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역사/조선

두만강은 남북으로 흘러 북해(北海)에 이른다

Chung Park 2022. 12. 22. 02:47

그동안 두만강에 대해 고민해 왔다. 요수인 압록강이 프랑스의 론강이라면, 두만강은 중국과의 경계인 라인강이 되어야 하는데, 두만강에 대한 자료를 찾기가 힘들었다. 삼국시대에도 고려시대에도 두만강이란 명칭은 없었다. 단지 이씨 조선에 와서 두만강이 언급되는 것으로 보인다. 세종 때의 4군 6진은 압록강에 4군, 두만강 유역에 6진을 두었다 했다. 그리고 숙종 때의 백두산 정계비도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두만강의 위치에 대해 특별한 언급들이 없는 것이다. 단지 중공 사가들이 두만강이 아니라 토문강이라고 하는 것만 들었다. 그래서 고민이 많이 되었는데, 최근 인테넷에서 우연히 청화수님의 글을 보고 두만강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청화수님의 글 중 '이성계 선조들 이야기' 편에서 익조 이행리의 여진족들과의 대치에서 피신하는 과정에 두만강이 언급된다. 두만강을 따라 피신해서 북해에 있는 적도로 피신했다는 것이다. 실록에 북해라는 표현이 나온다는 것이다. (상기 유튜브에서 7;15/31;27 내용) 아래 유튜브 주소를 클릭해 한번 들어 보시기를 권한다. 

https://youtu.be/KGYi4hDe_jI 

 

필자가 과문하여 그동안 실록의 기록들을 보지 못하였는데,  자료 원천을 찾아 보니 대조선사 연구회에 그 내용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었다.

" 익조가 여진 천호의 협공을 피해 알동의 백성을 거느리고 적도를 거쳐 의주에 정착하다. 

 

익조는 황급히 돌아와서 가인(家人)들로 하여금 가산(家産)을 배에 싣고 두만강의 흐름을 따라 내려 가서 적도(赤島)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자기는 손부인과 함께 가양탄을 건너 높은 곳에 올라 가서 바라보니, 알동(斡東)의 들에 적병이 가득히 차서 오고, 선봉 3백여명은 거의 뒤를 따라왔다. 익조는 부인과 함께 말을 달려서 적도(赤島)의 북쪽 언덕에 이르렀는데, 물의 넓이는 6백보나 될 만하고, 깊이는 헤아릴 수도 없으며, 약속한 배도 또한 이르지 않았으므로 어찌할 수가 없었다. 북해(北海)는 본디 조수가 없었는데, 물이 갑자기 백여보 가량이나 줄어 들어 얕아져서 건널만 하므로, 익조는 드디어 부인과 함께 한 마리의 백마를 같이 타고 건너가고, 종자(從者)들이 다 건너자 물이 다시 크게 이르니, 적병이 이르러도 건너지 못하였다. 북방 사람이 지금까지 이를 일컬어 말하기를, "하늘이 도운 것이고 사람의 힘은 아니다."

 

(자료 :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총서, 인용출처 : 대조선사연구회, 러브선, '북해는 두만강유역인가?')

 

 

필자는 이미 '고려의 강동 6주는 엘베강 동쪽에 있었다'라는 글에서 여진족이 이 근방에 있었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아래 이행리에 대한 나무위키 자료를 보면 '북해'란 중요한 어귀가 없다. 한반도를 상정하고 있어서인지 이런 표현을 빼먹은 것은 매우 유감이다. 

 

 

"1. 개요

조선 왕조의 추존 국왕으로 태조 이성계 증조부.

조선 개국 직후에는 시호 '익왕'(翼王)만 올렸다가 현손자인 태종이 1411년에 묘호 익조(翼祖)를 올리고 시호를 '강혜성익대왕'(康惠聖翼大王)으로 바꿨다.#

2. 생애

전라도 전주에서 두만강 하류 부근까지 이주해서 몽골 제국의 오동천호 및 다루가치가 되었던 목조 이안사와 효공왕후 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4남으로, 부친 목조가 죽은 다음 해인 1275년 3월에 천호 벼슬을 물려받았으며, 이후 쌍성 등지의 고려 군민(軍民)을 다스리는 다루가치의 일을 맡았다.

하지만 여진족 천호들에게 쫓겨나게 되었는데 당시 두만강 주변의 천호들은 모두 여진족이었지만 이행리만 유일하게 고려인이었다. 그래서 여진족 천호들은 두만강 북쪽에 있었던 동족들과 모의해 고려인 천호 이행리를 습격해 죽이기로 하고, 이를 모르는 이행리에게는 사냥간다는 핑계를 대며, 미리 군사들을 풀어 도주로를 차단했다. 그런 줄 몰랐던 이행리는 길에서 한 노파를 만났는데 노파가 이 사실을 전해줬고 깜짝 놀란 이행리는 두만강 하류에 있는 '적도'라는 섬에서 만나자고 가솔 및 가병들에게 전한 이후 자신도 적도로 향했다.

이행리는 겨우 적도 기슭에 다다랐지만 두만강은 물이 깊고 폭이 넓어 건널 수가 없었고, 여진족 천호의 추격병까지 쫓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썰물 덕분에 물이 빠져 건널 수 있었다. 나중에 추격병들이 왔을 때는 밀물이 밀려와 건널 수가 없었다. 이행리는 적도에서 움집을 짓고 잠시 살다가 배를 10척 정도 만들어 가솔 및 가병들과 함께 동북면 의주, 즉 현재의 원산으로 향했다. 의주는 아버지 목조 이안사가 몽골에 투항하기 이전 고려의 의주 병마사로 있었을 때 선정을 베풀었던 곳이라 그를 따르는 무리가 많았고, 경흥에 살고 있던 고려인들도 대거 오는 바람에 쉽게 세력이 다시 커졌다.

이행리는 얼마 후에 대몽골 울루스의 제5대 카안이자 원나라의 초대 황제인 세조 쿠빌라이 칸의 일본 원정에 참가했는데 이 때 충렬왕(25대)을 만났다. 충렬왕은 접견 자리에서

'그대는 본국(고려) 벼슬을 하던 집안이니 어찌 근본을 잊을 것인가? 지금 그대의 거동을 보니 마음이 본국에 있음을 알겠다.'

라고 말했다. "

 

(자료 : 이행리, 나무위키)

 

두만강이란 명칭은 언제 왜 생겼을까? 삼국시대에는 두만강이란 이름이 등장하지 않았다. 고려 시대에도 듣지 못한 것 같다. 아래 한청문감 만주 지명고에서 언급되는 것을 보면 조선시대에 이르러 생긴 것 같다. 그런데 아래 자료에서 눈에 띄는 것은 '고려강' 이라는 것과 여진어 자구에서 비롯되었다는 '새가 많이 모여 드는 골짜기' 라는 뜻의 도문 색금에서 도문이라는 여진어 표현이다. 사실 조선 시대에서 두만강은 주로 여진족과 관련되어 언급된다. 그러므로 여진과 관련된 말이라는 것에 신뢰를 주고 싶다. 상기 익조 이행리의 이야기와 세종때의 4군 6진의 6진, 그리고 선조 시대의 니탕개의 난 모두 두만강과 관련된 것이다. 아울러 '고려강'이라는 표현은 고려시대의 강동 6주를 떠올린다. 요나라와의 국경전쟁후 확보한 지역이며, 역시 여진족과 관련된 것이다. 

 

"두만강이라는 명칭의 유래를 《한청문감(漢淸文鑑)》 만주지명고(滿洲地名考)에서 언급하고는 있으나 명확하지 않다. 두만강은 또, 고려강(高麗江)·도문강(圖們江)·토문강(土們江)·통문강(統們江)·도문강(徒門江)으로 표기된 바도 있다. 만주지명고에 의하면 두만강이 새가 많이 모여드는 골짜기라는 뜻의 도문색금(圖們色禽)에서 색금을 뗀 도문이라는 여진어(女眞語) 자구(字句)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한청문감》의 동문유해(同文類解)에서는 원나라 때 지방 관제에 만호(萬戶)·천호(千戶)라는 관직명이 있었는데, 여진어로 만호를 두맨이라 발음하며 이를 한자어로 표기한 것이 두만강이라고 한다.[6]

............

 

조선 시대 국경선이 확정된 지역으로, 6진[8]이 이 곳에 설치되었다. 니탕개의 난 등 조선 전기 여진족의 약탈을 막아낸 지역이기도 하다.

 

(자료 : 두만강, 나무위키)

 

 

그럼 이러한 정보를 가지고 북해가 유일하게 존재하는 유럽에서 두만강의 존재를 검토해 보자. 또한 적도가 필자가 추정한 두만강 하류 북해에 있는 유럽의 지역에 있는가 살펴 보자. 그리고 어느 강이 이들 섬의 하류와 접하는지 알아 보자. 그 강이 두만강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진어가 뜻하는 새가 많이 모여 드는 골짜기가 존재하는지 알아보자. 그리고 이들 지역이 여진족과 모두 관련이 있는지 알아 보고, 필자가 살펴본 강동 6주와도 연관이 있는지 살펴 보자. 미리 말하지만 놀랍게도 이 모든 사실들이 엘베강과 연관되어 나타난다. 즉 엘베강이 두만강이라는 것을 매우 강력하게 나타낸다는 것이다. 하나 하나씩 검토하고자 한다. 

 

1) 남북으로 흘러 북해로 가는 유일한 지역 유럽

 

이미 필자는 패수의 정의시 밝힌 바 있다. 고구려의 사신이 하는 말, '패수는 서북으로 흘러 바다에 들어 간다.' 에서 유일한 장소는 유럽 뿐이며, 패수가 라인강이라 했다. 한반도의 어디에 서북으로 흘러 바다로 가는 강이 있던가? 현재 중공의 어디에 서북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 가는 강이 있던가? 결국 러시아의 북극해에 달하는 강뿐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다른 지형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가 위에서 언급한 '북해'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다. 심지어 지금도 유럽에서 North Sea, 북해라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북해란 단어 하나만으로도 이미 두만강은 유럽에 있었다는 결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이 지역에서 이미 여러 한민족 관련 지명을 밝혔다. 해모수, 두막루의 덴마크, 실위를 말하는 Schleswig, 해두족을 의미하는 Aedui, 니하를 의미하는 Rhin의 라인강, 요수를 의미하는  Rose, 즉 론강, 백두산, 장백산, 태백산을 의미하는 몽블랑산, 등등. 이번에 덴마크 좌측에 Mando라는 섬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do는 분명 섬도(島)자일 것이다. 즉 북해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이 한민족의 활동 영역이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는 것이다. 

 

2) 북해에 있는 Frisian islands 

 

유럽 북해에는 Frisian islands라는 특이한 섬들이 있다. 일명 Wadden Sea라는 이름으로 길게 뻗어 있는 뻘이 많은 섬들의 연결체이다. 이들 지역은 조수 간만의 차이로 인해 육지와 연결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즉 익조 이행리가 조수의 간만차이로 여진족의 추격을 피해 두만강을 건넜다는 일화가 가능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The Frisian Islands, also known as the Wadden Islands or the Wadden Sea Islands, form an archipelago at the eastern edge of the North Sea in northwestern Europe, stretching from the northwest of the Netherlands through Germany to the west of Denmark. The islands shield the mudflat region of the Wadden Sea (large parts of which fall dry during low tide) from the North Sea.......

 

Tidal action transported large quantities of sand to form a line of dunes extending over 500 kilometres (310 mi) from the Netherlands to the mouth of the river Elbe in Germany. The sea broke through the dunes in many places to form the Wadden Islands, with the low-lying country behind becoming the tidal Wadden mudflats......

 

Mandø is even reachable without a dam by means of tidal road.

(source : Frisian islands, wikipedia, 인용출처 : 본 블로그, )

 

Wadden Sea including Frisian islands in North Sea, Europe (source : Wikipedia)

 

3) Elbe 강 하구에 있는 Trischen 섬

 

이 섬은 현재 무인도로서 십만마리의 새들이 산란하는 장소로 되어 있다. 즉 여진어의 새들이 많이 모이는 골짜기라는 도문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엘베강은 옆의 Weser river, Ems river 등과 달리 Valley 즉 계곡이 있는 험한 지형을 가진 강이라는 것 또한 위의 내용과 일치한다. 따라서 엘베강의 하류에 있는 Trischen 섬이 이행리가 피신한 적도가 아닌가 한다. 

 

"Trischen (help·info) is an uninhabited island in the Meldorf Bay, about 14 kilometres (8.7 miles) off the North Sea coast of Dithmarschen in north Germany – about 12 kilometres (7.5 miles) from the Trischendamm embankment. The island belongs to the municipality of Friedrichskoog and is only occupied from March to October by a bird warden from the Nature and Biodiversity Conservation Union or NABU. Otherwise it is out-of-bounds. Trischen originated about 400 years ago and moves about 3 m per month towards Büsum on the mainland.

Trischen is visited by birds as a breeding and resting area. Up to 100,000 birds of some species, such as the shelduck, knot or dunlin, occur on the island and in the nearby Wadden Sea. Since 1985 it has been part of the core zone of the Schleswig-Holstein Wadden Sea National Park."

 

(source : Trischen, wikipedia, 인용출처 : 본 블로그 )

 

Elbe 강 하류에 있는 Frischen 섬 (source : Wikipedia)

 

 

 

Location of Trischen island (source : Wikipedia)

 

 

Location of Mando (red point) (source : Wikipedia)

 

 

4) 고려강일 수 있는 Elbe 강 

 

필자는 '고려의 강동 6주는 독일의 엘베강 동쪽에 있었다'라는 글에서 요나라와 전쟁 끝에 확보한 강동6주는 엘베강 동쪽에 있었다는 것을 추정했다. 세종 때의 4군 6진은 압록강에 4군을, 두만강에 6진을 세웠다 했다. 이때 여진족을 몰아 내고 6진을 세웠다 했다. 강동 6주와 세종때의 6진이 모두 엘베강가에 세운 수군기지일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두만강은 고려강이라고 불릴 수 있다고 본다. 이 엘베강 좌측 지역은 요나라가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요나라의 역사는 신성로마제국 역사에 숨어 있다'라는 글에서 요나라가 이 지역에 있을 수 있는 것을 추정했다. 즉 요나라가 이 지역에 있고, 이어 금나라가 이 지역에 있고, 이들의 서쪽에 송나라가 프랑스지역에 있었다면, 이들을 모두 굴복시킨 원나라는 필경 프랑스 지역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두만강 지역에 압록강 지역에 쌍성총관부가 있어 평안도, 함경도의 지역임을 말한다고 본다. 압록강인 론강유역은 지중해에 접한 서안평 등의 지역을 고려할 때, 평안도 지역으로 추정되고, 그 위의 지역은 함경도지역으로 보인다. 즉 지금의 한반도처럼 동서로 있는 평안도, 함경도가 아니라, 남북으로 이어진 평안도, 함경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북해에 접한 지역은 함경도가 된다.  

 

Elbe River basin (source : Wikipedia)

 

Elbe river Valley (source : Wikipedia)

 

Elbe river valley 2 (source : wikipedia)

 

이상으로 두만강이 엘베강임을 추정했다. 이는 많은 의미를 가진다. 즉 이씨 조선시대에도 독일까지 조선의 땅이었다는 선교사의 말을 입증하는 것이 된다. 또한 백두산 정계비의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한 청나라와의 경계를 말해주고 있다. 왜 백두산 정계비가 현존하지 않을까? 그보다 훨씬 전의 광개토태왕비가 존재하는데 말이다. 이는 필시 일부러 없애거나 감추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아무리 옮겨 놓아도 그 내용을 지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조선시대에 연구가 이르면 이에 대해 보다 자세한 연구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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