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392-1910)

<펌>안주(安州)목 - 나무위키

Chung Park 2023. 8. 26. 02:16
 

 
 조선 
 
 
 
관아 소재지
평안도 안주목 안주읍
하위 행정구역
13방 17면
인구
4만 9,582명[1]
마지막 안주목사
김규승(金奎升)[2]
1. 개요2. 역사 및 문화
 
 
안주읍성 남문의 모습
안주 백상루와 성곽 전경
 
 
안주목 객사 외삼문의 모습
안주향교 대성전의 모습

1. 개요[편집]

살수가 출렁출렁 푸른 하늘에 잠겼는데 / 薩水湯湯漾碧虛
수병 백만이 고기가 되었구나 / 隋兵百萬化爲魚
지금도 아직 어초부의 이야기로 남아 있으나 / 至今留得漁樵話
한갓 나그네의 웃음거리도 되지 못하네 / 不滿征夫一笑餘


세종실록 154권, 지리지 평안도 안주목 中


조선시대 평안남도 안주 지역을 다스리던 행정구역. 평안도 지역의 계수관이자 평안도 북부지역의 3대 고을 중 하나였으며, 조선시대 평안도 병영이 위치하기도 하였던 중심고을이다.

2. 역사 및 문화[편집]

안주목은 읍의 북쪽과 서쪽에 청천강을 끼면서도 서해까지 포함하고 있어, 평안도 서부지역을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으로서의 막중한 역할이 있었던 고을이었다. 고려시대부터 성과 관리를 파견하였으며, 조선시대에도 3중으로 지어진 성곽이 안주읍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요새화된 고을로서 방어에 유리한 위치를 점하였다. 그러나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당시 후금의 군대에게 격파당하며 함락되었고, 홍경래의 난으로 홍경래군이 점령하기도 하였다.

예로부터 이 지역은 고조선의 영향권에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고조선 멸망 이후 한사군이 설치되었다. 한사군이 고구려에 의해 멸망한 후에는 고구려의 지배를 받아왔으며, 이곳에서 을지문덕이 수나라 군대를 대파한 살수대첩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 팽원군이라는 명칭을 부여받았으나, 서경과 고려 국방의 요충지에 해당하였기에, 곧이어 안북부로 승격되었다. 이후로도 안북대도호부로 개칭하고, 공민왕 때에는 안주만호부를 설치하였다가 목으로 승격시켜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곳 안주목은 외세의 침입이 있을 때마다 요긴하게 활용된 지리적 요충지였으며, 고려시대 당시 안주목에 방어군 25개, 진 12개, 현 6개가 위치하였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면서 이러한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는데, 조선시대 당시 안주목에서 관할한 지역은 성천부와 숙천부 등 도호부 2군데와 자산군, 순천군개천군덕천군과 같은 군이 4군데, 영유현, 맹산현은산현양덕현까지 4군데를 포함한 지역이었다. 그리고 1413년에 각 지역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평양부와 안주목에서 앞에 한 글자씩 따온 뒤, 고려시대 당시 서북면을 평안도라는 명칭으로 개편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1670년에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죄인의 출생지인 안주목을 강등하여 부로 삼고 판관을 파직시켰다. 그렇게 강등되었다가 숙종 때에 이르러서야 명칭이 회복되었다. 1895년에 고종의 지시로 부군제가 실시되면서 평양부 안주군으로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졌고, 1896년에 다시 한번 개편되어 평안남도 안주군이 되었다. 그 후 일제강점기와 현대를 거치며 안주시로 명칭이 바뀌었다.

[1] 1789년 『호구총수(戶口摠數)』의 기록을 기준으로 함.[2] 1894년 12월 7일 조선왕조실록에서 기록한 마지막 안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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