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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고조선은 지중해에 있었다.

고대 문명/고조선

by Chung Park 2015. 6. 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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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단군조선]은 지중해에 있었다.

 

출처 :삼태극 원문보기▶ 글쓴이 : 가뭇

★<단군조선>은 <지중해>에 있었다 !!!|역사자유게시판

 

단군조선은 실재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 아직도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실재했다고 해도 고작 기자조선이나 위만조

선정도로 알고 있을 뿐이고 그마저도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을 지나(중국)의 망명정권이나 지방

정권정도로 인식하는 것이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학계의 현실이고 또한 일반인들의 선입견이기도

 하다.

 

그리고 혹시나 단군조선의 실존을 인정한다고 해도 단군조선 이전의 환웅천왕이 다스렸던 배달조

선이나 환인이 다스렸던 환국에 대해선 그야말로 신화로 치부하거나, 단지 1명의 환인과 1명의 환

웅이 다스린 것으로 치부해버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민족의 역사가 9800여년이나 되며,환인이 다스렸던 환국의 임금 數가 대를 이어 7명

이나 되며,그 이후 배달조선을 다스렸던 환웅 또한 18명이나 되며,그 뒤를 이은 단군조선또한 43

명의 임금들이 대를 이어 통치했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한편으로 경천동지하게 만들며,또 한편으론

 우리를 흥분과 설레임으로 들뜨게 만든다.그리고 이 모든 것이 신화가 아니라 엄연한 역사적 사

실임에랴 또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도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우리 상고사의 유적들과 역사가 너무나도 그 기록이

 협소하거나 왜곡되어있으며 그마저도 중국측의 일방적인 기록에 의존하고 있어,뭔가 미심쩍거나

 찜찜한 구석을 한켠으로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여기 그런 우리의 의문과 미심쩍음을 한타래,

 한타래 얽힌 실을 풀듯 풀어줄 한권의 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지중해문명의 신화와 역사를 우리민족과 중국역사와 대칭시키며,우리민족의 기원을 속시원히 밝

혀주는 아주 소중한 내용이 알토란처럼 빼곡히 차 있는 보기드문 훌륭한 책이다. 이 책을 쉽게 이

해하기위해선 우선 몇가지 기초지식이 있어야한다.

 

우선 우리 민족의 상고사인 환국,배달조선,단군조선 및 북부여,가섭원부여(동부여)와 고구려,신

라,백제의 3국시대의 주요 인물에 대한 윤곽을 읽히고 있어야한다.물론 깊은 지식까지 요하는 것

은 아니다.10여명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중국의 3황5제라고하는 상고시대와 진나라 및 한나라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하는데,

이도 약 10여명정도의 주요인물에 대해 개략적인 지식만 있어도 족하다. 마지막으론,고대 지중해

연안의 국가들과 당대의 주요인물들에 대한 기본 지식을 필요로 한다.약 20여명정도에 대한 간단

한 배경지식이면 충분하다.

 

이 책의 결론부터 말하자면...중국의 고대문명사와 우리나라의 상고사및 고대사의 일부는,우리가

 알고있는 것처럼 지금의 중국대륙과 한반도및 만주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지중해연안

에서 지중해문명을 꽃피우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우리가 서양문명으로 알고있는 수메르,바빌론,크레타,페니키

아,이집트,그리스,마케도니아,페르시아,박트리아등의 지중해문명사가 실제로는 중국과 우리 배달

민족의 투쟁과 상호협력과 경쟁의 역사였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란 얘기다.

 

그럼 구체적으로,저자가 주장하는 서양의 고대국가와 역사적인물들이,동양의 중국과 우리 동이족

의 국가및 역사적 인물들과 어떻게 대칭될까? 물론,저자는 이것을 고증하기위해,지중해연안 고대

국가들과 중국및 우리 동이족의 상고시대,고대국가시대의 신화들에 대해 꼼꼼한 비교 분석을 하

고있다.

 

요약하자면,

 

첫째,"황제(黃帝)헌원 공손씨"와 "치우천왕(蚩尤天王)"에 대해서이다.

이를 이해하기위해서는 우선 수메르왕국의 흥망사에 대한 간략한 지식이 필요하다.((단순한 신

화가 아니라,실제로 수메르의 역사에 존재했던 "길가메시왕"에 대한 이야기...

 

((지금의 이라크 남부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의 두 줄기에 갇힌 평원의 한 구석에 태고의

도시 우루크의 유적이 있다,그 곳에서 수메르의 왕명이 적힌 한 비문이 발견되었는데,길가메시는

 이 비문에서 대홍수 이후에 건설된 우루크 제1왕조의 다섯번째 왕으로 나타나있다.

 

수메르의 여러 도시 중 최초로 패권을 잡은 왕조는 키쉬왕조였는데,길가메시의 이야기는 우루크

가 키쉬(Kish)로부터 패권을 되찾았던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대략,이 시기를 학자들은 BC2700

~2400년으로 잡는다.

 

여기서 키쉬는 중국의 사기(史記)에서 말하는 "기주(冀州)"를 일컬으며,"크레이머"라는 학자는

이 시기의 수메르의 백성은 검은 머리의 사람들이라고 했다. 필자는 이들을 "일단", 웅족(熊族)이

라고 부르며,오늘날의 아시아인종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좋다고 한다.

 

키쉬(Kish),우루크(Uruk),우르(ur),라가시(Ragash)의 도시들은 그 뒤,움마(Umma)의 왕인 르갈자

게시에 의해 정복되면서 수메르의 통일국가가 출현되었으나,북방의 아카드에서 일어난 셈족의 유

목민인 사르곤(BC2371~2316 경)에 다시 정복되어 수메르는 메소포타미아제국에 편입되고 만다.

 

사르곤이 수메르의 도시 국가들을 정복한 후 북진정책을 쓰며,아시리아,엘람,타우루스,이프라를

병탐하는 동안,아카드왕조는 BC2330경에 다시 숲(高地)의 나라인 구데이엄 왕조에 정복되어 남

부 수메르의 여러 도시국가는 잠시나마 다시 독립을 회복한다.

 

수메르인의 최초이자 최후왕조가 되는 우르 제3왕조는 BC2111경에 우르나무가 메소포타미아와

엘람을 병탐함으로써 시작되는데,이 왕조는 법과 관습이 서로다른 여러민족을 제국의 지배하에

두기 위해 새로 그에 걸맞은 법전(法典)의 편찬에 착수하게 된다.

 

이른바,"우르나무법전"으로 알려진 이 법은 여러 인종이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메소포타미아 최고의 법인 것이다.이 법전은 단군조선의 弘益人間의 정신과 맥을 같이한다.))

 

<1>페르시아만 일대의 "우르"라는 도시의 북쪽으로 50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라가시"라는 도시

는 "우르 난쉐"라는 왕이 대규모의 신전과 운하를 파서 건설한 도시인데,이 나라를 BC2400경 정

복하고 나서 "우루크와 우르"의 왕이 되어 수메르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된 사람이 바로 <르

갈자게시>이며,왕명표에 의하면 그의 25년간의 치세는 "우루크 제 3왕조"로 되어있다고 한다.

 

그가 획득한 영토의 범위는 르갈자게시가 <풍신(風神) 엔릴>에게 그의 무궁한 치세를 기원하는

전승비문에 잘 나타나 있는데,"제국의 왕 엔릴"이란 문구는,당시에 "르갈자게시"보다 상위의 인

물,즉,마치 서양 중세시대의 교황국의 의미와 마찬가지로 당대에 제정일치(祭政一致)를 주도하

는 어떤 권력이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고 한다.

 

물론 ,그 정체는 <엔릴>이라는 존재를 말함이다. 르갈자게시의 백성들,그러니까,우르,우루크,라

가시 등의 시민들은 주로 머리가 검은 웅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르갈자게시의 수메르3왕조는

바로,웅족의 전성시대를 의미한다고 한다. 바로 이 <르갈자게시>가 <치우천왕>이라고 한다.

 

<2>BC2400년경,라가시 북쪽에 아카드라고 부르는 강력한 도시국가가 생겨났다.그 수도는 키

쉬(Kish)이고, 중국쪽 기록에 기주(冀州)로 표현되며,여기서 <사르곤>이란 군총사령관이 권력을

 찬탈한 다음,여러 종족들을 통일하고 수메르인(웅족:熊族)을 정복함으로써 바빌로니아제국의 패

을 장악하게 된다.

 

물론 그가 수메르를 정복하기 위해 르갈자게시와 어려운 전쟁을 치렀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가

,중국측 기록에,黃帝,혹은 皇帝로 불리는 <황제헌원 공손씨>이며 우리측 기록의 <환웅(桓雄)천

왕>이라고 한다.

 

<3>수메르(웅족)문명과 아카드(바빌로니아)문명이 교체되는 투쟁의 역사는,길가메시(유망)와

그 뒤를 이은 르갈자게시(치우천왕)로 대표되는 수메르인의 초기왕조가 사르곤(황제헌원공손씨

: 환웅)으로 대표되는 아카드족(셈족)의 왕조에 의해 역사의 무대에서 밀려나는 첫 징후라고 볼

수 있으며,이는,수메르의 문학이나 풍속을 전하는 우가리트 언어로 쓰여진 문서인,<바알,아나드

 이야기>신화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한편,<단기고사>에 의하면,황제는 치우와 함께 자부선생의 천문이치와 연금술을 배웠는데,자부

선생은 이란의 자라투스트라(Zarathustra)전설이 암시하듯이 천문지리의 명장이었다고 하며,"치

우"가 "황제헌원"에게 패한 후,그의 손자가 되는 <특명>이 "황제헌원"의 손자인 <순(舜)임금>으

로부터 다시 단조(檀朝) 를 되찾았다고 한다.

 

이는, "기쉬(중국측 기록엔,기주)"를 다스리던 왕(중국측 기록엔,"염제 신농"으로 표현됨)으로부

터 권력을 찬탈한 <사르곤>에 의해 건설된 아카드왕조가, BC2230년에 이르러, 다시 "산지(山地)

의 백성"(제사장을 말한다)인 <구테움>에게 정복되었으며,이로인해 남쪽의 일부이긴 하지만 BC

2003년까지 수메르가 다시 통일되었던 역사를 말하고 있는데,구테움은 치우의 손자인 <특명>이

고,<순(舜)>이 사르곤의 손자라고 한다.

 

물론 <특명>은 구테움의 음사(音寫),즉,비슷하게 소리나는 방식으로 기록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사르곤 = 황제헌원 공손씨>로 보는 근거 중 하나는,사르곤과 황제가 모두 서자(庶子)였고,사르

곤의 끝자인 "Ukin"이 황제의 "황",환웅의 "웅"으로 음사(音寫)되었으며,또 "고조선"기록이 단군왕

검의 건국연대를 BC2333년으로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르곤>의 비문에는,그가 그보다 1년 전인 BC2334년에 도우두르라는 곳에서 다곤(우리측 기록

엔 단군)神으로부터 마리,야르무티,이프라와 삼나무 숲,그리고 은광(銀鑛)을 하사받았다고 기록

되어있는데,이들 지역은 오늘날의 시리아땅과 레바논,그리고 서북족 터키(타우루스山)땅까지 미

치며,바로 바빌로니아제국의 영토이고,그것을 <고조선>기록에서는 "세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고 한다.

 

그리고,<환단고기>의 기록을 통해 당시 수메르,바빌론문명 시대를 분석해보면.....

우르,우루크,라가시 일대의 수메르족(웅족 : 熊族)과 그 위쪽에 있는 키쉬바빌론,아카드 등지에

아리안 인종(호족 : 虎族)이 이웃해 살고 있었으며,이들을 정복했던 아카드족(셈족,즉,바빌로니

아제국의 주축 민족)의 왕인 <사르곤 = 황제헌원>이 수메르족과 셈족의 혼인관계를 통한 단결을

 통해 先주민이었던 아리안인종을 그의 제국 안에서부터 사해(死海)밖으로 몰아내고 <셈족과 웅

족의 밀월시대>를 개막시켰다고 한다.

 

특히,<단기고사>에는 셈인종의 단군과 수메르 인종의 단군초상이 나란히 게재되어있고,수메르의

 신화와 문학이 아카드어(셈어)로 번역되었던 것도 이런 화합정책과 분위기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셈족은,오늘날의 아라비아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종족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둘째,환인(桓因)의 서자는 환웅(桓雄)인데,환인은, 성서와 우가리트 점토판 문서를 참고하면, 기

원전 3천년경에서 2천년경에 지중해 동쪽 연안과 요단강 서부쪽에서 살았던 가나안족의 명칭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가나안족은 페니키아인들을 일컫는데 ,이들은,서기전 660년경 홍해에서 남하하여 3년만에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서방으로부터 돌아온 사실이 헤로도토스가 쓴 책에 전해지며,바로 이점이 페니키아

인들이 그런 방법으로 동쪽으로 이동하여 그들이 살았던 위도와 똑같은 35도에 해당하는 한반도

와 일본열도로 옮겨왔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고 저자는 설시하고 있다.

 

셋째,흉노는 ,그리스인들이 스키타이라고 불렀고, 풍류(神仙道)를 신봉했으며,헬펜 교수에 의하면,

이들의 흔적은 흑해 일대에서부터 동유럽,스칸디나비아,남프랑스로 그리고 남러시아나 중앙아시아

 그리고 광활한 북유라시아 대륙에 걸쳐있는데,동북아시아로부터시베리아로 들어와 헝가리를 거쳐

 스칸디나비아에 미치기도 했으며,더 중요한 것은 그들 무덤에서 발굴되는 두개골의 모습이,<유럽

인종>,<몽고인종>,<유럽인종+몽고인종>의 혼합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하나의 무덤에서 이 3가지 형태의 두개골들이 동시에 출토되고 있다고 한다. 흉노로 불렸던

 훈(Huns)족집단이 여러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한다.이것은 셈인종과 수메르

 인종의 혼합형으로 고조선의 역사가 시작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며 ,고조선 기록에는 이를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길(弘益人間)"이라고 썼다 한다.

 

한편,이들의 유물은 불가리아,러시아,우리의 가야지방에서도 출토되고 있다 한다.

 

넷째,신라와도 깊은 관계가 있을 뿐 만 아니라,그 위치가 우리의 고대사를 이해하는데 큰 문제가

됨으로 인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낙랑(樂浪)"에 대해,필자는, 일반적 의미에서의 "國家"가

아니라, 그리스 신화에 나타나는 "아폴론 신전"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자명고(自鳴鼓)"의 존재를 근거로, 낙랑의 "樂"자가 우연하게 선택된 것이 아니라 예(禮)와 관련되는 신전임을 뒷받침한다고 한다.

 

한편,<한단고기>에서 낙랑왕 최숭(崔崇)이 희귀한 보배를 산더미처럼 싣고 바다를 건너 마한에

왔다는 기사를 두고,문제의 보물이 금관유물이라고 주장하며,금관유물이나 청동기는 대부분 실용

적인 물건이기보다는 예기(禮器)라는 이유로,"낙랑"은 전불(前佛)시대에 의례를 담당했던 특별한

신전이라고 주장한다.

 

다섯째,부여족에 대해,위도 30~40도 사이로 천문을 관측기 위해 옮겨다녔던 고도의 전문지식을

 가진 사제집단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 1...북위 35~40도 사이에 한반도가 놓여있고,지중해가 30~40사이에 위치하며,중국고대사에

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기주(冀州)라는 땅도 천문학적으로 해가 춘분지점으로 떠오르는 곳

 (북위 30~40도)와 관계되는데,기주는 지금의 중국땅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수메르의 "키쉬(Kish)"를 가리킨다고 한다.

 

즉,중국 문헌에서도 "기주"는 두개의 강줄기 사이에 있다고 쓰고 있는데,이것이 바로 티그리스 ,

유프라테스강이며 실제로 "키쉬"는 이 두 강이 페르시아만 쪽으로 흘러내려 합쳐지기 시작하는

그 사이에 있다고 한다.그래서 그 곳이 중국 상고사의 무대인 수메르,바빌론이라고 한다.

 

2...<단기고사>에서 천단(天壇)을 팔괘의 이치에 응하여 돌을 쌓는다고 적고있는데,그 이유는,

팔괘,즉 하도(河圖)는지구의 중심(중력의 구심점)에다 놓을 때만이 정확한 사상(四象)의 위상이

정해지며,우주의 네 방향을 정확히 잡자면 북극성을 기준하여 하도를 놓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천단을 쌓는 곳은 그 머리위에 북두칠성이 놓이는 지점이라야 한하며 이 원칙은 인도,

수메르,메소포타미아,이란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기독교 성서에서는 이 지점을 지구의 배꼽이라

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배꼽은 황금 비례대(3 :2)를 가리키며 이 지점은 지구의 중력이 이동하기

 때문에 북위 30~40도 사이라고 한다.

 

<단기고사>에서 천단을 쌓았다고 한 기록,그리고 실제로 천문을 관측했다는 기록은 바로 바빌로

니아 시대의 일을 시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3...그리고,로저 조우섬(Roser Joussanme)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사해(死海)북쪽으로부터 레바논 북쪽 고산지대에 지석묘가 분포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

필자는 레바논 북쪽은 우가리트 지역이고 바로 "고조선"의 "아사달"이라고 주장한다.

 

4...한편,신화시대에 있어서 나라의 도읍지는 북두칠성이 머리위에 있고 해가 춘분 시간에 신

전의 정문으로 비치는 지점에 있었으나 그 지점은 태양이나 달의 인력에 의해 지구의 자전축이

이동하면서 바뀌기 시작하는데 천문학 용어로 "세차(歲差)"라 불리는 이 현상은 매년 50초 정도

의 각도로 춘분점이 황도상으로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이동하는 걸 말한다고 한다.

 

그 결과 적도극(赤道極)이 이동하게 되어, 춘분시에 해가 뜨는 지점에다 태양신전(천문관측소)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세월이 흐르게 되면 그 지점이 무의미해지게 되므로,민족이나 국가가 도읍을

 옮겨 다니는 대이동 현상도 그렇게 해서 생겨나게 되고 ,이로 인해 대규모의 전쟁이 발생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차로 인한 지구 자전축의 이동은 동쪽에서 서쪽으로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일정한

기간을 두고 다시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므로 결국 반복적인 운동이 일어나는 셈이다.  이렇

게 제자리로 돌아오는 세차의 현상을 이집트인들은 <시리우스 사이클>이라고 불렀는데,이 사이

클의 주기를 그들은 1460년이라고 믿었고 이것은 1년을 365일로 계산한 결과라고 한다.

 

그런데 세계민족이동사를 연구한 학자들은 대체로 이 기간을 1천년으로 잡고 있으며,실제로 <단

기고사>에서도 1천년이 신통기(神統記)의 수명인 것을 보여주고 있다한다.기원전 24세기에 수립

되었던 단군왕조가 기원전 13세기에 망하고,그 뒤를 잇는 후단조(後壇朝)가 북쪽으로 이동하여

새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여섯번째,모든 역사기록에서 나타나는 <왜(倭)>는 곧,하백(河伯)이고 그리스 신화에서 보는 포

세이돈이나 헤르메스신이라고 한다.그리고, 소아시아에 있었던 히시디아의 사가라소스성이 헤르

메스의 궁성이며 BC400 경의 왜(倭),위(魏) 혹은,하백의 나라라고 한다.

 

강희자전(康熙字典)에는 로마(大秦國)가 동쪽으로 들어와 낙랑(樂浪)을 통과했다는 문구가 있다

고 하는데,이 문구는,로마군이 아폴로신전을 통과했다는 걸 의미한다고 한다.헬펜이란 학자는

로마군도 흉노(Huns)라고 했는데,만일 낙랑이 중국땅이나 만주와 한반도에 있었다면 로마군이

 그 곳을 통과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한다.

 

또한,<신단실기>에서 단군조선이 아사달에서 부여 평양으로 옮겼다고 한 것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폴론 신전과 관련되어 있는데,그 평양은 아슈타르테신전과 같은 위도 35도 선상에 있

는 시리아의 동쪽인 고대유적지 "이프라(I-PLA)"라고 한다.

 

참고로,아폴론 신전으로서 오늘날 그 위치가 확인된 곳은,그리스땅의 고린도에 있는 아폴론신전,

테베에 있는 아폴론 신전,터키땅에 있는 트로이 파다라,페르가몽,퓨리지아,그리고 시리아땅의

 고대유적지인 이프라(I-PLA)와 이란땅의 페르세폴리스를 들 수 있다고 한다.

 

일곱번째,bc 612년에 <프리기아(phrygia)>종족(헤로도토스의 말을 빌자면,세계역사상 가장 오

래된 문명인)에 속하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우라라트지방을 점령하고,bc606년엔 이들이,카스피

해 남쪽에서 일어난 <메디아(media : 메시아의 어원) 왕국>에 의해 병합되었으며,bc550년엔 메

디아의 남쪽에서 역시 <파르스족(부여족)>들이 쳐들어와 메디아의 수도인 하그마다나(하마단)을

점령함으로써 <아케메네스왕국>을 선포하게된다.

 

이 때,메디아는 가섭원동쪽으로 옮겨서 동부여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하게된다고 한다.<아케

메네스제국>이 바로 <페르시아 제국>을 일컬으며,우리나라의 <가섭원부여>를 말한다.그리고 메

디아가 바로 <북부여제국>,혹은,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부여제국>이며 그 시조가 바로 해모수이

고,이를 동쪽으로 몰아낸 인물이 후단군시대의 마지막 단군인 <고열가>이자 가섭원부여의 시조

인 <해부루>이며 그가 세운 나라가 바로 <아케메네스제국>,즉,<페르시아제국>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기루스대왕<=고열가단군 : 해부루>의 아들인 캄비세스가 바로 해부루의 아들인 금와왕

이고 그의 아들이 대소왕인데,이 <대소왕>이 바로 알렉산더대왕에 의해 쫓기다가 제후국의 군

왕인 <베소스>에게 죽은 <다리우스 3세>라는 것이다.

 

한편,그리스로마신화와 비교해보면,해모수가 바로<프로메테우스>이고,금와왕은 <제우스>라고

한다.

 

여덟번째,신라는 지중해의 <박트리아국>이었고,백제는 <파트리아국>이었으며,가야는 인도 펀

잡지방의 난다왕국을 멸망시키고 전 인도를 통일한 <마우리아왕조>로서 그 주역이었던 찬드라

굽타가 바로 김수로왕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왜국(倭國)>은 지중해의 <크레타섬>을 일컬으며 일반적으로 제사장기능을 하는 여인

국(女人國)이었다는 것이다.

 

아홉번째,알렉산더는 진시황,그의 사후 제국을 나눠가졌던,프톨레마이오스는 <항우>,셀레우코

스는 <유방>,진시황의 참모이자 스승격인 이사는 <아리스토텔레스>였다고 주장한다.대진국

(大秦國)이라 불리었던 로마에의해 밀려서,지중해로부터 지금의 중국과 시베리아 만주,한반도,

일본열도로 옮겨오면서,우리들과 중국의 역사는 수많은 혼선을 겪게 되었는데, 그 예로는 한무제

시절 사마천이 <사기>집필시 지중해의 지명들과 역사적 사건들을 중국지역으로 옮겨심는 바람에,

 알렉산더의 생존연대와 진시황의 생존연대가 100여년이나 차이가 나게 된다든가,여러가지 사건

들의 난맥상을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반고의 <한서>등도 예외는 아니며 중국측 자료를 주로 참조한 <삼국사기>등도 마찬가지라

는 것이다.

 

열번째,<주(周)나라는 아시리아>제국이고 <조(趙)나라는 테베>이며,<제(齊)나라는 테로스>이

고,<하은(夏殷)은 아카드,바빌론>이며,<연(燕)나라는 이집트>이고 진시황이 다스렸던 <진(秦)

나라는 마케도니아제국>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물론,마케도니아 제국을 만들었던 주축세력인

<마케도니아>人들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서에는 <말갈>,혹은<흑수말갈 : "카스피해 마케도

니아"의 음사(音寫)>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한편,단군 25세 솔나(率那)단군시절,도읍을 길림(아슈타르테,에브라)에서 영고탑(쿠타이)로 옮

기자,본래 그 자리에 또 하나의 새 조선(올림포스)가 생겨나게 되었는데,그것이 바로 <기자(奇

子)조선>이며,단군조선 남북조시대의 개막을 말한다고 한다.기자(奇子)는 단군 제19세 종년(縱

年)의 태자(太子)였고,고흘(固忽)의 동생인 종선(縱鮮)의 증손자이다.중국쪽의 기록에 주(周)의

무왕(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했다고 했을 때의 기자(箕子)가 바로 <단기고사>에서 언급

하고 있는 <기자(奇子)조선>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리고 주(周)나라가 바로 아시리아이며 기자(奇子)가 도읍했던 곳이 소아시아의 리기아,리디아

이며,기자조선은 주나라(아시리아 : 앗수르)의 역사와 함께 1000년 동안 그 종교적인 기능을 수

행하면서,흑해와 카스피해쪽으로 도읍을 옮겨간 前 단군조선과 자주 왕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중국의 역사서가 즐겨 사용하는 남북조(南北朝)라는 말을 쓴다면,위도 40도를 거점으

로 한 세력을 北朝라고 말할 수 있고,그들이 버렸던 위도 35도의 거점에서 일어난 아시리아가 역

시 40도상의 리디아,리기아를 거점으로 南朝를 형성했다는 것이며 이를 <진(晋)>이라고 표현한

다는 것이다.

 

그리스신화가 전하는 <가이아,우라노스신화>는 北朝가 무너질 때의 역사를 이야기로 전한 것

이고,위만(衛滿)조선의 역사는 南朝가 망할 때의 역사를 간단하게 기록해 놓은 것이라 한다.

 

왜냐면,<단기고사>에서는,北朝(후단조(後檀朝))가 망할 때,보을(ouranos)과 한개(kronos),고열

가(goios),그리고 해모수(promethes)가 등장하고 있고,南朝가 붕괴할 대,진(秦)의 망명자들에 관

한 기록,연인위만(燕人衛滿)이 호복(胡服)을 입고 조선으로 망명해 들어왔다는 사실들이 기록되

어있기 때문이며,이 부분은 <트로이의 흥망사>와도 관련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라 한다.

 

北朝가 망하는 징조를 보이자 해모수가 옛날의 부여에서 반기를 들고 일어나 <북부여>라고 천하

에 공표하게 된다.그 곳이 오늘날의 이란땅의 북쪽을 가리키는 메디아제국의 수도였던 하그마다

나(하마단)이며,그 뒤(bc550년) 고열가(기루스대왕)에 밀려 카스피해 "동쪽"으로 옮겨가는데,그

 "동쪽"이라는 곳이 바로 <박트리아>,<타슈켄트(당장경)>이라고 한다.

 

고열가,즉,후단군조선의 마지막 단군이자 <가섭원부여>의 시조인 <해부루>는 해모수의 도읍지

를 빼앗은 후, 나라이름을 펄스(pers)라고 호칭하는데,이것이 바로,<아케메네스제국>,혹은,<페

르시아제국>으로 불리운다. 본래 페르시아제국은 2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

라측기록의 <가섭원부여기>는 <해부루39년-금와왕41년-대소왕28년>밖에 기록하고 있지 않아,

약 100여년의 역사를 생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한편,<삼국유사>의 동부여에 관한 기록에 착오가 있슴을 지적하면서,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해모수의 북부여는 뒤에 상제의 명으로 동부여로 옮기게 되었다고 썼으며,다시 북부여의 왕 해

부루가 천제의 명으로 도읍을 가섭원(迦葉原)가에 있는 동부여로 옮기게된다.이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이면,먼저 하그마다나에서 북부여제국인 메디아를 세운 해모수가 해부루에게 밀려 나라

를 동부여로 옮겼다고 해야 하는데,이렇게 되면,그 동부여가 해부루의 동부여와 같은 곳이 된다.

 

해모수의 나라와 해부루의 나라가 겹쳐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즉,2개의 <동부여>가 기록에 나타나는데,<해부루의 동부여>의 수도가 <하그마다나>이고,<해

모수의 동부여>의 수도는 <당장경(唐莊京)>인데,그 이유는,<동해가의 가섭원>이란 표현은 가

섭원의 "迦葉"이 <카스피해>의 <caspi>의 음사(음寫)로 볼 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

 

흑해가 지중해의 북쪽이라면,카스피해는 지중해의 동쪽에 있는 바다이다.따라서,동해가의 가섭

원은 카스피해 근처의 넓은 평원지대를 가리킨다.그것이 하그마다나를 수도로 하고 있는 메디아

의 땅이며 해모수의 동부여가 타슈켄트(tashkent)가 된다.당장경(唐莊京)은 "唐"을 "ta"로,"莊"을

"tsa","京"을 "ken"으로 읽어서 당장경이 타슈켄트의 음사(音寫)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

한다.

 

<단기고사>에서는 당장경을 구월산당장경(九月山唐莊京)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이 때의 구월

산은 타슈켄트시를 감싸고 있는 호드젠트(khodzent)山이다. "khodzent"의 "khod가 "九月"로 음

사(音寫)되고,"zent"가 "山"으로 음사(音寫)되었다는 것이다.

 

열한번째,알렉산더와 진시황제,진나라와 헬레니즘이 동일한 인물과 나라를 일컫는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은 알렉산더와 진시황에 대한 역사적 기록에 대해 대략적인 윤곽이라도 잡고 있어야 이해

하기 쉽다.

 

꼭,<알렉산더전기>와<진시황관련역사책>의 필독을 선행(先行)할 것을 권한다.

 

<1>

1) 아리스토텔레스와 이사(李斯)는 정확히 대응된다.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의 스승이면서도

실제로는 총리대신이나 마찬가지이며 그는 알렉산더가 죽기까지 ,그리고 죽은 후에 사태수습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에 관여하는 중요한 인물이다.이 점은 이사에서도 마찬가지다.

 

李斯가 시황제의 절대적인 정책수립가였듯이 알렉산더에게 있어서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었으며,이사가 분서갱유를 주도했듯이,그도 그리스의 학문을 정비하기위해

전시대의 역사나 사상서를 배제하였으며,알렉산더가 죽은 후 그 견제세력을 밀어내고 그 대통을

잇는 일에 크게 기여하였던 것도 李斯와 같다.

 

2)한편,두 사람은, 정책면에서도 똑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진나라에서는 이사를 비롯해서 벼슬하고 있는 제후국 사람들이 많았다.그래서 진나라의 왕족들은

 회의를 열고 이들 이방인들을 모조리 추방하자고 결의를 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이때,이사가

시황제에게 글을 올려,옛날 진나라의 네 왕이 밖에서 현자를 불러다 씀으로써 부국강병에 성공했던

 고사를 나열하여 왕족들의 결정을 비난했는데,시황제는 이사의 벼슬을 그대로 두고 축객령

(逐客令)을 철회하게 된다.

 

이와 같은 내용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발견된다.당시 알렉산더는 다양한 인종들을 지배하고 있

었다.심지어 그의 군대를 이끄는 장군들 속에도 여러 인종의 아시아인들이 있었다.그러나 헬레네

인을 자처하는 왕족들은 그들이 세계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의 이권과 권력을 지키기위해 이

방적인 요소를 제거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서방문화와 동방문화가 서로 교류하면서 세계가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알렉산더대왕이 지속적으로 이질적인 요소를 받아들여야한다고 주장하고 따라서 적을

죽이거나 쫓을 것이 아니라 지배하에 두어야한다고 진언한다.

 

3)또,알렉산더 쪽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친척인 칼리스테네스가 사소한 오해끝에 역모죄로 몰

리어 사자먹이로 던져지지만,진시황 쪽에서는 이사가 역모로 몰리어 사지를 찢기는 오형(五刑)에

 처해진다.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반대파에 몰리어 망명을 갔어야 했고,그 곳에서 위장병으

로 죽는다.양쪽이 파국으로 끝나기는 마찬가지다.

 

<2>

1)중국쪽 기록의 초(楚)가 필립이고 여불위가 얻었다는 미인이 클레오파트라(시이저와 안토니우

스의 연인인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는 동명이인)와 대응되고 또 화양부인이 올림피아스에

대응되기도 한다.클레오파트라가 필립의 아내가 되기도하고 조강지처 올림피아스의 혈육인 알렉

산드로스의 아내가 되기도 하는 것은 여불위가 자신의 아이를 밴 미인을 초(훗날 진시황이 된 정의

 부친)에게 주어 왕비를 삼게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2)알렉산더와 진시황이 진중에서 불의의 습격을 받는 것(암살기도)도 똑 같다.

알렉산더의 일단의 막료들이 품에 작은 쇠뇌를 감추고 접근하여 폭군이라고 소리치며 그를 쏘았

지만 화살은 빗나가 결국 실패하고 만다.진시황의 경우,<사기>에는 연나라의 태자인 단(丹)이 나

라를 위해 시황을 암살하려 한다.그는 형가라는 사람을 몰래 진중으로 보내 저격하려 했으나 실패

하여 처형당했다고 한다.

 

그러나,<십팔사략>에서는 韓나라의 장량(張良)이 시황을 복수하기 위해 박랑사라는 곳에서 미리

 力士를 매복시켜 놓았다고 쓰고 있다.시황이 접근하자 역사들은 철퇴를 휘둘러 댔으나 부차에

맞는 등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한단고기>에서는 창해의 力士인 여홍성이란 사람이 한나라 사람 장량과 더불어 진나라

 임금인 政을 박랑의 모래밭에서 저격했다고 했고,이 때,화살이 잘못 나가 부차에 맞았다고 쓰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가 각기 역사서의 입장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알렉산더의 피습사건이

시황제에게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만든다.

 

3)시황제의 아버지가 진나라를 위해 조나라에 인질로 가 있었다는 부분은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립이 마케도니아를 위해 테베왕국에 볼모로 가 있었다는 사실과 같다. 즉,마케도니아가 진나

라이고테베가 조나라가 되는 것이다.또 이사(李斯)는 알렉산더의 스승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이고,

한비(韓非)는 필립에게 편지를 보낸 소크라테스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한비가 옥에 갇히고 독배를 마셨다는 이야기는 소크라테스의 실제 이야기와 같은 것이다.

 

4)<사기>에는 진시황의 용모가 코가 높고 긴 눈에 어깨가 딱 벌어진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열두번째,위와같은 진시황에 대한 역사왜곡의 중심엔 <사마천의 역사꾸미기>가 자리잡고 있다

는 사실이다.

 

열세번째, 대소가 바로 다리우스라고 한다.

열네번째, 신라는 박트리아였으며,가야는 마우리아왕조였다는 사실이다.물론 마우리아왕조의 찬

드라굽타는 김수로왕이었다고 한다.

열다섯번째,백제는 파트리아제국이었으며,파르티아제국의 시조인 알사크(Arsak)와 티르타데우

스(Tyrtadeus)형제는,각각,백제의 시조인 온조와 비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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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문명과 단군조선

 

저자 : 박용숙 지음

출판일 : 1996-09-10

페이지수 : 352

구분 : 일반서적

판형 : 신A5판

장정 : 반양장

정가 : \10,000

 

ISBN : 89-303-0407-9

도서상태 : 판매중

전화 : 02-743-3192~3

팩스 : 02-742-4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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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의 고대문화가 중국보다는 그리스나 이란과 친숙하다는 신채호의 암시에 충격받은 저자가

그 실체를 찾아나섰다. 옛날의 사제는 곧 단군(Zeus, 帝)이고 세계의 모든 신화는 산스크리트

경전인 '천부경'에서 유래된다고 보고 단군신화를 그리스 스키타이 신화와 연계해 설명하고 있

다.

 

목차

Ⅰ. 지중해 문명과 한국사의 기원

1. 우리의 역사는 지중해에서 시작되다

2. 가우리와 크레타섬

3. 아사달과 아슈타르테

 

Ⅱ. 수메르 인종과 셈 인종의 만남

1. 길가메시 영웅서사시와 수메르 전성시대의 종말

2. 수메르족의 르갈자게시와 아카드족의 사르곤

3. 치우와 르갈자게시

4. 황제와 사르곤

5. 수메르족과 아카드족 간의 전쟁

6. 환인, 환웅, 단군

 

Ⅲ. 단군조선이란 무엇인가

1. 환인과 가나안

2. 가나안신화

3. 태양신전과 단 그리고 고분

4. 숲의 나라와 동이족

5. 풍신과 풍류

6. 흉노족과 Huns

 

Ⅳ. 침묵의 역사와 놀이문화

1. 봉선의 예와 알의 신화

2. 구정법과 황금의 아이

3. 낙랑과 신선놀이터

4. 왜와 아폴론, 헤르메스

 

Ⅴ. 세계주의 정부와 소아시아

1. 삼한과 삼기능체계

2. 소아시아, 코카서스, 우라라트, 카스피해와 단군북조

3. 아르메니아, 메디아, 아케메네스와 부여

4. 해모수, 해부루, 고열가

5. 구이, 구한과 위만조선

 

Ⅵ. 그리스신화와 한국, 일본신화

1. 단군조선의 몰락과 올림포스신화

2. 아마테라스와 테메테르

3. 금와왕과 제우스

4. 해모수와 프로메테우스

5. 경문왕과 미다스

6. 단군조선의 지리적인 위치와 그 지도

 

Ⅶ. 한국고대사와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1. 대소와 다리우스

2. 고구려의 대무신왕과 대소

3. 부여의 도두와 데우가리온 그리고 갈사왕

4. 신라와 박트리아 그리고 가야

5. 백제와 파르티아 제국

 

Ⅷ. 동서문명의 만남과 그 이별

1. 알렉산더 대왕과 진시황제

2. 헬레니즘과 진

3. 알렉산더, 다리우스 그리고 한국고대사의 무대

4. 사마천의 꾸며진 역사지도

5. 신라의 혜초는 왜 박트리아로 갔는가

6. 퉁구지방의 고분과 기원후 4세기의 단군조선

 

Ⅸ. 기타

1. 본문에 인용된 주요 참고문

2. 단군조선사의 주요 역사표

3.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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