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흑해 연안의 불가리아 역사를 공부하면서, 이어 볼가 불가리아, 카자르 칸국 등을 살펴 보게 되었다. 자연히 고구려, 발해, 고려의 역사를 비교하게 된다. 필자는 이미 Old Great Bulagria 역사가 고구려 연개소문 시기의 고구려 역사임을 밝혔다. 또한 Old Great Bulagria의 아들 중 둘째 아들 Kotrag가 북쪽으로 이동해 나라를 세운 것이 볼가불가리아라는 것을 밝히는 글을 썼다. 그런데 이들 지역을 총괄하는 Khazar Khagnate는 발해의 일부로 보인다. 앞으로 이들에 대해 글을 쓰게 되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발해가 프랑스의 론강 우측지역에서부터 흑해 우측에 이르는 지역까지 포함했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이 발해의 남쪽에 통일 신라가 위치한 것으로 판단한다.
필자의 이런 판단과 달리 서양사에서는 Khazar Khagnate가 흑해 위의 지역을 차지한 것으로 기술된다. 또한 이러한 카자르 칸국을 무너뜨리고 세운 나라가 Kievan Rus라 한다. 카자르칸국이 발해라면 발해를 무너뜨린 나라는 요나라가 된다. 그러나 요나라는 요동의 지역에 위치한 나라였다. 따라서 필자는 요수를 프랑스의 론강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설정은 필자의 판단과 매우 차이가 크다.
한때 필자도 우랄강을 요수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백이와 숙제가 관련된 고죽국이 이 부근이 아닐까 하는 글을 썼었다. 그러나 백두산, 장백산, 태백산에 관련된 발해고 지리지의 연구를 통해서 이러한 판단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즉 알프스 산맥의 몽블랑산이 백두산이고, 장백산이고 태백산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요수인 압록수는 프랑스의 론강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실제, 압록수의 파란 색은 이들 지역의 지형이 이러한 색소를 품은 물질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론강 뿐만 아니라 이들 주위 지역이 이러한 색소를 띄고 있어 압록부라는 보다 넓은 지역을 의미하는 명칭을 갖게 합당한 것이다.
거란이 세운 요나라의 요태조는, 고려의 영역이, 서쪽으로는 서경 압록부에서, 북쪽으로는 상경 용천부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바다에 이른다고 했다. 서경 즉 고구려의 수도 평양은 필자는 스위스의 쥬리히로 추정했다. 상경 용천부는 발해의 역사를 검토하면 더 자세히 알겠지만, 지금 연구한 바로는 볼가불가리아의 북쪽 국경의 요새도시 Kazan이 아닌가 한다. 아니면 좀더 서쪽의 Kievan Rus 지역의 북쪽 Novgorod 주변이 아닐까 한다. 최근에 알게된 이러한 정황은 필자에게도 큰 충격을 준다. 필자가 압록수가 프랑스의 론강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바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그만큼 발해의 영역이 넓었으며, 따라서 발해는 발틱해를 칭하는 것으로 판단되며, 발틱해의 동쪽에 있어 해동성국이란 칭호를 받았지 않았나 한다. 발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추가적인 글에서 보다 상세히 밝히고자 한다.
고려의 동쪽이 바다에 이른다고 하는 기록도 향후 연구과제이다. 신라 역사에서도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나온다. 고구려의 역사가 Gokturk역사를 포함한다고 필자는 최근 글에서 밝혔다. 그러면 백제의 담로 역사가 한반도나 일본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을 고려하면, 신라, 고구려도 한반도까지 이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발해나 고려도 또한 그러한 지 모른다. 즉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에서 동쪽끝까지 이르는 상상을 초월하는 그 영토의 규모에 놀라 입을 다물 지경이다. 필자는 결코 국뽕을 앞세우는 사람이 아니다. 단지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중간지대의 빈약한 역사 자료로 인해 앞으로 필자에게 주어진 연구과제이다. 특히 중공의 역사 왜곡으로 인해 더욱 어려움을 가진다.
그런데 위의 발해의 영역에 대한 추정은 필자에게 또 다른 한가지 도전적 과제를 준다. 즉 발해를 멸망시킨 요나라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필자의 요수 추정이 프랑스의 론강이라면, 이 주위에 요나라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이러한 가능성을 따져 보았다. 그래서 살펴 보니, 소위 서구 역사에서 말하는 신성로마제국의 역사 속에 숨어 있을 수 있음을 발견했다.
요나라는 916-1125년 기간동안 존재했다. 그리고 거란의 요나라를 멸하고 세운 여진족의 금나라는 1125-1245 기간에 존재했다. 그리고 금나라는 몽골의 침입에 의해 멸망한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모습을 신성로마제국의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신성로마제국의 Ottonian dynasty는 919-1024기간 존재했고, 이를 이은 Salian dynasty는 1024-1125 기간에 존재했다. 즉 요나라의 존재 기간이 이들 Ottonian dynasty와 Salian dynasty의 합친 기간과 딱 들어 맞는 것이다.
Map of the Holy Roman Empire depicting its boundaries under the rule of Otto I in 972 CE and Conrad II in 1032 CE. (source ; World History Encyclopedia)
필자는 예전부터 서구 역사의 Alemannia를 거란으로 추정했다. 고구려의 역사를 비교하면서 얻은 결론이었다. Alemannia는 프랑스어 Allmagne의 어원으로 현재의 독일 가리킨다. 이태리어, 스페인어 등 모든 유럽어로는 같은 어원의 모습을 가리킨다.
그러면 요나라를 이은 금나라의 역사도 이렇게 연결되나? 그렇다. 뒤이은 신성로마제국의 역사에서 Lothar III (1125-1137), Hohenstaufen dynasty (1138-1254)가 금나라의 역시기간 1125-1245에 해당한다. Hohenstaufen dynasty의 Frederic II는 1220-1250기간의 재위기간을 갖는데, 그 임기중 1241-1242 기간중 몽골의 침입을 받는다. 그리고 1245년 First Council of Lyon을 가져 몽골사태에 대해 논의한다는 역사 기록이다. 즉 금나라가 몽골의 침입에 망하는 과정이 유사하게 기록된 것이다. 보다 자세한 과정은 추후 역사 연구에서 밝혀질 것이다.
또 한가지 재미 있는 기록이 이러한 나의 추정을 매우 신빙성있게 만든다. 즉 신성로마제국은 3번의 중단시기를 갖는다. 즉 924-962의 38년, 1245-1312의 67년, 1378-1433의 55년 기간의 중단시기이다. 이들 기간중에는 왕의 존재도 없는 혼란의 시기라고 언급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924-962 기간은 발해에서 요나라로 넘어가는 시기이고, 1245-1312기간은 금나라에서 몽골로 넘어가는 시기이며, 1378-1433기간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시기이다. 즉 필자의 추정과 매우 유사한 가능성을 보이는 것이다. 즉 앞으로 론강을 압록수로 보고 계속 연구를 해나가는 것이 옳다는 시그널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요나라, 금나라의 역사가 신성로마제국의 역사속에 숨어 있다는 결론이다. 앞으로 이는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더 확인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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