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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위만조선-국사편찬위원회

고대 문명/고조선

by Chung Park 2020. 6. 21.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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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魏滿:衛滿)조선(朝鮮)

 

≪전한서(前漢書)≫ 「조선전(朝鮮傳)」註 260에 이른다. “처음에 연(燕)나라註 261때부터 일찍이 

진번(眞番)·조선(朝鮮) 사고(師古)註 262가 말하기를 “전국(戰國)시대에 [연나라가] 이 땅을 처음으로 

침략해 얻었다.”라고 하였다.을 빼앗아 거기에 관리를 두고 장(障)새를 쌓게 하였다. 진(秦)나라註 263가 

연(燕)나라를 멸망시키자 요동(遼東)의 변방 지역에 속하게 되었다. 한(漢)나라가 일어났지만 멀어서 

지키기 어렵다고 하여,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浿水)註 264에 이르러 경계로 삼아 

사고(師古)가 말하기를 “패수는 낙랑군에 있다.”라고 하였다.연나라에 속하게 하였다. 

연나라 임금 노관(盧?)註 265이 배반하여 흉노(匈奴)註 266에게로 들어가자, 연나라 사람 위만(魏滿)이 

망명(亡命)하여 천여 명의 무리를 모아서註 267 동쪽으로 요새를 빠져 달아나 패수를 건너 

진나라 빈 땅의 아래위 장(障)새에 와서 살면서 진번·조선의 오랑캐들과 예전의 연나라·제나라註 268의 

망명자들을 차츰 복속시키고 임금이 되어 왕검(王儉) 이(李)註 269는 땅이름이라 하고 신(臣) 찬(瓚)註 270은 

말하기를 “왕검성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라고 하였다.에 도읍하고 무력으로써 그 이웃 작은 읍락들을 

침범하여 항복시키니 진번·임둔이 모두 와서 복속하여, 사방이 수천 리나 되었다.

 

 

註 260

≪한서(漢書)≫는 후한의 반고(班固, 32~92)가 82년(建初 8) 무렵에 완성한 책으로, 한 고조로부터 왕망의 멸망에 이르는 

230년간(기원전 206~24)의 역사를 기록한 전한의 정사(正史)이다. 본기(本紀) 12편, 연표(年表) 8편, 지(志) 10편, 

열전(列傳) 70편 등 총 100편이다. 이 가운데 권95 서남이양월조선전제(西南夷兩?朝鮮傳第)에 이 내용이 실려 있다.

註 261

중국 전국시대 7웅 중의 하나로 하북성 동북부를 본거지로 하여 계(?)에 도읍했던 나라이다. 

기원전 222년 진(秦)에게 멸망당하였다.

註 262중국 당나라 사람인 안사고(顔師古)를 말한다. 훈고학에 정통하였고 태종 때 ≪한서≫ 100권에 주를 달았다.註 263중국 전국시대 7웅 중의 하나로 다른 6국을 정벌하고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를 이루었다.

註 264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에 보이는 패수는 한(漢)과 조선(朝鮮)의 경계선이 되는 강으로 압록강이나 청천강에 비정하는 것

이 일반적이다(노태돈, 「고조선중심지의 변천에 대한 연구」, ≪한국사론≫ 23, 1990이종욱, ≪고조선사연구≫, 일조각, 1993

|오강원, 「고조선의 패수(浿水)와 패수(沛水)」, ≪강원사학≫ 13·14, 1998) 그런데 이와는 달리 패수를 소요수(小遼水)와 

태자하가 만나는 소요수 본류, 즉 오늘날의 혼하(渾河) 하류로 보는 견해도 있다(서영수, 「고조선의 대외관계와 강역의 변동」

, ≪동양학≫ 29, 1999, 116쪽).

註 265

한(漢)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친구로 고조 5년(기원전 202) 8월에 이성제후(異姓諸侯)로 연왕(燕王)에 봉해졌다. 

그 후 서한 왕실에 모반하였다가 고조 12년(기원전 195) 4월에 고조가 사망하자, 번회(樊會)·주발(周勃) 등의 

토벌을 받아 흉노로 도망하였다.

註 266

기원전 4세기말부터 약 500년 동안 몽골 지역을 중심으로 중국 북방을 지배했던 기마민족이다.

註 267

여기의 천여 명(千餘人)은 그 신분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전후 사정으로 보아 다수의 군인들로 구성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가 조선에 와서 번병(藩屛) 노릇을 하겠다고 자처한 것도 그의 무리가 군인으로 구성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정착 후에 

더 많은 무리들을 모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준왕이 숙위를 맡겠다고 나선 위만에게 쫓겨난 것은 바로 위만이 거느린 

군사 때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김정배, 「위만조선의 국가적 성격」, ≪한국고대의 국가기원과 형성≫, 고려대출판부, 1986, 32~33쪽).

註 268

중국 전국시대 7웅 중의 하나로 오늘날의 산동성과 하북성의 일부를 장악하였으나 후에 진에 병합되었다.

註 269  

≪한서(漢書)≫ 조선전에 주(註)를 단 이기(李寄)를 지칭한다(三品彰英, ≪三國遺事考?≫ 上, ?書房, 1975).

註 270

진대(晉代) 사람으로 성씨와 출생 군현은 알 수 없으나, ≪사기(史記)≫ 조선전에 실려 있고 ≪한서집해음의(漢書集解音義)≫ 24권을 지었다고 하였다. ≪한서(漢書)≫의 안사고 주 가운데에 많이 인용되고 있다. 당대에 들면 그의 성씨가 부가되는데, ≪유원(類苑)≫에서는 우찬(于瓚), ≪수경주(水經注)≫ 에서는 설찬(薛瓚)으로 되어 있다(三品彰英, ≪三國遺事考?≫ 上, ?書房,  1975, 317~318쪽)

 

자료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삼국유사 권 제일 .위만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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