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왜국도 지중해에 있었다.
1. 김수로왕은 백인이었다.
뇌질 청예와 정견모주 : 최치원의 석리정전
- 최치원의 석리정전: 정견 모주의 아들, 뇌질 청예(수로왕), 뇌질 주일(이진아시, 대가야) (조선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인용)
"신라의 학자 최치원이 여러 고을을 돌아다니며 기록들을 수집하여 쓴 석이정전(釋利貞傳)의 내용에 따르면 가야산의 여신 정견모주(正見母主)가 하늘의 신(神)인 이비가지(夷毗訶之)에 감응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한 명은 이름이 뇌질주일(惱室朱日)이었고, 다른 한 명은 뇌질청예(惱窒靑裔)라고 하였다. 금관가야의 시조가 된 뇌질청예(김수로왕)는 여신 정견모주를 닮아 얼굴이 희고 갸름했으며 대가야의 시조가 된 뇌질주일(이진아시왕)은 이비가지를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글고 붉었다고 한다. 이는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이 맏형이었다고 한 ≪가락국기≫에 전하는 금관가야 중심의 형제설화와는 대비되는 것이다...........
(자료 : 수로왕, 위키백과)
최치원이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모아 집필한 석리정전에서 가야의 이야기를 말하는데, 뇌질 청예라 불리는 김수로왕은 백인의 피부를 가졌고, 뇌질 주일은 황인의 모습을 했다 한다. 이들의 어머니 정견모주는 백인여인으로서 묘사된다. 즉 백인의 지역에 있는 김수로왕의 금관가야가 아닌가 한다. 즉 금관가야는 백인의 지역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김수로왕의 금관가야가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가라, 가락국, 구야한국)가 아닌가 한다. 이에 대해 추가 글이 있을 것이다.
2. 협보는 백인이었다
아래 유기추모경에 의하면 협보의 어머니가 황두에 하얀피부인 백인으로 묘사된다. 황두는 금발을 의미하므로 완전한 백인이다.
"그런데 『유기추모경』에 협보의 어머니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이 나온다. ‘그 어미 재찬아는 황두에 하얀 피부이다[其母再贊兒 黃頭而雪膚].’ 협보의 어머니 재찬아(再贊兒)는 노랑머리(黃頭) 백인여성이다."
(자료 : 스카이 데일리, 정재수의 신삼국사 산책, 서역인의 피를 받은 일성왕과 아달라왕, 참조)
따라서 협보도 백인으로 추정된다. 필자는 고구려 유리왕 시기 패수를 따라 바다를 건너 남하하여 구사한국을 세운 협보는 론강(=요수, 동시에 패수?)을 따라 내려와 지중해를 건너 코르시카섬에서 구사한국을 세운 것이 아닌가 한다. 이곳이 후에 석탈해의 출신지인 다파나국이 아닌가 한다. 구사한국과 구야한국은 다른 것으로 필자는 추정한다.
3. 신라의 일성왕은 백인이었다.
"그런데 일성왕과 아달라왕의 경우 신체와 용모를 묘사한 기록이 매우 특이하다. 일성왕은 ‘젊었을 때 백옥처럼 희고 아름다웠는데, 사람들이 희롱하지 않았다[少時美如白玉 人以爲不須玩-『신라사초』]’이고, 아달라왕은 ‘키는 7척이며, 코는 오뚝하고 기이한 얼굴이다[身長七尺 豊準有奇相-『삼국사기』]’이다. 큰 키, 오뚝한 코, 하얀 피부, 기이한 얼굴 등은 동양인(황인)과 거리가 멀다. 전형적인 서양인(백인)의 모습이다."
(자료 : 스카이 데일리, 정재수의 신삼국사 산책, 서역인의 피를 받은 일성왕과 아달라왕, 참조)
상기 자료에 의하면 신라의 일성왕, 아달라왕이 백인이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신라가 이태리 반도에 있었다는 주장, 협보나 석탈해가 있었다는 구사한국이 코르시카 섬이었다는 추정과 궤를 같이 한다.
그리고 신라 일성왕 시기에 북쪽으로 순행하여 태백산에서 제사를 지냈다 했다.
"《삼국사기》 일성 이사금 (134 - 154 : 20년) 본기
一年秋八月 일성 이사금이 즉위하다 (AD 134)
一年秋九月 사면을 하다 (134)
二年春一月 시조 묘에 제사지내다 (AD 135)
三年春一月 웅선을 이찬으로 근종을 일길찬으로 임명하다 (AD 136)
四年春二月 말갈이 장령을 공격하다 (AD 137)
五年春二月 금성에 정사당을 설치하다 (138)
五年秋七月 알천 서쪽에서 사열하다 (AD 138)
五年冬十月 북쪽으로 순행해 태백산에 제사지내다 (AD 138)"
(자료: 일성이사금, 삼국사기, 나무위키, 본 블로그, 카테고리 : 한민족 역사)
필자는 발해고 지리고를 인용하여, 백두산=태백산=장백산이며 여기서 태백산은 알프스의 몽블랑산이라 추정했다. 따라서 일성왕, 아달라왕이 백인이었다는 추정이 필자가 추정한 신라가 이태리반도에 있었다는 추정과 궤를 같이 한다.
4. 신라의 아달라왕은 백인이었다
아달라왕 시기(AD 173)에 왜의 여왕 비미호가 사신을 보냈다고 했다.
"《삼국사기》 신라 아달라 이사금 (154 - 184) 본기
一年春二月 아달라 이사금이 즉위하다 (AD 154)
一年春三月 계원을 이찬으로 삼다 (154)
二年春一月 시조묘에 제사지내고 크게 사면하다 (155)
三年夏四月 서리가 내리고 계립령의 길을 열다 (156)
四年春二月 감물과 마산의 두 현을 설치하다 (157)
四年春三月 장령진에 순행하다 (157)
五年春三月 죽령을 열고, 왜인이 예방하다 (158)
七年夏四月 알천의 물이 넘치다 (160)
八年秋八月 누리가 곡식을 해치다 (161)
九年 사도성에 순행하다 (162)
十一年春二月 용이 서울에 나타나다 (AD 164)
十二年冬十月 아찬 길선이 반란을 도모하다 백제로 망명하다 (AD 165)
十三年春一月一日 일식이 일어나다 (AD 166)
十四年秋七月 백제가 두 성을 함락시키다 (AD 167)
十四年秋八月 군대를 보내니 백제가 화친을 청하다 (AD 167)
十五年夏四月 흥선을 이찬으로 삼다 (AD 168)
十七年春二月 시조묘를 중수하다 (AD 170)
十七年秋七月 지진이 일어나고 서리와 우박이 내리다 (170)
十七年冬十月 백제가 변경을 노략질하다 (AD 170)
十八年 봄에 백성들이 굶주리다 (AD 171)
十九年春一月 구도를 파진찬으로 삼고 구수혜를 일길찬으로 삼다 (AD 172)
十九年春二月 시조묘에 병고가 생기고 전염병이 돌다 (AD 172)
二十年夏五月 왜의 여왕 비미호가 사신을 보내다 (AD 173)
二十一年春一月 흙비가 내리다 (AD 174)
二十一年春二月 우물이 마르다 (AD 174)
AD 175-183 : 9년 공백
三十一年春三月 왕이 죽다 (AD 184)"
(자료 : 아달라 이사금, 삼국사기, 나무위키, 필자의 네이버블로그, 카테고리, 한민족 역사)
위의 아달라왕 시기의 계립령, 죽령 등은 알프스 산맥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5. 비미호의 왜국도 지중해에 있었다
왜의 여왕 비미호는 중국의 위나라와 교류를 하여, '친위왜왕'이란 칭호(238년)를 얻었다. 당시 중국과는 대방군을 통해 교류(240 AD)했다. 이러한 추정은 대방군이 지중해에 인접한 프랑스남부나 이태리 북부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지
- 시기 불명 - 왜국은 본래 남자를 왕으로 삼았는데(70~80년간) 이후 왜국이 어지러워져서 서로 싸우다가(5~6년간), 이윽고 함께 한 여자를 왕으로 삼으니 이름이 히미코였다(비미호 즉위). 귀도를 신봉하며 많은 무리를 홀렸다. 나이는 이미 고령으로 남편이 없었고 남동생이 나라의 통치를 보좌하였다.
- 경초(景初) 2년(238년) 12월 - 비미호, 처음으로 난승미(難升米) 등을 위에 사신으로 보내 조공을 바쳤다. 위에서 친위왜왕(親魏倭王)이라는 금인(金印)과 구리 거울 1백 매를 하사하였다.[1]
- 정시(正始) 원년(240년) 대방군(帯方郡)에서 위의 사자가 왜국을 방문하여 위나라 황제의 조서와 인수(印綬)를 받들어 왜왕으로 책봉되다.
- 정시 4년(243년) 12월 - 왜왕의 대부(大夫) 이성기(伊聲耆)、액사구(掖邪狗) 등 8인을 다시 사신으로 위에 파견, 액사구 등은 솔선중랑장(率善中郎将)의 인수를 받았다.
- 정시 6년(245년) 난승미에게 황당(黄幢)을 수여하다.[2]
- 정시 8년(247년) - 왜는 재사(載斯)、오월(烏越) 등을 대방군으로 보내 구노국(狗奴国)과의 전투를 보고하다. 위는 장정(張政)을 왜로 보내어 난승미에게 조서와 황당[3]을 수여하다.
(자료 : 비미호(히미꼬), 위키백과,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가야/왜)
왜로 가는 길을 설명하는 과정에 구사(야)한국을 거쳐 더 남으로 가서 대마국에 이른다고 했다. 따라서 왜는 지중해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의 위치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에서 다시 자세히 살펴 보고자 한다.
아래 유튜브 내용은 1500년전 고구려의 벽화를 언급하며, 고구려인의 하얀 얼굴을 언급하고 있다. 상기 글의 내용과 일치하는 증거라 생각되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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