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 '오손 도손 잘 지낸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도손은 조선이라 한다. 즉 조선과 오손이 사이좋게 지낸 것 같이 사이좋게 잘 지낸다는 뜻이다. 오손은 아래 위키자료에서 보는 바와 같이 BC 3c-AD 5c까지 서역에 존재한 유목민족 국가이다.
필자는 론강(Rhone River)을 연구하면서 Rhone river를 Occitan언어로 'Rose'라 불렀다 한 것을 범상치 않게 생각했다. Rose가 요수로 발음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 뒤로 Occitan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보았다. 프랑스 남부 Occitan지역은 서양에서 역사적 연대기록이 모호한 그러나 언어가 같은 지역으로 구분되는 지역이다. (아래 지도 참조). 필자는 한나라 등 중국이 패수인 라인강 서쪽에 있지 않나 하는 글을 썼다. 그래서 이 Occitan지역은 한나라와 관련 있는 지역으로서 고조선에 옆에 있던 오손지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왔다. 오늘은 이 Occitan지역이 오손이 아닌가 하는 것을 검토하고자 한다. 오손은 한(漢)나라 시기 한때 10만의 병력을 유지한 강력한 국가였다.
Delimitation of the Occitan space (red lines) within the French administrative regions (2016)
(source : Occitania, Wikipedia)
(By Jfblanc - Own work,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61382566)
먼저 오손(烏孫)에 대한 자료를 살펴 보자.
우선 BC 3c - AD 5c에 걸쳐 존속한 서역의 유목민족이란 것이다. 서역은 필자는 프랑스, 이베리아 반도의 등 서유럽을 말하는 것으로 짐작한다. 토욕혼 등을 연구하며 얻은 추정이다.
그리고 오손은 한서에 의하면 외형상 백인종이다는 기록이다. 스키타이계란 것이다.
또한 훙노와 월지에 관련되어 언급된다. 월지의 서진에 의해 튼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고, 흉노에 의해 멸망했다는 기록이다. 필자는 흉노의 묵특선우의 기록(북쪽의 실위인 정령 등의 정복, 서역 26개국 정벌 등)을 감안하면 훙노는 이미 서유럽에 있었다고 추정한다.
오손의 오는 까마귀 오자이다. 아래 전설에 의하면 까마귀가 버려진 갓난아이 엽교미에게 고기를 물어다 주고, 늑대가 젖을 물려주었다 한다. 그래서 까마귀 오자를 썼는 지도 모른다. 까마귀는 동양에서는 흉조이지만, 서양에서는 길조이다. 중국에는 오손이 흉조인지도 모른다. 늑대 젖먹이는 전설은 로마의 건국신화에도 나온다. 즉 오손이 서양에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기원전 3세기~서기 5세기에 걸쳐 존속한 서역의 유목민족. 이들은 고대 인도어로 기마 전사를 뜻하는 Asvin에서 비롯되었다 추정된다. (고대 중국어로는 Asvin(아스윈)이라고 발음됨).
오손은 본래 스키타이계의 샤카족으로 추정된다. 한서에 나오는 기록에 따르면 외형상 백인종이었다. 후대에 튀르크계 민족과 계속 혼혈되었으며, 오늘날 키르기스인들은 이들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긴다. 오손의 왕은 이른바 "곤막(昆莫)" 혹은 "곤미(昆彌)"라 불렸다.
본래 톈산 산맥(天山)의 북쪽 기슭을 거점으로 삼았으나 월지의 서진 과정에서 큰 타격을 입어 한 차례 멸망당하였다. 그 과정이 명확하지 않은데, 《사기》에서는 오손을 공격해 멸망시킨 주체를 흉노라 기록하였으나, 《한서》에서는 월지였다고 기록하였다.
오손은 멸망 당시에 그 왕이 살해당하고 종족이 뿔뿔이 흩어졌을만큼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오손 왕의 어린 아들이었던 엽교미는 간신히 살아남아 흉노 선우에게 거두어졌다. 장성한 엽교미는 흉노의 지원을 받아 흩어진 종족들을 규합하고 곤막을 칭함으로써 오손 왕국을 부흥시켰다.[2] (전설에 따르면 흉노가 오손을 멸망시켰을 당시에 갓난아기였던 엽교미만이 살아남았다. 흉노족들은 엽교미를 들판에 버렸는데, 주변의 까마귀들이 엽교미에게 고기를 물어다 주었고 늑대들은 젖을 물려주었다고 한다. 이에 흉노족의 선우가 엽교미를 신령한 존재라고 여기고 그를 거두어 아들처럼 키웠다고 한다.) 부활한 오손은 월지를 다시 한번 서천시켰을 뿐 아니라 흉노로부터 독립하여 그들의 침공을 수차례 무찔렀다.
그 후 기원전 177년경에는 흉노의 압박으로 인하여 동부 톈산에서 서북부 톈산으로 이동하고 산간부의 시르다리야 강의 상류 하곡(河谷)의 이리하로 이주하여 활약하였다. 그 왕이 도읍한 곳은 적곡성(赤谷城)이었다고 하는데 후일 국가가 셋으로 분열되었으나 그 둘은 곤막[3]에게 통솔되었다.
기원전 116∼BC 115년 전한(前漢)의 무제(武帝) 때 장건(張騫)이 이 나라에 사행(使行)한 이래, 한나라 조정과 흉노와의 관계에 개입하면서 양자간의 이득을 취하면서 흉노를 약탈하고 강거를 견제하는 등 10만의 기병을 통솔하는 서역 최강국으로 부상하였으나, 왕위분쟁에 한이 개입하면서 대오손, 소오손으로 국가가 분열되었고 이 과정에서 왕족 비원치는 강거의 지원을 받아 한의 영향을 배재하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이후 오손 관련 기록은 사실상 끊어지고 전한 말기에 한이 서역에서 철수하면서 기록이 단절되었다.[4] (후한때에는 서역에 진출하였으나 오손이 사는 곳까지는 교통이 닿지 않았다.) 그 후 5세기경 다시 기록에 등장했으나 그 세력은 이미 심각하게 쇠약해져 서역의 평범한 국가로 추락했고 다시 200년후 당(唐)이 서역에 진출했을 때는 오손민족은 이미 멸망한 상태였고 극소수의 후예만이 오늘날 천산 일대에 있다고 한다."
(자료 : 오손, 나무위키,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오손, 펌글 참조)
즉 오손은 흉노와 월지에 의해 망했다는 기록이다. 그러나 흉노 관련 기록은 BC 177년경이고, 한나라 장건 관련 기록도 BC 115년에 해당한다. 이 시기의 서양사 기록은 로마공화국 시기뿐이다. 로마 공화국 시기 기록도 BC 2세기경 Punic War, Illyrian War 등 큰 전쟁관련 기록뿐이다. 따라서 비교적 최근 기록과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오손은 AD 5c까지 존재했다 하니 말이다.
상기 Occitan관련 기록에서는 시대 관련 기록이 없다. (본 블로그, 카테고리, Occitania, 펌글 참조). 그런데 이 지역중 Savoi지역(프랑스 동남지역)에 존재했던 Burgundians 왕국은 411-534기간 존재했다. 그래서 Burgundians왕국에 대한 자료를 참조하자.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Burgundians, 펌글 참조)
Second Kingdom of the Burgundians between 443 and 476 (source : Wikipedia)
(By Marco Zanoli (Sidonius) - Own work,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641598)
그런데 Burgundians은 Vandals족과 같은 민족으로 기술된다. Vandals족은 BC 2세기경부터 중부유럽, 폴란드의 Vistula river와 Elbe river사이 지역에 이동한 민족이며, 훈족의 이동시기에 서쪽으로 이동한 민족이다. 필자는 이 Vandals족이 월지족으로 판단된다. (Vandals족이 월지족이란 주제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을 작성 예정). (Vandals에 관련 자료는 필자의 다음 블로그, 카테고리, Vandals, 펌글 참조)
"The Vandals migrated to the area between the lower Oder and Vistula rivers in the 2nd century BC and settled in Silesia from around 120 BC."
(source : Vandals, Wikipedia, 필자의 다음 블로그, 카테고리, Vandals, 펌글 참조)
즉 Burgundians족은 반달족의 일원으로 중부유럽에서 계속 서쪽으로 이동하여 411년 동남부 프랑스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기존의 Occitania왕국이 있었다면 멸망시키고 자리 잡았을 것이다. 이러한 Burgundians의 이동과 Vandals족의 북아프리카까지 이동은 계속 서쪽으로 이동한 월지족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5세기경 망한 오손의 위치에 유사한 시기에 월지족으로 판단되는 Burgundians왕국이 들어섰다는 것은 이 Occitania지역이 오손왕국이 아니었나 판단하게 한다.
상기 위키자료를 보면 오손의 왕은 '곤막' 또는 '곤미'로 불렸다 한다. 그런데 Burgundians 왕국의 왕 이름에 'Gunther' (411-437), 'Godomar'(532-534) 등의 이름이 있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 유사하다.
Burgundians 발음도 부여족을 말하는 '부루'란 발음과 유사하다. 부르군디언왕국의 공통어로 Vulgar Latin으로 기술되는데, Vulgar 는 Bulgars를 말하며, 부여족을 의미한다. 즉 부여계 라틴말을 썼다는 것이다.
필자는 월지족과 서양사에서 언급하는 Bulgars, 즉 부여족의 이동경로가 비슷한 것을 깨달았다. 동양사에서는 이들 모두 천산산맥 서쪽으로 이동하여 계속 서진했다 한다. 필자는 총령이 기존의 천산산맥에서 오랍령(우랄산맥)에 가까운 코카서스산맥으로 바꾸어 생각한다는 재야사학가들의 주장을 받아 들인 바 있다. 즉 Bulgars족이 Caucassus mountains에서 서쪽으로 이동했다는 서양사의 주장과 부합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특별한 언급이 있다. "말로리 같은 학자들은 월지가 오손과 함께 인도이란인에 속한다고 가설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자료 : 월지족, 위키백과) Bulgars, Huns, Goths 모두 인도유럽어족이다. 그런데 월지족과 오손이 모두 인도이란인에 속한다는 언급이다. 즉 인도유럽어족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월지족의 일원인 Burgundinas 왕국이 부여족 말을 이용했다는 위의 사실이 놀랍지 않다. 반달족이 부르군디언족과 거의 같은 민족이라 위키피디아자료는 말한다.
"The earliest mention of the Vandals is from Pliny the Elder, who used the term Vandili in a broad way to define one of the major groupings of all Germanic peoples. Tribes within this category who he mentions are the Burgundiones, Varini, Carini (otherwise unknown), and the Gutones."
(source : Vandals, Wikipedia, 필자의 다음 블로그, 카테고리, Vandals, 펌글 참조)
즉 반달족은 월지족이라는 것이다. 반달의 달은 우리말 Moon이며 월지족의 월은 한자의 Moon이다. 그래서 달을 국기에 넣은 북아프리카국가들 (알제리아, 튀니지아, 리비아, 모리타니), 터어키,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이 월지족과 관련된 나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로 건너가 반달왕국을 세운 반달족이 대월지 국가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우리말 달이 들어간 월지족인 반달족은 우리들의 조상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서쪽나라로 간다는 '반달'이란 동요도 심상치 않게 들린다.
아래 사진은 프랑스 동남부 Savoi 지역 Burgundians왕국 바로 좌측에 있는 지역 Clermont-Ferrand지역에서 가까운 Gergovie 고원에서 연을 날리는 모습이다. 연(=kite) 날리는 것은 서양에서 흔한 풍습이 아니다. 동양, 그것도 한국에서는 매우 흔한 풍경이지만 말이다. 이 지역도 Occitania에 포함되는 지역이다.
Cervolix 2006 on Gergovie plateau near Clermont-Ferrand, France (source : Wikipedia)
Cervolix
"Cervolix" - an association of kite fliers and kite surfers on the plateau. It is also used, since 1995, by remote-controlled aircraft fliers.
우리는 마한의 주요 리더국이 '목지국'이라 것을 안다. 또한 '월지국'을 잘못 읽어서 '목지국'이라 했다는 기록도 안다. 즉 월지국이 마한의 주요국이라는 것을 받아 들일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마한이 이태리 반도, 발칸반도, 나아가 히스패니아의 이베리아반도까지 포함하지 않았나 추정했다. 즉 이러한 목지국인 월지국의 일원인 부르군디언왕국이 부여계 말 이용, 그리고 오손의 영역에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무리한 추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오손이라 판단되는 Occitan 언어로 Rhone 강을 Rose로 불러 요수라는 의미를 말하지 않나 생각되는 것도 무리한 추정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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