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서에서는 사라센제국을 대식국이라 한다고 한다.
큰 대자, 먹을 식자이다. 즉 많이 먹는 나라라는 것이다.
사라센제국의 사라센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다.
우마이야 왕조 (AD 750) (source : Wikipedia)
“사라센인(Saracen)은 대체로 이슬람 제국의 사람들을 말하는 용어이다. 원래 로마 제국 말기에 시나이 반도에 사는 유목민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리스어 Σαρακηνός에서 유래 했는데 이 말은 아랍어의 '동쪽에 사는 사람들'이란 뜻의 사라킨 이라는 단어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아라비아 지역에 기독교가 자리잡은 이후에는 아라비아에 사는 민족을 통칭하는 말로 쓰이다가 7세기 이슬람교가 성립한 뒤부터는 사실상 이슬람교도와 동일한 의미로 쓰였다. 특히 시칠리아와 남부 이탈리아 반도의 이슬람교도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중세 초기 비잔티움 제국에서 사용하는 단어였는데 십자군을 거치면서 서유럽에 전파되었다. 옛날에는 그리스·로마에 살던 라틴문화권 사람들이 시리아 초원의 유목민을 사라세니(Saraceni)라고 부른 데서 연유하였다. 7세기 이슬람의 발흥(勃興) 이후로는 비잔티움인(人)이 이슬람교도 전반을 가리키는 용어로 이 말을 사용하였고, 십자군을 통하여 서유럽 전역에서 이 호칭이 사용되었다.” (출처 : 사라센인 - 위키백과)
즉 사라센은, 옛날에는 그리스 로마 문화권에 살던 라틴 문화권 사람들이, 시리아 초원에 사는 유목민을 '사라세니' 부른데서 기인하고, 중세 초기에는 특히 시칠리아와 이태리 남부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한다.
그럼 이러한 언급이 누구에 해당하는 지 알아 보자.
우선 대식국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 역사의 한민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신라 때 김춘추는 특히 대식국의 조상으로서 진면목을 보였는데 삼국유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왕의 식사는 하루에 쌀이 서 말이요, 수꿩이 아홉 마리였는데, 경신년 660에 백제를 멸망시킨 후부터는 점심을 없애고 다만 아침 저녁만 먹었는데 그래도 이를 합치면 하루에 쌀 여섯 말, 술 여섯 말, 꿩 열 마리였다."
리상호 옮김,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125쪽
즉 무열왕인 김춘추가 대식가였다는 것이다. 무열왕이후 문무왕때 신라는 백제를 통합하고 당나라와 함께 고구려를 망하게 했다. 따라서 사산왕조 페르시아를 신라로 추정하는 필자는 그 이후 우마이야 왕조가 신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서양사에서는 갑자기 나타난 아랍세력에 의해 사산왕조 페르시아가 651년 망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이때는 선덕여왕, 진덕여왕으로 추정되는 두 여왕이 지배하던 사산왕조 페르시아가 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대식국이라 칭해졌던 사라센제국, 그중에서도 특히 우마이야 왕조가 대식국이란 명칭에서 무열왕을 위시한 신라의 정체라는 것이 몹시 반가운 것이다. 그리고 대식국이란 명칭이 한 개인의 일회성 대식의 특징이 아닌 우리의 특징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세종대왕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몽고족이나 여진족에 비해 너무 많이 먹어 (기동력부족으로) 군사력이 약하지 않느냐는 지적을 한다.
"달달(達達 타타르)이 성(城)을 공격할 때에 이기지 아니한 적이 없었던 것은 유목(遊牧)하는 종족(種族)으로써 음식(飮食)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진(女眞)의 풍속도 역시 이와 같다. 우리 나라 사람은 그렇지 아니하여 항상 음식으로써 일을 삼으니, 급할 때에 이르면 장차 어떻게 할 것인가." 세종실록 31년 3월 6일' (출처 : 대식국, 작성자 enhance)
멀리 고구려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대식국의 면모를 보인 것을 위 사진과 글은 말해 주고 있다. 따라서 대식국인 사라센제국, 특히 우마이야 왕조가 신라라는 것을 설득력있게 말해 주고 있다.
사라센이란 명칭에서 중세초기에 시칠리아, 이태리 남부의 이슬람인들을 특히 비잔틴제국 사람들이 말하였다고 하였다. 나는 '장보고의 청해진은 지중해 시칠리아섬과 사르데냐섬에 있었다' 라는 본 블로그의 글에서, 시칠리아 섬이 청해진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사라센이 신라와 연관이 있다는 증거의 하나가 된다.
또한 비잔틴제국 시절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시칠리섬과 이태리 남부를 경략하여 확보했디. 난 유스티니아누스 1세를 백제의 성왕으로 추정했다. 백제가 신라에 의해 망한 후 신라의 강역이 되었을 것인 즉, 이들 지역이 불리는 사라센인의 지역은 신라라는 것이 된다.
신라와 당나라의 정체성이 혼동되는 와중에도 신라와 당은 구분되며 서로 싸우는 기록 등이 많다. 따라서 신라와 당은 구분되고 강역도 다르리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왜 서양사학자들은 사산왕조 페르시아가 651년 아랍에 의해 망했다고 했을까?
신라 역사에서 선덕여왕은 갑자기 당의 연호를 쓴다고 나온다. 즉 백제와 고구려의 압박속에서 당과 연합하여 대항하면서 뭔가 당에게 양보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래서 당의 연호를 쓰고 당태종에게 아부하는 글을 보내고 하지 않았나 싶다. 이것이 서양사학자들이 사산왕조 페르시아가 651년 망했다는 판단을 하게 한 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신라는 무열왕부터 성골의 대가 끊기고 진골에 의해 왕위가 이어진다. 더군다나 무열왕, 문무왕은 외가가 금관가야계로서 선덕여왕, 진덕여왕 계열과는 매우 판이하다. 이런 경우 서양사에서는 Dynasty가 바뀌는 것으로 통상 묘사된다. 이것 또한 사산왕조 페르시아가 651년 망한 것으로 묘사되는 이유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우마이야 왕조의 구체적인 연구로서는 한부울님의 세계삼한한역사 블로그에서 구체적으로 연구했다. '무열왕과 문무왕은 칼리프인가?'라는 글에서 무열왕(654-661)은 정통 칼리프시대의 4대 칼리프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656-661)라 하였으며, 문무왕(661-681)은 우마이야왕조 (661-750)의 시조 다마스쿠스 정권 무아위야 1세 (661-680)라 하였다.
신라 역사에서는 이슬람 종교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런데 왜 서양사에서는 무슬림으로 표현하며 이슬람 종교세력으로 치부했을까? 난 무슬림이란 단어가 비기독교인이라는 뜻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당시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을 무슬림으로 불렀다 한다. 무신론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닌가 한다. 또한 이슬람 종교를 가진 터어키인들도 예전부터 내려 오던 탱그리 신앙을 계속 지니고 있다고 기술되고 있다. 탱그리 신앙은 훈족과 Bulgars (부여족)가 유럽에 전파한 단군신앙이다. 따라서 무슬림이란 말이 초기에는 비기독교인 이라는 말로 쓰인 것이 이해된다.
또한 무슬림이란 단어가 Mosul city 사람이란 말에서 온 지도 모른다. Muslim이란 영어 단어는 Mosalman 이라고 중앙아시아 남아시아에서 쓰였다 한다. 고대로부터의 역사적인 도시 Mosul의 사람들이라는 말이 아닌가 한다. 바그다드에 가까이 있는 Mosul시는 아래 자료에서 보듯이 아시리아, 아카디언 제국시절부터 파르티아제국, 사산왕조 페르시아까지 중심적인 지역이었다. 따라서 이들지역의 사람들이 지중해, 유럽으로 진출하면서 이들을 일컫는 말이 Muslim으로 된지도 모른다.
'The ordinary word in English is "Muslim". The word Mosalman (Persian: مسلمان, alternatively Mussalman) is a common equivalent for Muslim used in Central and South Asia.' (source : Muslims, Wikipedia)
Mosul (Arabic: الموصل al-Mawṣil, Kurdish: مووسڵ, Syriac: ܡܘܨܠ, romanized: Māwṣil) is a major city in northern Iraq. Located approximately 400 km (250 mi) north of Baghdad, Mosul stands on the west bank of the Tigris, opposite the ancient Assyrian city of Nineveh on the east bank. The metropolitan area has grown to encompass substantial areas on both the "Left Bank" (east side) and the "Right Bank" (west side), as the two banks are described by the locals compared to the flow direction of Tigris. ...
The area in which Mosul lies was an integral part of Assyria from as early as the 25th century BC. After the Akkadian Empire (2335–2154 BC) which united all of the peoples of Mesopotamia under one rule, Mosul again became a continuous part of Assyria proper from circa 2050 BC through to the fall of the Neo-Assyrian Empire between 612–599 BC. Mosul remained within the geopolitical province of Assyria for a further thirteen centuries (as a part of Achaemenid Assyria, Seleucid Syria, Roman Assyria and Sasanian Asōristān) until the early Muslim conquests of the mid-7th century.....
Mosul became part of the Seleucid Empire after Alexander’s conquests in 332 BC. While little is known of the city from the Hellenistic period, Mosul likely belonged to the Seleucid satrapy of Syria, the Greek term for Assyria, Syria originally meaning Assyria rather than the modern nation of Syria (see Etymology of Syria), which was conquered by the Parthian Empire circa 150 BC.
Mosul changed hands once again with the rise of the Sasanian Empire in 225 and became a part of the Sasanian province of Asōristān. Christianity was present among the indigenous Assyrian people in Mosul as early as the 1st century, although the ancient Mesopotamian religion remained strong until the 4th century. (source : Mosul, Wikipedia)
또 하나의 가능성은 Muslin이란 특수 단어가 무슬림으로 혼용되었는지도 모른다. 원래 Muslin이란 단어는 얇은 흰 천의 일종으로 인도지방 등에서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상인들에 의해 유럽에 수출되었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이것이 이라크의 모슬시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여겼다. 13세기의 마르코폴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기술했다. 아래 그림의 베를 짜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하다. 꼭 밴갈지역을 언급하지 않아도 중앙아시아에서도 많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모슬에서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불교지역에서도 나타 난다는 것이 눈길을 끈다.
Muslin (/ˈmʌzlɪn/ or /ˈmjuːslɪn/), also mousseline or Malmal, is a cotton fabric of plain weave. It is made in a wide range of weights from delicate sheers to coarse sheeting. Muslins were imported into Europe from the Bengal region, in the eastern part of the Indian subcontinent, .....
While English-speakers call it muslin because Europeans believed it originated in the Iraqi city of Mosul, its origins are now thought to have been farther east — in particular Dhaka, the capital of what is now Bangladesh...…..
Textile weaver in Bengal (source : Wikipedia)
In the 9th century, an Arab merchant named Sulaiman made note of the material's origin in Bengal (known as Ruhmi in Arabic). Bengali muslin was traded throughout the Muslim world, from the Middle East to Southeast Asia. In many Islamic regions, such as in Central Asia,....
Ladies wearing muslin dupatta in a 12-13th century CE Buddhist manuscript; painting from what is today Nepal. (source : Wikipedia)
During the Roman period, muslin was the foremost export of Masulipatam, in Andhra Pradesh, India. Bengali khadi muslin was so prized by well-dressed ladies of Rome that according to Roman legend, "an ounce of muslin used to sell in Rome for an ounce of gold".
Marie Antoinette in her famous muslin portrait, 1783 CE. (source : Wikipedia)
In 1298 CE, Marco Polo described the cloth in his book The Travels. He said it was made in Mosul, Iraq. (source ; Muslin, Wikipedia)
이러한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할 때, 우마이야 왕조가 무슬림이라는 판단은 당시의 종교적 이슬람교의 뜻을 함유하기 보다, 다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신라의 우마이야왕조 가능성이 무슬림이란 단어에 의해 그 가능성이 줄어 든다는 논리가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식국이라는 표현과 우리의 역사적 식생활 모습을 고려할 때, 우마이야 왕조가 신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무열왕과 문무왕이 그 당시의 칼리프라는 연구도 있지 않은가?
'한국의 역사 > 통일신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라센제국의 우마이야 왕조가 신라라는 구체적 자료 (0) | 2019.08.19 |
---|---|
신라 하대 김헌창의 난은 지중해의 크레타섬과 터어키의 아나톨리아에서 있었다 (0) | 2019.07.05 |
장보고의 청해진은 지중해의 시실리섬, 사르데냐섬에 있었다 (0) | 2019.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