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에너지·물·식량' 난제 '솔라윈'으로 동시에 해결하겠다"
이코노미조선 송창섭 기자 입력 2014.01.08 11:15도시가스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은 세계 에너지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통한다. 2012년부터 에너지 민간 기구로는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세계에너지협의회(WEC) 공동회장(Co-Chair)으로 활동해왔기 때문. 텃세가 센 국제에너지기구에서 한국인이 수장으로 활동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게다가 김 회장은 오는 2016년 임기 3년의 단독회장(Chair)에 오른다. 그를 만나 전 세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에너지 문제, 대성그룹의 사업계획 등을 들었다.
세계에너지협의회(World Energy Council)는 지난 1923년 영국 런던에서 설립된 민간 국제에너지기구다. WEC의 회원국은 90여개국으로 주요 생산국, 소비국이 모두 가입돼 있어 '에너지업계의 유엔'으로 불린다. 지도부는 회장과 차기 회장으로 활동할 공동회장을 비롯해 지역별로 7명의 부회장(Vice Chair)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 2012년 유럽 모나코 총회에서 공동회장에 선출된 김 회장은 현 회장인 캐나다 전력회사 하이드로퀘벡의 마리호세 나두(Marie-jose Nadeu) 수석부사장의 뒤를 이어 2016년부터는 단독회장으로 활동하게 된다.
최근 김 회장은 차기 회장으로서의 역량을 가늠할 WEC 내 최대 행사인 세계에너지총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지난 2013년 10월13일부터 17일까지 5일간 대구 엑스코(EXCO)에서 열린 에너지총회는 3년마다 열리는 에너지 이벤트다. 90년 WEC 역사 동안 아시아에서 총회가 열린 것은 1983년 인도 뉴델리, 1995년 일본 도쿄에 이어 세 번째다. 120개국에서 약 7500여명이 참석한 이번 총회는 특히 세계 주요국가 에너지 관련 장·차관과 국제기구 대표 55명이 참석해 민간과 공공 간 '대화의 장'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는 평가다.
현재 WEC 외 다른 에너지 관련 국제기구로는 생산국 중심으로 활동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소비국이 주도하는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기구는 생산자와 소비자별로 주도 국가들이 나눠져 있다 보니 주요 정책을 놓고 첨예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때문에 최근 국제 공조가 절실한 에너지 부문에서 비교적 정치색이 옅고 생산국, 소비국 모두가 참여한 WEC의 역할 중요성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 이번 대구총회에 세계 주요 국가 정부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한 것도 이런 필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세계에너지 업계는 '거버넌스(종합관리) 부재'라는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OPEC와 IEA 모두 시장 안정화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힘의 공백'이 나타나고 있죠. 단적인 예로 천연가스 가격이 대륙별로 최대 4~5배씩 차이 나는 것이 수년간 계속되고 있지만 아무도 개선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요. 이러한 때 WEC가 저에게 중임을 맡긴 것은 개도국과 선진국, 생산국과 소비국의 중간에 위치한 우리나라의 중요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누군가는 조정과 중재를 해줘야 하는데 그걸 저와 우리나라에게 맡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 회장은 "오는 2016년 터키에서 열리는 이스탄불 총회부터는 세계에너지총회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처럼 정부 관계자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모두 참여하는 투 트랙(Two Track) 방식으로 운영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 회장의 또 다른 목표는 에너지 산업의 새로운 물꼬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 공급과 이용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최대한의 혜택을 준다"는 WEC의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에너지는 18~19세기 실용과학자들의 발견에서 시작됐습니다. 덴마크 과학자 외르스테드가 주장한 전류의 자기작용을 연구하던 영국인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가 자력에 의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데서 오늘날 발전기가 탄생하지 않았습니까. 여기에 교류발전 개념을 착안해낸 니콜라 테슬라가 변압기, 모터, 교류송전시스템을 발명하면서 발전기술은 더욱 성장한 겁니다. 결과적으로 1차 산업혁명이 석탄이라는 에너지 원료와 전기 기술이 결합돼 촉발된 거라면 2차 산업혁명은 석유에 내연기관 기술이 합쳐지면서 운송수단의 혁신 때문에 발생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 회장이 인터뷰 중간마다 강조한 것은 "현 체제로는 빠른 속도로 커져가는 세계경제를 감당할 수 없다. 석탄, 석유에 이은 새로운 에너지원이 개발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지금은 3차 에너지혁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역설했다. 최근 김 회장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은 바이오기술(BT)을 통한 에너지원 확보다.
"인공광합성 에너지가 참 흥미롭더군요. 대량생산 등 채산성이 문제지만 오염을 전혀 일으키지 않는 천연에너지라는 점에서 관심 있게 지켜볼 생각입니다. 아울러 청색기술(Blue Technology)을 활용한 에너지원 개발도 우리 세대가 만들어야 할 숙제라고 봅니다."
김 회장은 '다독(多讀)' 경영자로 유명하다. 아무리 바빠도 틈틈이 시간을 내 1주일에 평균 2권 이상씩 책을 읽는다. 그의 관심분야는 인문학부터 물리학, 화학까지 다양하다. 에너지가 만들 세상의 변화를 내다보는 김 회장의 통찰력은 웬만한 전문연구인력 수준 이상이다. 그가 요사이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도 현 체제를 뛰어넘는 혁신 에너지 기술(Behind Energy)이다. 개인 블로그 머리말을 '포스트 오일 파이오니아(Post Oil Pioneer)'라고 붙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자동차 등 현재 대부분의 운송수단은 석유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는 것에서 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세계경제 위기의 주범은 가파르게 오른 에너지 가격이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죠. 중국, 인도 등 신흥 경제대국의 수요는 커지고 있는데 생산량이 받쳐주지 못하니 가장 약한 분야인 금융시장이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세계 경제가 추락한 겁니다. 결국 지금의 에너지 비대칭성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같은 불황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지금이야말로 실리콘밸리 기업이나 세계 각국이 차세대 에너지 기술 개발에 나서야 할 때라고 봅니다."
'3차 에너지 혁명'에 기업·정부 나서야
신재생에너지 기술 개발은 김 회장은 물론 대성그룹이 사운을 걸고 추진하는 핵심 사업이다. 특히 대성그룹이 개발한 태양광·풍력 복합발전시스템 '솔라윈(SolaWin)'은 국내외 관련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2003년 몽골에서 처음 선보인 솔라윈은 에티오피아, 카자흐스탄, 방글라데시 등지에도 수출돼 현지 에너지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고 있다.
"식량·에너지·물 등 세 가지 자원은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 대구 총회에서 핵심의제로 다룬 것도 바로 '식량, 에너지, 물의 트릴레마(세 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엮여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였죠. 저는 개인적으로 이 문제를 풀 해답이 에너지에 있다고 봅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이를 가리켜 황금사슬(Golden Thread)이라고 말할 정도로 공감하셨죠."
지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2년간 공사를 거쳐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시 부근에 건설된 지이프(GEEP·Green Eco-Energy Park) 프로젝트는 '에너지를 활용한 선순환 구조'를 입증해낸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솔라윈으로 얻은 에너지는 현재 하절기에는 급수, 동절기에는 난방에 쓰이고 있다. 특히 급수시스템을 통해 얻은 지하수는 인근 저수지에 저장돼 지역 주민 식수와 농작물 재배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그 결과 몽골정부로부터 60년간 무상으로 제공받은 주변 지역 땅 330만5785㎡(100만평)는 점차 녹색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지난 2012년 다보스포럼에서 제가 이 프로젝트를 설명했더니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 <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 저자)이 무릎을 치며 'Bottom of Pyramid(피라미드의 밑바닥)'라고 단번에 이해하더군요. 사실 지금까지 세계 각국의 고민은 '전기조차 들어가지 못하는 미개발 지역에 어떻게 에너지를 공급할까'였죠. 그런데 우리 프로젝트는 이를 반대로 접근했습니다. 우리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의 토지는 경제적 가치가 '제로(0)'였어요. 그러니 몽골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했겠죠. 그런데 현재 몽골정부가 우리 부지 주변에 새로운 국제공항을 준비 중입니다. 어마어마한 규모로 칭기즈칸 테마파크도 짓고 있죠. 중국정부로부터 무상 지원받은 돈을 쏟아 부어 국립대학을 세우기로 한 곳도 우리 사업장 부근입니다. 우리야 무상으로 제공받는 토지에 세운 것이니 처음부터 투자 차원에서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이건 시사점이 굉장히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 회장은 솔라윈시스템이 발전하면 '사람이 모인 곳에 에너지가 따라가는' 현재의 사회 조류가 단번에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말하는 솔라윈은 에너지를 중심으로 사람과 생산시설이 모이는 새로운 도시화, 분권형 에너지 공급의 핵심가치다. 그는 지구촌 면적의 50% 이상이 전기 등 에너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솔라윈시스템이 해답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토머스 프리드먼이 '밑바닥으로 갈수록 면적이 넓어진다'는 의미로 '바텀 오브 피라미드(Bottom of Pyramid)'라고 말한 것은 이런 뜻으로 해석된다.
"많은 국내 기업들이 신재생에너지 시장에 들어가는데 여전히 생각하는 수준이 설비 중심입니다. 설비 파는 식의 접근은 얼마 가지 못해 중국, 인도에 따라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야 애초부터 몽골 지이프(GEEP) 프로젝트를 갖고 수익을 낼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친환경 에너지 시설을 중심으로 주변에 인구와 생산시설이 모이도록 하는 에너지파크(Energy Park)를 부동산 개발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은 확실한 틈새사업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대성그룹은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2011년 경남 남해군에 위치한 무인도 '섬북섬'을 매입했다. 현재 경상남도의 인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대성그룹은 행정절차만 끝마치면 이곳에서 태양광과 풍력을 통해 전기를 뽑아내고, 공기 중에서 물을 생산하는 연구를 진행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최근 몇년 사이 비전통 에너지 셰일가스(Shale gas)는 세계 에너지업계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최근 IEA 발표 자료에 따르면 셰일가스 개발이 꾸준하게 진행될 경우 향후 20년 안에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셰일가스 비중은 석유와 비슷해질 것이라고 합니다. 요사이 캐나다와 미국이 에너지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변신했다며 해안선을 따라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나선 것은 세계 에너지 시장판도 변화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죠. 그런 와중에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천연가스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국가가 모두 주목하는 곳이 바로 한·중·일 동북아 3국입니다. 물론 어마어마한 이권이 걸린 만큼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것이 많겠지만 북미 셰일가스와 러시아 천연가스를 아시아로 이어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가 '가스 트레이드 허브'를 추진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어떻게 주변국들을 설득하느냐가 중요하겠지만 정치적으로나 지정학적인 위치로 볼 때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지이프 프로젝트는 분권형 에너지사업의 성공사례"
대성그룹의 전신은 1947년 설립된 대성산업공사다. 석탄이 주 에너지원이었던 당시 선친인 고(故) 김수근 창업주가 연탄제조 사업을 위해 세운 대성그룹은 현재 에너지를 기반으로 정보기술(IT), 교육, 문화사업 등으로 사업을 넓히고 있다. 김 회장은 이들 사업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선친이 남기신 '국조무궁(나라의 복이 영원히 무궁하기를 바란다)'을 설명했다.
한때 목회자의 길을 걸으려 했던 김 회장에게 사업은 '공익을 실천하기 위한 수단'이다. 때문에 평소 김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공익이 최상의 사업모델'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옥을 살 돈이 있으면 공장 등 시설에나 투자하라'는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본사 소유의 건물도 없다. 인터뷰 도중 그의 집무실 한편에 김수근 창업주가 쓴 '국조무궁(國祚無窮)'이라는 휘호가 눈에 들어왔다. 김 회장은 "공익사업을 벌여 거기서 약간의 이익을 가져오면 누가 기업에게 뭐라 하겠는가"라며 공공의 이익에 도움을 주는 사업에 더 매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지난 2006년 인수한 인터넷포털 '코리아닷컴(
www.korea.com)'
은 우리문화를 세계 시장에 알리기 위한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2013년 12월 현재 페이스북 외국인 회원 수만 280만명이다. 계열사인 대성창투가 벤처와 문화콘텐츠 사업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도 두 분야에 대한 김 회장의 깊은 애정에서 비롯됐다. '광해, 왕이 된 남자', '범죄와의 전쟁', '베를린' 등이 대성창투가 투자해 흥행에 성공한 한국 영화들이다. 이외에 대성창투는 지난 2013년 1월 정부 출범에 발맞추어 200억원 규모로 'IBK-대성 문화콘텐츠 강소기업 투자조합'을 결성했다.
※ 김영훈 회장은…
1952년 대구 출생. 75년 서울대 행정학과 졸업, 81년 미국 미시간대 법학 석사(MCL), 경영학 석사(MBA), 87년 하버드대 신학 석사(M. Div). 2000년~현재 대성그룹 회장, 대성에너지 대표이사. 2012년~현재 세계에너지협의회 공동회장, 2016년~2019년 세계에너지협의회 회장(예정).
Tip | 목회자 지망생 청년 김영훈
"기업인은 성직자와 동격" 실천
김영훈 회장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52년 대구에서 김수근 대성그룹 창업주의 3남 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경기고와 서울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김 회장은 81년 미국 미시간대 대학원에서 법학석사(MCL)와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1984년 하버드대에서 국제경제학 과정 중 만난 이가 바로 세계적인 석학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다. 당시 제프리 삭스는 하버드대 최연소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입사 전까지 김 회장의 꿈은 목회자였다. 실제로 그는 1987년 하버드대에서 신학석사(M.Div) 학위를 받았다. "경영자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 목회자로 살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신앙심이 깊은 그는 하버드대 수학을 마치고 미국 보스턴에 있는 북장로교단 교회에서 전도사로까지 활동했다. 그러나 '가업을 이으라'는 선친의 뜻을 받아들여 경영자로 변신했다. 김 회장은 "평소 선친께서 '기업인은 성직자와 같은 위치'라는 말씀을 자주 하셔서 경영 참여를 두고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다"면서 "선친께서 살아생전 투명경영을 실천하신 것도 기업 경영을 성직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국궁 마니아로 잘 알려져 있다. 15년 전 갑자기 찾아온 오십견을 치료하기 위해 시작한 이후 김 회장은 국궁으로 심신을 단련하고 있다. 바쁜 국내외 일정 탓에 사직동 황학정 등 국궁장에 나가지는 못하지만 집무실과 집 안 한쪽에 과녁을 세워놓고 시간만 나면 활시위를 당긴다. 김 회장은 자신의 블로그(
www.younghoonkim.com
)에다 국궁의 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중요한 순간에 집중하고 한 걸음 물러나 다시 점검한 다음, 결정적인 순간에 추진력 있게 활을 쏘는 국궁은 경영과 매우 유사합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국궁은 제 경영의 스승이기도 하지요"
세계에너지협의회(World Energy Council)는 지난 1923년 영국 런던에서 설립된 민간 국제에너지기구다. WEC의 회원국은 90여개국으로 주요 생산국, 소비국이 모두 가입돼 있어 '에너지업계의 유엔'으로 불린다. 지도부는 회장과 차기 회장으로 활동할 공동회장을 비롯해 지역별로 7명의 부회장(Vice Chair)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 2012년 유럽 모나코 총회에서 공동회장에 선출된 김 회장은 현 회장인 캐나다 전력회사 하이드로퀘벡의 마리호세 나두(Marie-jose Nadeu) 수석부사장의 뒤를 이어 2016년부터는 단독회장으로 활동하게 된다.
최근 김 회장은 차기 회장으로서의 역량을 가늠할 WEC 내 최대 행사인 세계에너지총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지난 2013년 10월13일부터 17일까지 5일간 대구 엑스코(EXCO)에서 열린 에너지총회는 3년마다 열리는 에너지 이벤트다. 90년 WEC 역사 동안 아시아에서 총회가 열린 것은 1983년 인도 뉴델리, 1995년 일본 도쿄에 이어 세 번째다. 120개국에서 약 7500여명이 참석한 이번 총회는 특히 세계 주요국가 에너지 관련 장·차관과 국제기구 대표 55명이 참석해 민간과 공공 간 '대화의 장'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는 평가다.
WEC, 공공과 민간 에너지 가교로 격상
현재 WEC 외 다른 에너지 관련 국제기구로는 생산국 중심으로 활동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소비국이 주도하는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기구는 생산자와 소비자별로 주도 국가들이 나눠져 있다 보니 주요 정책을 놓고 첨예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때문에 최근 국제 공조가 절실한 에너지 부문에서 비교적 정치색이 옅고 생산국, 소비국 모두가 참여한 WEC의 역할 중요성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 이번 대구총회에 세계 주요 국가 정부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한 것도 이런 필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세계에너지 업계는 '거버넌스(종합관리) 부재'라는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OPEC와 IEA 모두 시장 안정화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힘의 공백'이 나타나고 있죠. 단적인 예로 천연가스 가격이 대륙별로 최대 4~5배씩 차이 나는 것이 수년간 계속되고 있지만 아무도 개선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요. 이러한 때 WEC가 저에게 중임을 맡긴 것은 개도국과 선진국, 생산국과 소비국의 중간에 위치한 우리나라의 중요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누군가는 조정과 중재를 해줘야 하는데 그걸 저와 우리나라에게 맡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 회장은 "오는 2016년 터키에서 열리는 이스탄불 총회부터는 세계에너지총회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처럼 정부 관계자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모두 참여하는 투 트랙(Two Track) 방식으로 운영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 회장의 또 다른 목표는 에너지 산업의 새로운 물꼬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 공급과 이용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최대한의 혜택을 준다"는 WEC의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에너지는 18~19세기 실용과학자들의 발견에서 시작됐습니다. 덴마크 과학자 외르스테드가 주장한 전류의 자기작용을 연구하던 영국인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가 자력에 의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데서 오늘날 발전기가 탄생하지 않았습니까. 여기에 교류발전 개념을 착안해낸 니콜라 테슬라가 변압기, 모터, 교류송전시스템을 발명하면서 발전기술은 더욱 성장한 겁니다. 결과적으로 1차 산업혁명이 석탄이라는 에너지 원료와 전기 기술이 결합돼 촉발된 거라면 2차 산업혁명은 석유에 내연기관 기술이 합쳐지면서 운송수단의 혁신 때문에 발생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 회장이 인터뷰 중간마다 강조한 것은 "현 체제로는 빠른 속도로 커져가는 세계경제를 감당할 수 없다. 석탄, 석유에 이은 새로운 에너지원이 개발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지금은 3차 에너지혁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역설했다. 최근 김 회장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은 바이오기술(BT)을 통한 에너지원 확보다.
"인공광합성 에너지가 참 흥미롭더군요. 대량생산 등 채산성이 문제지만 오염을 전혀 일으키지 않는 천연에너지라는 점에서 관심 있게 지켜볼 생각입니다. 아울러 청색기술(Blue Technology)을 활용한 에너지원 개발도 우리 세대가 만들어야 할 숙제라고 봅니다."
김 회장은 '다독(多讀)' 경영자로 유명하다. 아무리 바빠도 틈틈이 시간을 내 1주일에 평균 2권 이상씩 책을 읽는다. 그의 관심분야는 인문학부터 물리학, 화학까지 다양하다. 에너지가 만들 세상의 변화를 내다보는 김 회장의 통찰력은 웬만한 전문연구인력 수준 이상이다. 그가 요사이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도 현 체제를 뛰어넘는 혁신 에너지 기술(Behind Energy)이다. 개인 블로그 머리말을 '포스트 오일 파이오니아(Post Oil Pioneer)'라고 붙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자동차 등 현재 대부분의 운송수단은 석유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는 것에서 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세계경제 위기의 주범은 가파르게 오른 에너지 가격이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죠. 중국, 인도 등 신흥 경제대국의 수요는 커지고 있는데 생산량이 받쳐주지 못하니 가장 약한 분야인 금융시장이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세계 경제가 추락한 겁니다. 결국 지금의 에너지 비대칭성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같은 불황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지금이야말로 실리콘밸리 기업이나 세계 각국이 차세대 에너지 기술 개발에 나서야 할 때라고 봅니다."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이 몽골 울란바토르 시 근처에 건설된 태양광, 풍력 복합발전시스템(GEEP프로젝트) 현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은 정치적,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해 국내에 가스 트레이드 허브를 조성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3차 에너지 혁명'에 기업·정부 나서야
신재생에너지 기술 개발은 김 회장은 물론 대성그룹이 사운을 걸고 추진하는 핵심 사업이다. 특히 대성그룹이 개발한 태양광·풍력 복합발전시스템 '솔라윈(SolaWin)'은 국내외 관련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2003년 몽골에서 처음 선보인 솔라윈은 에티오피아, 카자흐스탄, 방글라데시 등지에도 수출돼 현지 에너지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고 있다.
"식량·에너지·물 등 세 가지 자원은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 대구 총회에서 핵심의제로 다룬 것도 바로 '식량, 에너지, 물의 트릴레마(세 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엮여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였죠. 저는 개인적으로 이 문제를 풀 해답이 에너지에 있다고 봅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이를 가리켜 황금사슬(Golden Thread)이라고 말할 정도로 공감하셨죠."
지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2년간 공사를 거쳐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시 부근에 건설된 지이프(GEEP·Green Eco-Energy Park) 프로젝트는 '에너지를 활용한 선순환 구조'를 입증해낸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솔라윈으로 얻은 에너지는 현재 하절기에는 급수, 동절기에는 난방에 쓰이고 있다. 특히 급수시스템을 통해 얻은 지하수는 인근 저수지에 저장돼 지역 주민 식수와 농작물 재배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그 결과 몽골정부로부터 60년간 무상으로 제공받은 주변 지역 땅 330만5785㎡(100만평)는 점차 녹색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지난 2012년 다보스포럼에서 제가 이 프로젝트를 설명했더니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 <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 저자)이 무릎을 치며 'Bottom of Pyramid(피라미드의 밑바닥)'라고 단번에 이해하더군요. 사실 지금까지 세계 각국의 고민은 '전기조차 들어가지 못하는 미개발 지역에 어떻게 에너지를 공급할까'였죠. 그런데 우리 프로젝트는 이를 반대로 접근했습니다. 우리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의 토지는 경제적 가치가 '제로(0)'였어요. 그러니 몽골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했겠죠. 그런데 현재 몽골정부가 우리 부지 주변에 새로운 국제공항을 준비 중입니다. 어마어마한 규모로 칭기즈칸 테마파크도 짓고 있죠. 중국정부로부터 무상 지원받은 돈을 쏟아 부어 국립대학을 세우기로 한 곳도 우리 사업장 부근입니다. 우리야 무상으로 제공받는 토지에 세운 것이니 처음부터 투자 차원에서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이건 시사점이 굉장히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 회장은 솔라윈시스템이 발전하면 '사람이 모인 곳에 에너지가 따라가는' 현재의 사회 조류가 단번에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말하는 솔라윈은 에너지를 중심으로 사람과 생산시설이 모이는 새로운 도시화, 분권형 에너지 공급의 핵심가치다. 그는 지구촌 면적의 50% 이상이 전기 등 에너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솔라윈시스템이 해답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토머스 프리드먼이 '밑바닥으로 갈수록 면적이 넓어진다'는 의미로 '바텀 오브 피라미드(Bottom of Pyramid)'라고 말한 것은 이런 뜻으로 해석된다.
"많은 국내 기업들이 신재생에너지 시장에 들어가는데 여전히 생각하는 수준이 설비 중심입니다. 설비 파는 식의 접근은 얼마 가지 못해 중국, 인도에 따라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야 애초부터 몽골 지이프(GEEP) 프로젝트를 갖고 수익을 낼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친환경 에너지 시설을 중심으로 주변에 인구와 생산시설이 모이도록 하는 에너지파크(Energy Park)를 부동산 개발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은 확실한 틈새사업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대성그룹은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2011년 경남 남해군에 위치한 무인도 '섬북섬'을 매입했다. 현재 경상남도의 인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대성그룹은 행정절차만 끝마치면 이곳에서 태양광과 풍력을 통해 전기를 뽑아내고, 공기 중에서 물을 생산하는 연구를 진행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최근 몇년 사이 비전통 에너지 셰일가스(Shale gas)는 세계 에너지업계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최근 IEA 발표 자료에 따르면 셰일가스 개발이 꾸준하게 진행될 경우 향후 20년 안에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셰일가스 비중은 석유와 비슷해질 것이라고 합니다. 요사이 캐나다와 미국이 에너지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변신했다며 해안선을 따라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나선 것은 세계 에너지 시장판도 변화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죠. 그런 와중에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천연가스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국가가 모두 주목하는 곳이 바로 한·중·일 동북아 3국입니다. 물론 어마어마한 이권이 걸린 만큼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것이 많겠지만 북미 셰일가스와 러시아 천연가스를 아시아로 이어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가 '가스 트레이드 허브'를 추진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어떻게 주변국들을 설득하느냐가 중요하겠지만 정치적으로나 지정학적인 위치로 볼 때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오른쪽)이 지난 2013년 10월 대구에너지총회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지이프 프로젝트는 분권형 에너지사업의 성공사례"
대성그룹의 전신은 1947년 설립된 대성산업공사다. 석탄이 주 에너지원이었던 당시 선친인 고(故) 김수근 창업주가 연탄제조 사업을 위해 세운 대성그룹은 현재 에너지를 기반으로 정보기술(IT), 교육, 문화사업 등으로 사업을 넓히고 있다. 김 회장은 이들 사업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선친이 남기신 '국조무궁(나라의 복이 영원히 무궁하기를 바란다)'을 설명했다.
한때 목회자의 길을 걸으려 했던 김 회장에게 사업은 '공익을 실천하기 위한 수단'이다. 때문에 평소 김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공익이 최상의 사업모델'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옥을 살 돈이 있으면 공장 등 시설에나 투자하라'는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본사 소유의 건물도 없다. 인터뷰 도중 그의 집무실 한편에 김수근 창업주가 쓴 '국조무궁(國祚無窮)'이라는 휘호가 눈에 들어왔다. 김 회장은 "공익사업을 벌여 거기서 약간의 이익을 가져오면 누가 기업에게 뭐라 하겠는가"라며 공공의 이익에 도움을 주는 사업에 더 매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지난 2006년 인수한 인터넷포털 '코리아닷컴(
www.korea.com)'
은 우리문화를 세계 시장에 알리기 위한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2013년 12월 현재 페이스북 외국인 회원 수만 280만명이다. 계열사인 대성창투가 벤처와 문화콘텐츠 사업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도 두 분야에 대한 김 회장의 깊은 애정에서 비롯됐다. '광해, 왕이 된 남자', '범죄와의 전쟁', '베를린' 등이 대성창투가 투자해 흥행에 성공한 한국 영화들이다. 이외에 대성창투는 지난 2013년 1월 정부 출범에 발맞추어 200억원 규모로 'IBK-대성 문화콘텐츠 강소기업 투자조합'을 결성했다.
※ 김영훈 회장은…
1952년 대구 출생. 75년 서울대 행정학과 졸업, 81년 미국 미시간대 법학 석사(MCL), 경영학 석사(MBA), 87년 하버드대 신학 석사(M. Div). 2000년~현재 대성그룹 회장, 대성에너지 대표이사. 2012년~현재 세계에너지협의회 공동회장, 2016년~2019년 세계에너지협의회 회장(예정).
Tip | 목회자 지망생 청년 김영훈
"기업인은 성직자와 동격" 실천
김영훈 회장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52년 대구에서 김수근 대성그룹 창업주의 3남 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경기고와 서울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김 회장은 81년 미국 미시간대 대학원에서 법학석사(MCL)와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1984년 하버드대에서 국제경제학 과정 중 만난 이가 바로 세계적인 석학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다. 당시 제프리 삭스는 하버드대 최연소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입사 전까지 김 회장의 꿈은 목회자였다. 실제로 그는 1987년 하버드대에서 신학석사(M.Div) 학위를 받았다. "경영자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 목회자로 살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신앙심이 깊은 그는 하버드대 수학을 마치고 미국 보스턴에 있는 북장로교단 교회에서 전도사로까지 활동했다. 그러나 '가업을 이으라'는 선친의 뜻을 받아들여 경영자로 변신했다. 김 회장은 "평소 선친께서 '기업인은 성직자와 같은 위치'라는 말씀을 자주 하셔서 경영 참여를 두고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다"면서 "선친께서 살아생전 투명경영을 실천하신 것도 기업 경영을 성직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국궁 마니아로 잘 알려져 있다. 15년 전 갑자기 찾아온 오십견을 치료하기 위해 시작한 이후 김 회장은 국궁으로 심신을 단련하고 있다. 바쁜 국내외 일정 탓에 사직동 황학정 등 국궁장에 나가지는 못하지만 집무실과 집 안 한쪽에 과녁을 세워놓고 시간만 나면 활시위를 당긴다. 김 회장은 자신의 블로그(
www.younghoonkim.com
)에다 국궁의 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중요한 순간에 집중하고 한 걸음 물러나 다시 점검한 다음, 결정적인 순간에 추진력 있게 활을 쏘는 국궁은 경영과 매우 유사합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국궁은 제 경영의 스승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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