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엽평론

청와대, 해경을 ‘구하라’에서 ‘해체하라’까지 (펌)

Chung Park 2014. 5. 25. 02:30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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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해경을 ‘구하라’에서 ‘해체하라’까지

등록 : 2014.05.19 15:16 수정 : 2014.05.19 17:55




분명한 건 국민이 불쌍하고 나라가 위태롭다는 것
잘못된 권력구조, 눈물과 제스처로 덮을 순 없는 일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58 “그럴 리가 없습니다. … 그럴 리가 없습니다.” 세월호 침몰 다음날 진도체육관에 들렀을 때 유족들은 아우성쳤죠. 아이들 살려 달라고, 제발 아이들 살려달라고, 해경은 그저 방관만 하고 있다고. 그러자 김석균 해경청장이 이렇게 해명했습니다. “저희는 어떤 여건에서도 잠수부 500여 명을 투입하고….” 유족들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유족이 확인하기로는 그때까지 물속에 들어간 잠수부는 6명, 6명, 4명 등 14명이 고작이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당신은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로부터 얼마지 않아 길환영 한국방송(KBS) 사장이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해경 너무 비판하지 말라, 청와대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이미 알려졌지만, 해경은 배가 기울 때 선체로 진입하라는 상부의 지시도 거부했습니다. 위험하다며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300여 명 가까운 사람이 갇혀 있는데도, 어업지도선의 어부들이 기울어진 배에 올라 구조하는데도, 해경은 그저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그로부터 하루가 지나 선체가 완전히 침몰했는데도, 당신은 그럴 리가 없다고 되뇌었습니다. 뒤늦게 유족의 요구에 떠밀려 ‘구조하라, 명령이다’라고 했지만, 그건 허공에 대고 한 말이었습니다. 거짓 보고에 놀아나 허튼 명령이나 하는 이 나라 대통령이 불쌍한 건지, 아니면 그런 대통령이 한심스러운 건지. 분명한 건 이 나라 국민이 불쌍하고 이 나라가 위태롭다는 사실입니다. 침몰 당일에도 얼마나 갇혀 있는지도 모른 채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으면, 반드시 구조하라’고 말했죠. 무지하면 용감하다고, 어쩌면 그렇게 당신의 잘못된 정보, 지식, 판단에 대한 고집과 확신이 흔들림 없는지. 당신은 그 뒤로도 계속 ‘그럴 리가 없다’는 자기 확신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았습니다. ‘해경을 비판하지 말라는 청와대 지시’는 한국방송 사장에게 계속 내려갔다고 하니까요. 오늘 당신은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당신의 눈물과 해경 해체. 그게 대안을 갖고 사과하겠다고 거듭 예고했던 대책이었습니다. 허탈하군요. 사람이 문제였는데, 이 정부의 작동 원리가 문제였는데 증상에 해당하는 것만 싹둑 잘라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오른손이 잘못하면 싹둑 잘라 왼손에 붙이면 끝인가요? 문제는 머리와 가슴인데 말입니다. 참사의 주범은, 해경을 구하려던 청와대와 해경을 해체하라는 청와대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지난 주 당신의 비상대책위원이던 이상돈 전 중앙대 교수는 이런 내용의 칼럼을 일간지에 기고했습니다. “여권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이런 정부는 도대체 처음 본다’고 이야기한 지는 제법 됐다. ‘받아쓰기 하는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이라고 보도할 때 언론은 이미 이 정부가 위기에 무력할 수 있음을 암시했지만, 청와대는 그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에는 다른 길을 갔다. 그래도 처음 몇 달은 대선 때 약속을 시행하려 했지만 김기춘씨가 비서실장이 된 후에 공약은 아예 사라져버렸다. 4대강 사업의 비리 의혹도 김 실장 등장 후에 없었던 일이 되었다.” 여권의 생리에 누구보다 정통한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책임한 사람들이 민족 개조, 국가 개조 얘기를 한다. ‘무엇을’ ‘어떻게’ 가야지, 뭘 하나 잡아서 덮어씌우자는 얘기다. 개각 얘기하는데 지금 권력은 내각에 있지 않다. 국무총리가 사표 냈다는데 국민들은 우습게 본다. 지금 장관은 장관이 아니다. 실세는 청와대에 있고, 국정원에 있다. 권력 핵심을 바꾸고 대통령 자신의 태도를 바꾸는 게 중요하다.” “유신헌법 만든 사람이 지금 비서실장인데, 그게 핵심이다. 청와대를 바꿔야 한다.” 정치적 지향은 달랐지만 시각은 일치합니다. 대통령이 바뀌고, 청와대가 바뀌고,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정원장이 바뀌지 않는다면 모든 대책은 허황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당신에겐 이 두 사람이 진돗개 정신에 충실한 물어뜯는 인간형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눈밝은 이들에게 이들은 당신이 즐겨 쓰는 ‘암덩어리’에 불과합니다. 더 큰 쪽은 김 실장입니다. 당신과 당신의 정권 그리고 대한민국을 맹골수로에 빠트리는 장본인이라는 겁니다. 이 정권의 검찰이 희생양으로 기대를 걸고 있는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 본부라는 금수원 정문 앞에 걸려 있는 펼침막은 그 점에서 정곡을 찌릅니다. “김기춘 실장, 갈 데까지 가보자.” 받아쓰기 내각에서 권력의 유일한 원천은 대통령입니다. 그리고 눈과 귀가 어두운 대통령을 보좌하는 대통령 비서실장은 최고 권력의 ‘콘트롤 박스’입니다. 지금 모든 권력은 바로 이 책임지지 않는 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말 많은 새누리당이 그 앞에서 복지부동하고, 여당의 최고 실력자들이 비서실장 공관으로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허수아비가 된 건 그런 까닭입니다. 총리와 장관들도 더 말할 나위 없습니다. 전두환 시절 대통령 심기까지 경호한다며 권력을 틀어쥐었던 장세동 전 경호실장이 연상될 정도입니다.


불행하게도 그는 지금까지 여러 정권의 침몰에 간여했습니다. 아니 그가 콘트롤 타워 구실을 한 집단은 대개 침몰하거나 표류했습니다. 박정희 시절, 유신헌법을 기초해 영구집권의 길을 텄고, 당신의 양친이 피살되도록 했고, 유신체제도 그와 함께 몰락했습니다. 유신체제의 대공수사국장이었던 그는 오늘의 ‘종북 몰이’를 즐겼습니다. 노태우 정권의 법무부장관이었을 때, 유서대필이라는 검찰 사상 가장 가증스런 사건이 조작됐습니다. 1992년 대통령선거 목전에선 법무부장관 신분으로, 부산의 기관장들을 모아놓고, ‘우리가 남이가’, ‘와이에스(YS)가 떨어지면 우리 모두 영도 다리에 빠져죽자’ ‘장관이 얼마나 좋은지 아는가’라며 관권선거를 독려했습니다. 그렇게 관권선거를 주도한 자가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있으면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발의를 주도했습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어겼다는 것입니다. 한나라당은 총선에서 침몰했습니다. 이상돈 교수의 말대로 김 실장 체제 아래서 이 정권은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 정부가 출범하고 1년 반이 가까워 오는데, 한 일이라곤 국정원의 대선 공작을 뭉개고, 종북몰이로 국론과 국민을 분열시킨 것밖에 없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잘못은 유지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그의 서슬 아래 내각은 받아쓰기 내각, 여당은 거수기 여당이 되었고, 공영방송은 ‘앵무새 방송’으로 전락했습니다. 담화든 선언이든, 뒤늦게 눈물을 흘리든 말든, 성당에서 ‘내 탓이요’라고 가슴을 치든 말든, 이런 청와대와 권력의 구조 안에서 이루어지는 건 모두 가짜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 탓이라고 하던 그날과 전날 당신의 경찰은 참회와 분노의 눈물을 흘리던 시민들을 무더기로 연행해 사법처리 하겠다고 했습니다. 한복이나 양장 패션으로 무능과 무지를 가릴 수 없고, 출처를 알 수 없는 눈물과 제스처로 잘못을 덮을 순 없습니다. 당신은 또 ‘국가 개조’ 운운했습니다. 개조할 것은 이 정권입니다. 이 정권의 권력 핵심입니다. 당신의 말을 받아쓰기나 하는 내각이 아니라, 받아적기나 하도록 하는 청와대입니다. 국가 개조를 앞세워, 북한이나 다름없는 유신체제를 남쪽에 세운 건 부친이었고, 그것을 기초했던 그때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의 비서실장입니다. 이제 굳이 하야를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침몰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걱정스러운 건 이 정부의 침몰 과정에서 국민이 받게될 피해입니다. 세월호 승객, 세월호의 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었습니까. 어른들이 당신을 선장으로 선택한 것 말고, 무슨 잘못이 있었습니까.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출처 : 한겨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