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서천왕 (270-292) - 삼국사기

2020. 9. 6. 01:24고구려 상(BC37-AD 391)/차대왕 - 봉상왕 (146-300)

서천왕

코렐솔라

서천왕[혹은 서양왕이라고도 한다.]의 이름은 약로[약우라고도 한다.]이며, 중천왕의 둘째 아들이다. 성격이 총명하고 어질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를 아끼고 존경하였다. 중천왕 8년에 태자가 되었고, 23년 겨울 10월에 왕이 별세하였다. 태자가 즉위하였다.


2년 봄 정월, 서부 대사자 우수의 딸을 왕후로 삼았다.
가을 7월, 국상 음우가 죽었다.
9월, 상루를 국상으로 삼았다. 상루는 음우의 아들이었다.
겨울 12월, 지진이 있었다.


3년 여름 4월, 서리가 내려 보리가 피해를 입었다.
6월, 큰 가뭄이 들었다.


4년 가을 7월 초하루 정유일에 일식이 있었다. 백성들이 굶주리므로 창고를 풀어 구제하였다.

7년 여름 4월, 왕이 신성[어떤 사람은 ‘신성은 동북 지방에 있는 큰 진(鎭)’이라고 말한다.]에 가서 사냥하다가 흰 사슴을 잡았다.


가을 8월, 왕이 신성에서 돌아왔다.


9월, 이상한 새가 대궐에 모였다.


11년 겨울 10월, 숙신이 침입하여 변방 백성들을 죽였다.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말했다.

 

“내가 미미한 몸으로 외람되게 왕위를 이었으나, 나의 덕은 백성들을 편하게 할 수 없고, 위엄은 먼 곳에 떨치지 못하여, 인근의 적들이 우리 강토를 침범하게 하였다. 이제 지략있는 신하와 용감한 장수를 얻어 외적을 부수고자 하니, 너희들은 각각 특출한 계략을 지녀 장수가 될만한 인재를 천거하라.”


여러 신하들이 모두 말했다.


“왕의 아우 달가는 용맹스럽고 지략이 있어 대장이 될만 합니다.”


왕은 곧 달가를 보내 숙신을 치게 하였다. 달가가 뛰어난 계략으로 적을 기습하여 단로성을 빼앗고, 추장을 죽이고, 주민 6백 여 호를 부여 남쪽 오천으로 옮기고, 6․7개소의 부락을 항복하게 하여 부용으로 삼았다. 왕이 크게 기뻐하여 달가를 안국군으로 삼고, 서울과 지방의 군사에 관한 일을 맡겼으며, 겸하여 양백․숙신 등의 여러 부락을 통솔하게 하였다.

 


17년 봄 2월, 왕의 아우인 일우․소발 등의 두 사람이 모반하여, 병을 핑계대며, 온탕으로 가서 자기 무리들과 방종하게 놀며, 불온한 언사를 퍼뜨렸다. 왕이 국상을 시키겠다고 거짓말을 하여 그들을 불렀다. 그들이 도착하자 왕이 역사를 시켜 죽였다.


19년 여름 4월, 왕이 신성에 갔다. 해곡 태수가 고래의 눈을 바쳤는데 밤에도 광채가 났다.
가을 8월, 왕이 동쪽 지방에서 사냥하다가 흰 사슴을 잡았다.
9월, 지진이 있었다.
겨울 11월, 왕이 신성에서 돌아왔다.



23년, 왕이 별세하였다. 서천 언덕에 장례를 지내고, 호를 서천왕이라 하였다

 

一年冬十月 서천왕이 즉위하다 (270)
二年春一月 우수의 딸을 왕후로 삼다 (271)
二年秋七月 국상 음우가 죽다 (271)
二年秋九月 음우의 아들 상루를 국상으로 삼다 (271)
二年冬十二月 지진이 일어나다 (271)
三年夏四月 여름에 서리가 내려 보리가 피해를 입다 (272)
三年夏六月 가뭄이 들다 (272)
四年秋七月一日 일식이 일어나다 (273)
四年秋七月 창고를 열어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다 (273)

274-275 : 2년 공백 


七年夏四月 신성에서 흰 사슴을 잡다 (276)
七年秋八月 신성에서 돌아오다 (276)
七年秋九月 신기한 참새가 궁궐에 모이다 (276)

 

277-279 : 3년 공백 


十一年冬十月 왕의 동생 달가를 보내 숙신의 단로성을 빼앗다 (280)

 

281-285 : 5년 공백 


十七年春二月 왕의 동생 일우와 소발이 반역을 도모하다 (286)
十九年夏四月 신성에 행차하다 (288)
十九年秋八月 흰 사슴을 잡다 (288)
十九年秋九月 지진이 일어나다 (288)
十九年冬十一月 신성에서 돌아오다 (288)
二十三年 서천왕이 죽다 (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