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태왕의 흔적으로 출발하기 전에 (프롤로그)

2020. 2. 16. 02:55한민족 역사/고구려

애초에 우리 나라 역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광개토태왕의 업적에 대한 관심이었다. 

광할한 서유럽의 훈족 정벌이 고구려 광개토태왕 시절의 역사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서 출발한 것이다. 

하여 광개토태왕이후의 고구려 역사를 살펴 보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또한 유라시아에 고구려식 치가 있는 성곽이 수없이 많이 퍼져 있다는 것이 충격을 주었다.  

물론 러시아의 포멘코가 로마사 등이 조작되었다고 하는 언급도 일부 동기가 되었다.  

서양 역사학자들은 중국과 아랍이 역사를 조작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포멘코가 언급한 아시아의 어느 나라 역사를 참고하여 조작했다는 언급에서 

그 아시아의 어느 나라 역사가 혹시 우리나라 역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 보면서, 풀타크 영웅전 등의 일부 과장된 역사 조작이 있고, 

일부 감추는 역사가 있지만 모든 역사 자료가 조작된다는 것은 매우 가능성이 희박함을 깨달았다. 

 

중국의 역사도 단지 지명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위치를 현 중공의 위치로 이동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위치를 전제하는 우리나라 역사, 일본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광개토태왕 시절의 역사를 훈족의 역사, 흉노의 역사와 비교하며 얻은 결론은  

안국, 강국의 안, 강의 한자와 관련이 있는 지역이 중앙아시아와 그 서쪽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또한 알렉산더제국이 진시황 진나라의 역사라는 주장을 보면서 

중국역사가 현재 중공의 위치라는 주장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중동의 역사, 로마의 역사, 아랍의 역사, 이집트의 역사를 단편적으로 보면서 

어쩌면 나의 의구심이 사실일 수 있다는 편린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물론 박용옥교수의 고조선은 지중해에 있었다는 주장도 참고가 되었다.  

또한 한부울님의 세계삼한역사 연구도 많은 영감을 준 것은 사실이며. 문무님의 자료도 참조가 되었다.

 

또한 조선의 임진왜란 역사에서 보는 이상한 점도 그렇다. 

이순신 장군이 붉은 수염이었다는 서애 유성룡의 기록, 

동해와 서해가 아닌, 남해에서 주로 이루어진 왜, 조선, 명의 해전 역사가 그렇다. 

 

당시 조선이 현재의 한반도라면 동해와 서해가 해전의 전장이 안된 것이 이상하고, 

조선이 아메리카 미국 땅이라면 넓은 동쪽 해안을 놔두고 남해안만 공격하는 것이 이해가 안가며, 

당시 조선이 중공땅이라면 훨씬 넓은 동지나 해안에서 해전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혹시 동해의 지형이 없는 곳이 아닐까? 

그리고 왜라는 강력한 공격 주체에 대해서 설명이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열하게 자세한 자료가 있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통일 전쟁의 역사가 
어쩌면 서구 역사에서 묘사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에서 출발하였다. 

 

그리하여 그동안 사산왕조 페르시아, 우마이야 왕조가 신라라는 것을 밝히게 되었고, 아울러 신라와 치열하게 싸운 백제의 역사가 비잔틴제국(백제 멸망이후는 신라 역사)이라는 것을 밝혔다. 


그 부수적인 결과물로 터키의 각 지역에서 우리말(사비하, 지리산, 포석강 등)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고, 
신라의 통일 전쟁의 흔적(백제의 백강, 주류성, 임존성, 탄현, 황산벌, 사비성, 웅진성)을 발견하게 되며, 
장보고의 청해진이 지중해에 있었다는 것을 주장하게 되고, 금관가야가 아르메니아지역에 있었다는 것을 주장하게 되었다. 


또한 광개토태왕이 점령한 백제(로마)의 관미성은 크리미아반도에 있다는 것을 밝혀 내고, 광개토태왕이 건너 백제의 58개성을 점령한  아리수강은 다뉴브강이라는 것을 밝혀 냈다. 


또한 백제의 성왕과 신라의 진흥왕이 다툰 지역은 코카서스산맥 아래 지역이라는 것을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아랍의 역사와 통일신라의 역사를 대비하며 아직도 할 연구가 많이 남아 있다. 
이슬람이라는 종교와도 관련이 있어 조심스러운 면도 있다. 

 

그리고 신라와 당의 혼재 문제, 신라와 싸운 당의 위치, 고구려와 싸운 수, 당의 위치, 아랍 압바스왕조와 당나라의 관계 등도 향후 더 연구해야 할 주제이다. 

 

그래서 신라이후 발해 등으로 더 나가기 앞서 수와 당의 위치를 가늠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신라(사산왕조 페르시아)와 백제(비잔틴제국)의 전쟁을 보면서 당나라의 위치가 모호하였기 때문이다. 

당의 위치가 일부 흔적이 있는 트란스옥시아나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지역인지, 요수(압록수)를 흑해연안의 우랄강이나 볼가강 또는 돈강으로 추정하는 나에게는 수나 당이 요서지역에 있다고 생각하면 

그 서쪽에 있어야 하는데, 수와 당 - 고구려의 큰 전쟁이 이 지역의 역사에 나타나야 하는데, 아직 모르고 있으니  답답한 것이다. 

 

 

3차에 걸친 Gokturk (돌궐) - Persian War에 대한 위키 자료는 있다. 

 

차후 돌궐 역사가 고구려사가 아닌가 연구할 것이다. 

 

만약 당이 돌궐과 싸운 Persia라면 신라가 당이 된다. 이경우 당은 요서가 아닌 지역에 있다. 


또한 당나라는 말기에 티베트와의 전쟁에 관여 된다. 따라서 현재 티베트와 가까운 위치도 가능하다. 

 

이를 감안할 때, 당나라의 위치는


1)수와 당 - 고구려 전쟁 시기의 당나라의 위치,


2)신라와 겹쳐지는 이란 이라크 지역의 당나라 위치 (낙양의 동쪽에 있는 낙동강은 유프라테스강이며, 낙양은 다마스커스, 장안은 바그다드와 인접한 크테시폰 (금성)으로 추정된다.)


3)유연이 고구려에 망한 후 티베트로 일부 세력이 합류하는데, 당과 이들과의 전쟁이, 우마이야 왕조를 이은 아랍의 압바스왕조가 관련된 것으로 판단되는, 현재의 티베트와 접한 측천무후 시기의 중앙아시아 당나라의 위치 (후당의 위치)등의 세가지의 위치로 나누어진다.  

 


그래서 주변의 거란, 여진 등의 위치도 확인하고 수당의 선조인 선비족의 위치도 확인할 겸,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실증 역사 광개토태왕비문을 근거로 역사 추적을 하고자 한다. 


이 당시의 훈족의 유렵 정복 역사는 비교적 소상한 자료가 많기 때문이다. 


수와 당의 위치는, 고구려 광개토태왕 시절의 훈족(아틸라제국)이 철수한 이후 시기에,  현재의 동유럽의 그 빈 공간을 차지한 세력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후의 고려, 조선, 그리고 만주족인 청나라의 위치를 가늠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