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가 보는 조선 500년
근자에 이르러 총리후보의 역사관이 문제가 되고 있다. 조선 500년 역사를 폄훼하고 우리 민족성마저 비하하는 발언을 하며 식민지사관에 푹 찌들어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거기다가 일제 식민지화와 6.25를 하나님의 뜻이라 해석했다. 아무리 예정조화설에 바탕을 둔 신앙관이라 하여도 지나친 위험한 해석을 하고 있다. 이에 조선 500년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밝히고자 이글을 쓴다.
조선은 고려와 같이 당시의 무인세력에 의해 건국된다. 혼란의 시기에 나타나는 새로운 왕조는 항상 무력에 뒷받침된다. 일부 재야사학자들은 위화도 회군을 거론하며 조선을 폄하하고 있으나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면 새로운 왕조는 항상 무력에 의해 세워지는 역사를 우리는 보고 있다. 신라 말기의 혼란한 현상을 고려가 건국되며 새로운 출발을 하였고 고려말의 혼란을 조선이 세워지며 새로운 출발로 나아갔다. 고려는 왕건이 결혼정책으로 당시의 주도 세력들을 포용하고 나아가다 4대 광종에 이르러 귀족들의 세력을 왕의 관리하에 통제할 수 있었다. 조선도 3대 태종 이방원에 이르러 귀족들의 사병을 왕의 통제하에 두게 된다. 즉 건국초기의 무인세력에 의한 집권으로 조선을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후 조선은 세종 – 성종대에 이르러 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한다. 우리가 자랑하고 있는 훈민정음도 세종때에 완성되며, 나라의 기본 통치틀인 경국대전도 성종때에 완성된다. 훈민정음도 전혀 새로운 것의 창조가 아닌 과거 단군시대부터 있어온 가림토문자를 변형한 것을 보면 세종은 우리 역사의 뿌리를 알고 그 전통을 이어 가고자 하는 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으로 유추할 때 태조가 건국시 “조선”이란 나라 이름을 쓴 것은 자주적인 결정일 것으로 추측된다. (사실 삼국사기도 일제의 역사 조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예를 들어 100만 군사를 10만으로 줄인다든지.. 듣등) 즉 근대조선의 실체는 과거 동이족으로부터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이념을 “훈민정음”이나 “조선”이라는 국호에서 보듯 계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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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국경도 세종때 4군 6진으로 변방을 확고히 한다. 이 4군 6진이 어디인가에 대해서는 재야 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여러 주장이 있다. 어느 재야 사학자는 세종때의 4군 6진이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근방으로 주장한다. 나는 이 주장에 다소 무게를 둔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제가 이 블로그에 실은 글(중앙아시아 : 고구려 백제 신라 당의 접경지역)에서,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생전에 중앙아시아에서 신라 백제, 고구려와 싸웠다고 한 기록이 설인귀 후손들이 보관하고 있는 고서에서 발견되었다 한다. 이런 서적은 역사 왜곡의 대상이 아니될 확률이 높다. 따라서 고구려 신라 백제 당이 중앙아시아에서 전투를 별였다는 것은 이들의 국경이 이곳에서 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도 신라가 이상하게 페르시아와 유사한 면이 많다고 했다) 따라서 통일 신라를 흡수한 고려와 고려를 이은 조선은 이들 지역을 관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성계가 고려말 활동한 요동지역은 지금의 역사왜곡된 지역보다 훨씬 서쪽에 있는 것으로 재야사학자는 보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티무르제국의 티무르가 이방원으로부터 떠난 이성계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 재야 사학 연구가('세계 삼한 역사연구' 블로그 참조)도 있다. 따라서 조선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큰 나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민족 무대를 한반도에 설정하고 한민족을 분열하는 민족으로 비하하는 일제 식민지사관으로부터 온 국민이 하루 속히 벗어나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블로그 “세계 삼한 역사 연구”(http://blog.daum.net/han0114) 에서는 세종때의 동국지리지에 나오는 내용을 바탕으로 북아메리카가 조선의 영역이었을 가능성을 강력히 주장한다. 남아메리카 페루에서도 조선의 말탄 병사 그림이 동굴벽화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우리 민족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손성태교수의 글(본 블로그 게재)을 보면 수긍이 간다. 조선 19대 숙종이 말하기를 조선의 영토는 지방정부까지 합하면 징기스칸때보다 더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아즈텍문명, 마야 문명, 잉카문명이 우리와 연관이 있음을 고려할 때 남북 아메리카가 조선의 영역이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조선의 영역이 넓었다 하면 한반도를 가정하고 동인, 서인, 남인, 북인의 사색당파 분열의 민족성이라는 식민사관은 잘못된 것이다. 넓은 지역의 영토를 가진 나라에서 동쪽지역의 사람, 서쪽 지역의 사람, 남쪽 지역의 사람, 북쪽지역의 사람들은 판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인들이 중앙에 존재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조선시대에 색목인(서양인)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독일인 오페르트의 조선방문기 “Forbidden land”에 갓을 쓴 서양인들이 그려져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세계 삼한역사 연구 블로그 자료 참조)
평화스러운 조선의 역사가 외세의 침략을 처음 받은 것은 16세기말 임진왜란이 처음이다. 당시 왜의 세력에는 포루투갈 신부가 동행했고 화란의 조총이 있었다. 즉 서양의 세력들이 합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전까지 오로지 도둑의 세력에 지나지 않았던 이들이 갑자기 현대무기로 무장하고 침략해 온다. 이는 서양세력들이 왜인들을 앞세워 침략하는 모습이다. 이 16세기에 남미의 잉카제국도 망한다. 컬럼부스의 서인도제도 도착도 15-16세기이다. 즉 당시 유럽서양인의 항해수준은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에 겨우 오는 수준인 것이다. 따라서 동시대에 일어난 임진왜란은 지금의 한반도나 중국에서 발생했다기 보다는 중남미에 걸쳐 있는 왜의 세력이 유럽서양세력의 도움으로 북아메리카에 있는 조선을 침략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조선은 문신 우대의 유교사상으로 정치를 해와 국방을 소흘히 하였다. 나라보다 자신의 세력과 가문의 영달을 더 우선시하는 양반세력들 때문에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피폐해졌다. 그러나 조선이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의병들이 일어나 왜를 비롯한 서양세력들과 싸웠고 몰아냈다. 따라서 조선의 외침에 의한 피해는, 일반 백성들의 잘뭇때문이 아니라, 나라의 이익보다 개인과 가문의 이익을 우선시한 일부 지배계층의 탐욕때문이라고 정의해야 할 것이다.
이후 병자호란으로 청으로부터 침략을 받는다. 이미 임진왜란을 겪고도 정신을 차라지 못한 지배계층은 또 한 번 치욕을 당한다. 이 시기에 또한 청에게 많은 영토를 잃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효종의 북벌론을 상기해 보면, 당시 누루하치의 청은 아시아의 북쪽에서 시작하여 세력을 넓힌 것으로 보인다. 효종의 개혁시도도 양반들의 권력다툼에 성공하지 못하고 이 두 번의 전란으로 조선은 이미 내리막길을 가고 있었다. 그나마 희망을 주던 영조 정조시대를 지나서는 권문세가들의 세도정치가 더욱 흥행하여 나라보다는 개인과 가문의 영달을 꾀하는 지배계층의 탐묙으로 조선은 쇠퇴해 간다. 암행어사가 출두하고 민란이 많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탐관오리의 부패가 극심하여 백성은 수탈 당하고 나라의 곳간은 텅비어가는 상황인 것이다. 큰 개혁으로 나라를 바로 잡지 않으면 조선은 망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서세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시기에서...
이후 대원군이 쇄국정책으로 서양세력에 대항하며 다시 나라의 기틀을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실패로 돌아 가고,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몸부림을 쳤지만 결국 힘없는 나라를 일본과 서양세력에 빼앗기고 마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일제는 조선의 사서 20만권을 압수하여 조선의 역사를 잃어버리게 하고, 영국, 미국 등 서양세력과 결탁하여 조선을 나누어 가졌다. 이 과정에서 아시아 아메리카에 많은 식민지가 생기고 그후 식민지로부터 독립후 많은 신생국가들이 생겼다. 그들 지역에 과거 역사가 없으리 만무하지만 점령한 서양세력들은 과거의 역사를 지워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조선의 역사를 더욱 알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재야 사학자들이 노력하여 그 편린을 찾아 가고 있는 중이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한반도에 갖혀서 일제의 식민사관에 젖어 자기 비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독립운동할 때 장개석은 우리 조선의 영토가 어디였는지도 모르고 독립운동한다고 비웃었다 한다.
왜 스탈린이 연해주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보냈는지 숙고해 보아야 하며, 왜 스탈린이 젊은 김일성을 보내 한반도를 나누게 했는지, 그리고 병력을 지원하며 6.25를 일으켰는지, 그 와중에 모택동은 왜 터어키계인 돌궐족의 후손(위구르족 병사)들을 6.25의 제물로 삼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6.25가 미국을 한국에 붙히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보는 순진무구한, 역사를 모르는 무식한 자의 생각을 한시 바뻐 벗어 버리고, 탐욕스러운 지배계층들로부터 오는 적폐를 제거해야,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들이 편안할 수 있다는 역사의 교훈을 새겨, 과거 조선의 찬란했던 역사를 되찾아 부끄러움 없는 후손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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