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궐은 북유럽의 누구인가?

2022. 10. 4. 07:22한민족 역사/기타

I. 머리말

 

필자는 그동안 돌궐의 정체와 위치에 대해 계속 연구해 왔다. 지난 3개의 글, "돌궐은 북해의 Saxons족인가?", " 바이킹은 한민족과 연관이 있는가?", "바이킹의 활동지역과 한민족 연관성(2)"에서, 돌궐이 Saxons족 또는 바이킹의 선조들과 관련이 있을 수 있음을 밝혔다.

 

그런데, 사실, 필자는 511년경 Danish King Chlochilaicus이 프랑크왕국 북쪽 해변을 raids한 기록을 보고, 돌궐이 Saxons족이 아닌 Danes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이들이 후에 바이킹이 되기에, 바이킹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이킹의 선조격인 Danes와 Saxons족의 연관관계를 찾지 못한 필자에게는, 돌궐의 잦은 중국 침입의 역사가, 프랑크왕국에게 자주 침범한 Saxons족의 역사와 매우 기록이 드문 Danes족의 프랑크 침범에 고민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위키피디아 자료가 아닌 World History Encyclopedia자료 (영국 출처 자료)를 보니, 아래와 같이 Saxons족과 Danish의 연관관계가 나타난다.  즉 프랑크왕국의 Charlemagne왕과의 33년 전쟁을 한 Saxons족이 Danes족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기록이다. (아래 자료 참조).

 

33년동안 프랑크왕국과 전쟁을 한 Saxons족은 단지 독일 북부지역만의 세력으로는 불가하였을 것이다. 즉 Britain에 이주한 Saxons족의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위키피디아 자료에서 독일 북부지역에 있던 Saxons족이 Britain지역의 Saxons족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기록을 본 것으로 기억한다.  따라서 Danes족과 Saxons족의 연계를 생각할 수 있고, 돌궐의 중국에의 침입은 이들의 연합세력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프랑크왕국 역사 자료를 자세히 중국사에서 돌궐의 활동이 기록되는 모든 기간에 걸쳐 살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문화적으로 어디가 더 돌궐에 유사한가를 알고자 한다. 그래서 돌궐에 대해 중국사의 원문 자료를 다시 보게 되었다. 

 

"Throughout the 9th century CE, Viking raids on the region of Francia (roughly modern-day France) increased in frequency, destabilizing the region, and terrorizing the populace. The raids seem to have been inspired by the death of the Holy Roman Emperor Charlemagne in 814 CE or, at least, correlated with it. Charlemagne (king of the Franks, 768-814 CE; Holy Roman Emperor, 800-814 CE) had led numerous military campaigns on Saxony during the Saxon Wars (722-804 CE), slaughtering thousands, and seemed invincible in battle. The Saxons appealed to the Danes for help and Denmark did what it could. "

(source : Viking Raids on Paris, Joshua Mark, World History Encyclo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티스토리, Hidden Corea, 카테고리 , Norse)

 

 

II. 중국사 원문에서의 돌궐족의 유래 역사기록

1. 북사 돌궐 열전 기록

 

아래 기록을 보면 돌궐의 선조가 서해 오른편에 살았는데 흉노의 별종이며 성은 아쉬나씨이다. 이웃나라에 멸망당하여 아이 하나가 남았는데, 이리가 젖을 먹여 키우고, 10자녀를 낳아 이후 10성이 되어 펴져갔다 했다. 필자는 이러한 기록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즉 늑대를 토템으로 하는 부족의 도움을 받아 돌궐이 멸망당한 후 그 핏줄이 살아 남았다는 것이다. 단군이 곰과 결혼한 환웅의 아들로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이다. 즉 단군은 곰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과 환웅의 연합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오손의 살아 남은 아이가 늑대의 젖을 먹고 살아 남았다는 이야기와 똑 같다. 즉 은유적인 표현이다. 

 

돌궐의 선조가 서해 오른편에 살았다는 것은 대서양의 오른쪽 즉 스칸디나비아 지역에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기존의 사학계는 돌궐을 중앙아시아 세력으로 말하는데, 여기서 서해를 어떻게 해석할 지 궁금하다. 필자는 한국사 고구려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서해를 대서양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서해의 동쪽 고창국도 스칸디나비아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돌궐은 그 선조가 서해(西海) 오른편에 살았는데 홀로 부락을 이루었는데 대개 흉노의 별종이다. 성(姓)은 아쉬나(Ashina, 阿史那) 씨이다

나중에 이웃나라에 격파당하여 부족이 모두 멸망하였다

아이가 하나 남았는데 나이가 10세였다

이웃나라의 병사가 그 어린 것을 보고는 차마 죽이지 못하고 발과 팔을 잘라 풀과 늪이 있는 곳에 버려두었다

 

암이리가 고기를 먹여 키웠는데 성장하여 이리와 교합하여 잉태하였다

이웃나라 왕이 아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듣고는 다시 사람을 보내어 죽이게 했다

사자(使者)가 그 곁에 이리가 있는 것을 보고 이리도 같이 죽이려 하였다

이때 신물(神物) 같은 것이 나타나 이리를 서해의 동쪽 고창국(高昌國) 서북산에 떨어뜨렸다

 

산에는 동굴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풀이 무성한 평지가 있었고 둘레는 수백 리나 되었으며 사면이 모두 산이었다

이리는 그 속에 숨어 마침내 열 아들을 낳았다

열 아들이 자라 밖으로 나가 아내를 얻고 자손을 낳으니 제각기 10성(姓)을 가졌다

아쉬나는 그 중의 한 성으로 가장 현명하여 마침내 군장(君長)이 되었다

아문(牙門)에 늑대 머리를 그린 깃발를 걸어 놓는데 그 근본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자손이 차츰 번성해 수백 가구를 이루었다

몇 세대가 지난 후 아현설(阿賢設)이 부락을 이끌고 동굴에서 나와 연연(蠕蠕)의 신하가 되었다"

(󰡔�北史󰡕�, 卷99, 「突厥 列傳」)

[출처] [옮긴글] 돌궐(突厥)의 발생과 계보(系譜)|작성자 청도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돌궐, 공유글, (옮긴글)돌궐의 발생과 계보)

(청도님이 인용한 원자료를 찾지 못해 적지 못했습니다. 다음블로그는 현재 서비스 중단했습니다. )

 

2. 수서 돌궐 열전 기록

 

아래 수서 돌궐열전의 기록에서 눈에 띠는 것은 돌궐의 선조가 고구려 (평량)의 일부였다는 것이다.  북위 태무제에 의해 밀려 금산(金山)에 살면서 제철일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금산의 모양이 투구와 비슷하고 투구를 돌궐이라 하여 돌궐족이라 불렸다는 것이다. 아래 사진의 바이킹의 헬멧이 투구로서 특이한데, 철공일을 하지 않았으면 만들기 힘든 모형이다. 즉 돌궐족과 바이킹, 스칸디나비아와의 연관성이 나타난다. 고창국 서북산에 이동하였다는 것은 West Gotaland (아래 지도 참조)로 이동했다는 것이 아닌가 추정한다. 

 

아래 글은 필자가 쓴 글, "돌궐은 북해지역의 Saxons족인가?"라는 글에서 인용한  글인데, 이중 삭슨족을 Kouadoi라 불린다고 했다. 돌궐과 발음이 비슷하다. 따라서 바이킹의 선조인 Danes족과 Saxons족의 연합 또는 이들 모두를 돌궐이라 하지 않나 생각하는 바이다.  

 

"근대에 있어 삭슨이란 이름에 대해 처음으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언급은 AD 365년부터인데, 후에 로마 황제가 되는 Julian이 Gaul지역에서 그의 경쟁 황제인 Magnentius의 동맹으로서 한 연설에서 삭슨을 언급했다. Zosimus도,  Kouadoi 이라 불리는, 특별한 부족 삭슨을 언급했는데, 이 Kouadoi (콰도이, 돌궐?)이라 불리는 부족은 Chausi 또는 Chamavi를 오해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들은 라인강지역(Rhineland)으로 들어가, 이제 막 정착한 Salian Franks를 Batavi지역에서 쫓아냈다. 일부 Salian은, Julian의 지원을 받아,  벨기에인 영토 Toxandria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 돌궐의 선조는 평량(平凉)의 잡호(雜胡)이다

성(姓)은 아쉬나(Ashina, 阿史那) 씨이다

 

후위 태무제가 저거씨(沮渠氏)를 멸할 때 아쉬나 씨는 오백가가 여여(茹茹 ; 유연)로 달아나 대대로 금산(金山)에 살면서 쇠 만드는 일을 했다

 

금산(金山)의 모양이 투구와 비슷하고 그 속어(俗語)에 투구를 ‘돌궐’(突厥, Turk)이라 하므로 이에 따라 돌궐이라 불렸다

 

Viking Age Helmet (source : Wikipedia)

혹은 전하기를 그 조상되는 나라는 서해(西海) 가에 있었는데 이웃 나라에게 몰살당하니 남녀노소를 모두 죽였다

한 아기가 남았는데 차마 죽이지 못하고 팔과 발을 잘라 큰 늪에 버렸다

암이리 한 마리가 있어 늘 고기를 물어 그 곳에 이르니 아기가 그것을 먹고 죽지 않았다

그 후 드디어 암이리와 교합해 이리가 수태하게 됐다

 

이웃 나라에서 다시 사람에게 명하여 그 아이를 죽이게 하였는데 그 옆에 이리가 있었다

사자(使者)가 이리를 죽이려 하였으나 그 이리는 신이 들린 듯 갑자기 (날아올라) 해동(海東)에 이르러 산 위에 멈추었다

 

그 산은 고창(高昌)의 서북에 있었는데 밑에 동굴이 있어 이리는 그 속으로 들어갔다

굴 안은 평지에 풀이 무성하여 주위가 이백 리가 넘었다

그 후 이리는 아들 10명을 낳았는데 그 하나가 아쉬나씨였다

 

그가 가장 현명하여 마침내 군장(君長)이 되었고 아문(牙門)에 늑대 머리를 그린 깃발를 걸어 놓는데 그 근본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隋書󰡕�, 卷84, 「突厥 列傳」)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돌궐, 공유글, (옮긴글)돌궐의 발생과 계보)

 

3. 주서(북주) 돌궐 열전 기록

 

아래 북주서의 기록은 북제와 북주위에 군림한 돌궐의 위세를 나타낸다. 북주의 수도에 돌궐인들이 수천이나 거주했다. 그리고 북주가 돌궐의 도움을 얻어 북제와 교전했다. 북제, 위키백과 자료에서는 북제가 돌궐의 도움을 얻어 북주를 여러 번 물리쳤다고 했다. 즉 돌궐은 북제나 북주 편을 들며, 이들의 전쟁에 관여 하며, 그 부강함에 북주, 북제 모두 두려워하며 돌궐에게 공물을 바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이미 돌궐의 침범의 역사가 있어 화친을 맺고 공물을 바치고 있다는 뜻으로 읽혀진다. 

 

"당시 제나라와 교전할 때라 해마다 군대를 동원했기 때문에 매번 돌궐과 연결해 외원(外援)으로 삼았다.…… 이래 그 나라는 부강해 중국을 능멸하려는 뜻이 있었다. 조정은 화친을 맺고도 해마다 繪絮錦采 십만 필을 주었고 수도에 있는 돌궐인을 모두 후히 대접하니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호화스럽게) 사는 자가 수천이었다. 제나라는 그들의 침략이 두려워 역시 나라 살림을 기울여 증물(贈物)을 보냈다. 타스파르(陀鉢)는 더욱 교만해져 그 부하들을 거느리며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즉 “우리에게 남쪽의 효순(孝順)한 두 아이 놈(북주와 북제)만 있다면 무엇 때문에 재물이 없을 것을 걱정하겠는가?”

(󰡔�周書󰡕�, 卷50, 「突厥 列傳」)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돌궐, 공유글, (옮긴글)돌궐의 발생과 계보)

 

4. 한국 나무위키의 돌궐자료 

 

아래 나무위키 자료 중 특이한 것은, 돌궐이 색국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색국은 스키타이를 말하는데, 필자는 스키타이 민족의 일종인 키메리언이 중앙아시아에서 연유하여, 서진을 계속하여, 프랑크 왕국까지 이르렀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늑대를 표상으로 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북사에 북녘의 색국의 아방보 부락의 이리 소생인 이질 니사도가 아방보가 망한 뒤, 여름신과 겨울신과 결혼하여 4 아들을 낳았다 했다. 북녘의 색국이라는 것은 북쪽의 스키타이라는 것이다. 북사니 중국의 북쪽에 있는 지역이다. 필자는 중국의 위치를 프랑스지역으로 추정한다. 그러므로 북쪽은 스칸디나비아 방향이다. 문무님이 추정한 우제돌궐지역인지도 모른다.

 

즉 스칸디나비아지역의 아방보에서 망하여 여름신과 겨울신과 결혼하였다고 했다. 즉 따뜻한 지역과 추운지역의 세력과 연합하여 4부족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흰기러기를 포상으로 하며, 나머지 두 아들은 강가(검수와 아보수, 처절수)에 있는 부족이 되었고, 큰 아들 늘도육설은 추운 지방의 여러 부락을 지배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중국의 사서인 신당서 북적편을 보면 돌궐의 카간이 당나라 사신한테 "티베트는 의 자손이고, 거란족과 해족은 우리의 노예인데 왜 당나라는 그들한테는 공주를 시집보내면서 우리한테는 안 보내는가?"라고 화를 내는 내용이 언급된다........

 

돌궐의 기원에 대해서 돌궐인이 지은 오르혼 비석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사서에서 엿볼 수 있는데 주서에서는 과거에 존재했다 이 시점에는 사라진 흉노의 별종(別種)으로 나와있으며[5] 수서에서는 돌궐의 선조가 아사나씨(阿史那氏)로 원래 평양(平凉은 수서에서 고구려(高句麗)를 부르는 호칭이다.)의 잡호(雜胡,호족)였는데 아사나씨의 500호가 유연으로 도망하여 야금업(冶金業, 제철)에 종사하였다고 한다.  

 

또한 색국(塞國, saka로 추정되며 사카는 스키타이이다.)에서 나왔다고도 한다. saka에서 나왔다는 말과 같이 Tranoid 서양계 유목민으로 본다. 한문 사료에 기록된 돌궐의 신화를 보면 대개 이리를 돌궐의 시조로 삼고 있다.

 

<북사> 등에는 북녘 색국의 아방보(阿諸步) 부락의 17[6]명의 아들 중 하나이자 이리의 소생인 이질니사도(伊質泥師都)가 아방보가 망한 뒤 여름 신 및 겨울신과 혼인하여 아들 넷을 낳았는데, 그 중 한 명이 흰 기러기로 변했으며, 또 다른 한 명이 검수(劒水)와 아보수(阿輔水) 사이에서 키르기즈를 세웠고, 또 한 명이 처절수(處折水)에서 나라를 세웠다. 큰아들인 눌도육설(納都六設)은 발사처절시산(跋斯處折施山)에 살며 추위로부터 여러 부락을 구제해냈다고 전하고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551년에 경쟁관계인 유연과 우호적인 고구려의 신성, 백암성을 직접 공격하기도 했는데 고흘 장군의 맹활약으로 실패했다......

 

 이 시기 중국 북부는 북제와 북주가 다투고 있어 신흥제국 돌궐과는 서로 우호관계를 맺으려 했다. 당시 선비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북제, 북주를 건국하였는데, 돌궐은 중국을 공격하고 영토를 넓혀 속국으로 만들었고, 북제 북주의 중국의 분열은 돌궐에게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돌궐의 4대 카간이었던 타스파르 카간(Taspar Qaghan, 타발가한[佗鉢可汗])은 조공을 바치는 북주와 북제를 두고 "내가 남쪽의 두 아이들을 효순하게만 하면 어찌 물자가 없음을 걱정할 필요가 있겠는가"[7]라고 할 정도였으니 그 위세를 짐작할 수 있겠다....

 

(자료 : 돌궐, 나무위키, 인용출처 : 필자의 다음블로그, 카테고리, 돌궐)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바이킹의 활동지역을 참고하면, 강이 많은 지역은 덴마크의 Juteland 반도지역이며, 추운 지방은 노르웨이나 아이슬란드나 그린란드지역 등이 떠오른다. 즉 돌궐의 북사 자료를 보면, 돌궐은 삭슨족보다는 바이킹의 선조인 Danes족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이후 자료에서 보면 알겠지만, 스칸디나비아 구전 시에 나오는 Beowulf는 늑대와 관련성을 암시하고 있으며, Beowulf는 아버지를 도와준 Danes 왕 Hygelac을 도와 프랑크 북쪽 Frisia지역 침범 전쟁에 참가한다. 즉 늑대, 이리와 관련설화가 있다는 것이다. 스키타이족의 일종인 키메리언은 가는 곳마다 (중앙아시아 페르시아지역, 아나톨리아, 동유럽의 Dacia지역) 늑대와 연관을 가지므로 크게 이상하지 않지만, 핵심은 스칸디나비아지역에도 늑대설화가 있는 것은 이들도 스키타이와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녘의 색국은 스칸디나비아지역이 되는 것이고 돌궐이 이지역과 원천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것이 된다. 

 

III. 스칸디나비아 역사에서의  프랑크 침입 역사

 

프랑크왕국 Theuderic I왕은 Austrasia지역 왕으로 511-534년 기간동안 재위했다. 그런데 그의 초기 재임시기에, 아들 Theudebert를 보내 그들 왕국을 침범한 스칸디나비아 왕 Chlochilaich를 죽이라고 보냈다고 아래에 기술되었다.  즉 스칸디나비아왕이 프랑크왕국의 동쪽 Astrasia지역을 511년경 침범한 것이다.  이러한 기록은 필자가 중국에 침입한 돌궐의 정체가 삭슨족이 아닌 Danes족일지 모른다는 추정을 하게 했다. 이후 많은 기간동안 자료를 살펴 보아야 판단할 수 있겠지만, 바이킹의 문화와 그들 선조인 Danes 족, Swede족에 대해 더 살펴보는 것은 이러한 가능성 때문이다. 

 

"Theuderic I[a] (c. 485 – 533/4) was the Merovingian king of Metz, Rheims, or Austrasia—as it is variously called—from 511 to 533 or 534.

 

He was the son of Clovis I and one of his earlier wives or concubines (possibly a Franco-Rhenish Princess, Evochildis of Cologne).[1] In accordance with Salian tradition, the kingdom was divided between Clovis's four surviving sons: Childebert I in ParisChlodomer in Orléans, and Chlothar I in Soissons. Theuderic inherited Metz in 511 at his father's death. Early in his reign, he sent his son Theudebert to kill the Scandinavian King Chlochilaich (Hygelac of Beowulf fame) who had invaded his realm.[2]

(source : Theuderic I (r 511-534, Austrasia),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 카테고리, 프랑크왕국 (481-613))

 

그럼 이제 실제 이러한 침범의 주인공, 즉 Danes족과 연관된 스칸디나비아들에 대해 알아 보고자 한다. 먼저 요약하면 이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1. 돌궐 - 바이킹 철모와의 연관성, 야금업 (제철)

 

이미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돌궐의 이름은 투구에서 비롯되었는데, 금산(金山)의 모형이라 했다. 금산이 어느 곳인지 모르겠으나, 고구려의 일부였으니, 유럽의 북쪽 어디인데, 야금업을 했으니, 철의 산지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스웨덴의 발틱해 주변에 철광산이 있는데, 이미 수천년의 역사가 있으며, 아래 자료에서 보듯이 유럽 철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여기서 나는 철은 조그만 조각의 철로서 생산되어 마을의 제련에도 적당하다는 것이다. 즉 중세의 야금업에 더 적당한 철광산이라는 것이다. (덴마크는 Greenland에 철광산이 있다고 한다.) 금산을 금(Gold)이 나는 산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스웨덴에는 구리, 철, 금이 많이 나는 국가이다. (아래 지도 참조) 그러나 금산에 살면서 철을 만드는 일을 했다는 아쉬나씨 이야기를 고려하면 금산은 철광산으로 판단된다. 

 

 스웨덴 광물 산지 분포도 (자료 : 위키피디아)

 

따라서 금산은 스웨덴 발틱해 부근이라는 것이며, 돌궐과 바이킹 투구와 연관성을 생각할 수 있다.  중세의 한자동맹에서도 스웨덴의 철은 중요한 교역 상품이었다 한다. 현재도 Beowulf Mines이라는 회사가 있는 것을 보면, Gotland지역의 철을 추리할 수 있다. (Beowulf warrior는 Ostergotland (East Geats)출신으로 위에서 확인했다)

 

 "Sweden today is one of the largest sources of iron ore in Europe, with approximately 90% of Europe's iron and 5% of the world's iron reserves.[1] ......During the High Middle Ages, Sweden's iron industry followed the "eastern branch" iron production, using bowl furnace[12] methods rather than the open hearth "bloomery" model favored in England.[13] One of the most important Swedish iron products was osmund (also called osmond iron), small pieces made from pig iron, weighing no more than 300 grams, suited to the needs of village smithies. Later, production shifted to bar iron.[13][14][15]

It was also clear the Swedish iron-smelters were connected to major iron markets outside Sweden, where they also influenced osmund production sold by merchants from the Hanseatic League.[16] "

 

(source : Mining in Sweden,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티스토리 블로그, Hidden Corea , 카테고리, Norse)

 

2. 카칸국

 

돌궐의 자료에서 보면 이들은 카칸국으로 보인다. 그래서 Norsemen들도 카칸국인지 살펴 보자.

 

아래 자료를 보면 프랑크왕에게 Norsemen은 그들 나라는 카칸국이라고 말했다 한다. 비록 9세기의 일이라 루스카칸국을 의미하겠지만, 이들 스웨덴인들이 원래 카칸국이였다는 의미도 된다. 즉 스칸디나비아지역이 카칸국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Danish는 부여의 후계들이 옮겨갔으므로 당연히 카칸국으로 추정된다. 즉 이는 앞에서 스키타이족이 스칸디나비아까지 갔지 않았나 한다.

 

또한 아래에서 언급되는, 좋은 말이 있어 고구려 장수왕이 유연과 함께 도모했다는 지두우는 중국 사가들은 지두칸이라 추정한다. 즉 지두카칸국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래(4. 유연을 멸망시킨 돌궐)에서 보듯이 지두우는 스칸디나비아에 있을 수 있다.  즉 한(漢)나라 한무제가 한혈마를 구해기 위해 사신을 파견한 선선국이 Jordanes가 말한 Suehans, Suetidi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지두우가 있는 스칸디나비아는 카칸국이라는 것이 된다. 즉 돌궐의 카칸국과 연결된다. 

 

"In the 6th century Jordanes named two tribes he calls the Suehans and the Suetidi who lived in Scandza. They were famous for their fine horses."

(source : Swedes, Wikipedia, 필자의 티스토리 블로그, Hidden Corea, 카테고리 : Norse)

 

게르만족은 거란족으로 판단되는데, 게르만족 대이동 시기에 북쪽 스칸디나비아로도 이동했다 한다. 즉 거란족이 스웨덴지역으로 갔다는 것이다. 스웨덴인은 게르만족으로 분류된다. 즉 거란의 별종인 실위가 스웨덴지역일 수 있다. Swedes, 스웨드 -> 실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실위의 서쪽은 돌궐이라 했고 동쪽은 흑수말갈이라 했다. 당시 지도를 보면 스웨덴왕국의 서쪽에 Geatland, 즉 Goth족, Geats가 살고 있었다. (아래 지도 참조) 이들이나 노르웨이지역이 고창국 서북쪽으로 이동한 돌궐의 후손지역일 수 있다. Goth족은 필자는 고구려로 추정했다. 즉 돌궐의 조상은 원래 흉노의 별종으로 고구려의 일부였다고 했다. 따라서 당연히 카칸국일 것이다. 여기서 Geats족(Goth족)이 돌궐로 이어지는 끈을 발견하게 된다. 

 

"The Annales Bertiniani relate that a group of Norsemen, who called themselves Rhos visited Constantinople around the year 838. Fearful of returning home via the steppes, which would leave them vulnerable to attacks by the Hungarians, the Rhos travelled through Germany. They were questioned by Louis the Pious, Emperor of Francia, somewhere near Mainz. They informed the emperor that their leader was known as chacanus (the Latin for "khagan") and that they lived in the north of Russia, but that they were Sueones.

(source : Swedes, Wikipedia, 필자의 티스토리 블로그, Hidden Corea, 카테고리 : Norse)

 

3. 동돌궐, 서돌궐의 분리 및 상호 전쟁 기록

 

돌궐의 역사를 보면 수나라 시기 수나라의 이간책에 의해 동돌궐, 서돌궐이 나뉘어져 전쟁을 하고 그래서 동돌궐의 세력이 약해졌다가, 당나라가 건국될 당시 돌궐은 다시 강해지고 하는 역사가 나타난다. 즉 동돌궐과 서돌궐의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 (아래 자료 참조)

 

"수나라당나라 시기에 북방 초원의 강자로 등장한 세력은 돌궐이었다. 돌궐은 선비족의 북주(577-581)와 북제(550-577)를 복속시키고 조공을 받았다.

 

중국지역의 오랜 전쟁을 끝내고 589년 한족들을 정복한 선비족 정복왕조 수나라가 대륙을 통일했을때, 당시 북방의 돌궐과 수나라가 대치하게 되었다.  유연을 멸망시킨 새로운 패권자 돌궐은 수나라와 대립관계가 된다. 6세기 후반, 돌궐이 동돌궐과 서돌궐로 분열되자 수나라는 서돌궐이 동돌궐을 공격하도록 부추겨 동돌궐은 약화되었다.

 

수나라와 돌궐의 전쟁이 멈추자 수나라는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그러나 고구려 침략에 실패하고 패망한 수나라는 멸망하고 한족들을 정복하는데 재미보던 무천진 8주국 관롱집단의 선비족들이 당나라를 세우는데 당나라가 건국될 당시 돌궐은 다시 세력을 회복해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였다.

 

돌궐의 막강한 군사력에 공격당한 당나라는 돌궐에게 신하로서 복종하고 양국의 군신관계가 성립된다.

(자료 : 돌궐, 위키백과, 인용출처 : 필자의 다음블로그, 카테고리, 돌궐)

 

 

 

그런데 이와 비슷한 역사가 이들 지역에서도 나타난다.  즉 West Geats, East Geats의 분리와 East Geats와 Denmark의 연합세력, West Geats와 Swedes의 연합세력으로 나뉘고, 또한 서로 전쟁(750년)도 하였다는 것이다. 후에는 Swedes로 모두 통합되었지만 말이다. (아래 자료 참조)

 

또한 동고트족에 대한 언급이 6세기의 역사학자 Jordanes에 의해 언급되므로, 이미 5세기에 존재했다는 것이다. (아래 자료 참조) 동고트족은 고구려 광개토태왕 시기 서유럽 원정에 동참하였다. 즉 서고트 동고트 존재가 5세기에 이미 존재했으므로, 수나라 시기인 581-630 시기에 이미 동돌궐 서돌궐 존재의 역사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Ostergotland (East Geats), Vastergotland (West Geats) : 6세기 이전에 이미 좀재

 

"The earliest mention of Östergötland (the Ostrogoths of Scandza) appears in the Getica by the Goth scholar Jordanes.

 

The traditions of Östergötland date back into the Viking Age, the undocumented Iron Age, and earlier, when this region had its own laws and kings (see Geatish kings and Wulfings). It is said that the famous Viking warrior Beowulf may likely have been from what is now the Östergötland region. The region kept its own laws, the Östgötalagen, into the Middle Ages. "

 

(source : Ostrogotland,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티스토리 블로그, Hidden Corea , 카테고리, Norse)

 

 

 

East Geats+ Denmark  -- West Geats+ Swedes 전쟁 :

 

"According to a Scandinavian legend written down in the 13th century, in the Ynglinga saga, a 7th-century Geatish king named Algaut was invited to his son-in-law, the Swedish king Ingjald, at Uppsala. During the night, he was burned to death together with a number of other invited kings. Ingjald then extended his rule to include the Geatish heartland in Västergötland, whereas the East Geats in Östergötland preserved their independence. The Geats and the other Scandinavians were later united by Ivar Vidfamne.

 

Sögubrot af nokkrum fornkonungum says that after Ivar's death, the kingdom was split between Harald Wartooth and Sigurd Hring. Harald ruled Denmark and the East Geats, whereas Sigurd Hring ruled Sweden and the West Geats. These and many sources describe how these two kings met in the legendary and enormous Battle of the Brávellir (c. 750), where Sigurd Hring was victorious and became the king of both Swedes, Geats and Danes. From this battle and onwards, all of Geatland is described as part of the Swedish kingdom.

 (source : Swedish-Geatish wars,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티스토리 블로그, Hidden Corea, 카테고리, Norse)

 

West Geats in Sweden (source : Wikipedia)

  East Geats in Sweden (source : Wikipedia)

 

 
Sweden in the 12th century. Svealand in yellow, Götaland in blue and Gotland in green.
  Swedes
  Geats
  Gutes

(source : Wikipedia)

 

4. 유연을 멸망 시킨 돌궐

 

위의 돌궐자료에서 돌궐은 유연을 멸망 시키고 수나라와 대립하게 되었다고 했다. 필자가 지두우 관련 글에서 유연을 아바르칸국이라 했는데, 다시 추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돌궐은 스칸디나비아지역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바르칸국까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아마도 유연은 스칸디나비아지역에 가까운 지역일 것이다. 

 

6세기의 역사학자 Jordanes는 Scandza(스웨덴의 남쪽지역)에 Suehans, Suetidi라 불리는 두 부족이 있었는데, 이들은 그들의 매우 좋은 말들로 유명했다는 것이다.  고구려 장수왕이 유연과 함께 지두우를 도모하였는데, 그 목적이 지우우에 있는  좋은 말을 얻기 위해서인 것으로 안다. 그뒤 지두우의 말이 고구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즉 지두우도 스칸디나비아 지역이고, 유연도 돌궐도 스칸디나비아 지역이 아닌가 한다. (필자는 지두우를 서부 러시아 북쪽끝으로 추정했는데 수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In the 6th century Jordanes named two tribes he calls the Suehans and the Suetidi who lived in Scandza. They were famous for their fine horses."

(source : Swedes, Wikipedia, 필자의 티스토리 블로그, Hidden Corea, 카테고리 : Norse)

 

 

한(漢)나라에서 확보하려 했던 한혈마가 혹시 이 지역의 말이 아닌가 한다. 한혈마(汗血馬)는 명마로서 벌레가 있어 피땀 흘려 달린다는 말인데, 뭔가 이상하다. 추울 한(寒)자를 중국 사가들이 바뀌치기 한 것이 아닌가 상상해본다. 즉 추운 지방 혈통의 말이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당시 한혈마는 서역으로 파견된 장건이 흉노에 붙잡혀 있다가 10여년만에 돌아와 알려진 말이다. 당시 선선국이라 불리는 나라에 있었다고 하여 특사를 보냈으나, 사신이 오만하여 사신도 습격을 당해 죽고, 가져간 보물도 빼앗겼다 한다. 선선국이 Jordanes가 언급한 스웨덴지역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장건은 서역으로 가서 오손의 서극마를 가져왔다고 한다. 필자는 오손이 프랑스 남쪽에 대서양까지 걸펴 있는 지역으로 추정했다. (필자의 티스토리 블로그, Hidden Corea, 카테고리, 중국, 서극마, 한혈마 자료 참조)

 

 

5. 늑대와의 연관성 - Beowulf

 

돌궐족은 멸망했다가 이리의 도움으로 명맥을 이어 나가 되살아났다는 기록을 우리는 위에서 보았다. 즉 늑대와 관련된 부족의 도움으로 재기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Geats족, 즉 고트족의 역사에 늑대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나 보자. 

 

이들의 역사는 구전으로 전해오는 Sagas(전설)을 후세에 시로서 적은 "Beowulf"라는 시에 적혀 있다. 7세기의 일을 12세기에 이르러 룬문자로 적은 것으로 보인다. 

 

이 서사시 Beowulf에 두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하나는 Hygelac왕으로 앞에서 프랑크 북쪽 해변 Frisia지역을 침범한 사람이며, 다른 한 인물은 Beowulf로 불리는 전사이다. 511년경 프랑크왕국 침범에서 Hygelac왕은 전사하고, 같이 동행했던 Beowulf는 살아 남아 Hygelac왕의 뒤를 이어 Geatland왕이 된다.  Beowulf는 늑대와 관련된 이름이라고 밝혀지며, 늑대를 표상으로 하는 의미를 준다. 그리고 그는 전사로서 혁혁한 전투신화를 남기고 있다. (아래 참고 자료 참조).

 

우리는 앞에서 돌궐이 이리의 도움을 기리기 위해 늑대를 그린 깃발을 내세웠다고 보았다. 즉 늑대와 관련하여 돌궐과 Geatland의 연결이 이어지는 것이다. 

 

6. 삭슨족을 포함한 스칸디나비아 세력과 돌궐

 

돌궐은 6-7세기에도 북제, 북주, 수나라, 당나라 등을 복속시켜 공물을 받으며, 막강한 세력을 자랑했다. 그런데, 스칸디나비아의 Geatlands나 스웨덴왕국만으로는 이러한 돌궐의 위세와 비교가 안된다. 그래서 스칸디나비아세력의 확장을 찾아 보니, AD 700년에 죽은 Ivar Vidfamne란 스웨덴 왕의 이야기가 Sagas에 전한다. 아래 자료에서 보는 바와 같이 노르웨이, 삭슨족의 땅 대부분, 그리고 영국의 1/5, 그리고 러시아 북부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이야기된다. 즉 7세기의 이러한 위세는 당시 당나라를 조롱할 정도의 돌궐의 위세와 맞먹는 것으로 보인다. (아래 지도 참조)

이에는 두가지 의미를 둘 수 있다. 첫째, 삭슨족이 스웨덴왕국의 세력권안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삭슨족과 스칸디나비아 세력이 연합되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즉 프랑크왕국에 대한 공격에 있어서 삭슨족과 Danes족, 또는 Geats족, 또는 Swede족이 연합한 공격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이킹으로 통합된 세력이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들이 돌궐의 세력으로 나타나는 것 아닌가 한다.

 

두번째로는 Sagas의 내용을 보면 이들은 Lombards까지 부용국으로 두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즉 앞으로 돌궐의 역사와 중국의 역사를 프랑크왕국의 역사와 비교하며, 돌궐의 역할을 조명할 때, 스칸디나비아의 Sagas내용을 참조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12th and 13th century sources like Heimskringla and Hervarar saga, attributed to Ivar Vidfamne kingship of a wider empire that included parts of Norway, Saxony and England.[3][4][5] However, no such figure was mentioned in medieval Saxon or English sources regarding the 8th and 9th centuries......

The Ynglinga saga, Historia Norwegiæ, Hervarar saga and Upplendinga Konungum tell that Ivar conquered Svearike after Ingjald's suicide, and later returned to take Denmark. Apart from the Danish lands, he conquered "a great deal of Saxland, all the East Country (Austrríki), and a fifth part of England".[9] "

(source : Ivar Vidfamne,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 북유럽)

 

Map showing an interpretation of the attributed extent of Ivar Vidfamne's realms. The kingdom of Ivar Vidfamne (outlined in red) and other territories paying him tribute (outlined in purple), as it may be interpreted from the stories about Ivar Vidfamne in the sagas. (source : Ivar Vidfamne, Wikipedia)

 

이상으로 "돌궐이 북유럽의 누구인가?" 라는 주제에 대해 전체적으로 살펴본 것을 마치고자 한다. 즉 돌궐은 스칸디나비아 Geatland를 중심으로 하여 점차 그 세력을 넓혀 갔으며, 그 주체가 Swedish King으로 넘어가서 삭슨족을 포함한 더 확대된 세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서 앞으로 프랑크왕국의 역사에서 돌궐의 활약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

 

1) Hygelac 왕

 

 

Hygelac (King of the Geats, King of Getae, King of the Goths, King of the Danes, King Chlochilaicus Danish)

 

 

Hettergouw at the lower Rhine, inhabited by the Attoarii or Hetware, who killed Hygelac, according to Beowulf, line 2916

 

"Hygelac (Old English: Hygelāc; Old Norse: Hugleikr; Proto-Germanic: *Hugilaikaz;[1] Latin: Ch(l)ochilaicus or Hugilaicus;[2] died c. 521) was a king of the Geats according to the poem Beowulf. It is Hygelac's presence in the poem which has allowed scholars to tentatively date the setting of the poem as well as to infer that it contains at least some points of historical fact.[3] Beowulf gives Hygelac's genealogy: according to the poem, he was the son of Hrethel and had two brothers Herebeald and Hæþcyn, as well as an unnamed sister who was married to Ecgtheow and was the mother of the hero Beowulf. Hygelac was married to Hygd, and they had a son Heardred and an unnamed daughter who married Eofor. 

 

 

When Hygelac's brother Hæþcyn was fighting with the Swedes, Hygelac arrived at Hrefnesholt one day too late to save his brother Hæþcyn, but he managed to rescue the surviving Geatish warriors, who were besieged by the Swedish king Ongentheow and his three sons. The Swedes found refuge at a hill fort but were assaulted by the Geats. In the battle, the Swedish king was slain by Eofor. After the death of his brother Herebeald, Hygelac ascended the Geatish throne. After he was killed during a raid on Frisia (by a grandson of Clovis I), Hygelac was succeeded by Heardred, according to Beowulf.

 

The raid to Frisia enabled N. F. S. Grundtvig[4] to approximate the date of Hygelac's death to c. 516, because a raid to France under a King Chlochilaicus, king of the Danes, is mentioned by Gregory of Tours. In that source he is recorded as invading the Frankish Kingdoms during the reign of Theodericus I (died 534), the son of Clovis ("Chlodovechus"), the king of the Franks in the early sixth century, and was killed in the ensuing chaos after the Scandinavian raiders were caught by the sudden appearance of a military response force led by Theodebertus, the son of Theodericus.

 

Gregory of Tours calls this king Chlochilaicus Danish.[5] He is called the king of Getae (rex Getarum) in the Liber Monstrorum and king of the Goths (rege Gotorum) in Liber historiae Francorum.[6] 

(source : Hygelac,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프랑크 481-614)

 

2) 전설속의 Beowulf  Hero

 

"Beowulf (/ˈbəwʊlf/;[1][2] Old English: Bēowulf [ˈbeːowuɫf]) is a legendary Geatish hero in the eponymous epic poem, one of the oldest surviving pieces of English literature.

 

Etymology and origins of the character

 

Beowulf

The scholar Gregor Sarrazin [de] suggested that the name Beowulf derived from a mistranslation of Böðvarr with -varr interpreted as vargr meaning "wolf".[5]

 

Beow-Wolf

In 2005, Andy Orchard theorized an etymology on the basis of the common Old Norse name Þórólfr (which literally translates to "Thor Wolf"), stating in parallel that a "more likely" meaning for the name would be the "wolf" of the Germanic god Beow.[6]

 

Beado-Wulf (war wolf)

The editors of Bosworth's monumental dictionary of Anglo-Saxon propose that Beowulf is a variant of beado-wulf meaning "war wolf" and that it is cognate with the Icelandic Bodulfr which also means "war wolf".[9]  

 

Beowulf manuscript

 

Origins in Geatland

 

Tribes mentioned in the epic poem Beowulf, showing Beowulf's voyage to Heorot in what is now Zealand, and the kingdoms of the Geats and Wulfings in what is now southern Sweden

As told in the surviving epic poem, Beowulf was the son of Ecgtheow, a warrior of the Swedish Wægmundings. Ecgþeow had slain Heaðolaf, a man from another clan (named the Wulfings) (according to Scandinavian sources, they were the ruling dynasty of the Geatish petty kingdom of Östergötland). Apparently, because the victim was from a prominent family, the weregild was set too high, and so Ecgþeow was banished and had to seek refuge among the Danes. The Danish king Hroðgar generously paid the weregild, and had Ecgþeow swear an oath.

 

Ecgþeow was in the service of the Geatish king Hreðel, whose daughter he married. They had Beowulf, who grew up with the Geats. Beowulf's childhood friend was Breca the Bronding "supposed to be the inhabitants of the island Brännö, lying off the coast of West Gothland in the Cattegat".[11] This would be a realistic location for a childhood friend of Beowulf, and the poem describes a swimming contest between them.

 

Zealand and Grendel

 

When King Hroðgar, his wife Wealhþeow, and his court were terrorized by the monstrous Grendel, Beowulf left Geatland (West Götaland) and sailed to Zealand with fourteen warriors in order to pay his father's debt. During the night, Grendel arrived to attack the sleeping men and devoured one of the other Geats before seizing Beowulf. As no manmade weapon could harm Grendel, Beowulf fought back with his bare hands and tore off the beast's arm. Grendel fled back to the bog to die from his wound, and his arm was attached to the wall of Heorot. The next day, Beowulf was lauded and a skald (scop) sang and compared Beowulf with the hero Sigmund.

However, during the following night Grendel's mother arrived to avenge her son's death and collect weregild. As Beowulf slept in a different building he could not stop her. He resolved to descend into the bog in order to kill her. They fought beside Grendel's corpse, and Beowulf finally won with the aid of an enchanted giant sword stolen from the lair's plundered wooden box.

 

 

Return to Geatland, kingdom, and death

 

Having returned to Geatland, Beowulf is described as taking part in a raid (a genuine historic event) against the Franks with his king Higlac. Higlac died during the raid, and Beowulf swam home in full armour. Back in Geatland, queen Hygd offered Beowulf the throne but Beowulf declined in favour of the young prince Heardred. However, Heardred received two Swedish princes, Eadgils and Eanmund who reported that they had fled their uncle Onela who had usurped the Swedish throne. This led to a Swedish invasion in which Heardred was killed. Beowulf was proclaimed king and decided to avenge Heardred and to help Eadgils become king of Sweden.

The event when Onela was slain was probably a historic event. Even though it is only briefly mentioned in Beowulf, it occurs extensively in several Scandinavian sources where it is called the Battle on the Ice of Lake Vänern. For example, Snorri Sturluson wrote:

Onela rode Raven, as they rode to the ice, but a second one, a grey one, hastened, wounded by spears, eastwards under Eadgils. [...] In this fight Onela died and a great many of his people. Then king Eadgils took from him his helmet Battle-boar and his horse Raven.[citation needed]

(Although, in Snorri's text the names are in their corresponding Old Norse forms).

 

Beowulf ruled the Geats for 50 years, until his realm was terrorized by a fire-breathing dragon after a thief stole a golden cup from its hoard of treasure. After unsuccessfully attacking the dragon with his thegns, Beowulf decided to pursue the monster into its lair at Earnanæs, but only his young Swedish relative Wiglaf dared join him. Beowulf's sword broke; but he dealt the dragon its death-blow with his dagger. He had been mortally wounded by the dragon's poisonous bite. Dying, he was carried out by Wiglaf, and with his last breaths named Wiglaf his rightful heir. His body was burned on a funeral pyre, and his ashes buried in a barrow by the sea.

 

(source: Beowulf (hero),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티스토리, Hidden Corea, 카테고리, Norse)

 

"It is said that the famous Viking warrior Beowulf may likely have been from what is now the Östergötland region."

(source : Ostergotland,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티스토리 블로그, Hidden Corea , 카테고리, Nor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