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중국 고대의 하(夏)나라는 북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에 있었나?

Chung Park 2023. 3. 13. 02:27

한때 하()나라가 이집트나 그리스지역에 있나 했었다. 왜냐하면 하나라의 시기와 상나라 시기가 구분되는 그리스의 미노스 문명(BC 2100-BC 1700)과 미케네문명(BC 1600 – BC 1100), 이집트의 문명중 나일강의 더 심해진 홍수를 다스리며 더 흥한 BC 2040-BC1650 왕국 & 18왕조 (BC 1550 – BC 1070) 구분시기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군이 하나라의 걸왕의 폭정을 보고 상나라와 낙랑을 동원하여 하나라를 멸망 시켰을 때, 상나라는 이라크지역에 그리고 낙랑은 발칸지역에 있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하나라의 여름하자를 쓴 것은 이집트의 나일강 중상류의 사막기후를 고려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일강의 범람을 막기 위한 우의 치수작업이 성공하여 하나라왕에 등극했다고 생각했다. 이 당시에는 요수 즉 압록수가 우랄강이 아닌가 했었다. 그래서 단군이 먼 지역까지 내려갔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요수인 압록수가 프랑스의 론강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부터는 중국사의 지역은 프랑스지역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후로 상나라는 이 지역에 있었다는 것을 밑받침하는 자료가 나와 다행으로 생각하면서도, 그러면 더운 지방인 하나라는 어디가 되어야 하나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나라 사람인 기자가 조선에 와서 기자조선을 세웠다는 지역이 요수의 동쪽 즉 요동으로 거론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지역이 고구려의 전신인 고죽국이 있던 곳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북아프리카지역을 연구하면서 매우 신기한 것을 알게 되었다. ‘사하라의 눈’이라는 지역의 건축물 모습이 전설속의 아틀란티스의 유적일 수 있다는 유튜브의 신기한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래서 사하라사막 자료를 보면서 사하라가 혹시 沙夏羅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Sara가 아랍어로 모래를 뜻한다고 하니, 더욱 모래 사()자의 사하라가 아닌가 했다. 그리고 혹시 이 지역이 더운 여름의 지역인 하()나라의 지역이 아닐까 막연한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북아프리카에 대해 더 자료를 보니, 정말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북아프리카에 대한 연구는, 원래는 고구려의 개국공신 협보가, 유리왕에게 충언을 하다가 밉보여, 바다를 건너가 세운 구야한국이 혹시 북아프리카지역이 아닌가 하여 시작된 것이었다. 한단고기에 나오는 것처럼, 고구려의 협보가 요수(한단고기는 패수라 함)를 따라 내려와 바다를 건너 구야한국을 세웠다면, 론강를 따라 내려가다, 지중해의 코르시카섬이나 사르데니아섬, 또는 당시의 해상항로인 이베리아반도 연안을 따라 내려가서 북아프리카까지 가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연구에서, 필자의 생각을 밑받침하는 자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족은, 서유럽에서 스페인의 이베리아 반도 연안을 따라 내려가 북아프리카에 정착했던 사람들과 중근동의 페니키아사람들이 북아프리카 연안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여 정착한 사람들의 유전자가 반반씩 차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유목민이고 우리들의 종교관이나 생활방식과 매우 유사한 점을 보였으며, 말을 잘 다루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집트를 제외하고, 북아프리카의 유일한 역사자료로 남아 있는 누미디아왕국과 모레타니아왕국의 존재기간인 BC 220-AD 40기간이 대월지국(BC 221-AD 30)의 존속기간과 거의 똑같다. 이 기록도 로마와의 포에니전쟁으로 인하여 로마사에 남아 있는 기록이다. 필자는 그전부터 대월지가 아프리카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프랑스의 중남부지역에 거쳐 있던 Ossetians이란 지역이 있다. Ossetians말로 Rhone river Rhos라 했단다. 로스->로수-> 요수로 필자는 해석한다. 필자는 이들을 오손왕국이라 추정했다. 오손도손 잘 지내자는 말은 오손과 조선이 잘 지내자는 말이라 한다. 즉 오손은 조선에 가까이 있는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서양사학자 말로리는 오손이 인도이란인이라 했으며, 프랑스의 루네 크루세는 오손이 인도 스키타인이라 했다. 실제 이들의 모습도 서양인이었다 한다. 인도이란인이나 인도스키타인이라는 것은 중앙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인도 유럽인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대부분의 유럽인들을 가리킨다.

 

프랑스의 Occitanie 지역 (자료: 위키피디아)

오손왕국은 월지에 의해 망했다 한다. 그런데 흉노가 그 자손을 키워 주어 후에 재건되었다 한다. 월지는 오손을 멸망 시켰지만, 흉노에 의해 더 서쪽으로 쫓겨나 대월지를 세웠다 전한다. 그런데 이 대월지가 북아프리카로 내려간 것으로 필자는 판단한다. 현 중국사의 시각으로 보면 서쪽을 많이 언급하나, 필자가 보기에는 남쪽으로 가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이들이 월지국이라면, 이전에 이 지역에 월나라가 있던 것이 아닐까? 월나라는 춘추전국시대부터 존재했다. 그러다가 BC 307년 초나라에 망한다. 즉 월나라 지역에 초나라가 있던 것이다. ()은 넘을 월, 건널 월이다. 즉 바다를 건넌 것을 의미하지 않나 추측해 본다.


초나라의 항우는 항
()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항()이란 성을 가졌다 한다. 그런데 항자가 목덜미를 의미한다. 즉 병의 목부분 같은 지역을 의미한다. 그래서 임진왜란시 명량해전의 울돌목을 한자로 쓰면 울돌항이 된다.


스페인의 남부에 지브랄타해협이 있다
. 아프리카로 연결되는 뾰족한 부분이다. 이 근처 지역이 항()지역이 아닌가 한다.

 

실제 이 근처에서 필자가 이순신장군으로 추정하는 영국의 Francis Drake가 임진왜란 근처 시기에 울돌목 같은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이베리아 반도 남부에서, 스페인 무적함대를 3일간 묶어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즉 항()의 지역이란 자료이다.

 

따라서 초나라, 월나라가 북아프리카에 있었고, 한나라를 세운 유방도 서초패왕인 항우도 모두 이지역 출신이므로, 유방이, 항우가, 북아프리카 출신이라는 일반인들은 상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게 된다.



사마천의 사기 대완열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월나라의 남쪽에는 하나라가 있고, 월나라의 북쪽에는 강거가 있다. 즉 하나라는 북아프리카의 월지국 아래 있으니 사하라사막에 걸쳐 있는 하나라가 되는 셈이다.

 

하나라, 월나라는 흉노의 조상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후 흉노는 북아프리카까지 진출했는지도 모른다. 모돈선우가 서역 26개국을 정복했다 하는데, 서역은 이베리아반도를 넘어 북아프리카를 포함할 수 있다. 10세기의 대하도 서역에 있는 것으로 기술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구야한국이 북아프리카에 있을 수 있다는 추정은 이런 맥락에서 더욱 가능성이 높다. 이들과 흉노의 일부라 판단되는 키메리언과도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

 

우의 하나라의 처음 수도는 ‘대하(大夏)’ 였다. 10세기에 티베트어를 쓰는 ‘서하 (대하)’라는 나라가 있었다. 강족의 일부라는 탕구트족이라 한다. 그런데 필자는 우연히도 서사하라사막지역에서 Tibesti Mountains이란 지명을 발견했다. (필자의 Hidden Corea 블러그 (lainfos.tistory.com), 카테고리, 북아프리카 글 참조). 티베트산맥이라 읽힌다. 필자는 티베트의 전신인 기원후 5세기의 토욕혼이 프랑스 서부 해안 Gascony지역이거나 포루투갈의 Suebi왕국이라 추정했다. 따라서 이들이 남하한 세력이 10세기의 대하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월지의 북쪽에 강거가 있었다 하니, 이베리아반도는 강거의 지역이 된다. 그런데 필자는 강거(康居)와 강족(姜族)의 영역이 같다고 판단한다. 중국사에 있어서 강족의 활동은 많이 있었다. 특히 남북조시대에 있어서는 중국사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현 중공 사가들은 강거의 지역을 중앙아시아로 말하고 있다. 아프카니스탄의 박트리아지역으로 말하는데, 이의 남쪽에 월지와 대하라는 여름의 나라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이들은 강족과 강거를 분리해 역사 조작 하고 있다. 남흉노의 선우 중에 강거 선우가 있는데, 강자의 한자가 강족의 강자이다. 즉 강거와 강족이 동일하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강족의 일부가 탕구트족이다. 대하를 세운 탕구트족이다. 따라서 필자의 논리가 북아프리카의 사하라사막에 티베트산맥이라 읽히는 산맥이 있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그리고 기원전 2100년에 세워진 우의 하나라가 이곳일 수 있다. 필자는 서두에서 과거 하나라가 이집트지역을 포함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했다. 하나라가 이집트에서 서부 대서양까지 이르는 나라였지 않나 추측한다. 왜냐하면, 서사하라 사막에 ‘사하라의 눈’ (=Richat Structure,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blog.naver.com/lainfos), 카테고리, 북아프리카, 글 참조)이라는 고대 아틀라스의 일부 유적이라는 이야기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사하라의 눈은 지구를 도는 우주선의 비행사가 발견했다 해서 화제이다. 그리고 우주선이 지구로 귀향할 때, 이 사하라의 눈을 보고 위치를 가늠했다 한다. 우주선에서 보아야 보이는 만큼 큰 지형이라 육지에서는 그 형체를 가늠하기 힘들다 한다.

 

그러면 이러한 아틀라스 전설의 이야기는 어디서 비롯되었나? 바로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기록한 내용이다. 플라톤이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듣고 적었다 한다. 또한 그의 선조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라 혹평했다 한다. 그러나 플라톤은 절대 허튼 소리 하는 것을 싫어했다 한다. 플라톤의 기록에서 아틀라스의 큰 원형 유적을 기록했는데, 상기 사하라의 눈이라 불리는 유적의 크기가 플라톤의 기록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서양사학자들도 아프리카에 예전에 큰 문명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한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라 생각한단다. 필자는 이 문명이 하나라 문명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서로 대서양까지 이르는 문명이 아닌가 한다. 현재의 대서양 Atlantic ocean이름도 이에서 비롯되었다.

 

플라톤이 그의 선조가 관련이 있다고 하는 언급은 그리스지역도 이들 문명과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필자는 미노스 문명 시기가 하나라 시기와 유사해서 그리스지역에 하나라가 있었나 판단했다. 그리고 미노스문명 시기에도 인신공양이라는 관습이 있었다. 즉 하나라 문명이 그리스지역, 이집트지역, 그리고 서사하라지역까지 넓게 퍼져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필자는 그리스의 정체에 대해 아직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줄리어스 시저가 그리스말을 잘 한다는 것도 풀타크가 미화 시키기 위해 지어낸 말인지 실제 사실인지 아직 판단을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의 정체에 대해 아직 연구가 미진하다. 필자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의 정체에 대해서도 미심쩍어 하고 있다. 차후 연구가 더 진척되면 알게 될 것이라 믿는다.



다시 돌아와서, 이렇게 하나라는 사하라 사막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리비아지역의 Garamantes 문명에 대해서도 더 알아 보고자 한다.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의 사학자 Herodotus가 그린 아프리카 지도는 리비아로 표시되어 있다. (아래 지도 참조).  즉 리비아지역의 Garamantes문명이 키를 쥐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집트의 신들도 리비아지역의 신들에서 왔다고 한다. 필자는 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연구할 계획이다. 이들의 연구에서 하나라와 사하라 사막의 연관고리가 발견될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들의 문명에서 수로사업이 있었다는 구체적 이야기가 나오고 Qanat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북아프리카, 글 참조)라는 구체적 시설 이름도 나오기 때문이다.

 

World Map of Herodotus (source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