼다. 이를 기준으로 이전을 서주(기원전 1046년~기원전 771년), 이후를 동주(기원전 770년 ~ 기원전 256년)로 구분한다.....

 

주나라의 힘이 갈수록 약해지는 와중에, 주나라의 유왕은 미녀 포사에게 빠져 점차 국정을 소홀히 하기 시작하였다. 유왕은 포사를 정식 왕비로 삼기 위하여 인근 제후의 딸을 내쳤고, 이에 앙심을 품은 제후들이 견융과 연합하여 주나라를 함께 공격, 기원전 771년에 수도인 호경을 함락하여 약탈하였다. 구전에 의하면 유왕은 웃음이 많지 않았던 포사를 웃게 만들기 위하여 일부러 봉화를 올려 제후들이 헐레벌떡 군대를 몰고 뛰어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즐겼고, 이가 점차 반복되자 정작 진짜로 견융이 쳐들어왔을 때 봉화를 올리자 아무도 이를 믿지 않았고 결국 지원군도 전혀 오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어쨌든 유왕이 죽은 이후, 귀족들이 모여 평왕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고 수도를 낙읍으로 옮겼는데, BC 771년 이전의 주를 보통 서주(西周)라고 하며 BC 770년부터는 동주(東周)라고 한다.

 

동주는 춘추시대(BC 770~403)와 전국시대(BC 403~221)로 나뉜다. 동주 시대에는 주나라 왕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대신 지방에서 유력한 패자들이 등장하여 천하를 다투었다. 다만 그 상징성과 제후 간의 경쟁 심리 때문에, 주나라 자체는 멸망하지 않고 대략 500여년 간 더 존속할 수 있었다. 이 때의 초기 역사를 기록한 유교 서책의 이름을 따 이 시기를 '춘추시대'라고 칭하고, 기원전 5세기부터는 전국에서 군웅들이 일어나 서로 다투었다고 하여 전국시대라고 부른다. 기원전 403년에는 주나라 왕실이 한나라, 초나라, 위나라를 독립적인 국가로 인정하였으며 기원전 344년에는 위나라의 혜왕이 스스로를 주나라의 천자와 격을 같이하여 '왕'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를 계기로 다른 나라들도 앞다투어 스스로를 왕이라고 칭하기 시작했고, 주나라의 왕은 그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제후들은 더이상 그자신들을 주나라의 봉신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으며, 스스로를 주나라와 동일한 국가들이라고 여겼다. 이 국가들은 번영과 쇠퇴를 거듭하며 서로를 공격하거나 협력을 맺으며 갖가지 사건들을 일으켰고, 주나라는 이에 전혀 관여하지 못하며 천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도 못했다. 주나라의 마지막 왕은 난왕이었다. 난왕은 기원전 256년에 진나라가 왕성을 공격하였을 때 살해당했고, 이로서 주나라가 공식적으로 멸망하게 된다. 이후 몇몇 왕족들이 주나라의 천자를 자칭하며 잔존 세력들을 일부나마 다스렸으나, 이마저도 기원전 249년에 진나라에게 멸망당하며 주나라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자료 : 주나라, 위키백과)

 

 

즉 주나라의 호경은 서주(西周)시절 (BC 1046-BC 771) 수도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 동주(東周)시절(BC 770 - BC 256)에는 수도가 낙읍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나라는 BC 249년에 진나라에 의해 망했다. 따라서 호경인 왕검성은 진(秦)나라의 땅이었다는 위에서 본 자료를 밑받침해준다. 

 

필자는 '상나라의 동방행은 어디까지인가?'라는 글에서 상(商)나라가 그리스 및 유럽지역에 있었다는 주장을 했다. 따라서 상나라의 서쪽에 있으면서 상나라를 멸하고 점한 주나라도 그러할 것이라 판단한다.  그러면 주나라의 흔적을 유럽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필자는 유럽의 Urnfield Culture (BC 1300 - BC 750)가 서주지역일 수 있다고 본다. (아래 지도 참조) Hallstatt Culture (BC 700-BC 450)와 La Tene Culture (BC 450- BC 1c)는 주나라가 동쪽으로 밀린 후, 서주지역에 있던 나라들의 역사일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한 구체적 연구는 아직 유물의 발견수준에 머무르는 서구의 역사 부재로 가능하지 않다. 다만 그 유물들로 볼 때 상나라의 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Map of Urnfield Culture area ( BC 1300 - BC 750) (source : Wikipedia)

(By Xoil - Own work,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8924999)

 

 

Map of Urnfield Culture (source : Wikipedia)

 

(Von DJ Sturm - wikimedia,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4902642)

 

Map of Hallstatt culture (BC 700-BC 450) area and La Tene Culture (BC 450- BC 1c) area. (source : Wikipedia)

Overview of the Hallstatt and La Tène cultures. The core Hallstatt territory (800 BCE) is shown in solid yellow, the area of influence by 500 BCE (HaD) in light yellow. The core territory of the La Tène culture (450 BCE) is shown in solid green, the eventual area of La Tène influence by 50 BCE in light green. The territories of some major Celtic tribes are labelled. Map drawn after Atlas of the Celtic World, by John Haywood (2001: 30–37).

(By Dbachmann,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003285)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독일의 Heunischenburg지역의 stone fortification이 고조선의 그것, 그리고 상나라로 판단되는 미케네문명의 그것과 동일한 모습을 보인다. 아울러 아래 그림에서 보는 도자기와 칼등을 보면 Urnfield Culture가 미케네문명의 그것과 동일한 양상을 보인다. 즉 상나라의 문화를 그대로 이어 받은 주나라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살바퀴를 가진 전차 (chariot)모습의 유물이 이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살바퀴 전차의 분포도를 나타내는 아래 지도에서도 유럽지역이 포함되고 있다. 즉 주나라의 문화가 이 유럽지역에 분포할 수 있다는 가정이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론강을 요수로 판단하는 필자의 주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Approximate historical map of the spread of the spoke-wheeled chariot, 2000–500 BC (source : Wikipedia) (By by en:User:Dbachmann - Own work by by en:User:Dbachmann,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77164)

 

Stone Forification in BC 9c : Heunischenburg near Gehulz (Kronach) 

(source : wikipedia, By Stefan Wicklein, Kronach - Self-photographed,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369463)

 

 

Pottery of Urnfield culture in Germany (source : Wikipedia)

(By Willow - Own work, CC BY 2.5,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928790) 

 

Weapons of Urnfield culture (source : Wikipedia)

(By José-Manuel Benito Álvarez —> Locutus Borg - Own work,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317347)

 

Urnfield culture pendants, Zurich (BC 1550-BC 1000) (source : Wikipedia)

(By Dbachmann,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272798)

 

 

 

7) 요수와 갈석산과 백산

 

 

▶마자수 일명 압록수는 동북쪽 말갈 백산에서 발원한다.

馬자水一名鴨綠水 水源出 東北靺鞨白山

 

 

 

당나라 왕, 세민이가 요동성을 침략하고 나서 쓴 시가 전해오는데 그 속에 결정적인 말이 나온다.

당나라 왕이 직접 쓴 시라 후대에 누가 개작을 하거나 변조했을 수 도 없다고 했다.

<遼城望月>이란 시를 보면 다음과 같다

.

“요동성에서 달을 바라보다: 검은 달빛이 휘영청 밝다. 맑은 빛이 요수와 갈석을 비춘다. 말을 멈추고 환도를 굽어본다.

우두커니 서서 요망한 기운이 멸하기를 관망한다

(遼城望月: 玄免月初明 (맑을)증輝照遼碣 駐蹕佑丸都 竚觀妖氣滅).”

(자료 : [출처] 283. 패수(浿水) 경로의 변천과 발해윤몰론(淪沒論)|작성자 집쟁이,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blog.naver.com/lainfos), 카테고리, 패수, 펌글 자료 참조)

 

 

상기 자료는 당나라에 이르러서도, 요수의 동쪽 요동성에서 갈석산과 더불어, 과거 조선지역이었던 요동성의 동쪽지역을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었으며, 이를 정복하려는 당태종의 야심을 요동성에서 드러냈다는 것이다. 즉 고구려가 당나라 시기에도 요동성 동쪽 지역을 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8) 연나라/요동국/조선/요수/고죽국/요동군/현도군/낙랑군/임둔군/진번군

 

『사기』「소진열전」과 『전국책』「연책」에는 소진이 연나라 동쪽에 요동국과 조선국이 있다고 하였고, 『염철론』에 연나라 동쪽에 요동국이 있고, 요동국 동쪽에 조선이 있다

 

『설원』의 제환공과 관중이 건넌 요수의 동쪽에 고죽국이 있고, 고죽국 동쪽에 조선이 있다.

 

『후한서』「군국지」에 낙양 동북쪽 3,600리에 요동군이 있다.

 

『후한서』「군국지」에 낙양 동북쪽 4,000리에 현도군이 있다.

 

『후한서』「군국지」에 낙양 동북쪽 5,000리에 낙랑군이 있다.

 

 

『무릉서』에 장안에서 6,138리을 가면 임둔군 치소인 동이현이 있다.

 

『무릉서』에 장안에서 7,640리를 가면(낙양에서는 6,611리) 진번군 치소인 삽현이 있다.

 

(자료 : 인용출처 : 고조선과 한군현 위치로 본 국경선 패수 위치, 김종서,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blog.naver.com/lainfos), 카테고리, 패수, 펌글 자료 참조)

 

 

상기 자료는 연나라의 동쪽에 요동국이 있고 요동국의 동쪽에 조선국이 있다는 앞에서 본 자료를 확인해 주고 있다. 단 요동지역에 요동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말하고 있다. 또한 요수의 동쪽에 고죽국이 있었다 했다. 고죽국은 고구려의 전신이라 했다. 즉 요수 압록수가에서 졸본부여를 통해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이야기를 밑받침해주며, 고구려라는 명칭이 이미 이전부터 이 지역에 있었다는 고구려현이 이 지역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후한서 군국지에 낙양 동북쪽 3600-5000리에 요동군, 현도군, 낙랑군이 있었다는 기록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위치기록이다. 만약 필자가 주장하는 론강이 요수라면 요동에 있는 요동군, 그위의 현도군, 그리고 그 우측의 낙랑군에서 서남 3600-5000리의 지역은 프랑스남부를 지나 스페인지역에 해당한다. 이 지역에 낙양이 있었다는 것이다. 

 

무릉서의 장안 위치는 동서남북에 대한 언급이 없어 위치추정이 애매모호하다. 진번지역은 연나라가 점했던 요동지역이었으므로 요수근처로 판단되는데, 장안이 여기서 서남인지 동남인지 알 수가 없다. 단지 낙양에서보다  천리가 차이나므로 장안도 낙양 가까이 천리지역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언급은 패수의 동쪽에 있는 평양이 호경이고 장안이라는 기록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9) 신당서 북적 실위 중 번역문

 

 

" 실위는 글단(거란)이 별종으로 동호의 북변이며, 대개 정령(당나라 북적 철륵)의 묘예 (여러 대를 걸친 먼 후대의 자손)이다.  땅은 황룡 북에 근거하고, 노월하 근방이며, 경사(수도)에서 곧바로 동북 7천리에 있으며, 동은 흑수말갈이고, 서는 돌궐이며, 남은 글단(거란)이고 북은 빈해 (바다에 가까이 닿아 있음)이다. "

 

(출처 : 실위와 거란어 언어/몽골실위 괸련 중국 정사 발번역 by 길공구, 필자의 네이버블로그(blog.naver.com/lainfos), 카테고리, 실위, 공유글 참조)

 

 

상기 실위의 기록은 여러 지역의 위치를 말해 주고 있다. 즉 실위는 거란의 별종으로 동호의 북변에 있으며, 정령의 후예이며, 황룡국 북에 근거하고, 당나라의 수도 (경사) 동북쪽 7천리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실위의 동쪽에 흑수말갈이 있으며, 서로는 돌궐이 있고, 남으로는 거란이 있으며, 북으로는 바다에 접해 있다고 했다. 

 

필자는 황두실위를 언급하며, 실위지역이 덴마크지역의 Schleswig지역이라 추정했다. 금발의 서양인을 황두실위로 추정하면, 상기 자료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즉 동호가 실위의 남쪽에 있으며, 지금의 독일 북쪽을 의미하며, 정령을 정복한 흉노의 모돈선우가 이 지역까지 진출했다는 것이다. 모돈선우의 흉노는 성을 경계로 한(漢)나라와 접해 있었다. 즉 한나라가 이근처에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황룡국이 독일의 서북쪽지역이라고 유리왕의 해명태자 이야기와 로마의 Varos장군 이야기를 거론하며 추정했는데, 실위가 이들의 북쪽지역이므로 황룡국 추정을 옹호해준다. 

 

실위의 동쪽에 흑수말갈이 있다고 했다. 필자는 흑수가 다뉴브강 북변에 있는 Morava river라 했는데, 다소 차이가 있지만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실위의 서쪽에 돌궐이 있다고 했다. 돌궐이 여러 종류가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돌궐은 스웨덴, 노르웨이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재야사학자 문무님은 고문서를 해석하면서 돌궐이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나 당황했다는 글을 썼다. (필자의 다음 블로그(blog.daum.net/lainfos), 카테고리, 고구려, '유라시아를 넘나드는 고구려' by 문무,  공유 글 참조)

 

실위의 남쪽으로는 거란이 있다고 했는데, 필자는 이미 거란이 이 지역에 위치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필자의 글, '광개토태왕이 정벌한 거란은 어디에 있는가?' 참조)

 

실위의 북쪽으로는 바다와 접했다고 했는데, 필자의 실위 추정지역 덴마크지역 위에는 발트해, 북해가 있다. 

 

실위의 서남쪽 7천리에 당나라의 수도 즉 경사가 있다고 했다. 실위를 덴마크지역으로 보면, 7천리 서남쪽은 대강 프랑스 남부 Toulouse,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혹은 마드리드 지역이 된다. 8)번 자료에서 후한서 군국지에 낙양의 동북쪽 3600-5000리에 요동군, 현도군, 낙랑군이 있다한 것과 유사한 결과를 보인다. 

 

다시 말하면, 진나라,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 수도가 스페인지역에 있을 수 있다는 결론이다. 이는 필자에게도 매우 당혹스러운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나라와 조선의 경계인 니하인 패수가 독일의 라인강이 될 수 있다는 필자의 심증에 매우 중요한 근거를 제시한다. 앞으로 프랑스 지역, 스페인지역에 대한 역사 검증 작업이 필요함을 말해 준다. 

 

 

10) 수경주 : 패수는 서북쪽으로 흐른다. 

 

 

"북위(北魏)의 지리학자 역도원(郦道元:470~527)이 쓴 《수경주(水經注)》제14권 패수(浿水)조를 보면, 고구려 사신이 북위의 수도 평성(平城: 지금의 山西省 大同)에서 역도원에게 설명하는 글 중에 패수와 고구려 수도에 관한 생생한 대화 기록이 나온다.

 

「수도는 패수 북쪽에 있고 그 강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옛날 낙랑군 조선현, 즉 한무제가 설치한 낙랑군 치소를 지나간 다음 서북쪽으로 흐른다고 하였다. 옛 《지리지》에는 패수가 서쪽으로 증지현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했다. 城在浿水之阳,其水西流,迳故乐浪朝鲜县,即乐浪郡治,汉武帝置。而西北流,故《地理志》曰:浿水西至增地县入海.」고 기술하고 있다. 고구려 사신 말을 요약하면, ‘패수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다가, 서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흐른다. 그리고 서쪽으로 증지현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城은 패수의 북쪽에 있다’는 설명이다. 그 당시의 생생한 기록이다. 이때가 대략 서기 510년경이므로, ‘城’이란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성이고, 당시의 고구려왕은 문자왕(文咨王: 재위 491~519)이다."

 

[출처] 평양성은 요양|작성자 일승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blog.naver.com/lainfos), 카테고리, 패수, 공유글 참조)

 

마지막으로 수경주에 나타난 패수의 자료를 보면, 패수는 서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서북쪽으로 흐르다가 증지현에 이르러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 간다 했다. 즉 패수가 서로 흐른다는 대표적인 주장이다. 그런데 이러한 추정은 고구려의 사신의 말을 빌려서 한 말이라 했다.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고구려의 사신의 말이다. 이러한 경로를 가진 강은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독일의 라인강 뿐이다. 

 

그리고 동으로 흐른다는 강은 같은 알프스산맥에서 원천되는 다뉴브강으로 보인다. 라인강, 다뉴브강 모두 유럽에서 제일 범람을 자주하는 진흙강 니하(泥河)이다. 라인강은 Alemannic German 언어로 'Rhi(n)' 라 불렸다고도 한다. Rhi -> 리 -> 니 즉 니하가 된다.  

 

필자가 처음 말하였듯이, 서로 바다로 들어 가는 강과 동으로 바다로 들어 가는 강은 분명히 하나의 강이 될 수 없다. 두개의 강을 그 원천이 같거나 니하와 같은 유사한 모습으로 인하여 혼동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패수가 요수의 동쪽에 있고, 요동군, 현도군, 낙랑군, 연나라, 위만조선, 왕험성의 조건, 요동국, 조선국, 실위 등 모든 조건을 고려하면, 한나라와 조선이 경계를 이루는 서쪽으로 바다에 들어 가는 패수는 독일의 라인강으로 추정되며, 고구려의 남쪽 경계이며, 동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 가는 패수는 다뉴브강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모두 알프스산맥을 원천으로 하고 있으며,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거의 연결되다싶이 가까이 있다. 그래서 패수라는 이름으로 같이 불리고 같이 니하라 불리운지 모른다. 

 

광개토태왕 초기 백제와 고구려가 싸운 패수는 다뉴브강으로 보이지만, 독일의 라인강인지 여부는 더 검토가 있어 보어야 판단할 수 있을 것같다. 그리고 패수의 동쪽에 있는 평양 즉 왕검성은 스위스 또는 오스트리아의 어딘가로 짐작이 되는데, 라인강이 서쪽으로 흐르는 지역의 위에 있는 Basel이지 않을까 짐작한다. Basel은 스위스의 cultural capital로서 오랜 역사가 있는 도시이다. 후일 추가적인 검토가 있을 것이다. 

 

"The Rhine (LatinRhenus [ˈr̥e̞ːnus]RomanshReinGermanRhein [ʁaɪ̯n]FrenchRhin,[1] ItalianRenoDutchRijnAlemannic GermanRhi(n) including Alsatian/Low Alemannic GermanRipuarianLow FranconianRhing) is one of the major European rivers, which has its sources in Switzerland and flows in a mostly northerly direction through Germany and the Netherlands, emptying into the North Sea. The river begins in the Swiss canton of Graubünden in the southeastern Swiss Alps, forms part of the Swiss-Liechtenstein, Swiss-AustrianSwiss-German and then the Franco-German border, then flows through the German Rhineland and the Netherlands and eventually empties into the North Sea....

 

 

It is the second-longest river in Central and Western Europe (after the Danube), at about 1,230 km (760 mi),[note 1][note 2] with an average discharge of about 2,900 m3/s (100,000 cu ft/s).

 

The Rhine and the Danube formed most of the northern inland frontier of the Roman Empire and, since those days, the Rhine has been a vital navigable waterway carrying trade and goods deep inland. Its importance as a waterway in the Holy Roman Empire is supported by the many castles and fortifications built along it. In the modern era, it has become a symbol of German nationalism.

 

Among the largest and most important cities on the Rhine are CologneDüsseldorfRotterdamStrasbourg and Basel."

 

(source : Rhine River, Wikipedia)

 

 

Map of Rhone River (source : Wikipedia)

(By Ulamm (talk) - Own work, using https://josm.openstreetmap.de/mapsview?entry=OpenStreetMap%20%28Mapnik%2C%20no%20labels%29 and https://maps-for-free.com/,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4462060)

 

Map of Rhine River (source : Wikipedia)

(By Ulamm - File:Rhein-Karte.png by Daniel Ullrich (Threedots),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2751894)

 

Rhine River (source : Wikipedia)

(By WWasser - Own work,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4474561)

 

Danube River (source : Wikipedia)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665391)

 

기존 사학계에서 패수라 주장하는 강들 (자료 출처: 수경주 패수조의 쟁점 by 920527,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blog.naver.com), 카테고리, 패수, 공유글 참조)

 

시대적으로 훨씬 뒤의 것이지만, 고구려의 장수왕 시기에 해당하는 훈족의 아틸라 시기에 유럽의 훈족은 서로는 라인강을, 남으로는 다뉴브강을 경계로 하고 있다. (아래 지도 참조)

 

Map of European Hun Empire 375-469 AD (source : globalsecurity.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