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크리스마스날 이윤자 권사가 손자들과 함께 박사학위 취득 기념 파티를 열어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다. 왼쪽은 남편 이광언 장로. |
이윤자(69.아고라힐스.LA연합감리교회) 권사가 죽음의 문턱까지 가면서 아픔을 겪지 않았다면 상담 사역자로서 제2의 인생을 맞이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환갑을 막 넘겼던 2006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이민 생활 40여년 만에 겨우 여유를 찾는가 싶었는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인가 싶었다. 두 아들 모두 독립했고 경제적으로 안정돼 일주일에 3~5번 골프 치고, 매일 교회 섬기는 일로 행복이 충만할 때였다. 수술과 항암치료가 이어졌다. 차도는 좋았다. 성경 통독과 퀼트로 마음을 달래며 암과 싸우고 있을 때 한 후배가 "딱 맞을 것같은 학교가 있다"며 공부를 권했다. 그게 2009년이었다. 혹시나 하고 들렀던 His 대학(총장 양은순) 오픈 강좌에 매료돼 공부(상담학)를 시작했다.
대학(이대 간호학) 졸업 후 40년 만에 다시 학생이 된 것이다. 코로나까지 2시간 통학길을 마다하고 악착같이 책과 씨름했다. 수석으로 대학원을 마쳤고 이달 말엔 '태교'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내 삶을 후회하지 않게 되어 감사하고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 해오던 일대일제자양육 성경공부에 상담학을 접목한 힐링 사역의 보람에 하루하루의 삶이 충만하다.
-에너지가 넘쳐 보입니다.
"인생의 새로운 미션이 생겼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유하는 삶을 산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힘이 솟습니다."
-아직 암 후유증이 있다고요.
"암 수술 3년 쯤 됐을 때 폐에 염증이 발견돼 덴버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폐 기흉으로 죽을 순간을 맞기도 했습니다. 그때 허공에서 교우들의 중보기도 소리가 들리는 체험을 했습니다. 알 수 없는 힘이 솟았고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폐 염증 후유증이 있어 3월에 다시 덴버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암투병 하면서 도대체 무슨 힘으로 공부를 했습니까.
"상담학 공부를 해보니 상담과 성경을 접목한 치유가 정말 효과적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는 강렬한 욕망이 나를 이끌어 준 것 같습니다."
이윤자 권사가 늦깎이 공부를 마칠 수 있었던 데는 남편 이광언(74.무역업 은퇴) 장로의 외조가 컸다. 이 장로는 아내가 손글씨로 쓴 박사학위 논문(주제:태교 미실천 어머니의 심리적 요인이 자녀와의 상관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모두 타이핑 하는 등 보조를 맞췄다. 힘들어할 때 "역시 우리 마누라" 하면서 격려도 잊지 않았다.
-암 이전과 이후의 인생이 크게 달라졌는데.
"이전에는 즐기는 게 행복인 줄 알았죠. 암을 겪으면서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매우 진지해졌습니다. 생명의 유한성도 깨달았지요. 그러니까 시간을 허비하는 게 너무 아까워졌어요. 나 개인의 행복보다는 남에게 도움을 주며 보람있는 일을 추구하면서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도 하게 됐고요."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변했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말할 때 많이 조심하게 됩니다. 뜻하지 않게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나 않을까 조심합니다. 예전 같으면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 속상했지만 지금은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하고 이해를 하게 됩니다."
-상대방의 힘든 상황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힐링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남편에게 쏘아붙일 때 똑같이 대응하지 말고 '당신 오늘 많이 힘들었나봐'라고 한마디 해 보세요. 아내의 강퍅했던 마음이 눈녹듯 녹아내립니다. 이게 바로 힐링이지요."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좌절하면 병이 깊어지지만 도전하면 치유가 시작됩니다. 지금 이 순간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다, 라는 마음으로 무엇인가 시작하고 몰두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내가 공부에 몰두하지 않았다면 아마 벌써 암에게 졌을지도 모릅니다."
-일대일제자양육훈련과 간증, 세미나를 통해 강조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모든 인간관계에서 핵심은 내가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변하면 그 파장으로 내 주위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게 됩니다. 이것은 부부간에도, 부모와 자식간에도, 목사와 신도간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조금 전에 했던 말과 합쳐서 '내가 변하면 지금 이 순간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다'라는 말을 항상 강조합니다."
70이 다 된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은 그 열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도전이 되겠다는 말에 이윤자 권사는 '발달 심리학'이란 책에 소개된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란 글을 소개했다.
'지금 95번째 생일/내 65년 생애는 자랑스럽지만 이후 30년은 부끄럽고 비통하다/퇴직 후 덧없고 희망없는 30년을 살았다/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은 큰 잘못이었다/이제 나는 어학공부를 하려한다/이유는 한가지, 10년 후 맞이할 105세 생일날 지난 10년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 주변에는 자기 스스로 무기력하다고 생각하는 시니어들이 너무 많습니다. 70이든, 80이든 그 나이에 맞는 일이 있습니다. 무력하게 여생을 보내다 보면 95세 어른이 들려주는 회한의 수기를 그대로 복기하는 자신의 모습을 나중에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윤자 권사 이메일 moleebless@yahoo.com
이원영 기획특집부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