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우리의 건국신화와 그리스-로마 신화(1)

2019. 2. 20. 01:52로마공화정-로마제국

[비교 연구] 우리의 건국 神話와 그리스-로마신화 (1)

하얀山의 신성한 나무 아래로 내려온 하늘의 神이 곰과 야합하여 아들을 낳으니…

 
金貞根 駐휴스턴 총영사
서울大 영어교육과 졸업. 제11회 외무고시 합격. 駐이탈리아 참사관, 駐인도 참사관, 외교통상부 외무협력관실 심의관, 同아중동국 심의관, 駐짐바브웨 대사, 제주도 국제관계자문대사. 現 駐휴스턴총영사. 저서 「아프리카의 영혼: 쇼나조각」.
단군신화는 미개한 文化의 미신인가?
檀君.
  서구 사람들은 한국의 유구한 역사를 아무리 설명해도 아시아의 변방문화쯤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들은 서양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역사와 신화는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우리의 문화는 미개한 것으로 취급하려 한다. 그리스-로마의 신화는 고급스러운 상상력을 담은 것이고, 단군신화는 천박한 미신을 담고 있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와 로마의 건국신화는 너무나 흡사하다. 
  
  미국 학생들은 필자의 강의를 들으며, 그리스-로마 신화와 상통하는 한국의 신화에 경이감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그리스-로마 신화와 한국의 건국신화를 연결짓는 고리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알타이 문화이다. 
  
 
  로마 건국신화와 단군 신화에 대한 나의 연구는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駐이탈리아 대사관의 정무 참사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로마 일정을 마치고 출발하려던 우리 국회의원들이 『한 두 시간 시간이 남았으니 로마 시내의 명소를 안내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평화의 제단」으로 국회의원들을 안내했다. 평화의 제단에는 로마의 건국신화가 부조로 새겨져 있다. 나는 부조를 가리키면서 로마의 건국신화와 단군신화·신라의 건국신화가 어떻게 비슷한지 얘기했다. 
  
  『로마인이 세계제국을 건설하고 「로마의 평화(팍스 로마나)」를 이룩했다. 로마인들과 똑같은 건국 신화를 가진 한민족이 세계 역사의 중심에 서서 「한국의 평화(팍스 코리아나)」를 못 이룰 이유가 없다』
  
백두산 天池.

알바山 네미湖.
  
  10년 공부의 결과
  
  많은 의원들이 나의 설명에 공감했고, 흥미를 나타냈다. 
  
  나는 이탈리아 대사관에 근무할 때 로마 교외의 알바산에 올랐다가 우리의 백두산과 닮은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알바山과 백두산에 대한 비교는 자연스레 로마 건국신화와 단군신화의 비교로 이어졌다. 이후 인도 등지에 근무하면서 나의 공부는 계속됐다. 이 글은 지난 10년 동안 탐구한 화두에 대한 내 나름의 해답이다.
  
  
  하얀 산
  
  백두산과 알바山, 天池와 네미湖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우선 한반도의 지도와 이탈리아 반도의 지도를 비교해 보자. 「반도」라는 공통점은 누구나 안다. 또 하나 한반도와 이탈리아 반도에 모두 「하얀 산」이라는 靈山(영산)이 존재한다. 
  
  한반도에 존재하는 「하얀 산」은 白頭山(백두산)이다. 이탈리아 반도에 존재하는 「하얀 산」은 알바산이다. 알바山은 로마에서 동남쪽으로 20km 떨어진 곳에 있다. 「알바(alba)」는 「백색」을 의미하는 라틴어이다. 이탈리아의 알바山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白山(백산)」이다. 
  
  백두산 정상에 天池(천지)가 있듯이, 알바山 정상에는 네미湖(호)가 있다. 둘 다 분화구에 물이 고였다. 백두산과 천지가 고조선 이래 한국인들의 숭배대상이었듯이 알바山과 네미湖는 라틴 왕국 이래 이탈리아인들에 의하여 숭배되어 왔다. 
  
  一然(일연) 스님은 「삼국유사」에서 檀君(단군)神話에 나타난 태백산이 묘향산을 가리킨다고 해석하지만, 다수의 학자들은 단군의 아버지 桓雄(환웅)이 천상에서 하강하여 神市(신시)를 세운 태백산은 천지가 있는 백두산이라고 해석한다. 
  
  알타이어族(족) 사람들은 그들이 숭배하는 영산을 모두 「태백산」 또는 「백산」으로 불렀다. 따라서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태백산은 고유명사라기보다는 보통명사로 보는 게 마땅하다. 
  
  한반도의 백두산, 태백산 또는 「하얀 산」이 고조선의 도읍지라면, 이탈리아반도의 알바山은 「알바롱가 왕국」의 도읍지이다. 알바롱가는 「하얗고(alba) 길다(longa)」는 의미이다. 한자로 쓰면 長白(장백)이다. 알바롱가 왕국의 명칭이 백두산의 별칭 장백산과 동일한 것은 우연의 일치인가?
  
  알바롱가 왕국은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트로이 영웅 「아이네아스」의 아들 「아스카니우스」가 기원전 1184년경 알바山에 세운 라틴 왕국이다. 스위스의 알프스나 몽블랑은 모두 알바山과 마찬가지로 「白山」이라는 의미이다. 
  
  인도의 북쪽에 히말라야(Himalaya: 雪山)가 있는데, 그 별칭 「스베타파르바타」 역시 「하얀(Sveta) 산(Parvata)」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히말라야는 인도인들에 의하여 고래로 숭배되어 온 영산이다. 「하얀 영산」이라는 점에서 백두산, 알바산, 알프스, 히말라야는 일치한다. 
  
  「하얀 산」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태백산 또는 백두산은 「한밝산」이라는 우리 고유어로 분석된다. 「한」은 크다(太)는 뜻이요, 「밝」은 하얗고 밝다(明白)는 뜻이다. 태백산은 빛의 神, 桓雄이 하강한 영산이다. 
  
  이탈리아의 알바山은 어떠한가? 로마인들은 그곳에 주피터 신전을 짓고 승리의 축제를 올렸다. 알바山은 주피터가 하강한 산이다. 주피터는 태양신 아폴로의 아버지로서 아폴로보다 더욱 위대한 빛의 神이다. 그러므로 「하얀 산」은 한국의 경우나 이탈리아의 경우에나 모두 「빛의 산」을 의미한다.
  
  
  고조선의 熊女-알바롱가의 곰
  
  「아이네이드」에 등장하는 백곰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마의 건국자 로물루스 형제.
  줄리우스 시저의 양자 아우구스투스가 집권하여 로마의 초대 황제가 되었을 때, 그는 궁정詩人(시인) 「버질」을 시켜서 「용비어천가」를 짓게 했다. 그것이 로마의 건국을 읊은 大서사시 「아이네이드」이다.
  
  아이네이드에 의하면, 트로이城(성)이 함락되었을 때 아이네아스는 트로이人들을 이끌고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 반도로 건너왔다. 그들은 로마의 테베레江을 따라 거슬러 올라 라틴 부족이 거주하고 있던 「라티움」에 도착한다.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아스는 라틴 부족장의 딸과 혼인해 「아스카니우스」를 낳았다. 
  
  성인이 된 아스카니우스는 어느 날 「백곰」 꿈을 꾸고 나서 여러 라틴 부족들을 통일해 알바롱가 왕국을 세운다. 아스카니우스는 「트로이에서 건너온 아이네아스의 아들」이라는 의미에서 「일루스(Ilus)」 또는 「율루스(Iulus)」라는 명칭을 부여받았다. 
  
  버질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지시에 따라, 알바롱가 왕국의 시조 아스카니우스 또는 율루스를 줄리우스 시저의 조상이라고 노래 불렀던 셈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줄리우스 시저의 양자이므로 알바롱가 왕국의 시조 율루스의 후손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檀君신화와의 유사점을 또 하나 발견하게 된다. 알바山(白山)에 도읍한 알바롱가(長白) 왕국이 백곰을 매개로 하여 건설된 왕국이라면, 태백산(또는 백두산, 장백산)에 도읍한 고조선은 곰을 매개로 건국된 왕국이다. 고조선의 곰은 흑곰이었을 것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쑥 1심지와 마늘 20쪽을 먹으면서 어두운 동굴 속에서 햇빛을 보지 않고 21일 동안 견딘 곰은 사람이 되어 「熊女(웅녀)」라는 이름을 받았다. 熊女는 桓雄과 혼인하여 檀君을 낳으니, 그가 곧 고조선의 시조이다. 
  
  고조선의 시조 檀君이 곰의 젖을 먹고 자랐다면, 로마 왕국의 시조 「로물루스」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 플루타르크가 전하는 로마 건국신화에 의하면, 로물루스는 쌍둥이 동생 「레무스」와 함께 알바롱가 왕국의 공주와 전쟁神(Mars)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는 熊女와 桓雄의 야합으로 태어난 檀君을 연상시킨다. 
  
  알바롱가 왕국의 찬탈자는 로물루스 형제를 테베레江에 흘려보내 버린다. 쌍둥이 형제를 실은 떼배는 로마의 팔라티노 언덕 기슭에 도달한다. 쌍둥이들은 그곳 동굴에서 늑대의 젖을 먹으며 자란다. 양치기 부부가 이 아이들을 발견하여 집에 데려가서 키운다. 양치기 여인의 이름이 「루파(lupa: 늑대)」라는 것은 흥미롭다. 檀君신화에서 곰이 檀君의 어머니 熊女로 변했듯이, 로물루스 신화에서 늑대는 로물루스의 어머니 루파로 변한다. 
  
  
  半神半人
  
  단군, 당골, 텡그리
  
  「삼국유사」에 의하면, 檀君은 桓雄의 아들이며, 桓雄은 桓因(환인)의 아들이다. 桓因과 桓雄은 神인 반면에 檀君은 인간이다. 
  
  그러나 「제왕운기」에 의하면 檀君은 神人(신인), 天帝子(천제자) 또는 天帝化身(천제화신)으로 묘사되며, 「삼국유사」에 의하면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 후에 아사달로 들어가 山神이 되었다고 하니 檀君 역시 神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알타이語를 분석해 보면 檀君의 원래 의미는 「하늘」, 「하느님」 또는 「神」이다. 檀君을 모시는 무당을 우리말로 「단골」, 「당골」 또는 「당골레」라고 부른다. 이에 해당하는 古代(고대) 알타이語는 tengri 또는 tengeri, 몽골語는 tengeri, 고대 터키語는 tangri, 현대 터키語는 tanr이다. 이들 단어들의 어근은 tan, tang 또는 teng이며, 그 1차적 의미는 「하늘」이며 2차적 의미는 「神」이다. 
  
  이슬람 국가인 현대 터키에서는 神을 「알라」라고 부르지만, 「tanr」라고도 부른다. 터키人들이 기독교 神을 지칭할 때에도 「tanr」라고 부른다. 
  
  고대 알타이語 부족은 사람이 태어나면 tengri로부터 kut을 얻는다고 믿었다. kut이란 「영혼」 또는 「신령」을 일컫는다. 한국에서는 무당이 歌舞(가무)를 하면서 신령을 불러들이는 의식을 「굿」이라 하는데, 굿의 본래 의미는 알타이語 kut(영혼)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분석에 비추어 보건대 「檀君」이라는 단어는 하늘, 하느님, 天神(천신) 또는 神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檀君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할 때, 檀君은 그의 아버지인 桓雄이나 할아버지인 桓因과 마찬가지로 神格(신격)을 갖는 존재이다.
  
  「桓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학자들은 桓雄의 「桓」은, 알타이어 칸(khan) 또는 카간(khagan)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알타이語에서 칸 또는 카간과 텡그리(tengri)는 의미가 구별된다. 「하늘」의 의미를 지닌 텡그리가 「神」을 가리킨다면, 「우두머리」의 의미를 지닌 칸 또는 카간은 「인간」을 가리킨다. 
  
  
  熊女, 예르숩, 삼신할미
  
  고대 터키의 왕 「빌게 카간(Bilge -Khagan)」이 『나는 Tengri(하늘)와 Yer-Sub(땅-물)의 뜻에 따라서 칸(khan)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칸 또는 카간은 텡그리와 「예르숩(Yer-Sub)」의 아들로 지상에 태어나 인간들을 통치하는 지배자이다. 
  
  여기서 예르숩은 檀君신화의 熊女처럼 여성이다. 예르숩은 熊女의 전신 곰이 머물렀던 동굴처럼 세계의 중심이 되는 땅, 즉 땅의 「배꼽」이다. 텡그리의 아내는 「우마이」라고도 불리는데, 배꼽 또는 탯줄을 의미하며 분만을 관장하는 女神이다. 
  
  예르숩과 우마이는 사실상 동일한 女神이다. 그녀는 한국의 삼신할미다. 삼신할미는 곧 熊女이다. 빌게 카간의 이야기는 檀君신화와 다를 바 없다. 
  
  桓雄의 「환」을 알타이어 「칸」으로 해석할 때 桓雄은 터키의 왕 빌게 카간과 마찬가지로 텡그리의 위임을 받아 인간세계를 통치하는 왕을 가리킨다. 결국, 桓雄은 檀君과 마찬가지로 인간적 제왕의 성격을 지닌다. 
  
  「제왕운기」에 따르면, 桓雄은 「檀雄(단웅)」으로 지칭된다. 여기서 檀(단)을 알타이語 「텡그리」로 해석할 때 桓雄, 즉 단웅은 세계의 창조자 텡그리를 가리킨다. 「삼국유사」 역시 桓雄을 「神雄(신웅)」으로 부른다. 즉, 桓雄은 天神이다. 
  
  桓雄은 檀君과 마찬가지로 신적인 요소와 더불어 인간적인 요소를 함께 지닌 존재이다. 桓雄이라는 단어에서 「雄」은 남성을 뜻한다. 「熊女」라는 단어의 女와 대응한다. 桓雄은 男性神(남성신)으로서의 하늘, 熊女는 女性神(여성신)으로서의 땅을 가리킨다. 
  
  
  神이 된 檀君과 로물루스
  
칸텡그리山.
  그렇다면 桓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桓因이라는 용어는 「제왕운기」에는 보이지 않고 「삼국유사」에만 보인다. 「삼국유사」는 『桓因은 곧 제석(桓因謂帝釋也)』이라고 말한다. 
  
  帝釋(제석)은 漢譯佛典(한역불전)에서 釋迦提婆因陀羅(석가제바인다라), 釋提桓因(석제환인), 桓因陀羅(환인다라), 天帝釋(천제석), 帝釋天(제석천), 天帝(천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등장한다. 
  
  고려 태조 왕건이 帝釋院(제석원)을 설치한 이래 제석신앙은 고려시대에 널리 퍼져 있었다. 桓因 또는 桓因제석은 힌두교를 통해 불교에 도입된 힌두신화의 天神 「인드라」(주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불교 승려였던 一然은 우리 고유의 신앙체계에 불교적 개념을 도입하려고 시도했다. 「제왕운기」에서는 天帝라는 용어만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檀雄, 즉 桓雄을 지칭한다. 따라서 桓因과 桓雄은 실질적으로 동일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檀君신화에서 檀君이 神人一體(신인일체)의 존재로 나타나듯이, 로마 건국신화에서 로물루스는 神人一體로 나타난다. 로물루스의 아버지는 전쟁神이며 어머니는 인간이다. 그는 죽은 후에 神이 된다. 
  
  로물루스 신화에 의하면, 그는 38년간 로마인들을 통치한 후에 「전쟁神의 들판」에서 모습을 감춘다. 사람들이 놀라자, 원로원의 지도자가 나서서 『로물루스는 하늘로 올라가 「퀴리누스」라는 神이 되었으므로 이제 우리는 그를 神으로 섬겨야 한다』고 말한다. 檀君이 1500년 동안 다스리다가 아사달로 숨어 山神이 되었다는 신화와 동일한 패턴이다. 로마에는 「퀴리날레」라는 언덕이 있다. 이곳이 바로 로물루스가 昇天(승천)했다고 알려진 곳이다. 
  
  고조선의 檀君뿐만 아니라 부여의 해모수를 비롯하여 古代의 왕들은 모두 神人一體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로마 공화정 시대에 황제로 추대된 아우구스투스 역시 神人으로 불렸다. 그는 「줄리우스 神」 또는 「神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고대 그리스 및 로마 시대에 神이라는 명칭은 올림포스의 神뿐만 아니라 왕이나 황제에게 부여되었다. 「제왕운기」에서 檀君을 天帝子 또는 神人이라 부른 것과 같다. 아우구스투스와 檀君은 神 또는 「神의 아들」이라 불렸다. 
  
  
  檀君과 로물루스는 天神의 손자
  
檀君신화가 새겨진 중국 산동성 武氏 사당.
  전쟁神의 아들인 로물루스는 최고神 주피터의 손자이기도 했다. 전쟁神은 주피터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桓因제석과 주피터의 공통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힌두신화의 원형을 간직한 「리그베다」에 의하면 桓因제석, 즉 「샤크라 인드라」는 「바즈라」(번개·벼락·금강저)라고 불리는 무기를 지닌 神이다. 그리스신화에 의하면 제우스(로마신화의 주피터)는 「케라우노스」(번개·벼락)라고 불리는 무기를 지닌 神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바즈라 또는 케라우노스는 양쪽에 삼지창이 달린 무기이다. 그것은 번개가 치고 벼락이 떨어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러한 무기를 지닌 神은 바람·폭풍·구름·비를 거느린 神이다. 
  
인드라神.
  「삼국유사」에서 桓雄은 風伯(풍백)·雨師(우사)·雲師(운사)를 거느리고 지상에 하강한다. 여기서 風伯과 雨師는 바람과 비를 가리킨다. 「리그베다」에서 인드라는 「마루트」(폭풍우를 관장하는 神)의 무리를 거느리고 다닌다. 마루트는 風伯과 雨師에 해당한다. 그러면 雲師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구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번개와 벼락을 가리킨다. 
  
  중국 산동성에서 발견된 武氏祠堂(무씨사당) 石室(석실: 서기 147년 제작)의 畵像石(화상석)을 보면 알 수 있다. 무씨사당의 화상석은 檀君신화를 묘사하고 있는데, 風伯은 나팔을 부는 사람으로, 雨師는 물병을 손에 든 사람으로, 雲師는 손에 망치를 쥐고 북을 치는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 손에 든 망치는 인드라의 금강저 또는 제우스의 번개 무기와 같은 것을 가리키며, 북은 천둥소리를 나타낸다. 一然이 「삼국유사」에서 굳이 桓因을 등장시키지 않았더라도 桓雄은 인드라 및 제우스와 마찬가지로 벼락을 무기로 사용하는 天神이다. 
  
  
  하얀 나무
  
  빛의 나무
  
제우스와 벼락.
  桓雄은 태백산 정상에 있는 神壇樹(신단수) 아래에 하강하며, 熊女는 壇樹(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점지해 달라고 기원한다. 신단수·단수는 무속신앙에서 당나무 또는 서낭당나무라고 불린다. 또한 이 나무는 朴達(박달)나무, 白達(백달)나무, 倍達(배달)나무 등으로 불린다. 
  
  여기서 「박」 또는 「백」은 「하얗다」를 의미하고, 「달」은 「땅」을 의미한다. 일부 학자에 의하면 「달」은 「땅」이 아니라 산을 의미한다고 한다. 따라서 신단수, 단수 또는 박달나무는 「白土」 또는 「白山」 나무라는 의미이다. 그것은 박달나무라는 고유명사라기보다는 桓雄이 하강한 「하얀 산」 태백산에 자라는 신령한 「하얀 나무」를 가리킨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하얀 산」이 「빛의 산」이듯이, 「하얀 나무」는 「빛의 나무」이다. 
  
  박달나무가 특정의 나무 종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님은 알타이語를 사용한 고대 터키인(돌궐족)들이 하얀 자작나무(白樺樹: white birch)를 神樹(신수)로 숭상했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된다. 「제왕운기」에서 단웅, 즉 桓雄이 檀樹神(단수신)으로 불리듯이 박달나무, 즉 단수는 桓雄이 화신한 나무이다. 
  
  고대 터키인들에게 자작나무는 텡그리(tengri: 天神)가 화신한 나무이다. 고대 터키인들은 동쪽에 심은 자작나무를 향해 자손 번식과 풍요를 기원했다. 이는 박달나무나 자작나무가 모두 「하얀 나무」이며 「빛의 나무」이기 때문이다. 
  
  신단수가 「하얀 나무」이며 「빛의 나무」이듯이, 신단수의 화신인 桓雄은 「하얀 신」이며 「빛의 신」이다. 역으로, 桓雄이 「하늘의 신」이듯이, 신단수는 「하늘의 나무」이다. 
  
  
  남성神과 여성神의 만남
  
서낭당나무.
  우리는 예전에 여인네들이 울긋불긋한 댕기들을 서낭당나무에 치렁치렁 매달면서 아기를 소원했던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울긋불긋한 댕기는 신부 옷으로 치장한 熊女를, 서낭당나무는 熊女의 서낭(신랑)인 「하늘의 신」 桓雄을 상징한다. 
  
  檀君조선의 신성한 나무가 「빛의 나무」 박달나무인 것처럼, 라틴 왕국의 신성한 나무는 「빛의 나무」다. 
  
  라틴 왕국 알바롱가의 시조 아스카니우스-율루스의 아버지 「아이네아스」에게 신성한 나무는 「황금나무가지」이다. 황금나무가지는 네미湖에서 자라는 떡갈나무에 기생한 겨우살이의 나뭇가지이다. 
  
  아이네아스는 떡갈나무에 기생한 황록색 겨우살이 나뭇가지를 꺾어 巫女(무녀) 시빌라와 함께 지하계로 향한다. 아케론江에 이르렀을 때 아이네아스는 뱃사공 카론에게 황금나무 가지를 보여 주고 강을 건넌다. 황금나무 가지는 살아 있는 자가 지하계를 출입할 수 있는 패스포트였던 것이다. 
  
  떡갈나무는 「하늘의 神」 주피터의 나무, 즉 「하늘의 나무」이다. 겨우살이가 달라붙은 떡갈나무는 울긋불긋한 댕기들이 달린 서낭당나무와 마찬가지로 男性神과 女性神의 결합을 상징한다. 겨우살이가 기생한 떡갈나무의 남성神은 주피터이고, 여성神은 다이아나이다. 
  
  황금빛 겨우살이는 「번개」와 「벼락」을 상징하고, 둥그런 네미湖는 「달」과 「물」을 상징한다. 마찬가지로 댕기들이 매달린 서낭당나무의 남성神은 桓雄이고, 여성神은 熊女이다. 번개와 벼락이 하늘도 땅도 아닌 공중에 매달리듯이, 겨우살이가 하늘도 땅도 아닌 공중의 떡갈나무 가지에 기생하듯이, 우리의 울긋불긋한 댕기들은 하늘도 땅도 아닌 공중의 서낭당 나뭇가지에 매달린다.
  
  
  「빛의 神」
  
  로마신화의 주피터는 「빛나는 자」를 의미한다. 주피터는 그리스신화의 제우스(Zeus)와 마찬가지로 그리스語 동사 theo(θεω: 빛나다)에서 파생했다. 그리스語 theos(θεοτ: 神, 「빛나는 자」), 라틴語 deus(신, 「빛나는 자」)도 theo에서 파생했다. 
  
  그리스신화에서 「하늘의 神」은 제우스, 「빛의 神」과 「태양의 神」은 아폴로이다. 그러나 아폴로는 제우스의 아들이므로 제우스에 의해 흡수된다.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神의 아들」 또는 「태양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또한 「아이네이드」에 의하면, 아우구스투스는 주피터의 자손이다. 따라서 아우구스투스의 경우 「태양의 神」(Sol)은 「하늘의 神」(Jupiter)에 의하여 흡수된다.
  
  라틴어 sol, 영어 solar와 동원어(同源語)인 산스크리트語 svar를 분석해 보면 1차적 의미는 「빛」, 2차적 의미는 「하늘」, 3차적 의미는 「태양」이다. 이처럼 어원을 분석해 볼 때, 「하늘의 神」, 「빛의 神」, 「태양의 神」은 결국 하나의 神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桓因, 桓雄, 檀君 또는 알타이어 tengri라는 명칭에서 나타난다. 이 명칭들은 「하늘의 신」, 「빛의 神」, 「태양의 神」이라는 중층적 의미를 지닌다. 
  
  알타이어 계통의 tengri, tengeri, tengere, tangri, tangara, tanr 등 단어에 공통된 「teng」 또는 「tan」과 檀雄, 檀君, 檀樹, 당나무, 당골레 등에 나타나는 한국어의 「단」 또는 「당」은 하늘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또한 태백산, 박달나무, 배달민족 등 단어에 나타나는 「백」, 「박」, 「배」가 빛을 의미한다는 점은 이미 앞에서 밝혔다. 
  
  그렇다면 로마신화의 주피터, 그리스신화의 제우스, 힌두신화의 디아우스, 한국의 桓雄이 모두 「하늘의 神」이며 「빛의 神」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어둠의 女神」과「물의 女神」
  
  빛을 받고 임신한 유화, 황금비를 맞고 임신한 다나에
  
떡갈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 열매「황금나무가지」.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柳花(유화)부인의 아들이고, 라틴 왕국 알바롱가의 시조 아스카니우스-율루스는 비너스의 손자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는 天帝의 아들 또는 檀君으로 불린다. 天帝의 아들이나 檀君은 모두 桓雄의 아들이다. 여기서 天帝의 아들, 檀君 또는 桓雄의 아들은 특정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라기보다는 君王(군왕)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북부여는 고조선보다 훨씬 후대에 건설된 왕국이기 때문이다. 
  
  북부여의 왕이 고조선 왕의 호칭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은 북부여가 고조선의 전통을 계승하는 국가임을 암시한다. 또한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해모수와 유화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설화는 고구려가 고조선의 전통을 승계하는 나라임을 암시한다. 그러한 점에서 고구려 건국설화는 檀君신화를 승계하는 설화이다.
  
  
  빛과 어둠의 결합
  
보티첼리 作, 「비너스의 탄생」.
  고구려 건국설화는 그리스-로마신화나 檀君신화와 동일한 모티브를 갖고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天帝의 아들 해모수는 河伯(하백)의 딸 柳花(유화)와 정을 통한 후에 사라져 버린다. 이윽고 동부여의 금와왕이 나타나서 柳花를 暗室(암실)에 가둔다. 암실에 햇빛이 비친 후에 유화에게 태기가 생긴다. 열 달 후 유화는 아들 주몽을 낳았다. 암실에 갇힌 유화가 빛을 받아서 임신한다는 이야기는 빛과 어둠의 결합을 상징한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로마신화에서 토굴에 갇힌 「다나에」가 황금비를 맞아 임신한다는 이야기와 흡사하다. 버질의 「아이네이드」와 오비드의 「변신」에 의하면, 『외손자에 의하여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은 다나에의 아버지는 딸을 토굴 속에 가두어 버린다. 그러나 황금비로 화신하여 토굴 구멍 속으로 들어간 제우스는 다나에의 몸을 적신다. 여기서 황금비는 「빛의 神」 제우스의 정액을 상징한다.
  
  인도 「리그베다 신화」에서 인드라의 정액은 「비」를 가리킨다. 다나에와 유화부인의 이야기는 빛과 어둠의 결합을 상징하는 이야기들이다.
  
  빛과 어둠의 결합을 상징하는 이야기는 檀君신화에도 나타난다. 檀君신화에서 桓雄과 熊女의 결합은 빛과 어둠의 결합이다. 桓雄, 해모수, 제우스는 모두 하늘과 빛의 神들이다. 桓雄의 박달나무, 해모수의 햇빛, 제우스의 황금비는 모두 빛의 생산성을 상징한다. 
  
  熊女, 柳花, 다나에는 모두 땅과 어둠의 女神들이다. 곰이 21일 동안 숨어 지낸 동굴과 유화가 갇혀 지낸 암실과 다나에가 갇힌 토굴은 모두 어둠의 생산성을 상징한다. 어둠의 공간, 즉 동굴 또는 땅은 빛의 씨앗을 품고 키우는 地母神(지모신)의 자궁이다. 하늘과 땅, 빛과 어둠, 남성과 여성의 결합구조는 황금나무가지(빛)를 선물로 받은 지하계의 女神 프로세르피네(어둠)의 모습에서도 발견된다.
  
  고구려 건국설화에 의하면, 유화는 「암실」, 즉 「땅」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물」을 상징한다. 유화의 아버지 河伯은 물을 다스리는 사람이다. 버드나무가 물가에 자라는 나무라는 점을 생각할 때 「柳花」라는 이름도 「물」을 상징한다. 
  
  주몽이 부여 군사들에 쫓기어 달아나다가 「엄체수」라는 강에 이르러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인데 어찌하면 좋을까?』라고 탄식하였을 때 물고기와 자라들이 나타나 강물 위에 다리를 놓아 준 사건은 그의 어머니 유화부인이 물의 女神임을 확인해 준다. 
  
  그러므로 해모수와 유화의 결합은 빛과 어둠, 하늘과 땅의 결합일 뿐만 아니라 하늘과 물의 결합이다. 하늘과 물의 결합이다. 고구려 건국설화는 하늘과 땅의 결합을 말하는 檀君신화와 다소 달라 보이지만, 「텡그리(하늘)와 예르숩(땅-물)의 뜻에 따라서 칸(khan)이 된」 터키의 왕 빌게 카간의 언급에 비추어 보아, 근본적으로 동일한 신화 패턴에 속함을 알 수 있다. 
  
  하늘과 땅, 하늘과 물의 결합 또는 빛과 어둠의 결합이라는 알타이 계통의 신화는 다이아나 女神의 네미湖와 주피터의 떡갈나무가 알바山 정상에서 만나는 로마신화에서 동일한 패턴이 발견된다. 다이아나는 땅·달·밤·어둠·물을 상징하고, 주피터는 하늘·태양·낮·빛을 상징한다. 
  
  
  유화부인은 사랑의 여신
  
클림트 作, 「다나에」.
  고구려의 시조 주몽을 낳은 유화부인은 사랑·욕망·봄·풍요·물의 여신이다. 유화부인은 河伯의 딸이므로 물의 女神이다. 유화부인이 남편이 아닌 해모수와 정을 통했다는 것은 남편이 아닌 아레스-마르스(Ares- Mars: 전쟁神)와 애정행각을 벌인 아프로디테-비너스와 닮은 데가 있다. 
  
  남편이 아닌 마르스와 정을 통하여 로마의 시조 로물루스를 낳은 라틴 왕국 알바롱가의 공주 「레아 실비아」는 아프로디테-비너스와 닮았을 뿐만 아니라 유화부인을 꼭 닮았다. 유화부인과 레아 실비아는 아프로디테-비너스와 마찬가지로 사랑과 욕망의 女神이라 할 수 있다. 
  
  부여를 떠나 졸본으로 도피한 주몽에게 유화부인은 비둘기 한 쌍을 보내어 보리씨앗을 전해 준다. 보리씨앗은 「봄」과 「풍요」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유화부인은 봄과 풍요의 女神이다. 동굴 속에서 21일 동안 지낸 후 곰에서 사람이 된 熊女 역시 봄과 풍요의 女神이며, 물의 女神이며 어둠의 女神이다. 
  
  동굴 속에서 지내는 곰은 「검다」와 통한다. 熊女는 「빛의 神」 桓雄을 그리워하는 「검은」 女神, 어둠의 女神이다. 겨울 동안 지하계에서 지내야 하는 그리스-로마신화의 프로세르피네이다. 겨울 내내 빛을 그리워하다가 봄이 되면 마침내 지상으로 나와 빛을 받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어둠의 여왕」 프로세르피네이다. 
  
  하늘과 물 또는 빛과 어둠의 결합 모티브는 구약 창세기에서 발견된다. 구약 창세기 1장 1~3절은 다음과 같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神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구약 창세기 1장 1~3절의 영어 텍스트는 다음과 같다.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And the earth was without form, and void; and darkness was upon the 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moved upon the face of the waters.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또한 라틴어 텍스트는 다음과 같다. 
  
  『In principio creavit Deus cælum, et terram. Terra autem erat inanis et vacua, et tenebræ erant super faciem abyssi: et Spiritus Dei ferebatur super aquas. Dixitque Deus: Fiat lux. Et facta est lux.』 
  
  보수적 성서학자들은 혼돈(inanis), 공허(vacua), 흑암(tenebræ), 깊음(abyssi)을 無(무: nihil)로 해석한다. 다시 말하면, 창조 이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에 기초하여, 그들은 구약 창세기에서 말한 창조를 「無에서의 창조」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보적 성서학자들은 혼돈, 공허, 흑암, 깊음을 有(유)로 해석한다. 다시 말하면, 창조 이전에 카오스 또는 원초적 질료라는 有가 존재했다고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에 기초하여, 그들은 구약 창세기에서 말한 창조를 有에서의 창조라고 말한다.
  
  구약 창세기 1장 1절에서 사용된 하나님이라는 라틴어 「Deus」 및 그리스어 「Theos」의 의미를 어원적으로 해석하면 「빛의 神」이며 「하늘의 神」이다. 1장 3절에 의하면 하나님은 말씀에 의하여 빛을 창조한다. 다시 말하면, 「빛의 神」 하나님은 말씀에 의하여 빛을 창조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빛이 빛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동어반복이다. 차라리 「빛은 나타났다」 또는 「빛은 태어났다」라는 표현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장 2절은 『하나님의 神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라고 적절하게 말했다. 「운행하시니라」에 해당하는 라틴어 ferebatur는 「나타났다」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1장 2~3절은 『하나님의 神은 물 위에 나타나서 「빛이여, 나타나라」 하시매 빛은 나타났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깊음=물
  
  그러면 하나님의 神이 다가간 「물(aqua)」은 무엇인가? 문맥상 그것은 앞에 있는 단어들, 즉 혼돈·공허·흑암·깊음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물은 혼돈·공허·흑암·깊음의 동의어이다. 따라서 구약 창세기 1장 1~3절은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다.
  
  『태초에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은 깊음 위에 있었다. 하나님의 神은 물 위에 나타나서 「빛이여, 나타나라」 하시매 빛은 나타났다』 
  
  구약 창세기 1장 1~3절은 「빛으로 가득 찬 하늘인 하나님은 혼돈·공허·흑암·깊음으로 가득 찬 땅 또는 물 위에 모습을 나타냈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태초에 혼돈·공허·흑암·깊음이라는 카오스, 즉 원초적 물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원초적 물을 만나서 함께 세계를 창조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할 때 구약 창세기의 창조는 「하늘과 땅」, 「하늘과 물」 또는 「빛과 어둠」의 협력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인도의 「리그베다」는 세계 창조 이전의 상태를 「깊은 심연」이라고 표현했다. 「리그베다」는 그 심연을 물이며, 어둠이라고 부연 설명한다. 또한 「리그베다」는 깊음, 심연, 어둠, 물만이 존재하는 태초에 「하나(eka)」가 존재했다고 말한다. 「리그베다」에서 말하는 「하나」는 구약 창세기의 하나님과 동일한 역할을 한다.
  
  「리그베다」는 『천신들이 바다 위에 머물렀을 때 뜨거운 기운이 솟았다』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神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라는 구약 창세기의 구절과 유사하다. 더욱이 「리그베다」는 『바다로부터 태양이 태어났다』라고 말한다. 이 구절의 내용은 어둠 위에 빛을 창조한 구약 창세기의 내용과 유사하다.
  
  檀君신화는 「빛의 화신인 桓雄과 어둠의 화신인 熊女의 결합에 의하여 檀君이 태어났다」고 말한다. 주몽설화는 「빛의 화신인 해모수와 물의 화신인 유화부인의 결합에 의하여 주몽이 태어났다」고 말한다. 檀君신화와 주몽설화는 건국 시조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만, 건국 시조 설화는 곧 창세설화이다. 거의 대부분의 신화들은 「빛(하늘)」과 「어둠(땅·물)」의 결합에 의한 세계 창조를 이야기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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