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392-1910)

[스크랩] (펌)두 개의 조선, 600년의 역사.

Chung Park 2014. 12. 2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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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조선, 600년의 역사.

글쓴이

::

우리역사 

  

 

 등록일 2011-1-7

 

 

 

※ 글을 최대한 짧게 쓰려고 했으나 글이 길어졌습니다.

   여러분의 앎에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번 글에서 동이와 우리의 대략적 역사를 말했는데 그 연장선에서 다시한번

말하지만 지난 수천년간의 아시아대륙의 역사와 유럽 일부의 역사는

아시아 북방 유목민족의 역사이다.

그 북방 유목민족을 주도한 것은 단연 동이이다.

그 역사는 우리의 이조시대로 불리는 지난 600년의 역사에서도 유효하다.

 

아시아대륙을 거의 삼분하던 삼국시대에서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아시아대륙의 북부지역에는 고구려를 계승하는 발해-요-금-몽골 등이 연이어일어나고,

중북부 이남에서는 신라를 이어받으면서도 고구려의 계승권을 주장하는

고려가 팽팽하게 맞서면서 대륙남북국 형세를 이어나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구려의 계승권이다.

배달민족 즉 동이민족은 예로부터 천손사상을 굳게 믿고 있었기에

그들의 종교-정치지도자는 천자로 불리었고 그가 이끄는 국가는 천자국이었는데,

하늘을 기운을 이어받아 땅을 호령하는 천자와 천자국은 둘이 될 수없는 유일한

것이었기에 그 천자국이란 위치를 두고 두려워 넙죽 절하거나 때론 견제하고,

호시탐탐 그 위치를 노리곤 했던 것이다.

 

옛조선 시대의 천자국은 당연히 조선이었고 그 천자국을 이어 받은 것은 고구려였기에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도 고구려의 계승권은 중요할 수밖에 없었던 것.

고려와 북방의 범동이계 민족 국가가 남북국으로 대치하게 된 것은

제후국 신라가 천자국 고구려를 멸하면서부터 그 관계가 어긋나된 이유인데,

 

고려는 신라를 이어받으면서도 천자인 고구려의 계승권을 내밀었지만

북방의 잔존 고구려 후예세력들은 세력을 키워 그 명분에

지속적으로 저항해왔던 것이다.

방어하는 고려와 들이미는 여진을 위시한 북방민족들,

결국엔 거대 제국화한 여진의 다른이름인 몽골에 고려는 무너지고

일시적으로 다시 일어서지만 내부의 여진인 적 이성계(티무르)에게

천자의 위치를 내어준 것이 이조시대 이전의 역사인 것이다.

 

옛조선-고구려의 천자국 시절에는 고려인이나 여진인 양자 모두

구별이 힘든 천손이었으나 고려의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기간의 승리후엔

아주 오랜기간의 천자국의 위치를 여진인이 거머쥐는 역사의 서막이 이성계조선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천자국, 고려인과 여진인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은 실제로

중세 고려 이후 고려와 여진인을 필두로한 북방 민족과의 대결사가

아시아의 중세-근대사이기 때문이다.

 

여진인 이성계는 북방민족의 역사에서 어마어마하게 비중이 큰 인물로

일제와 중공의 역사조작만 아니었다면 광개토황제나 아골타 혹은 칭기즈칸이나

누르하치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물론 우리민족으로 봐서는 아쉽기만한것이 이러한 여진인의 영웅 출현만 없었더라면

티벳북부에서 열도에까지 이르렀던 옛영토를 회복하고 대륙에 동이-고려민족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써갔을지 모를일일 것.

 

아무튼 대륙내의 고려영역 북부에서 동서로 걸쳐 거주하던 고려의 유민들은

여진인에 동화되거나 집단적으로 대륙 동부와 만주-반도 지역으로

이주해 들어갔을 것이고 그곳에서 고려의 맥을 지키려하였을 것이다.

 

이성계는 고려의 영역을 그대로 깔고 앉고서 서북방의 영토학장 서역의 개척 등

고려보다 더 강성한 나라를 일구어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성계의 조선 건국은 우리민족에겐 황위 찬탈일 뿐이었지만 여진인을 위시로한

유목민들에겐 칭기즈칸의 재림이며 새로운 천손 역사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이성계의 국호 조선의 의의는 고구려의 계승을 넘어 신라-백제의 남방 동이와

직전 황조인 고려인까지 포용하는 옛조선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황위 찬탈의 부당성을 가리려함일 것이다.

 

조선 개국 얼마후까지 고려는 조선에 대한 저항의지를 완전히 상실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이방원에 의해 그 의지가 꺾이고만 듯하다.

 

곧이어 그 유명한 왕자의 난 이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이성계와 이방원의 조선은 결국엔 두 개의 조선으로 나뉘는데

중원대륙의 서북방 여진인 지역을 중심으로 중원의 많은 남방 제후국을 거느린 중국이 그 중 하나이며 중원대륙의 중부이동 지역의 고려지역의 동국이 나머지 하나이다.

 

러니까 중국조선은 여진인 황조의 여진인 지배층의 천자국이며

동국조선은 여진인 왕조와 고려민족으로 구성된 첫 번째 제후국가인 셈이다.

 

아마 중국의 황제는 이성계 일파였을 것이고 동국의 왕은 이방원 계열이었을 확률이

높은데 확실한 사실은 알 수없는 것이 일제가 중국과 동국의 역사를

아주 절묘하게 짜깁기 해놓았기에 중국 황제의 치적과 동국 왕의 행적이 섞이거나

바뀌어 나오는것을 가려내기는 현재로선 불가능한 작업이리라.

 

또 이 두 조선을 조작하면서 중국의 역사를 동국의 역사로 구겨 넣거나

겹치기를 시도한 흔적이 너무 많고,

중국이 곧 명인데 명과 조선은 전혀 무관한 것처럼 인식하게끔 하려고

허구의 사실을 창작하기도 했으며,

궁극적으로 동국만을 조선인 것처럼 위장하려함이 역사조작의 목적인데

왜놈들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현재까지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 셈이리라.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이조사 조작은 일제만큼이나 중공도 그 공(?)이 크다.

현재의 제도권 역사에 나오는 모든 중공사는 허구이거나 가공, 편집된 것이다.

애초에 한족이란 존재하지가 않았다.

 

한족이란 허구적 개념을 깨고 보면 중공의 참된 역사가 보일 것이다.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을 보자.

아시는 분은 다 아시다시피 임진왜란은 반도와 열도의 전쟁이 아니다.

 

임진왜란이란 사건명에서 보듯 임진왜란은 임진왜란 당시의 일본은 존재하지 않았고

이는 통일왜구의 대륙 침략전쟁인데 풍신수길이란 해적두목이 내 뱉은 ‘정명가도’란

유명한 말에서 전쟁의 성격은 다 나온다.

 

제도권 역사처럼 조선이 반도이고 왜구가 열도이고 대륙 전체가 명이라고 가정하면

‘명을 정벌하기 위함이니 길만 내 다오’의 ‘정명가도’는 설명될 수 없다.

최근의 조어도 문제로 인한 중-일갈등에서 보듯 열도가 대륙을 침략하려면

반도의 길은 필요가 없고 열도에서 대륙의 동해안을 언제든지 직접타격을 가할 수 있다.

 

반면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민족의 동국의 위치를 만주-반도는 물론이고

대륙동부까지 그 강역을 넓혀보면 임진왜란은 쉽게 설명된다.

 

명나라인 조선의 중국 동쪽을 동국이 감싸고 있는 형태였으니 대륙의 동해쪽을

왜구가 공격해온다면 동국을 넘어야 명나라인 중국을 침략할 수 있기에

동국에게 길만 내어 달라고 했던 것이다.

 

물론 이 어이없는 요구를 대륙 출신의 동국 고려인 이순신 장군께서 그냥 놔두지 않은게 전쟁의 결과이며 이러한 상식적 판단 외에도 임진왜란이 대륙에서 일어났음을 설명할 수 있는 사료는 많이 존재하고 있다.

 

임진왜란은 동남아 일대를 점거한 스페인-포르투갈-네덜란드 등의 지원을 받고,

대륙 동남해안과 동남아 일대를 통일한 왜구 떼와 조선의 동국-중국이 싸운 전쟁이다.

 

 제도권 역사에서 임진왜란 후 선조는 이순신과 동국군을 칭송했다고 한다.

반도의 동국군은 어디일까, 존재할 수 있는가? 이것 역시 역사조작의 빈틈이다.

동국군이라 하면 원래 동국 즉 고려군을 의미한 것이고

선조가 동국군을 특히 칭송한 것은 선조는 중국의 황제였기에

자신의 직할 군대인 중국군보다 더욱 용감무쌍하게 싸운

이순신 장군과 동국-고려군을 특별히 칭송했다는 의미이다.

 

임진왜란이란 7년간의 전면전을 통해 조선의 국토는 모두 불타고 폐허가 되었다고 기록되었다. 그 폐허된 국토가 과연 반도일까, 대륙일까?

임진왜란의 결과는 반도에서 이뤄졌다고 제도권 역사는 설명하고 있지만

 

쌩뚱 맞은 결론은 또다른 여진인 왕조인 청의 성장으로 인한 명의 멸망으로 이어졌다고 설명되고 있다. 이것이 정상적인가? 조선의 반도가 불탔는데 왜 명이 멸망하는가?

이것 역시 역사조작의 허점이다.

 

진실은 임진왜란으로 인해 대륙의 동국과 중국은 불탔고 중국이 불탄 틈을 타

중국 동북방의 또다른 여진인과 거란-돌궐 등의 동이계 유목민족의 연합세력이

천자국의 지위를 요구하며 중국을 누르고 들어온 사건이 병자호란인 것이고

이 세력이 누르하치를 비롯한 청나라이다.

 

이에 동국의 왕으로 추정되는 광해군이 중국과 청을 두고 실리외교를 펼치지만

동국의 지배계층 광해군에 집단 반발한다.

그 이유로 동국의 지배계층 역시 아마 다수가 조선의 중국과 연결된 여진인 계열이

많았던 것으로 생각되며 이러한 상황은 현재의 남한 상황과 무척이나 흡사하며

광해군의 실리외교는 오늘날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가련한 모습과 겹쳐

무척 애처롭다.

 

그들을 쉽게 욕하지 말지어다. 아무튼 병자호란을 거치며

청나라가 중국을 대신해 황제국의 위치로 부상하며

동국은 중국의 간섭통제를 받는 위치에서 청나라의 입김이 작용하는 국가로

또다시 국가와 민족의 존엄은 무너져 내린다.

 

이후 동국의 왕 옹립에 청나라의 입김이 얼마만큼 작용되었는지도

 일제의 말살적인 역사 짜깁기로 인해서 확인되지 않는다.

청의 강성에도 불구하고 동국의 여진계 지배층은 중국에 대한 사대를 멈추지 않는데

 

명을 향한 사대는 이방원의 동국이 아버지 이성계의 중국을 향한 예의이기도 하지만

기득권층의 구역질나는 부패는 시대를 가리지 않는것 같습니다.

 

청나라의 황제국 부상으로 제도권 역사에서

명이 멸망했다고 썼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 역사대로라면 동아시아에 청나라, 조선, 일본이 있어야 했겠지만

진실적 역사는 청나라가 황제국으로 부상한 것은 사실이지만

명은 멸망하지 않았고 일본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이것은 각종 양이들의 당시 고지도를 통해서 확인 가능하다.

 

일제와 양이, 중공은 치밀하게 역사를 조작하려했지만

지네들의 밥벌이였던 상인들의 과거 고지도는 전부 회수하지 못했고

그 지도 속에는 청나라는 타타르엠파이어로 중국은 차이나로

동국은 코리아로 표기되어 있으며 열도에 대한 표기는 없다.

 

들은 왜 존재하던 명을 죽여야 했을까? 그건 동이 역사의 조직적인 말살 음모이다.

저들은 명나라의 실체적 진실인 동이계 여진황조 이성계조선의 역사를 한족의 역사로 바꿔 놓았는데, 조선의 역사를 축소하고 그것도 동국의 역사조차 축소한,

오직 반도조선으로 왜곡하려면

20세기 초까지 존재했던 동이계 명나라는 심각하게 불편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 중국과 동국은 삭제, 축소 해놓고 같은 동이계 청나라는 왜 남겨 놓았냐고?

반도조선과 열도일본의 역사를 꾸미려면

청나라의 21세기 초엽 역사적 실체는 꼭 필요하고

또 청나라는 너무 큰 제국이라 러시아 등과의 역사적 관계도 너무 깊어

미처 삭제할 엄두도 내지 못했기 때문이지.

 

물론 청나라의 역사도 왜곡, 축소하긴 했는데 제도권 역사에서는

한족의 땅 중국대륙에 한에서만 변방의 황조가 들어선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지만

실제 청나라가 어마어마하게 큰 나라였는지 양이들의 고지도를 보면 확인된다.

 

청나라의 실제 강역은 캄차카 반도의 유라시아대륙 동쪽 끝에서 동유럽까지가

그 강역이고 러시아는 청나라에 가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정도만 보일정도로 찌그러져 있었다.

 

실제 러시아는 근세의 표트르 대제 이전까지 역사가 없었지. 몽골제국의 식민지에서

청나라의 식민지 그 이전엔 아마 고구려와 발해의 식민지였음이 틀림없지.

아마 고구려와 발해의 강역도 몽골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테고,

아무튼 청나라는 몽골제국보다 더 큰 어마어마한 제국이었음에 틀림없어 보이는 만큼 양이들에게 동이는 동경과 두려움의 대상이었을테니

그들의 역사를 그대로 보존해주면 안되었겠지.

아무튼 저는 당시의 역사에서 가까운 미래의 역사를 그려 봅니다.

러시아의 역사도 이제 제자리를 찾아가겠지요.

 

19세기들어 중원대륙에서는 천주교를 위시로한 양이들의 어마어마한 대륙침투,

대륙강탈 음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이에 반발한 사건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태평천국운동과 러일전쟁이다.

 

태평천국운동은 사실 우리가 익히 아는 동학농민운동이다.

우리 제도권 역사에서는 태평천국운동은 청나라의 역사로 배우고

우리의 동학과는 무관하게 해석하는데 태평천국운동은 대륙 동북부의 동국에서 벌어진 고려민족의 민중운동으로 이를 동학과 분리시킴의 의도는

대륙에서의 동국 역사를 축소은폐 하기위한 수작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튼 양이들이 침투하면서 결과적으로 민족전체에게 좋건 나쁘건

이념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 이 시기쯤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태평천국운동을 주도했던 홍수전 선생을 청나라의 카톨릭 끄나풀 정도로

역사왜곡을 해놓은 것 같은데, 그가 몸담은 상제회는 정통동학이고

그 연장선에서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동학농민운동이 이어졌다.

 

어쨌든 동국에서 이러한 대규모 민중운동, 더 나아가 혁명적 민중전쟁이 발발한 이유는 동국 고려인에겐 외세였지만 어쩔 수 없이 황제국으로,

아버지의 나라로 모시던 중국과 청나라는 동국에게 현기증 나는 간섭과 착취를

일삼지만 양이들의 침략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을 보면서

황제국과 외세의 허망함을 민중들이 깨우쳤다는 것이다.

 

태평천국 운동의 대표적 구호는 ‘멸만흥한’인데

이를 제도권 역사에서는 만주족인 청으로부터 중공의 한족을 해방시키는 것으로 해

석하는데 이것 역시 왜곡인 것이,

앞서 실제의 만주의 위치와 이성계조선과 청나라의 민족적 정체성을 설명했었고,

또 한족은 중공정권이 만들어낸 허구의 민족이라고도 썼었는데

 

만주의 실제 위치는 여진인이 발원한 지역으로

내외몽골 서쪽과 우즈벡-카자흐 동부지역이다. 만

주족이란 것은 여진인 즉, 몽골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현재 여진인이 살고 있는 몽골 역시 만주의 일부인 것이다.

 

이성계조선의 실체는 여진이고 누르하치 청의 실체 역시 여진이므로

동국의 눈에는 단지 그들은 모두 외세일 뿐이었으므로

‘멸만흥한’의 구호는 동국에서 여진인인 중국과 청을 몰아내고

자주적-민족적 국가를 회복하자는 독립운동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반외세운동의 기치를 내건 동학과 정확히 같지 아니한가.

허나 양이의 지원을 받고 제국주의화된 왜구 즉, 일제에 굴복하고 친일화된

중국의 여진인 지배세력은 자신들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동국 고려인들을

일제를 끌어들이면서까지 무차별적으로 진압한다.

 

결과적으로 대륙의 동북부의 동국에서 시작된 태평천국운동-동학운동은

만주-반도까지 연이어 봉기하였고 그 성공인 완전한 독립을 눈앞에 두고

중국-일제-양이의 결탁으로 실패하고 동학세력은 은거하는데

 

동학 진압을 명분삼아 대륙동부와 만주-반도의 동국을 점거한 일제와 양이들을

중국, 청나라 대륙의 본격적 침탈에 몰두한다.

 

이성계조선인 중국의 기득권은 이미 친일파가 득세하고 있었기에

대륙침탈에 눈을 감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결사 항일의지를 불태운 청나라는

동국에 지원요청을 하여 동국과 연합하여 청일전쟁을 치른다.

 

주요 전투장소는 전통적으로 동국의 대문이었던 북경-천진-청도 등이었고

청나라와 동국의 결사항전 의지 때문에 왜노들은 고전하지만,

양이들은 치밀하게 수개국의 연합군을 꾸려서 왜노를 지원하고

결국 청나라-동국의 연합군은 패하고 만다.

 

청나라의 서태후를 포함한 지배세력은 서안으로 피신하고 사실상 일제의 속국이

되어버려 피신할 곳마저 마련하지 못한 동국의 독립군은 대량학살 된다.

 

동국은 명분상 중국의 간접적 지배를 받는 국가였지만 청일전쟁 훨씬 이전부터

사실상 청나라의 간섭을 더 많이 경험하였기에 청일전쟁의 패배는 사실상

일제와의 병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서양화가들이 이무렵 북경 등의 대륙 동북지역으로 여겨지는 곳을 묘사한 그림들이

몇 있는데 그 그림 속 한복을 입은 조선인(고려인)과 전혀 다른 복장을 한

청나라인 등의 여러민족이 섞여 있는듯한 장면은

우리가 근세-근대조선(동국, 고려)이 한일병합 직전까지 대륙동부(북경, 천진, 청도,

상해, 남경 등)와 만주-반도에 걸쳐 있었음을 방증하는 사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중공동부 지역을 보라, 중공의 첨단적 요소의 대부분은 대륙 동부에 위치한다. 대륙 동부는 동국의 대문이었고 그것은 우리민족의 문화적 우수성에 기인한 것이라

말하면 과장인 것일까? 진짜든 가짜든 존티토의 지도를 생각해보라, 이해가 편할테니.

 

우리는 제도권 역사를 배울때 한일병합시 우리군이 전투다운 전투도 못해보고

나라를 일제에 넘겨준 것처럼 배우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청일전쟁시 동국의 동학군과 독립군은 처절한 사투를 벌이지만

왜-양이 연합군에게 끝끝내 패배했고, 이미 당시부터 청나라의 간접지배에 놓여있던

상태인지라 청나라가 패배하자 일제의 악독한 지배에 놓이게 된것이다..

 

그때가 1895년, 한일병합은 1910년인데 공식적인 한일병합 이전부터 만주와 연해주,

내몽골지역에서 활발한 독립운동을 벌였는데 그것은 이미 한일합방 이전인

청일전쟁 패배시부터 나라를 잃었음을 의미한다고 본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양이들이 즉각적으로 행한 작업은 대륙 동북부지역에

괴뢰국인 만주국을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만주국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난무하지만 실체적 진실은 철저히 가려져 있는데

한가지 확실한 것은 만주국 역시 조선사 날조에 혁혁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만주국의 역사적 역할은 동이의 역사 말살에 있다.

괴뢰 만주국을 건설하면서 최우선적으로 청나라의 역사 축소와 왜곡은 물론이며

민족정체성이 와해되었고, 동국의 대륙과의 연결고리를 단절하였기에

반도사관의 주입이 가능하였기에

동국의 후손인 우리민족은 대륙에서의 역사를 최단시간 내에 망각하였고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두 개의 조선인 중국과 동국의 역사조작인 겹치기, 짜깁기를

신속하게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주국을 건설하기 이전에 현 중공 동북삼성 지역엔 고려인과 청나라인이 대거 살고

있었을텐데 이들은 청나라-동국 패망 후 학살되거나 다량 반도로 이주했다.

그로인해 21세기 초 반도 우리민족의 인구증가율이 자연증가율을 훨씬 뛰어넘었다.

 

혹시 ‘황성옛터’란 노래를 아시는가?

일제강점기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던 ‘이애리수’라는 가수의 노래이다.

지금 세대의 가수들도 각종 무대에서 자주 공연할 정도인데 이 노래이 가사는

황궁 근처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이다. 코리아반도에 황궁이 존재했던가?

이 어르신 가수분 역시 대륙에서 이주해 온 분일 확률이 높은 것이

노래만 들어봐도 우리말 발음이 그다지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성계조선인 중국의 유민일 수도 있고, 청나라의 유민일 수도 아니면 대륙 동북부의

동국인 고려민족의 후예일 수도 있겠다.

청일전쟁 직후인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되는데 아시다시피 칭제건원을 하였다.

우리는 제도권 역사에서 반도조선 왕의 호칭을 격상하여 황제의 호칭을 붙여준 것으로 아는데 이건 좀 자연스럽지 못하다.

제도권 역사대로 본다고 해도 일제에 의해 패망을 앞둔 왕조가

반도 유사이래 없었던 칭제건원을 한다?

이건 뭐,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은가?

 

대한제국은 반도조선의 마지막 국가가 아닌

이성계조선인 중국의 마지막 국가명일 확률이 높다.

 

현대의 중원대륙사에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히는 손문, 장개석, 모택동 등의

인물들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우리민족에 끼친 나쁜 영향력은 지대하다. 이들은 분명 왜-양이와 연결된 세력이었음에 분명하다.

 

장개석은 내놓고 항일운동에 미온적이었다.

저 위에서 제도권 역사에서 청나라에 패망해 사라졌던 황조인 명이

제도권 역사와 전혀 다르게 20세기까지 존속하였다고 설명하였다.

 

그 조작된 명의 역사는 사실상 이성계조선의 중국이었음도 거듭 논증하였다.

그렇다면 그 이성계조선인 중국 즉 명나라와 손문, 장개석, 모택동 이들은

무슨 상관이 있나, 이미 400년 전에 패망하였다고 말한 명과 청을 이었다는

이들 세 인물, 분명 큰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나?

 

명과 청은 20세기까지 같이 존립하였는데 이건 무슨 전 인류를 상대로 사기질인가?

자금성이 개방된지가 언제인 줄 아는가,

중공에서 역사교육이 언제부터 실시되었는지 아는가?

중공은 불과 얼마전까지 엘리트 층이라고 불리는 이들만 대학에 진학하였는데,

그 엘리트 중 엘리트라는 청화대학교나 북경대학교 출신들도 등소평 시절까지,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칭기즈칸과 원나라의 역사도 모른다고 했다.

 

현 중공과 대만 지배세력은 왜구떼들 만큼 거대한 음모적 비밀을 감추고 있다.

대한제국 멸망일이 언제인가? 1910년이다.

중화민국 선포일이 언제인가? 1911년이다.

 

20세기까지 존속하였던 명나라를 역사에서 고의적으로 삭제하고

청나라를 이은 중화민국을 선포하였다?

 

명나라는 대한제국이고 친일화된 지배층은 제국주의에 굴복 혹은 결탁하여

대륙에 있던 이성계조선을 전통적으로 고려민족의 삶의 터전인 코리아반도 즉,

국의 지역으로 패망시켜 유배 보낸 것이다.

 

그리고 두 개의 조선, 여진인의 이성계조선-중국과 고려인의 조선인 동국의 역사를

총체적인 겹치기, 짜깁기를 시도한 것이다.

 

때문에 얼마전부터인가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한 대륙조선사의 재야사학과

제국주의-친일사학자의 학설을 그대로 이어받은 강단사학의 견해가

극명하게 갈리는 것이다.

 

물론 대륙조선설을 주장하는 재야사학의 주류사관 중 크나 큰 오류도 있다.

그 중 가장 큰 오류는 반도 역사 백지론이 그것이다.

그들은 두 개의 조선이 하나로 편집된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이성계조선-중국의 역사만을 연구했기에 반도는 역사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두 개의 조선을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

이 거대한 음모적, 민족 말살적 역사 날조를 풀어낼 수 없다.

 

우즈벡-카자흐 지역에 살고 있는 고려인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 있는가?

1930년대 한창 만주국이 건설 중일때

그들은 소비에트러시아 소련의 스탈린에 의해서 중앙아시아지역으로 강제 이주 당했다.

 

그들은 왜 연해주에 집단적으로 살고 있었는지 생각해 본적 있는가?

또 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곧 죽어도 고려인으로 드러냈는가를 생각해 본적 있는가?

 

중공의 고려민족의 소수민족 표기명은 조선족이라고 썼다.

렇다면 연해주의 고려인도 조선인이어야 하는게 합당하지 않을까?

허나 중앙아의 까레이스끼는 곧 죽어도 자신들을 고려인이라 불러달라고 했다.

 

물론 고려민족이나 조선민족이나 같은 단어이다.

허나 조선민족이란 단어는 두 개의 조선인 고려인과 여진인의 구별없이 고려인을 조선인으로 통칭하면서 대륙의 여진인이 세운 조선을 가릴 수 있고

즉, 명나라를 400년전에 패망한 왕조로 속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화민국이나 중공이나

그 명나라를 속임으로 인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대륙의 주인으로서의 부적절했던

자신들의 정통성을 가리려는 의도밖에 또 무엇일가?

 

거듭 거듭 말하지만 한족이란 허구다.

또한 한족이라 불리우는 현재 중공의 지배세력은 역사가 아예 존재하지 않다.

중원대륙의 중부이북은 대부분 여진, 흉노, 거란 등의 북방 동이

또는 동이-고려의 혈통이었고 역사 자체가 동이의 역사이다.

 

천자의 역사는 이조시대 이전까지 항상 우리민족에게서 나왔고

제후국의 역사도 대부분이 동이의 역사이고

대륙남방족의 역사는 제후국의 번국의 역사도 되지 않는것이 대부분인 것이 사실로

 

현재 대륙에서 한족이라 불리는 민족의 정체성은

여진인과 부분적으로 혼혈된 대륙서남방계 민족이 주류일 뿐이다.

 

현재 교열된 중공의 역사는

중원의 대륙에서 내내 천자국의 지위에 있던 동이의 역사를 주변사로 날조하여

자신들의 제후국-번국 역사를 천자의 역사에 올려놓는 사기를 보여주고 있다.

 

현대 중국의 영웅인 손문, 장개석, 모택동 등과 현재의 중공 집권세력도

그 대륙서남방계 민족과 관련이 있다.

이들은 양이-일제와 결탁하여 대륙에서 동이의 역사를 지워내는 것에

역할 분담을 배정받고 대한제국(명-여진인 이성계조선)세력의 역사를 이미

완전히 일제에 강탈된 동국(반도-고려인 조선)의 역사에 심는 것에 도움을 주는 댓가로, 중원대륙을 일시적으로 차지할 권한을 준것이다.

 

 결과가 1910년 대한제국 패망, 1911년 중화민국을 수립한 것이다.

서구식 민주주의 혁명 신해혁명이라?

대륙의 민중에겐 자생적으로 혁명을 시도하여 성공을 거둘만큼의

서구적 의식이 뿌리내려 있었을까?

또 우리는 이미 인류사에서 자발적인 혁명의 성공 예는 그다지 많지 않음을 경험했다. 전대륙이 일제와 양이의 놀이터가 되었던 혼란한 시절의 대륙에서 혁명의

단 한번의 시도에 의한 혁명의 성공이라,

인간은 사유의 동물이다 함부로 장난치지 말라.

 

다시 우즈벡의 고려인으로 돌아가서 소비에트러시아는

왜 연해주의 우리민족을 강제이주하였나?

이것은 당시 반제전선의 최일선에 섰던 진보국가 소비에트러시아 역시

제국주의적 요소를 간직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증거아닐까? 난

 

 인종주의자는 아니고 배타적 민족주의자는 되지 않으려고 되뇌이는 편이라

소비에트러시아의 혁명세력 다수가 유대인이 주류를 이뤘다고

그들이 전부 사회주의 이념을 제국주의에 이용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리유카바 최에 의하면 레닌 역시 반유대인이지만 자신의 정치지향성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고 하지.

분명 소비에트러시아 내에서도 국우세력나 내부스파이는 존재하였을것이라 보는데

당시의 소비에트러시아 역시 제국주의에 암암리에 가담했던 것은 사실로,

 희생자가 연해주의 우리민족 고려인인 것이다.

 

이조시대 내내 우리 동국의 조선민족 즉 고려인들은

연해주를 포함한 만주-반도와 대륙의 동부에 삶의 터전을 이뤘고

청일전쟁 패망 후 만주의 고려인들은 대거 반도로 내려왔는데

연해주의 고려인 희생자 처럼 대륙동부에 살던 고려인들 희생자는

생각보다 엄청날 수도 있을테다.

 

나라 잃은 슬픔은 비극 그 자체일 수 밖에...

아무튼 제국주의적 성향의 소비에트러시아가 고려인을 연해주에서 청소하려 든것은

일본과 중화민국이 대륙이 동이의 역사를 말살하는 과정과 같은 맥락이다.

 

반도 밖의 모든 고려인은 없어져야 인류의 시원민족 동이,

그중에서도 그 적통인 소도지역의 삼국과 고려의 천자를 직계로 계승한

고려민족이라 싹을잘라 멸족시키고 싶은 충동도 느꼈을테지.

 

소비에트러시아 이에 그치지 않고 청나라의 역사를 기억하는 이들을 혁명의 이름으로 대부분을 식민지로 삼기시작 하는데 그 나라의 숫자만해도 대단하다.

 

전성기 청나라의 강역은 캄차카 반도를 포함하는 러시아의 거의 전부와

중부이부의 중원대륙, 인도, 몽골, 카자흐, 우즈벡, 키르기즈, 타지크, 투르크메니,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등 거의 세계통일 수준이었다. 몽

 

골제국의 영토보다 그 영역은 더 넓었는데 그 중 동이의 혈통을 이어받은

카자흐-우즈벡-키르기즈-타지크-투르크메니 등은 모조리 소비에트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식민지하에 관리하여 슬라브인과의 혼혈화는 더해졌고

여진-돌궐 식 이름은 슬라브식 이름으로 고쳐졌으니

동이의 색깔을 완전히 발가벗겨버린 것이다.

 

양이와 왜구떼들은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동이의 순혈성을 간직한

우리의 고려민족의 유전자를 지워버리기 위해 지금도 매진하고 있으니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항시 잊지 말지어다.

 

 

이조시대의 서적이나 지리지 중 대표적인 것으로 ‘동국통감’, ‘동국사략’,

‘동국여지승람’ 등이 있는데 동국이란 단어가 괜히 붙은게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현재 한국사 어쩌고 하는 역사서를 읽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

조선시대에 발행한 사서는 대부분 동국이란 단어가 붙는데 이걸 생각해 보셔야 한다.

 

현재 발행한 고려시대 역사도 한국사, 조선시대 역사도 한국사 뭐 이렇게 나오는데.

당시의 이조시대는 두 개의 조선이 있었으므로 조선이란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중국과 동국이란 단어를 사용할 뿐,

 

당시 대륙의 여진인도 조선인이었고 고려인도 조선인인 것은 마찬가지였겠지만

동국 고려인은 중국 여진인의 피정복민족이었기에

중국에 어쩌고, 명에 어쩌고 하는 구절이 많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이치고

무엇보다 중국에서는 동국의 여진인 왕 옹립권을 어느정도 행사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니 이방원 조선이 이성계 조선에게 사대아닌 사대를 했으리라.

 

아무튼 이성계조선인 중국의 서적은 대부분

명 어쩌고 하는 것과 중국 어쩌고 하는 것이 다수이고 혹 조선 어쩌고 하는 것도 있는데 명과 중국 어쩌고 하는 서적은 중공에 가있을 것일텐데

 

앞서 몇 번이고 되풀이 했다시피 허구의 한족역사에 이성계조선의 역사를 끼워 넣고

대륙의 동이역사를 제거하는 것이고

코리아반도에서는 이성계조선의 역사인 조선 어쩌구하는 서적과

동국 어쩌구하는 서적이 교묘하게 짜깁기되어,

중국과 동국의 역사가 믹서가 된 채로 현재의 연구자들에게 읽혀지고 있을 것이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라고 들어보셨을텐데 이 지리지 제도권 역사에서

반도조선이 그린 세계지도라고 나오는데, 반도 조선이 왜 세계지도를 그리겠나,

그 지도는 중국에서 그린 조선지도다.

이 지도를 보면 코리아반도 지역이 실제보다 훨씬 확대되어 있는데

이것은 중국에서의 동국 인식을 말해준다고 생각된다.

자신들이 황위를 찬탈하기 이전까지 대륙의 천자국 위치에 있던 고려민족을

가벼이 여기지 못했음을 말하고 있으리라.

 

중국은 수많은 제후국과 번국을 거느린 다민족 연합국가였는데 그

에 반해 동국은 왕권과 몇몇 지도층만 여진계였을 것이고

대부분의 백성은 고려인이 다수를 차지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동국의 대륙 영토 중 몇몇 지역에는 고려문화에 융화된 다민족 지역도 있었을텐데 그 지역은 아마 상해이남 지역이었으리라.

 

중국이 일제에 투항한 친일거두에 의해 대한제국으로 옷을 갈아입고

결국엔 패망하여 동국의 코리아반도로 옮겨졌고

그 친일거두들도 자신들과 상관도 없는 코리아반도에 정착하여

일제의 권력의 내세워 고려민족의 땅을 빼앗아 기득권층이 되었고

코리아반도의 자생적 친일파들의 숫자도 부쩍 늘어나게 되는데

이때 대륙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들어선다.

 

이 임시정부는 아마 대륙의 동국인과 중국인의 합작 조직이었을 확률이 높다.

이들은 대조선, 중국이란 단어도 독립의 구호로 사용하였음이 이를 증명한다.

또한 대륙의 동국인 중에서는 고려민족뿐만 아니라 고려민족과 어울려 살았던

동국인 소수민족도 대거 참여하였을 확률이 높다.

 

그런 큰 흐름에 동국의 반도출신 독립인사들이 몇몇 가담하였을 것이다.

아무튼 임시정부의 행적 중 특이점은 그 이동 경로인데

상해에서 조직된 임시정부가 광복일이 가까워 올수록 코리아반도 쪽으로 북상하기는

커녕 대륙의 안쪽인 남서부로 이동하고 있었다는 것,

이것은 아마도 임시정부가 대륙의 조선 영토를 회복하려고 시도했음을 말해줄 것이고 두 개의 조선이 대륙에 있었다는 것을 굳혀주는 자료이리라.

 

이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임시정부는 광복을 스스로 이뤄내지 못하고

그저 주어진만큼의 자유를 맞는데 대륙을 수복하려는 노력은 허사로 돌아가고

쌩뚱맞게 임정요원들은 숨어들듯이 개인자격으로 코리아반도로 들어서게 된다.

 

짐작만 할 뿐이지만 중화민국 세력은 제국주의 세력에게 협력하는 대가인

대륙의 주인자격을 받아내기 위해 충실히 복무하여 대륙을 손에 넣는데,

은밀하게 일제에 협력하거나 소극적으로 저항하기만 했던 중화민국 세력은

일제가 자신의 주인인 양이를 배신하고 만주-반도에 이어 대륙까지 본격적으로

침탈하려들자 협력관계를 깨고 강력히 저항하니

대륙의 위치는 대륙서남방 세력인 중화민국-중공세력에게 돌아가니

대륙에서 헛물만 켠 격이 되고만 임정은

제국주의 세력의 감시하에 반도로 환국하거나 입국(?)하게 된 것이다.

 

대략 여기까지가 이조사부터 해방사까지의 중요한 부분들을 생각해서 정리해 본 것입니다. 지난 600년간의 역사는 우리민족에게 참으로 안타깝디 안타까운 역사였습니다.

 

기마민족으로서 유라시아를 내달리던 우리 고구려 선조들의 기상은 어디가고,

사실상 실크로드를 개척하며 아라비아인들에게 문명을 선물해준 신라인의 지혜와

아시아 대륙을 호령하던 고려의 기운은 어디에 간들 찾아볼 수 없고 우

리민족의 영토는 자꾸만 동으로, 동으로 좁혀져

비교적 최근엔 멸족의 위기까지 경험했습니다.

 

민족의 한풀이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에도 결과적으로 이뤄진 것은 아직 없지요.

역사를 넓게, 멀리보고 우리는 남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간다면

결국 600년의 한에 서린 민족사를 풀어내는 그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남북 간의 평화, 통일 문제를 그냥 남북 간의 문제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동북아시아에서 해양세력과 대륙세결의 대결은

400년 전 임진왜란 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근대화 물결이 밀려오면서 100년 전부터 지금까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사이에 아주 긴박한 대결구도가 형성되어왔습니다.

 

그것이 나중에 냉전의 대치선으로 바뀌기는 했습니다만

동북아 지역에서의 역사적인 대결구도가 한반도 분단의 원인으로 작용했고,

지금도 그 대결적 질서가 그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은 누구보다 역사 인식을 깊이있게 하였습니다.

역사는 깊고 넓게 봐야합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들이 이 속에 다 있습니다.

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본 글에는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내용을 참고 삼아 인용한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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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살며 사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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