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도 외면한 돈, 상가 권리금 해부 ⑤] 단골고객 수 따라 권리금 보상하는 日제도 주목하자
국민일보 입력 2014.01.17 02:32 수정 2014.01.17 14:04'자영업 푸어' 막으려면⑤
#1 김모(66)씨는 서울 종로구에서 20년간 이탈리아 음식점을 운영했다. 꾸준한 음식 연구로 '맛집'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주방일이 점점 힘에 부쳐 은퇴하기로 했다. 전문가에게 의뢰해 평가받은 영업 노하우, 단골손님, 전통, 명성 등 무형의 영업 자산은 2억원이었다.
개정된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이 돈을 보장해준다. 건물주도 김씨가 이 돈을 받고 다른 상인에게 가게 넘기는 걸 방해할 수 없다. 김씨는 건물주의 둘째아들이 관심을 보이자 시설 수리비 3000만원을 빼고 1억7000만원에 가게를 넘겨줬다. 사업 파트너였던 건물주를 배려한 것이다. 또 2개월간 함께 장사하며 요리법과 영업 노하우를 전수하고 단골고객도 직접 소개해주기로 했다.
그 사이 개정된 상가임대차보호법은 건물주가 임차상인에게 재건축 후 동일한 면적과 위치에 공간을 제공토록 했다. 그렇지 않으면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을 해야 한다. 재건축 기간에 발생할 영업 손실도 일정 부분 책임진다. 건물주는 이런 모든 비용을 고려하고도 이익이라고 판단해 재건축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정씨는 깨끗해진 상가에 마련될 카페를 어떻게 꾸밀지 고민하고 있다.
부동산·법률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만들어본 가상의 사례다. 이처럼 건물주와 임차상인이 '갑을' 관계에서 벗어나 동등한 사업 파트너로 상생할 수 있을까. 두 사례에서 보듯 임차상인의 권익을 보호하다 보면 건물주의 소유권이 침해될 수 있다. 사회적 타협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는 '지하경제' 권리금을 법제화하고 상인들이 창출하는 무형의 가치를 제도로 보호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되고 있다.
◇갈 길 먼 권리금 법제화=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16일 발의한 '상가권리금 보호에 관한 특별법안'의 골자는 임차상인이 다른 임차상인에게 점포를 넘길 때 권리금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제5조). 건물주가 이를 어기면 임차상인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제6조).
그러나 손해배상은 건물주가 임차상인을 쫓아낸 뒤 같은 업종 영업을 직접 하거나 같은 업종의 다른 임차상인에게 점포를 임대했을 때로 국한됐다. 임차상인이 쫓겨난 자리에서 같은 장사만 하지 않으면 상관없는 것이다. 서울 가로수길, 홍대 앞 같은 상권에선 건물주들이 작은 점포를 싹 내보내고 대형 업체에 통째로 건물을 빌려주는 게 유행이다. 수익을 극대화하려 기존 임차인들을 희생시키는 이런 행위는 손해배상 요건에서 제외된다.
민 의원 측은 "(건물주들의) 반발이 거세리라 예상돼 (이번 발의는) 물꼬만 튼 것"이라며 "일단 법이 제정되는 게 중요하다. 이후 개정안에서 지속적으로 보완될 것"이라고 말했다.
◇엇갈리는 전문가들, 그래도 "논의 시작할 때"=권리금 논의의 핵심은 임차상인이 날린 권리금의 책임소재다. 한양사이버대 부동산학과 양재모 교수는 "통상 권리금은 건물주와 관계없는 돈이다. 표준계약서를 작성토록 해 임차인들끼리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전북대 공공인재학부 허강무 교수는 "임차인 의지에 반해 쫓겨나는 경우 시설·영업·바닥 권리금을 나눠 임대인도 책임질 부분은 책임져야 한다. 단골고객 수에 따라 보상하는 일본 제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안진걸 토지주택공공성네트워크 사무국장은 "프랑스처럼 임차인의 양도·양수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물주의 소유권을 일정 부분 제한하자는 얘기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첨예하므로 보험을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다.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서순탁 교수와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권강수 이사는 "권리금 내역을 관청에 신고하고 보장보험에 가입토록 해 부당하게 권리금을 떼였을 경우 보상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리금을 어떻게 평가할지도 넘어야 할 산이다. 한국감정평가협회 김준옥 기획이사는 "권리금을 표준화해야 하는데 실제 감정하고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공정한 경쟁의 룰부터 만들어야"=짚고 넘어갈 부분은 자영업자들이 '부자 되려고 장사를 시작했는가'이다. 소상공인진흥원이 지난해 1만490개 자영업체를 조사한 결과 82.6%가 '다른 대안이 없어서' 창업했다고 답했다. 먹고살 길이 막막해 시작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노동시장에서 퇴출된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에 주목한다. 이들이 자영업에 뛰어들면서 자영업자 부채가 급증했다. 2011년부터 2013년 3월까지 50·60대 대출은 각각 29.8%, 66.5% 증가했다. 40대 10.6%를 압도하는 수치다. 지난해 4대 시중은행의 자영업자 대출은 105조원으로 1년 전보다 8조3000억원 증가했다. 점포당 순이익은 월평균 187만원에 불과했다.
이에 하우스 푸어, 렌트 푸어에 이어 '자영업 푸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안진걸 사무국장은 "정부는 창업을 청년실업 대책으로 내세우지만 우선 공정한 경쟁 규칙부터 만드는 게 순서"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태원준 차장 이도경 박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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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모(66)씨는 서울 종로구에서 20년간 이탈리아 음식점을 운영했다. 꾸준한 음식 연구로 '맛집'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주방일이 점점 힘에 부쳐 은퇴하기로 했다. 전문가에게 의뢰해 평가받은 영업 노하우, 단골손님, 전통, 명성 등 무형의 영업 자산은 2억원이었다.
개정된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이 돈을 보장해준다. 건물주도 김씨가 이 돈을 받고 다른 상인에게 가게 넘기는 걸 방해할 수 없다. 김씨는 건물주의 둘째아들이 관심을 보이자 시설 수리비 3000만원을 빼고 1억7000만원에 가게를 넘겨줬다. 사업 파트너였던 건물주를 배려한 것이다. 또 2개월간 함께 장사하며 요리법과 영업 노하우를 전수하고 단골고객도 직접 소개해주기로 했다.
#2 서울 마포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정모(37·여)씨는 건물주로부터 재건축 통보를 받고 적지 않게 당황했다. 몇 해 전 카페를 차렸다가 재건축 때문에 거액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을 날린 친구가 떠올랐다. 정씨는 자신에게 닥칠 불이익을 사방으로 알아본 뒤 안정을 되찾았다.
그 사이 개정된 상가임대차보호법은 건물주가 임차상인에게 재건축 후 동일한 면적과 위치에 공간을 제공토록 했다. 그렇지 않으면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을 해야 한다. 재건축 기간에 발생할 영업 손실도 일정 부분 책임진다. 건물주는 이런 모든 비용을 고려하고도 이익이라고 판단해 재건축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정씨는 깨끗해진 상가에 마련될 카페를 어떻게 꾸밀지 고민하고 있다.
부동산·법률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만들어본 가상의 사례다. 이처럼 건물주와 임차상인이 '갑을' 관계에서 벗어나 동등한 사업 파트너로 상생할 수 있을까. 두 사례에서 보듯 임차상인의 권익을 보호하다 보면 건물주의 소유권이 침해될 수 있다. 사회적 타협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는 '지하경제' 권리금을 법제화하고 상인들이 창출하는 무형의 가치를 제도로 보호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되고 있다.
◇갈 길 먼 권리금 법제화=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16일 발의한 '상가권리금 보호에 관한 특별법안'의 골자는 임차상인이 다른 임차상인에게 점포를 넘길 때 권리금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제5조). 건물주가 이를 어기면 임차상인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제6조).
그러나 손해배상은 건물주가 임차상인을 쫓아낸 뒤 같은 업종 영업을 직접 하거나 같은 업종의 다른 임차상인에게 점포를 임대했을 때로 국한됐다. 임차상인이 쫓겨난 자리에서 같은 장사만 하지 않으면 상관없는 것이다. 서울 가로수길, 홍대 앞 같은 상권에선 건물주들이 작은 점포를 싹 내보내고 대형 업체에 통째로 건물을 빌려주는 게 유행이다. 수익을 극대화하려 기존 임차인들을 희생시키는 이런 행위는 손해배상 요건에서 제외된다.
민 의원 측은 "(건물주들의) 반발이 거세리라 예상돼 (이번 발의는) 물꼬만 튼 것"이라며 "일단 법이 제정되는 게 중요하다. 이후 개정안에서 지속적으로 보완될 것"이라고 말했다.
◇엇갈리는 전문가들, 그래도 "논의 시작할 때"=권리금 논의의 핵심은 임차상인이 날린 권리금의 책임소재다. 한양사이버대 부동산학과 양재모 교수는 "통상 권리금은 건물주와 관계없는 돈이다. 표준계약서를 작성토록 해 임차인들끼리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전북대 공공인재학부 허강무 교수는 "임차인 의지에 반해 쫓겨나는 경우 시설·영업·바닥 권리금을 나눠 임대인도 책임질 부분은 책임져야 한다. 단골고객 수에 따라 보상하는 일본 제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안진걸 토지주택공공성네트워크 사무국장은 "프랑스처럼 임차인의 양도·양수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물주의 소유권을 일정 부분 제한하자는 얘기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첨예하므로 보험을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다.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서순탁 교수와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권강수 이사는 "권리금 내역을 관청에 신고하고 보장보험에 가입토록 해 부당하게 권리금을 떼였을 경우 보상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리금을 어떻게 평가할지도 넘어야 할 산이다. 한국감정평가협회 김준옥 기획이사는 "권리금을 표준화해야 하는데 실제 감정하고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공정한 경쟁의 룰부터 만들어야"=짚고 넘어갈 부분은 자영업자들이 '부자 되려고 장사를 시작했는가'이다. 소상공인진흥원이 지난해 1만490개 자영업체를 조사한 결과 82.6%가 '다른 대안이 없어서' 창업했다고 답했다. 먹고살 길이 막막해 시작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노동시장에서 퇴출된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에 주목한다. 이들이 자영업에 뛰어들면서 자영업자 부채가 급증했다. 2011년부터 2013년 3월까지 50·60대 대출은 각각 29.8%, 66.5% 증가했다. 40대 10.6%를 압도하는 수치다. 지난해 4대 시중은행의 자영업자 대출은 105조원으로 1년 전보다 8조3000억원 증가했다. 점포당 순이익은 월평균 187만원에 불과했다.
이에 하우스 푸어, 렌트 푸어에 이어 '자영업 푸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안진걸 사무국장은 "정부는 창업을 청년실업 대책으로 내세우지만 우선 공정한 경쟁 규칙부터 만드는 게 순서"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태원준 차장 이도경 박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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