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조선 평안도의 장성은 속칭 만리장성(萬里長城)이었다.

2018. 12. 12. 05:10고려 (918-1392)

<!-BY_DAUM-> 조선 평안도의 장성(長城) 은 속칭 만리장성(萬里長城)이었다.

 

 

 

고전번역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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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적】

장성(長城)

고려 덕종 2년에 평장사(平章事) 유소에게 명하여 북쪽 변경의 관방(關防)을 창설하였는데, 주의 서쪽 바닷가에 있는 옛 국내성의 경계로 압록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으로부터 시작하여 동쪽으로 위원(威遠)ㆍ흥화(興化)ㆍ정주(靜州)ㆍ영해(寧海)ㆍ영덕(寧德)ㆍ영삭(寧朔)ㆍ운주(雲州)ㆍ안수(安水)ㆍ청색(淸塞)ㆍ평로(平虜)ㆍ영원(寧遠)ㆍ정융(定戎)ㆍ맹주(孟州)ㆍ삭주(朔州) 등 14성에 걸치고, 요덕(耀德)ㆍ정변(靜邊)ㆍ화주(和州) 등 3성에 다달아 동쪽으로 바다에 가까이 붙었다. 연무(延袤 연은 동서, 무는 남북, 즉 넓이, 넓음, 길게 뻗음의 뜻) 1천여 리를 돌로 성을 쌓았는데, 높이와 두께가 25척씩이며, 속칭 만리장성(萬里長城)이라 한다.

 

평.

 

조선시대 평안도에는 장성이란 곳이 있었다. 이 장성은 고려 덕종황제때  관방을 창설할때 , 압록강이 시작하는 곳부터 장성이 시작되어 14개성을 지나 동쪽바다, 동해바다에 가까이 붙였다고 한다. 그리고 길고 길게 1천여리의 성을 쌓았다고 한다.  속칭 만리장성이라고 한다.

 

 

 

중국동해바다에 가까이 붙힌 만리장성

 

 

고려때 만리를 쌓았다고 나온 것은 없으며, 다만 고려때 1천여리 성을 쌓았다고 하니, 고려, 조선의 만리장성은 옛부터 대대로 쌓아온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북쪽변경지역에 설치를 하여서 북적의 침략을 대비한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평안도에 있는 (만리)장성은 그냥 쌓은 성이 아니라 산성이 나열되어 있는 국경지대를 서로 이으면서 성과 성사이를 잇는 가교의 역할도 한 셈이다. 그런데  의주에서 시작된 (만리)장성은 정변, 화주에서 끝이 난다. 그런데 이 길이가 만리였다면, 의주에서 화주까지의 거리는 한반도안에서 논하기는 너무나  협소한 거리이다. 만리는 커녕, 천리도 되기 어려울 것이다.

 

조선 평안도안에 (만리)장성이 있으려면, 평안도는 거의 만리나 되는 크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평안도가 만리라면, 조선팔도는 엄청난 큰 영토를 이룰 것이 불보듯 뻔하다. 고려때도 계속 쌓아온 고려의 만리장성은 그 모습이 조선의 평안도 땅에 계속 남아있었던 것이다.

 

조선평안도 땅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던 만리장성은 한반도에서는 그 일부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만리장성이 남아있는 지역이 오직 중국북부밖에 없기때문이다.- 역사전문 러브 선

 

 

 

 

 

출처 : 지구조선사연구회
글쓴이 : 러브 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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