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궐 회흘 위구르

<펌> 돌궐 - 위키

Chung Park 2019. 9. 11. 15:37

돌궐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검색하러 가기
 
돌궐 제1제국의 강역
 
서돌궐의 강역

돌궐(突厥) 또는 곡투르크(고대 튀르크어: ??? ???? [Kök Türük], 터키어: Göktürk)는 중세에 중앙아시아에서 존재했던 민족이다. 돌궐에서는 왕을 카간(Kagan, 중국어: 可汗, 한자음: 가한)이라고 불렀다. 중앙아시아의 아무다리야강 또는 카스피해의 북서 초원 지대에서 발흥한 돌궐은 초대 카간인 부민 카간(중국어: 伊利可汗)과 후대 카간들의 휘하에서 중앙아시아에서부터 동쪽으로 진출하여 동북아시아 초원(현재 몽골지역)의 유연을 멸망시켜 동북아 북방 지역을 제패하고 제1카간국을 세운다. 예니세이강 상류에 있던 몽골로이드 인종인 철륵(카자흐인, 키르기스인)도 돌궐에 합병시킨다. 돌궐의 동진으로 예니세이강 상류의 철륵은 튀르크 문화를 받아들여 카자흐인 키르기스인이 된다.[1] 이후 중앙아시아에서 만주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세력 확장을 펼쳤다. 그러나 후에 동, 서로 분열되어 동돌궐은 멸망하였고 서돌궐은 이슬람을 받아들여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서돌궐이 멸망하고 독립한 투르크계인 하자르 카간국의 오우즈 족이 셀주크 제국의 기원이 되었다. 또한 1299년 투르크족은 오스만 제국을 건설하였다. 샤이바니 칸이 중앙아시아에 국가를 세우면서 오우즈가 어원인 우즈베키스탄이 건국되었다.

고구려와의 대외 관계는 고구려와 동맹이였던 유연을 견제하기 위해서 고구려와 대립하기도 하였고 고구려와 거란 말갈의 지배권을 놓고 대립하다가 돌궐은 고구려와의 동맹으로 당나라에 대항하기도 하였다. 돌궐의 오르혼 비문에서는 고구려와의 동맹에 대해서 적혀있는데 고구려를 "벡클리(맥구려로 추정)"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돌궐인에 대해서는 코카서스 인종, 몽골로이드 인종 등 많은 학자들의 논의가 있었지만 21세기부터 터키 학계의 많은 연구 결과에 따라서 코카소이드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키셀레프와 체르니코프에 의하면 투르크인은 단두형 몽골인, 장두형의 지중해 인종과는 다른 장두형 백인종 전사가 투르크의 원류이다.[2]

어원

한자어 돌궐(突厥)은 투르크 가차(假借)식 표기라는 설이 있다. 한편 주서 이역전(異域傳)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금산(알타이산맥)의 남쪽에 살며 여여(유연)을 위하여 철공 일을 하였다. 금산의 모양이 투구와 비슷하였는데, 그들이 관습적으로 투구를 돌궐이라고 했기 때문에 마침내 이를 이름으로 삼았다."[3]

아메리칸 헤리티지 사전(American Heritage Dictionary)에 따르면 고대 투르크어로 투르크(Türk)는 '강하다'라는 의미이다.[4]

기원

돌궐은 중앙아시아 유목민족 역사상 최초로 문자를 독자적으로 발명하여 그들 자체의 사료라 할 수 있는 오르혼 비문을 남겨 놓았지만 해당 비문에는 그들의 기원에 관련된 기록은 적어놓지 않았다. 문자에 대해선 최근에는 흉노에도 고유 문자인 "탐가"가 발견되었으며 중앙아시아에서 탐가라고 불리는 이 문자들과 돌궐 문자의 연관성이 연구되고 있다.

 

돌궐의 기원문제와 관련해서 중국인이 쓴 사서 가운데 주서, 북사, 수서, 신당서 등에는 사료가 존재한다. 주서에는 돌궐의 기원과 관련해서 두 가지의 사료가 존재하는데 첫번째는 돌궐은 흉노의 별종이고 그들의 성은 아사나씨(阿史那氏)라고 기술되어 있다. 북사가 전하는 사료의 대부분은 주서에 전하는 첫번째 사료의 내용과 거의 같다. 수서에도 돌궐의 기원과 관계해서 두 가지 내용의 사료가 존재하는데 첫번째 사료에는 돌궐의 선조는 평양(수서에서 평양은 고구려를 뜻한다)에 거주한 잡호이며[5] 성은 아사나씨인데 아사나의 500가(家)가 유연으로 도망가서 금산(金山)에 기거하면서 철작(제철)에 종사했다고 전한다.

수나라, 당라나와의 전쟁

수나라, 당나라 시기에 북방 초원의 강자로 등장한 세력은 돌궐이었다. 돌궐은 선비족의 북주와 북제를 복속시키고 조공을 받았다. 중국지역의 오랜 전쟁을 끝내고 589년 한족들을 정복한 선비족 정복왕조 수나라가 대륙을 통일했을때, 당시 북방의 돌궐과 수나라가 대치하게 되었다. 몽골지역에서 유연을 멸망시킨 새로운 패권자 돌궐은 수나라와 대립관계가 된다. 6세기 후반, 돌궐이 동돌궐과 서돌궐로 분열되자 수나라는 서돌궐이 동돌궐을 공격하도록 부추겨 동돌궐은 약화되었다. 수나라와 돌궐의 전쟁이 멈추자 수나라는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그러나 고구려 침략에 실패하고 패망한 수나라는 멸망하고 한족들을 정복하는데 재미보던 무천진 8주국 관롱집단의 선비족들이 당나라를 세우는데 당나라가 건국될 당시 돌궐은 다시 세력을 회복해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였다. 돌궐의 막강한 군사력에 공격당한 당나라는 돌궐에게 신하로서 복종하고 양국의 군신관계가 성립된다.

같이 읽기

각주

  1.  Halil İnalcık, Osmanlı İmpartorluğu 2 Cilt Takım-Kutulu
  2.  Halil İnalcık, Osmanlı İmpartorluğu 2 Cilt Takım-Kutulu
  3.  居金山之陽,為茹茹鐵工。金山形似兜鍪,其俗謂兜鍪為「突厥」,遂因以為號焉。
  4.  “The American Heritage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 Fourth Edition - "Turk". bartleby.com. 2000. 2007년 1월 1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5.  돌궐의 선조는 평양잡호(平凉雜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