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옥저는 스위스 북쪽 Augusta Raurica에 있었다.

2021. 2. 25. 04:53한민족 역사/고구려

부제 : 고주몽이 정벌한 행안국은 스위스 서쪽 Noviodunum에 있었다

 

 

고구려의 시조 추모왕 즉 고주몽이 정벌한 행안국과 북옥저의 위치를 주정하고자 한다.

 

고주몽은 BC 34년 비류국을 합병한데 이어,

 

2년후 BC 32년 부분노 장군을 시켜  행안국을 정벌했다.

 

그리고 다시 4년후 BC 28년 북옥저를 부위염 장군을 통해 정벌했다.

 

이것이 삼국사기에 나오는 기록이다.

 

 

필자는 최근에 프랑스에 있는 Rhone River가 압록수 즉 요수라 추정했다.

 

그리고 이어서 고주몽의 졸본부여의 졸본천은 Rhone river의 지류 Jabron river라 했다.

 

비류수가 있는 비류국은 프랑스 Vienne(Isere) 지역이라  추정했다.

 

특히 Vienne 시의 문장(Coat of Arms)은 (다른 도시가 주로 사자 등 동물인데) 나무이다.

 

비류국의 송양은 소나무송(松) 자이다. 그래서 소나무는 아니지만 성스러운 나무로 했는지도 모른다.

 

 

Coat of Arms for Vienne city in France (source : Wikipedia)

 

 

 

그리고 졸본, 비류국, 행안국, 해두국 모두 백두산 근처 10국중의 하나임을 기억하자.

 

행안국에 대한 한국사 자료는 백두산 부근에 있고 고주몽에 의해 정벌되었다는 기록외에는 별로 없다.

 

백제의 동성왕 시기에 남제에 보낸 서신에서 찬수류를 행안국장군 벽중왕에 봉한다는 기록이 있다.

 

즉 행안국은 백두산에 가까우면서도 백제의 영역이 될 수 있는 지역에 있다는 것이다.

 

해두국이 백두산 근처 압록수 상류에 있으면서도 마한의 거수국이라는 것과 같이

 

한반도 식민사학자들에게는 위치추정이 안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가지 전제는 론강이 압록수이고 몽블랑산이 백두산이 되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필자는 고주몽이 정벌한 비류국을 추정하는데 있어 Julius Caesar의 정벌 기록을 고려하였다.

 

그래서 Julius Caesar의 추가 정벌 기록을 보면, 비류국인 Vienne (BC 47) 외에 두 지역이 추가된다.  즉 1-3년후 스위스 서쪽 Noviodunum (BC 46-44)과 이어서 스위스 북쪽에 있는 Augusta Raurica (BC 44) 지역이다.

 

공교롭게도 고주몽의 비류국 정벌 (BC34)이후 2년후 부분노 장군에 의한 행안국 정벌 (BC 32)과 다시 4년후 부위염장군에 의한 복옥저 정벌 (BC 28)이 이어진다.

 

그래서 이를 비교해 보면 행안국의 위치를 스위스 서쪽 Noviodunum으로 추정할 수 있다.

 

 

"Noviodunum or Colonia Iulia Equestris was a Roman era settlement in what is now Nyon in the Canton of Vaud in Switzerland....

 

The name Colonia Iulia Equestris is more descriptive. A colonia was originally a Roman outpost established in conquered territory to secure it. Eventually, however, the term came to denote the highest status of Roman city. Iulia refers to either Julius Caesar or Gaius Julius Caesar Augustus.[2] The first settlers in the Colonia were army veterans, especially cavalrymen or equester which led to the name Equestris.[1]

........

 

History

Foundation

 

Colonia Iulia Equestris was most likely founded by Julius Caesar in 46-44 BC.[1] It was established on land taken from the Helvetii as a Colonia for cavalry veterans. The original functions of the Colonia were to provide land for veterans and military bases in conquered territory. Noviodunum was part of a loose network of settlements that radiated out from Lugdunum (modern Lyon, France) and helped to control the Rhone Valley. It served, along with other Roman colonies in the area, to control the Helvetii who were settled in the area against their will after their defeat at the Battle of Bibracte in 58 BC.

 

 

........

Trade

 

The Colonia, which was located along roads with Lyon, the capital of the Gauls, Aventicum, Augusta Raurica, Valais and Italy and connected by waterways to the Mediterranean and the Rhine was benefited from trade across the western Roman Empire."

 

(source : Noviodunum, Wikipedia) 

 

 

 

상기 자료를 보면 Noviodunum은 Julius Caesar가 BC 46-44년에 세운 도시로, 원래 Helvetii족으로부터 빼앗은 것이다.  그리고 Helvetii 를 BC 58년 Saone-Loire river 지역 전쟁에서 격파한 후 이들을 이주시킨 후 이들을 통제 하기 위해서 또한 경기병의 주거지와 군사적인 기지로 이용하였다.  그래서 Noviodunum은  Gaul족의 수도 Lyon에서 라인강에 이르는 상업적 교통로의 역할도 했다고 한다. 따라서 행안국은 Helvetii가 원래 있는 Saone river지역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태백산의 동남쪽에 있는 행안국을 정벌했다는 자료도 있으므로 Noviodunum 지역으로 추정한다.

 

 

이어서 BC 28년에 고주몽 시절 정복한 북옥저는 스위스 중앙 북쪽 끝 Augusta Raurica 로 추정된다. Julius Caesar시절 BC 44년 정벌했지만, 이후 Augustus 황제시 BC 15년 추가로 정벌하여 로마 식민지로 완성하였다고 기술된다. Rauraci족은 Helvetii와 동류의 종족이라 한다.

 

북옥저는 두만강 가에 있다고 했는데, 동으로 흐르는 두만강이라면 유럽에서는 이태리 북부의 Po River가 해당된다. 비슷한 위치이다. 그러나 두만강이 남북으로 흐른다면 Rhine river가 된다. Raurica는 Rhine river의 남단에 있다고 했다.

 

 

"Augusta Raurica is a Roman archaeological site and an open-air museum in Switzerland located on the south bank of the Rhine river about 20 km east of Basel near the villages of Augst and Kaiseraugst. It is the site of the oldest known Roman colony on the Rhine.

 

 

Augusta Raurica, or Colonia Augusta Rauracorum, was founded by Lucius Munatius Plancus around 44 BC in the vicinity of a local Gallic tribe, the Rauraci, relatives of the Helvetii. No archaeological evidence from this period has yet been found, leading to the conclusion that, either the settlement of the colony was disturbed by the civil war following the death of Julius Caesar, or that Plancus' colony was actually in the area of modern Basel, not Augst.

 

Successful colonization of the site had to wait for Augustus' conquest of the central Alps around 15 BC."

 

(source : Augusta Raurica, Wikipedia)

 

 


아래 사진들은 Augusta Raurica에 있는 모습인데, 고조선 시대의 성곽같은 느낌이 든다.

 

옥저는 예맥계이다. 그러나 고구려와는 민며느리제 등으로 약간의 풍속이 다르다. 옥저는 풍요로운 농업생산이 있었다. 북옥저는 BC 28년 고주몽에게 멸망 당했다고 하나, 244년 위의 관구검 침략시 고구려에 귀속되었다는 것을 보면 고주몽이후에도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아래 자료 참조) 상기 위키피디아 자료에서도 아우구스투스에 이르러 완전히 로마 식민지가 되었다고 기술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아래 글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즉 북옥저지역에 모용선비의 공격을 받은 북부여 왕가가 자리 잡고, 동부여라고 칭했다는 것이다. 즉 동부여 자리가 과거 북옥저 자리였다는 것이다.

 

상기 Augusta Raurica 지역이 동부여가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광개토태왕의 정벌 내용을 보면서 동부여가 이태리 북부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어 고심해 왔다.

 


"옥저는 옥저만의 풍속을 만들어가며, 정체성을 확립했으나, 동옥저는 태조대왕 56년, 학계에 이견 없이 멸망당했으며, 북옥저는 28년 동명성왕에게 멸망당했다고 알려져있으나, 244년 관구검의 침략에 고구려에 귀속되었다는 기사도 있다. 후에 북옥저 지역에 모용선비의 공격을 받은 북부여 왕가가 자리잡고, 이 나라를 동부여라고 부르나 옥저를 이어받진 않았다."

 

(자료 : 고구려-옥저 관계, 나무위키)

 

 

 

Temple at Augusta Raurica (source : Wikipedia)

 

 

Remains of amphitheatre at Augusta Raurica (source : Wikipedia) 


 

Castrum Rauracense (source : Wikipedia)

 


Basilica at Augusta Raurica (source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