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그동안 필자는 최근의 글, '고트족은 고구려이다(1)'를 위시하여, '로마제국은 백제이다', '사산왕조 페르시아는 신라이다' 등의 글에서, 로마제국, 특히 비잔틴제국은 백제이다는 주장과 로마제국과 치열한 싸움을 한 사산왕조 페르시아가 신라라는 주장을 해왔다. 그리고 '상대의 신라 (BC 57-AD225)는 파르티마제국이다 (I), (II), (III)'는 글들에서 이를 어느 정도 증명했다고 판단한다. 최근의 글, '고트족은 고구려이다(1)'에서는 고구려가 유럽에 진출한 훈족과 고트족이 고구려라는 것을 백제사, 로마사에서의 전쟁사를 비교하며, 어느 정도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제,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이 이 지역에서 활동했다고 가정할 수 있는데,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역사적 행적이 이들 지역의 역사에서 나타나는가가 매우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본 글에서는 먼저 이 당시의 유럽에 진출한 훈족의 역사 속에서 광개토태왕의 역사가 나타나는가를 먼저 왕조사, 개인사에 이르기까지 검토하며 알아 보고자 한다. 또한 훈족의 지배를 받은 또는 훈족과 동일한 모습을 보이는 고트족 역사속에서는 어떻게 광개토태왕의 역사가 나타나는가도 살펴 보고자 한다. 이는 그동안 심증을 가져왔던 분야의 세밀한 분석이 되며, 아틸라를 포함한 이후의 역사도 분석하는 계기가 되는 매우 중요한 분석이 될 것이다.
전쟁 정복사를 검토하는 비교 분석은 핵심이 될 것인 바, 그 방대함과 중요성으로 다음 글에서 독립적으로 살펴 보고자 한다. 특히 신라지원 전쟁사를 포함한 정복 전쟁사를 통해, 당시의 광개토태왕의 신라, 백제에 대한 활동이 당시의 유럽에서의 훈족의 활동이나 고트족의 활동에서 나타나는가를 살펴 보는 것은 다음 글에서 검토하고자 한다.
본 론
먼저 개인적 자료를 통해 본 광개토태왕과 훈족, 고트족의 유사성을 살펴 보고, 이어서 훈족과 고트족의 왕조사를 비교하며, 광개토태왕과의 유사성을 검증하고자 한다.
I. 개인적 자료로 본 훈족, 고트족에서의 광개토태왕의 활동 흔적
1) 재위기간
광개토태왕의 재위기간은 AD 391(392) - AD 412 (413) 이다. 그런데 이 시기 로마제국을 정벌한 훈족의 을딘은 chief로서 390(?) - 410 활동했다. 을딘은 고구려인 성인 을파소, 을지문덕의 을가 성이다. 따라서 왕이 아닌 장군일 수도 있다. 반면 고트족의 Alaric I왕은 재위기간이 AD 395-410으로 훈족의 을딘뿐만 아니라 광개토태왕의 재위기간과 매우 비슷하다. 훈족의 을딘과 고트족의 Alaric I이 동일 인물이 아닌가 하는 판단도 든다. 훈족에 대한 자료는 매우 빈약하여 당시 로마제국에서 접한 피상적 자료만으로 기술된다. 반면 고트족에 대한 자료는 6세기 Jordanes가 쓴 역사서에 기인하기 때문에 보다 세밀하게 나타난다.
2) 생몰년도
광개토태왕의 생몰년도는 AD 374-413이다. 고트족왕인 Alaric I의 생몰년도 370(or 375) - 410 와 매우 비슷하다. 훈족의 Uldin은 항가리의 Uldin family site(www.geni.com) in Hungary 에서는 생몰년도 AD 335-410를 언급하고 있어 장수(75살)했지만 다른 기간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자료는 인터넷 족보 같은 자료로서 연대에 대해서는 아직 신뢰성을 주기 힘들다고 본다.
3) 이름
광개토태왕은 '담덕, 안(安)'의 두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안(安)'이란 이름은 '안(安)'지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중국 사료에서 '안'이라고 하고 있다.
훈족의 Uldin은 흑해북쪽에서 태어났다고 Uldin family site in Hungary에서 말하고 있다. 고트족의 수도였던 Arheimer (드네프로강 입구)가 흑해 북쪽에 있었다. 드네프로강(=Avestan언어로 요수와 같이 '멀리있는 강'의 뜻)이 요수, 압록강이라면 Arheimer가 국내성이 될 수 있다. 즉 을딘이 국내성에서 태어났다는 결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트족의 왕 Alaric I은 흑해연안 루마니아지역에서 태어 났다고 한다. 고국양왕의 아들인 광개토태왕은 출생시 고국양왕이 왕이 아니었기 때문에 국내성이 아닌 곳에서 태어났을 수 있다고 나무위키 자료는 말하고 있다. 즉 흑해연안 루마니아지역에서 태어난 Alaric I의 기록이 아주 동떨어진 자료가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는 '고대사에서 '안(安)'지역은 흑해지역이다'라는 글에서 안남도호부, 안북보호부, 안서도호부, 안동도호부 등의 '안'지역이 흑해지역이라는 것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광개토태왕의 이름이 '안'이라는 것은 광개토태왕이 훈족의 Uldin이나 고트족의 Alaric I과 출생지와 같이 흑해연안에서 태어났었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훈족의 을딘이후 'Charaton'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런데 412년 등장하는 'Charaton'은 'Donatus'라는 훈족 왕을 이은 왕으로 거론된다. (아래 위키피디아 자료 참조) 그런데 이 'Donatus' 란 이름이 '담덕'이란 이름과 발음이 비슷하다.그러나 Uldin Family site in Hungary 자료에서는 (www.geni.com) 'Donaton'이 Uldin의 아버지로 368년 사망한 것으로 언급한다. 그러면서도 재위기간은 382-412 기간에 Eastern <Black Sea> Huns의 Khan으로 있었다고 하여 광개토태왕과 유사한 재위기간을 가리키면서도 모순된 내용을 보인다. 이 자료는 아직 신빙성을 유보하고자 한다.
".....Charaton after the death of a certain Donatus, who "was unlawfully put to death" .... Historians such as E. A. Thompson have assumed that Donatus was a king of the Huns."
(source : History of Huns, Wikipedia)
4) 출생지
이미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광개토태왕은 출생지가 미상 이거나 국내성으로 추정된다 한다. 훈족 을딘은 흑해 연안 북쪽 (By Uldin family site in Hungary)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위키피디아 자료에 나오는 Donatus에 대한 자료는 없어 언급할 수 없다. Uldin Family site에 나오는 Donaton은 우랄 서쪽에서 태어났다고 기술한다. (아래 자료 참조) 고트족 Alaric I왕은 출생지가 Peuce Island, Dobruja (present-day Romania)라고 Wikipedia는 언급하고 있다. 이는 고트족에 대해 책을 쓴 6세기의 사가 Jordanes의 'Origins and Deeds of Getae'에서 출처한 자료로 보인다.
5) 사망지
광개토태왕의 사망지는 미상이다. 반면 훈족의 을딘은 항가리 (by Uldin Family site in Hungary)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항가리 수도 Budapest는 귀족이 사는 Buda도시와 강건너 서민이 사는 Pest지역을 합친 이름이다. 광개토태왕은 평양에 9개의 절을 지었다고 한다. Buda란 지명이 부다(Buhda) 즉 부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부다페스트가 평양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고트족은 고구려이다(1)' 글에서 필자는 Carpathian Mountains옆에 있는 부다페스트가 백제(로마)의 공격에 의해 후퇴한 고국원왕이 화살을 맞아 죽은 평양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고트족의 Alaric I은 Cosenza, Calabria, Italy 에서 죽었다고 한다. 로마시를 3일동안 포위하다가 무슨 연유인지 남쪽 시실리로 이동했다가 로마로 돌아 오는 길에 열병으로 병사했다고 한다.
6) 매장지
광개토태왕은 국강상 지역의 산릉에 묻었다 한다. 그 위치는 모른다. 단 광개토태왕비에 의하면 수묘인제도를 두었다 했다.
"고구려 왕릉의 묘지기들의 인생이 망가지는걸 걱정하여 수묘인 제도를 정비했다. 단순히 묘지기들에 대한 걱정뿐 아니라 과거 고국원왕 12년(342) 11월, 환도성 전투로 인해 미천왕의 능이 전연에게 털리고, 시신을 침탈당했던 일을 전례로,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한듯 하다." (자료 : 광개토태왕/생애, 나무위키)
훈족 을딘에 대한 자료는 아래 자료에서 보듯이 항가리에서 죽었다 하는데 매장지에 대한 정보는 없다.
고트족 Alaric I의 매장지는 Busento River, Calabria, Italy 로서 강아래 묻었다 한다. 이에 대한 특별한 전설이 아래와 같이 전해진다. 강의 흐름을 임시로 바꾸고 강아래 묻은 다음 다시 강흐름을 원래대로 하여 강아래 매장했다 한다. 비밀을 기하기 위해 공사한 노비들을 모두 죽였다 한다. 부장품 등을 묻었으니 도굴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his body was, according to legend, buried under the riverbed of the Busento in accordance with the pagan practices of the Visigothic people. The stream was temporarily turned aside from its course while the grave was dug, wherein the Gothic chief and some of his most precious spoils were interred. When the work was finished, the river was turned back into its usual channel and the captives by whose hands the labor had been accomplished were put to death that none might learn their secret.[83][p]"
(source : Alaric I, Wikipedia)
강에 매장했다는 기록이 특이하다. 그러나 고구려의 고국천왕, 서천왕, 중천왕, 동천왕, 미천왕 등 모두 내 천(川)자를 쓰고 있어 매장된 강과 연관된 시호라 생각하는데, Alaric I의 강아래 매장 방식이 유사한 것을 말해 준다.
7) 사망원인
광개토태왕은 좀 이른 나이에 사망한지라[45] 사망 원인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있다. (자료 : 나무위키)
훈족 을딘의 successor는 Charaton이라 하는데 (자료 : Uldin, Wikipedia), 아래 자료에서는 Donatus라는 훈족왕이 죽은 후 Charaton이 언급된다. 그런데 Danatus가 시해되었을 가능성을 언급한다.
"Charaton after the death of a certain Donatus, who "was unlawfully put to death"
Historians such as E. A. Thompson have assumed that Donatus was a king of the Huns."
(source : History of Huns, Wikipedia)
그러나 Uldin family geneoloy site에서는 Donaton은 Uldin의 아버지로 382-412기간동안 재위한 것으로 언급되어 Donatus ( - 412)와 유사한 재위기간을 보여 준다.
고트족 Alaric I은 병사하였다고 아래에서 기술된다. 그러나 적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의문도 있다고 다른 자료에서 Wikipedia는 말한다.
"During the early months of 411, while on his northward return journey through Italy, Alaric took ill and died at Consentia in Bruttium.[81] His cause of death was likely fever,"
(source : Alaric I, Wikipedia)
"According to the Gothic historian Jordanes,[5] After sacking Rome Alaric left and headed south with his troops until reaching the area of Cosenza, where he died. No one is certain how this happened: Some believe he contracted a disease that took his life, while others feel that his death came from an attack by enemy forces. In any case, his troops honored their king by burying him in a tomb in the city. His burial place is said to have been at the confluence of the Busento and Crathis rivers..."
(source : Cosenza, Wikipedia)
II. 광개토대왕 전후의 왕조 역사로 본 고구려와 훈족, 고트족의 유사성
1. 고구려 소수림왕 - 안원왕 시기 (371-545)의 왕위계승 역사
고구려 이 시기에 왕권의 이양은 많은 역사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왕위계승이 부자가 아닌 형제로 이어질 때 더욱 그러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로 보이는 로마제국에서도, 신라로 추정되는 사산왕조 페르시아에서도 이러한 왕권다툼은 많이 보아 왔다. 심지어 부자간에도 권력을 위해 서로 죽이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본 기억이 난다.
또한 당시 훈족과 고구려는 팽창시기에 군사력의 중요성이 커지고, 모든 군사력을 한 사람이 모두 제어하기는 힘들 것으로 판단된다. 백제로 보이는 로마제국도 그 영토가 넓기 때문에 많은 반란이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사병을 통한 귀족들의 권력이 막강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고구려 광개토태왕은 즉위하자 마자 귀족들의 사병을 혁파했다고 한다. 그러나 형제간에 이어진 왕권의 계승으로 인한 혼란은 막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고구려의 삼국사기에서는 이러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훈족의 역사나 고트족의 왕조 역사를 보면 이를 확인 할 수 있다. 고구려사에서도 장수왕의 80년가량의 재위기간은 너무 길어 이미 의심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백제의 개로왕이 북위에 보낸 국서에는 이러한 정황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는 백제사에서도, 신라사에서도 긴 기간의 재위기간을 가진 왕들은 모두 일식현상, 혜성의 등장 등 반란의 역사가 있어 왔으며, 이들을 로마사, 사산왕조 페르시아사와 비교하면 이 시기에 반란의 역사가 있거나 왕이 바뀌는 것을 보아 왔다.
"개로왕이 472년에 북위에 보낸 국서에 "지금 연(璉) (거련의 이름을 가진 장수왕을 칭함)의 죄로 나라는 어육(魚肉)이 되었고, 대신들과 호족(豪族)들의 살육(殺戮)됨이 끝이 없어 죄악이 가득히 쌓였으며, 백성들은 이리저리 흩어지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자료 : 개로왕, 나무위키)
삼국사기의 고구려사 중 훈족의 역사가 유럽에 나타나는 소수림왕 시기부터 왕조사를 요약해 보면 아래와 같다. (나무위키 자료 참조)
1)소수림왕 (371-384) : 383년 반란으로 시해? 이는 이후 왕권다툼의 빌미가 된 것으로 보임
十三年秋九月 혜성이 나타나다 (383)
十四年冬十一月 소수림왕이 죽다 (384)
2)고국양왕 (384-391) : 소수림왕 동생, 소수림왕이 자식이 없어 왕에 올랐다 한다. 찬탈의 의심이 가는 상황
3)광개토태왕 (391-413) : 고국양왕 아들, 413년 사인이 밝혀지지 않음.
4)장수왕 (413-491) : 광개토태왕 아들, 약 80년동안 오랜 기간 재위기간으로 많은 변란이 있는 것으로 의심이 가는 상황
5)문자왕 (491-519) : 장수왕의 손자 (장수왕 아들인 고조다의 아들), 손자가 등극한 것은 이미 뭔가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
6)안장왕 (519-531) : 문자왕의 아들, 안장왕은 시해되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이 있음
7)안원왕 (531-545) : 안장왕의 동생, 문자왕의 아들, 안장왕의 동생이 왕에 오른 것과 안장왕의 시해 (일본서기 기록) 기록은 안원왕이 찬탈했다는 것을 암시
2. 훈족의 왕위 계승역사
상기 고구려기간동안 훈족의 역사는 단편적으로 보이지만 위키피디아자료는 아래와 같이 정리하고 있다.
소수림왕 시기의 Balamber는 왕으로 추정되고, 395년부터의 Kursich and Basich는 당시 세갈래 공격루트의 하나를 책입지고 있는 인물로서 왕이라기 보다 military leader로 판단된다. 따라서 을딘은 395-412 기간이 맞을 것으로 추정된다.
Charaton (412-)에서 Ruga (420-435)를 거쳐 아틸라 (435-453)이후 Ernak(453-469-?)까지 왕으로 등장하는 이름만도 7명에 달한다. 모두 장수왕 시기에 해당하는 인물들이다. 그리고 이후 이태리를 다스린 Odoacer(476-493)를 고려하면 모두 8명이 장수왕 시기에 해당한다.
King or chief |
• 370s?: Balamber? Valamir? |
• c. 395-? : Kursich and Basich |
• c. 400–409 : Uldin |
• c. 412-? : Charaton |
• c. 420s–430 : Octar and Ruga |
• 430-435 : Ruga (Attila의 uncle?) |
• 435–445 : Attila and Bleda |
• 445–453 : Attila |
• 453–469 : Dengizich and Ernak |
• 469-? : Ernak (476-493 : Odoacer (Edeko의 아들, Ruga의 후손?)) : 필자가 추가 |
(source : Huns, Wikipedia)
아래는 Uldin Family site in Hungary (www.geni.com)의 자료이다. 단지 참고의 의미에서 옮긴다.
Donaton |
|
Birthdate: | circa 315 |
Birthplace: | West of the Urals |
Death: | 368 (48-57) (??) 아래의 재위기간과 모순된 기록 Ukraine |
Son of Avitochola, King of the Huns Father of Uldin, King of the Huns |
|
Occupation: | Khan of the Eastern <Black Sea> Huns..c. 382-412, Roy des Huns |
Managed by: | Flemming Allan Funch |
Last Updated: | March 4, 2019 |
(source : www.geni.com)
Uldin |
|
Birthdate: | 335 |
Birthplace: | North of the Black Sea |
Death: | 412 (76-77) Hungary |
Son of Donaton, King of the Huns Father of Kuridak, Prince of the Huns |
|
Occupation: | Khan of the Eastern Huns, . 390-c. 411, Hunnerhøvding, Roy des Huns |
About Uldin, King of the Huns
Uldin (d. 412) was one of the primary chieftains of the Huns located beyond the Danube during the reigns of Arcadius (394–408) and Theodosius II (408–450). He did not, however have total control of the Hunnic people.
Uldin first became known to the Romans in December 400, when he decapitated Gainas, and sent the head to Arcadius as a gift. Five years later, Uldin led a body of Huns, together with his allies the Sciri, in the service of the western Magister Militum, Stilicho, against the invasion of Radagaisus.
Uldin's invasion of Moesia in 408 was repulsed, with thousands of his Germanic allies falling into Roman hands. Uldin was forced to retreat.
Uldin died in 412, and the Huns divided into three large groups.
http://en.wikipedia.org/wiki/Uldin
view all Uldin, King of the Huns's Timeline
Kuridak, Prince of the Huns (광개토태왕시 태자 이름 '거련'과 발음 비슷) |
|
Birthdate: | circa 360 |
Birthplace: | Ukraine |
Death: | circa 445 (76-93) |
Son of Uldin, King of the Huns Father of Oebarsius |
(source : www.geni.com)
3. 고트족의 왕조계승 역사
고트족의 왕조사는 Alaric I 왕 이 속한 Balt dynasty (주로 서고트족)와 고트족의 알렉산더라 불리는 Ermanaric 왕이 속한 Amal dynasty(주로 동고트족)로 나뉜다. 소수림왕 시기는 Balt dynasty의 Athanaric (369-381)왕과 Amal dynasty의 Ermanaric ( - 376)이 다소 겹친다. Ermanaric왕은 훈족의 침입에 자살했다고 하는데, 정변이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리고 이상한 것은 고구려 고국양왕 시기에 해당하는 381-395기간이 비어있다는 것이다. 물론 훈족의 지배를 받아서 그랬다는 뉴앙스를 위키피디아는 말하지만, 고트족이 훈족이라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 취하는 로마사가들의 논리의 하나로 보인다. 필자는 고구려사에서 고국양왕이 소수림왕의 왕위를 찬탈했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고국양왕의 아들인 광개토태왕과 유사한 시기의 고트족왕인 Alaric I의 아버지는 미상으로 나와 있다. 이런 면에서 광개토태왕의 역사와 연계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장수왕의 시기에만 Balt dynasty에서 Ataulf(410-415)에서 Alaric II (484-507)까지 무려 7명이 왕이 있다. 훈족의 왕조사에서도 7명이 등장하는데 우연히 같은 7명의 왕을 보인다. Alarc I이후 Balt dynasty에서는 Theodoric I (419-451)왕이 32년 재위하며 가장 긴 기간 재위하였으며, 훈족의 Attila (435-453)재위기간과 주로 겹친다.
- Kings of Goths:Balt Dynasty :
- Athanaric (369-381)
- ?? (381-395)
- Alaric I (395–410)
- Ataulf (410–415)
- Wallia (415–419)
- Theodoric I (419–451) : 32년 재위, Attila (435-453)과 유사한 시기
- Thorismund (451–453)
- Theodoric II (453–466) : 13년 재위
- Euric (466–484) : 18년 재위 : 서로마제국 멸망시기 (475) 포함 (개로왕이 언급한 '련'(?))
- Alaric II (484–507) ; 23년 재위
- Gesalec (507–511)
- 511-526 : 15년 공백
- Amalaric (526–531)
(source : Balt Dynasty, Wikipedia)
Amali Rulers (Amal dynasty)
- Ermanaric, king of the Greuthungi, (? - 376)
- Sigeric, king of the Visigoths, 415
- Theodemir, king of the Ostrogoths, until 474
- Theoderic the Great, king of the Ostrogoths, 474–526 : 52년 재위
- Athalaric, king of the Ostrogoths, 526–534
- Theodahad, king of the Ostrogoths, 534–536
(source : Amal Dynasty, Wikipedia)
서로마제국 멸망후 이태리를 지배한 Odoacer (476-493)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지만, 훈족이라 주장하는 사람, 고트족이라 주장하는 사람, 또 그당시에는 훈족이나 고트족이나 모두 같이 취급되었다는 주장 등이 있다. 아래 자료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Odoacer가 Rugii or Rogus의 후손이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아틸라는 Rogus라는 uncle을 두었다고 한다. 우리는 앞에서 훈족의 왕들중에 Ruga (420-435, 420-430 with Octar)가 Attila 직전에 재위했던 왕임을 알 수 있다. 즉 이태리 지역을 지배한 Odoacer가 훈족의 후예일 수 있다는 것이다.
Odoacer(476-493)이후 동고트족의 Theoderic the Great (474-526)가 이태리왕국을 이어갔다. Theoderic the Great의 493-526 재위기간은 고구려의 문자왕 (491-519)재위시기와 유사하다. 문자왕은 장수왕의 손자로서 왕이 되었으며, 고구려의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한 대왕으로 평가된다.
Theoderic the Great는 Odoacer, Alaric II와 이태리 Ravena에서 치열한 전쟁을 벌인다. 그리고 결국 Odoacer를 암살했다고 기술된다. Dynastic struggle이 아닌가 한다. 후에는 서고트족이 스페인으로 이동하면서 동고트족과 지배지역이 나뉘어진다.
고구려는 문자왕이 아버지 고조다가 왕이 되지 못했는데, 장수왕의 손자로서 왕이 되었다 한다. 뭔가 왕위 계승이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다. 그런데 문자왕의 아들인 안장왕이 암살되고 안원왕이 왕이 된다. 소수림왕시기부터 계속되는 암살과 왕권다툼이다. 이것이 고트족의 Balt Dynasty와 Amal Dynasty의 싸움이 아닌가 생각된다.
"Early medieval sources such as Theophanes, called him a Goth.[6] Likewise, the sixth-century chronicler, Marcellinus Comes, called him "king of the Goths" (Odoacer rex Gothorum).[d] .....
Modern historians also propose connections with Goths, Huns or the Thuringii. While in one passage in his Getica, Jordanes describes Odoacer as king of the Turcilingi (Torcilingorum rex) with Scirian and Heruli followers.[7] In another passage (LVII.291), Jordanes mentions Italy during Odoacer's reign being under the tyranny of Turcilingi and Rogii. In his Romana, the same author defines Odoacer as a descendant of the Rugii (or of a person named Rogus, Odoacer genere Rogus) with Turcilingi, Scirian and Heruli followers.[e] It has been pointed out that Attila had an uncle of the name Rogus and suggested that Odoacer may have been his descendant.[8] "
(source : Odoacer(473-496), Wikipedia)
결 론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시기와 그 이후 역사에 대해 삼국사기의 자료는 매우 부실하다. 그리고 신라와 백제의 역사도 공백이 많은 기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천운으로 광개토태왕비가 존재하여 그나마 잃어 버린 역사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라와, 백제의 위치에 대해 잘 모르는 우리에게 광개토태왕의 비는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다. 그런데 동시대에 유럽에서의 훈족의 역사는 서양 역사가들이 놀라서 기록한 역사가 되었다. 그래서 6세기 Jordanes에 의해 고트족의 역사가 남아 있고, 훈족의 역사는 단편적으로 로마사나 페르시아 역사에 남아 그 편린을 보여 준다.
그래서 광개토태왕의 정복 역사를 서양 훈족의 역사와 고트족의 역사일지도 모른다는 기대 속에서, 광개토태왕, 장수왕, 문자왕, 그리고 안장왕 시기까지의 고구려 역사 시간동안에 많은 우여 곡절의 역사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정복활동사를 비교 분석하기 전에, 개인사 및 왕조사를 통해 비교하게 되었다.
결국 다양한 자료를 통해 분석해 본 결과, 고구려의 이 시기의 역사는 동시기의 유럽에서의 훈족의 역사, 고트족의 역사와 매우 흡사함을 판단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에 더불어 다음 글에서 분석되는 고구려의 정복 역사를 본격적으로 유럽의 훈족의 역사와 고트족의 역사를 비교 분석하면서 이에 대한 최종적인 결론을 도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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