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왕
이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2012년 1월) |
백제 구수왕 百濟 仇首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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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 |
백제의 6대 국왕 | |
재위 | 214년 ~ 234년 |
전임자 | 초고왕 |
후임자 | 사반왕 |
부왕 | 초고왕 |
이름 | |
휘 | 부여구수(扶餘仇首) |
신상정보 | |
부친 | 초고왕 |
구수왕(仇首王, ? ~ 234년, 재위: 214년 ~ 234년)은 백제의 제6대 국왕이다. 귀수왕(貴須王)이라고도 부른다.[1] 초고왕의 아들로 키가 7척에 풍채가 빼어나 비범했다고 한다.
그의 뒤를 이은 아들 사반왕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친족인 고이왕에게 찬탈당했다. 또한 그가 죽은뒤 70년 후에 즉위하여 40년간 재직한데다가 삼국사기내에서도 평민 출신이라는 설이 전하는 비류왕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생애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말갈·신라 등과 수많은 전투를 치렀으나, 대부분 백제의 참패로 끝난다. 또, 재위 말에는 혹심한 가뭄이나 기근 등의 재난이 겹치기도 했다.
216년 음력 8월에 말갈이 적현성(赤峴城)을 침범하였으나 성주가 굳게 지켜 막아 물러가게 했고,
왕이 기병 8백명을 이끌고 적을 추격하여 사도성(沙道城) 아래에서 크게 이겼다.
217년 음력 2월에 사도성 옆에 두 개의 목책을 설치하였는데, 동서로 서로 떨어진 거리가 10리였다. 적현성(赤峴城)의 군졸을 나누어 보내 지키게 하였다.
218년 왕이 군사를 보내어 신라의 장산성(獐山城)을 포위하자 신라 내해 이사금이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공격하여 백제군이 패하였다.
234년 구수왕이 죽은 후, 아들 사반왕이 왕위를 계승했으나 어려서 정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초고왕의 아우인 고이왕이 즉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고이왕이 초고왕의 아우라 하는 것은 연대상으로 모순되기 때문에 고이왕은 구수왕과는 온조계 왕실 내의 서로 다른 지파 출신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구수왕의 차남으로 지목되는 비류왕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그는 구수왕의 아들이자 사반왕의 동생이다. 또, 평민으로 살면서 명성을 얻었다고도 한다. 비류왕과 비류왕의 형 사반왕(沙伴王) 사이에는 70년 이상의 연대 차이가 나므로 형제 여부에 관하여 이견이 있다. 《삼국사기》에서 아버지로 지목하는 구수왕과 형으로 지목한 사반왕이 죽은 뒤 70년만에 즉위하여 40년을 통치한다. 또한 《삼국사기》에서는 비류왕을 구수왕의 아들이자 사반왕의 동생이라 기술하고도 같은 조의 다른 줄에는 평민으로 살면서 명성을 얻었다는 구절이 나타난다.
가계
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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