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펌> 실크로드

Chung Park 2019. 2. 3. 03:14
실크로드
     자료 : 나무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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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원3. 역사4. 종류5. 문화6. 현재7. 관광8. 동명의 게임

Silk Road

1. 개요[편집]

중국과 서역을 연결하던 중앙아시아의 길. 이 루트를 통해 동서 간의 문물이 왕래했다.

2. 어원[편집]

'실크로드'라는 단어는 독일의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1]이 중국에서 중앙아시아, 인도로 이어지는 교역로를 연구하던 중 주요 교역품이 비단이었던 것에서 착안하여 '자이덴슈트라쎄(Seiden Straße)', 즉 '비단길'로 명명하면서 사용되었다. 이 실크로드라는 말은 동서방 간의 교역로 중 스텝지대의 '초원길'과 인도양을 통해 이어지는 '바닷길'을 제외한 사막과 오아시스 일대의 도시들을 거치는 교역 경로 전체를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실크로드라는 명칭은 교역로가 확대하면서 다소 부적절해졌지만 유라시아의 원거리 무역과 문명교류의 통로에 대한 상징적이고 관용적인 명칭으로 계속 사용되었다. 중국에서는 사주지로(絲綢之路)라고 부른다. 양측 기점은 동양 쪽은 거의 당나라의 장안, 서양 쪽은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로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 가운데의 주요 경유지. 한반도 역시 실크로드를 통해 전래되는 물품의 소비국 중 하나로, 지금도 당시의 이런저런 수입품들이 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3.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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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판의 고창국 고성 유적

넓은 의미의 실크로드는 기원전 10,000년 전후 빙하기가 끝난 후 문명이 발생하고 인류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는데, 이때부터 생겨난 몇 갈래의 교통로로서 지금까지 문명 간 교류의 통로로 기능하는 것을 지칭한다. 반면에 좁은 의미의 실크로드는 기원전 8~9세기부터 만들어져 근대 이전까지 기능한 동서문명 교류의 통로를 지칭한다. 초원길과 오아시스길의 경우 중앙아시아의 도시국가나 유라시아의 유목국가들에게는 부와 국력의 원천이기도 했으며, 사산조 페르시아부터 일 칸국에 이르기까지 서아시아의 국가들에게도 경제적으로 굉장히 중요했다. 그러나 16세기에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대양무역이 확대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초원길과 오아시스길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줄어들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이 길이 완전히 "쇠퇴"했다고 볼 수는 없다. 대항해시대의 중요성에 주목하는 서구 중심적 옛 사관에서는 내륙 실크로드가 교역루트로서 몰락했다고 간주하기도 했지만, 이쪽도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퍼센트가 줄어들었을 뿐 16세기 이후에도 이들 유라시아 내륙교역로의 무역랑의 절대량은 계속 증가했으며, 티무르 제국과 제국 붕괴 이후의 코칸드 칸국부하라 칸국히바 칸국 등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러시아, 페르시아, 인도, 중국을 엮는 삼각무역의 요충지로서 전성기를 지내며 번성하였다. 러시아는 이곳에서의 모피무역을 비롯한 각종 교역에서 얻은 자본을 통하여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한다. 실크로드 지역이 러시아 제국에게 완전히 정복되는 건 한참 이후의 일로, 이미 전 세계가 남김없이 열강에게 정복당해가던 19세기 말엽이었다. 

그리고 근대에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비롯해 여러 대륙횡단철도가 부설되었으나 냉전시대 철의 장막으로 공산권 내부의 교통로 역할로 그 입지가 줄어드는 안습한 운명이었다.

4. 종류[편집]

크게 동서교역로는 초원길, 오아시스길, 바닷길의 3대 간선과 마역로, 불타로, 라마로, 메소포타미아로, 호박로라는 5대 지선으로 나뉜다. 다만 이런 복잡한 구분이 생긴 것은 19세기 즈음에 서구 제국주의의 근대적인 팽창 과정에서 실크로드 연구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1980년대에 더욱 심해졌는데 80년대의 일본이나 한국의 경제 성장과 맞물려 실크로드 교역로 연구 자체가 특정 국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성향을 보였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이 실크로드 범위에 일본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일본 학계에서는 한반도를 경유지로 전락시키거나 아예 배제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이는 일본이 자주 보이는 역사 왜곡의 일환이다. 실제로 국립경주박물관에만 가봐도 실크로드를 통해 전해진 신라 황금보검 등 서역 상품과 금속 기술을 볼 수 있다.[2]

가장 먼저 개척된 곳은 초원길로서 흑해아랄해카스피해 일대에서 살던 스키타이인들이 개척했는데 유라시아 북방 초원지대를 동서로 횡단하는 길이며 선사시대부터 이용되었다. 오아시스로가 개척되기 전부터 초기 문명 전파의 주요 통로로 기능했었다. 전한 제국이 형성될 시기 몽골 고비 사막 부근에서 흉노가 성장하면서 광활한 초원지대가 단일한 정치 체제로 통합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본격적으로 초원길 경영이 이루어졌다. 이 초원길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흉노의 선우에게 통행증을 제시해야 했는데, 통행증이 없다면 이 길을 우회해서 가야 하므로 신체적, 경제적인 한계가 굉장히 많이 따랐다. 그러나 흉노가 경제적, 군사적으로 중국에 지속적으로 도발을 시전하고, 이 과정에서 중국의 비단이 헐값 혹은 공짜로 흉노에 유입된다. 흉노는 이 비단을 그대로 서역에 전달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렸는데, 이러한 흉노의 깡패짓(...)을 참다 못한 중국에서는 오아시스길을 개척하기에 이른다.

오아시스길(사막길)은 파미르 고원 서쪽의 알렉산더의 헬레니즘 왕조 시기 그리스계 도시국가들이 인도 간다라 지방까지 교통로를 건설하면서 개척되기 시작했고, 파미르 고원의 동쪽인 중국에서는 한무제 때 장건이 월지와의 동맹을 위해 사신으로 파견됨으로써 착공하고, 위청과 곽거병 등이 흉노와 본격적으로 전투를 벌인 서역 원정을 통해 만들어졌는데, 이렇게 파미르 고원의 양편의 교역로가 연결되게 된다. 통상 실크로드라고 하면 이것을 지칭한다. 이 길을 통해 중국과 중앙아시아의 교역이 이루어졌다. 이 길을 통해 중국의 비단[3]로마의 유리가 서로 전해졌다.[4] 또한 단 한 번뿐이지만 로마 제국의 사자가 한나라까지 오기도 했다. 중국의 교역로는 장안에서 돈황을 거쳐 천산 산맥을 지나 파미르 고원을 통과하는 길이었는데, 이것도 천산북로와 천산남로로 나눠진다. 이러한 구분은 타클라마칸 사막과 같은 자연적인 한계가 강한 곳을 최대한 피해가면서 형성되었다. 초반에는 천산 산맥 남쪽을 지나는 길을 천산남로로 칭했는데, 인근 도시국가들이 물 부족과 사막화로 쇠퇴하고 북방 민족이 이곳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천산 산맥 북쪽 교역로를 개척하게 되었는데 이를 천산북로라고 한다. 이 사막길은 당나라 시기에 가장 번성했고 당에서 경영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길을 통해 중국의 제지 기술과 도자기, 비단이 전파되었고, 당의 수도인 장안은 동서문화가 융합한 거대한 국제도시의 기능을 했다. 그러나 서쪽의 이슬람 제국에서 정권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당 제국이 여기에 말려들어, 당은 파미르 고원 서쪽까지 원정가서 이슬람 군사들과 싸우고 지게 된다. 이게 바로 탈라스 전투인데, 이 전투에서 당이 지면서 사막길의 경영권은 이슬람으로 넘어간다. 더불어 이때 이슬람에 잡힌 포로중에 제지공이 있어서, 제지술이 이슬람과 유럽으로 전해지는 계기가 된다.

보통 이 사막길의 종점은 위에서 말한 장안으로 설정하는 편인데, 재미있는게 중국 청두에서는 이 종점을 장안을 거쳐서 청두로 연장시킨다고 한다. 완전히 억지는 아니고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게, 실크로드의 어원이 되는 중국 비단 중에서도 청두를 비롯한 쓰촨 성 비단의 양과 질이 특히 고대부터 유명했기 때문이라고.

바닷길은 1세기경에 개척되었고 인도양으로 향하는 이 길을 통해 본격적으로 원거리 무역이 성행했다. 이로써 당대 로마는 동방의 물건을 해상으로 운송할 수 있었으며 베트남, 중국 남부로 추정되는 지역에까지 교류를 확대했다. 해상 수송은 대량수송의 장점이 있어 도자기와 향료, 차 등이 주로 오갔다. 따라서 비단이 오고간 육지의 비단길에 빗대 이 길은 '향료길', '도자기길'로 불리기도 한다. 고대도시 페트라와도 연관이 있는데 페트라는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 연안까지 2500㎞ 향료길을 잇는 관문이기도 했다. 고대 아라비아 무역로의 중심지였던 페트라는 AD 2세기 로마에 함락된 이후 동서무역로의 중심이 비단길로 옮겨가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5. 문화[편집]

방송 매체의 영향으로 실크로드하면 비단 장수들이 낙타 타고 한가하게 사막을 건너는 모습이 연상될 수 있겠지만, 사실 비단 교역로는 사람 살기 힘든 동네였다. 특히 오아시스 주변으로 발달한 도시들은 기후 변화로 인해 물이 줄어들면 그와 함께 급격하게 쇠퇴하거나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날아오는 어마어마한 모래 폭풍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모래 더미에 폭삭 파묻히는 경우도 있었다(…). 초원길과 사막길의 개척 시기에 격차가 있는 것도 타클라마칸 사막과 파미르 고원을 통과하는 길이 너무 험난했기 때문이다. 일단 타클라마칸 사막 자체가 당대의 현지 언어로 들어가면 못 나오는 곳이란 뜻이다(…). 게다가 이 주변에 매복하고 있는 도적 떼에게 습격이라도 당하는 순간엔 몽땅 털리고 끔살. 한마디로 비단 장수는 죽을 각오를 하고 사막길을 건너왔다는 것이다.

비슷한 길로 중국, 티베트인도네팔 등을 연결하던 차마고도가 있다.

한국인이 읽어볼 만한 개설적인 내용은 정수일 박사의 책과 김호동 교수의 <아틀라스 중앙아시아사>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좀더 심층적으로 이슬람의 동점 이전 고대 실크로드의 역사에 대해서는 발레리 한센의 <실크로드: 7개의 도시>, 소설적으로 재구성한 수잔 홧필드의 <실크로드 이야기>, 서양인들의 실크로드 탐험사에 대해서는 피터 홉커크의 <실크로드의 악마들>이라는 책이 번역되어 있으니 참조하면 도움이 된다.

영상물로는 NHK의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실크로드'가 있으며, 중국 CCTV와 합작 제작하여 장안에서 로마까지의 여정을 담았다. 당시는 중국이 덩샤오핑 체제하에서 갓 개혁개방을 시작하던 때라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OST를 뉴에이지 음악가인 기타로가 담당하였고 '메인 테마'와 '캐러밴의 행렬' 등이 유명하다. 이 다큐멘터리는 훗날인 1984년 KBS에서도 수입 방영되었다. 
KBS 방영 버전 제1편(유튜브)

2005년 실크로드 제작 25주년을 기념하여 리부트판인 '신 실크로드'가 제작되었으며, 이 때는 NHK와 CCTV뿐만 아니라 KBS도 공동제작에 참여하고 LG그룹이 제작을 후원하였다. 이 다큐멘터리도 영상미와 음악이 뛰어난데 OST 담당은 요요마. 요요마 특유의 중후한 첼로와 서역의 이색적인 음률이 잘 어우러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신 실크로드 KBS 방영 버전 제4편(유튜브)
원래 시리즈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 방송장비와 촬영기술이 발전하면서, 그 당시에 비하며 대단히 수려한 영상미를 뽑아낸다.

6. 현재[편집]

2016년 현재 중국은 이 실크로드에서 착안하여 일대일로라는 인프라, 경제, 문화 교류 정책을 추진중이다. 이 정책의 일환으로 2014년 11월에 중국 동부 저장성 이우시와 스페인 마드리드를 연결하는 총연장 1만3천52㎞의 세계 최장 철도 '이신어우'가 개설되었다. 이 철도는 카자흐스탄을 거쳐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유럽에 도착한다.

2014년에는 실크로드: 창안-톈산 회랑 도로망라는 이름으로 실크로드 상의 33개의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실크로드: 창안-톈산 회랑 도로망 참조.

7. 관광[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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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구시가지 레기스탄의 모습. 사마르칸트에는 고구려 사신이 그려진 아프라시압 벽화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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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히바의 이찬 칼라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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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메니스탄 메르브(Merv)의 산자르 영묘 (Sanjar Mausol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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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메니스탄 메르브(Merv)의 고대 성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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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투루판(Turpan) 근교의 교하 고성(交河故城, Jiaohe ru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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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투루판(Turpan)의 고창 고성(Gaochang Ru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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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타클라마칸 사막에 있는 만리장성 시작부분의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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