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역사/백제 16

백제의 한수, 한성은 요서인 프랑스 동부에 있었고, 백제의 한산과 한강은 북부 이태리에 있었다.

부제: 백제의 수도(capital) 한성(漢城) 및 한수(漢水)는 요서(遙西)인 프랑스 동부에 있었다 부제 : 백제의 한산과 한산성, 신라의 북한산주는 이태리 북부에 있었다. 부제 : 횡악은 알프스산맥이다. 백제의 한성은 한수, 한산과 연관이 있을까? 모두 한수 한(漢)자이다. 필자는 이 한(漢)이 한나라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즉 한나라가 위치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두 가까운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산은 온조가 백제를 세운 지역이며, 한성도 온조왕 시기에 언급된다. 또한 한산과 한수는 근초고왕 시기에 다시 언급된다. 한산으로 수도를 옮겼으며, 한수이북의 백성을 동원하여 성을 쌓았다 했다. 한성백제가 475년 망할 때에 수도 한성이 함락된 지..

로마사 자료를 통한 위례성, 한산의 추정 : S(IV)

부제 : 낙랑군 동부도위의 낙랑군은 발칸반도 트라키아(동예)의 좌측에 있었다. 부제 : 동예는 발칸반도의 트라키아다. 그동안 낙랑을 알아 보기 위해 다키언에서 출발해서 키메리언, 마사게태까지 분석해 보았다. 그래서 얻은 지식에 근거하여 숙고해보니, 동예는 흑해, 에게해에 접한 트라키아로 판단된다. 즉 스키타이, 사카의 일원인 우리 개념으로는 예맥족인 Thraco-Cimmerians이 중앙아시아로부터 서진을 거듭하여 아나톨리아를 거쳐 발칸반도, 더 나아가 중부유럽, 이태리 북부 알프스지역, 북유럽의 Jutland(조나국, Cimbri), 프랑스의 Gaul족 (켈트족)의 후예인 Franks (Sicambri)까지 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에서 터어키 아나툴리아에 있는 Sakarya river ..

서양사 자료를 통한 위례성 추정 : S(III)

앞의 두글에서 필자는 위례성과 한산, 한산성, 한성 등에 대해서 백제와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살펴 보았는데, 그 중에서 위례성은 한성과는 다른 위치임을 알았다. 그래서 먼저 위례성에 대한 서양사 자료를 검토하고자 한다. 위례성은 백제의 건국지로서 그 의미가 있다. 현재로서는 한산이 위례성 가까이 있는지 보류하며, 위례성의 위치 추정을 검토하고자 한다. 위례성이 우선 발칸반도 일리리아 지역으로 추정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백제의 건국지 설에 패대지간설, 대방고토설과 진번지간설이 있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되었지만, 패대지간설은 패수와 대수를 건너 가서 건국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패수는 북으로 흐르는 라인강, 동남으로 흐르는 다뉴브강으로 추정했다. 대수는 현재로서는 대방군지역에 있는 강이 아닌가 한다...

백제 개로왕 이후 시기의 위례성, 한산성, 한성의 위치 검토 ; S(II)

부제 : 백제의 위례성은 어디이고 한산성, 한성은 어디인가? (II) 낙랑과 관련한 온조 백제 초기의 위치 때문에 낙랑의 위치를 연구 하느라 한참 이후에 다시 백제의 위치 분석을 다시 찾게 되었다. 낙랑군의 위치를 떠나 낙랑 조선까지 내친 김에 알아 보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동안 알아본 낙랑의 위치는 낙랑군과 낙랑조선의 위치는 별개의 것으로 판단되며, 낙랑군은 초기 이태리 북부지역으로 판단된다. 나중에는 발칸반도 주위의 형식적인 진번군, 임둔군이 폐지되면서 낙랑군 동부도위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낙랑군 동부도위는 토착 세력이 주를 이루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정도 선지식을 가지고 위례성과, 한산성, 한성에 대해 백제 개로왕 이후 시기의 자료를 가지고 추정해 보고자 한다. I. 백제 개로왕 시기 ..

백제의 초기 역사자료를 고려한 위례성과 한산의 위치 추정 : S(I)

부제 : 백제의 위례성은 어디이고 한산, 한성은 어디인가 (I)? ​ 백제는 초기 온조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BC 18)하였다. 하남 위례성이니 강아래라는 것이다. 위례성 북쪽으로는 강(한수?)이 흐르고, 동쪽에 높은 산 부아악 (한산)이 있고, 서쪽은 큰 바다이며, 남쪽은 기름진 땅이라 했다. 그리고 고구려에서 남으로 가서 한산에 도읍했다고 했다. 그런데 기원전 5년에 한산으로 수도를 옮긴다고 했다. 그리고 이후 389년을 지냈다고 했다. 따라서 위례성, 한산 등의 위치는 가까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강(한수?)이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선, 한산(漢山)을 키워드로 찾아야 하고, 지형상 동쪽은 높은 산, 서쪽은 큰 바다, 남쪽은 기름진 땅이며, 고구려의 졸본 부여의 남쪽이어야 한다. 이런 ..

백제의 수도 사비성은 어디인가? (결론)

그동안 백제의 수도 사비성은 어디인가를 놓고 터어키의 Kayseri, Ankara, Constantinople을 놓고 검토해 보았다. 이제 이에 대한 잠정적인 결론을 논하고자 한다. 그동안 검토해 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Kayseri : 1) 주위에 3개의 산 (3916m, 3253m, 3756m의 화산) 이 있다. 2) 도시 북쪽에 터키 제일의 강(Kizilimark River)이 흐른다. 3) 문무왕으로 추정되는 무아위아에 의해 647년(일시적), 654년 함락되었다. 4) 백제 성왕으로 추정되는 Justinian I 때 요새화돠었다고 한다. 5) 성곽은 내성, 외성으로 이루어졌고, 시가지를 포함한 Citadel이 있다. Ankara; 1) 구도시를 관통하는 강이 있다. (앙카라강) – S..

백제의 수도 사비성은 어디인가? (본론 -중C)

III. 사비성이 Constantinople일 가능성 검토 (본론 -중C) Constantinople은 서양사에서 오랫 동안 수도로서의 중심 역할을 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로마가 4두 정치에 의해 나누어져 통치될 때부터 동로마지역의 수도로서 역할을 했다고 기술된다. 서기 3세기부터 줄곧 그러한 역할을 했다고 기술되었다. 워낙 이지역이 고대사로부터 역사가 있는 지역이므로 이해가 된다. 그러면 백제의 한성과 웅진의 천도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3세기부터 수도로서의 위치를 누려 왔던 점을 고려하면 그리고 바닷가에 접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웅진과 더 관계가 깊을 것으로 판단된다. 콘스탄트노플이 사비성일까 아닌가 하는 판단은 그래서 그 의미가 많이 축소된다. 그러나 사비성의 가능성을 검토한다면 다음과 같이 요..

백제의 수도 사비성은 어디인가? (본론 - 중B)

II. 사비성이 Ankara일 가능성에 대한 검토 Ankara가 사비성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654년 문무왕으로 추정되는 Muawiyah는 처음으로 Ankara를 합락했다. 백제의 수도 사비성이 백제 멸망시 처음으로 함락된 것으로 아는데, 이와 일치하는 것이다. 반면 Kayseri는 647년 한번 포위되었고, 654년 카파도키아 공격시 함락된 것으로 기술된다. "In 654, the city (Ankara) was captured for the first time by the Arabs of the Rashidun Caliphate, under Muawiyah, the future founder of the Umayyad Caliphate." [출처] Ankara 2. An..

백제의 수도 사비성은 어디인가? (본론 - 중A)

I. 사비성이 Kayseri Castle일 가능성의 검토 문무왕의 추정되는 Muawiyah는 647년 카파도키아를 침략하여 일시적으로 Caesarea Mazada (Kayseri)를 점령했다. 654년에도 재차 카파도키아를 공격하고 Caesarea Mazada (Kayseri)를 취하였다. The Arab general (and later the first Umayyad Caliph) Muawiyah invaded Cappadocia and took Caesarea from the Byzantines temporarily in 647. [출처] Kayseri​ “In 654, Muawiyah undertook an expedition in Cappadocia while his fleet, under th..

백제의 수도 사비성은 어디인가? (본론 -상)

우선 우리 역사자료에서 사비성은 어떤 곳인지 사비성 자료를 아래에서 살펴 보자. “5세기 말-6세기 초에 건설되어 성왕의 천도에 의해 538년부터 660년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백제 최후의 수도로 기능했다. 소부리(所夫里)라고도 불렸다.660년 8월 20일, 처절하게 싸운 황산벌 전투에서 대패한 백제군은 사실상 와해되었고 23일엔 문무왕 나당연합군이 사비성을 점령함으로써 백제가 멸망하였다.이후 신라령이 된 사비성에는 672년에 부여도독부가 설치되었으며, 경덕왕 10년(750년) 지명이 '부여현'으로 개칭,..” [출처] 사비성 - 나무위키 “삼국유사엔 사비를 '전백제 왕도(前百濟 王都)'라고 설명했다. 동시에 성왕이 국호를 남부여(南扶餘)로 바꾸었다는 사실 역시 서술했다. 당시 사비엔 부산(浮山), 일산..

백제의 수도 사비성은 어디인가? (서론)

사비성을 논하기 앞서 필자가 이미 살펴본 아래 4개의 본 블로그 글을 먼저 읽어 보시고 이글을 접하면 보다 이해가 용이할 것으로 생각한다. 1. 백제의 백강, 기벌포, 주류성은 터어키 남부 지중해 해안에 있었다 2. 백제 부흥군의 방어 거점 임존성은 터어키의 Egirdir castle이다. 3. 백제의 방어 거점 탄현은 터어키 동남부 Cilicia 지역의 Gaziantep 지역이다. 4. 계백장군이 싸운 황산벌은 터어키의 카파도키아이다. 655년 아랍군은 Phoenix(Finike) 앞 해전에서 승리한 후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했다고 기록되었다. 그러나 함락 시키지는 못했다. 우리 역사서에서는 660년 기벌포 백강 써움에서 승리한 후 나당연합군이 사비성을 함락하고 웅진성으로 피신한 의지왕이 항복했다고 했다...

백제의 계뱩장군이 싸운 황산벌 전투는 터어키의 카파도키아에서 있었다.

문무왕으로 추정되는 (아랍의) Muawiyah는 터어키 아나톨리아 남쪽 해안 (기벌포 추정, 본 블로그의 글, ‘백제의 백강, 기벌포, 주류성은 터어키의 남부 지중해 연안에 있었다’ 참조)을 수군으로 공격함과 동시에, 육로로는 카파도키아로 공격했다. (아래 글 참조) 따라서 카파도키아는 백제의 계백장군이 싸운 황산벌 전투로 추정된다. “In 654, Muawiyah undertook an expedition in Cappadocia while his fleet, under the command of Abu'l-Awar, advanced along the southern coast of Anatolia. Emperor Constans embarked against it with a large fleet.”..

백제의 방어요지 ‘탄현’은 터어키 아나톨리아 동남부 Cilicia지역의 Gaziantep이다

백제의 성충과 흥수가 언급한 방어요지 ‘탄현’은 터어키 아나톨리아 동남부 Cilicia지역의 Gaziantep이다. 필자는 이전의 글에서 주류성, 백강, 기벌포, 임존성 등의 위치를 비정하였다. 이글에서는 백제의 성충과 흥수가 언급한 방어 요지 ‘탄현’의 위치를 추정하고자 한다. 탄현은 아래 글에서 보듯이 신라로부터의 육로 침입의 주요 경로라 여겨진다. 그래서 성충이 그렇게 강조한 방어지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리적으로 이길을 통하지 않으면 육로로 신라가 백제를 경략할 수 없을 정도의 필수적인 위치가 되어야 한다. “탄현(炭峴)은 백제가 신라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방어시설을 구축한 요충지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501년(동성왕 23) 7월에 탄현에 목책을 설치하여 신라의 침략에 대비..

백제 부훙운동의 주요 항전지의 하나인 임존성은 터어키의 Egirdir castle이다

이미 본 블로그에 올린 글, ‘백제의 백강, 기벌로, 주류성은 터어키 남부 지중해 연안에 있었다’에서 주류성은 터어키의 남부 Lycia지역, Antalya province의 Alanya castle 임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주류성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며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던 임존성은 어디인가? 1) 아래 위키글에서 보듯이 임존성은 주류성 북쪽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2) 그리고 성 둘레가 매우 크며 (2450m), 외벽(석벽)과 내벽으로 나누어 있다. 3) 산아래 있으며, 성안에 7-8m깊이의 호수가 있다고 한다. 4) 임존성은 백제의 수도권 방어지인 오방 가운데 서방을 관할하던 방성이다. 5) 백제 부흥군이 주류성과 임존성을 근거로 하여 사비성을 회복하려다가 실패한 후 다시 임존성으로 물러..

백제의 백강, 주류성은 터어키 남부 지중해 연안에 있었다

백제 최후의 항전지 백강 (백촌강), 기벌포, 그리고 주류성 등에 대해 기존 사학계는 아직도 한반도내에서 그 위치 비정에 대해 여러 의견을 내고 있지만, 그 지리적 특성에 맞는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에 필자는 비잔틴제국이 백제라는 관점에서 백제의 최후 항전지 백강, 기벌포, 그리고 주류성, 피성, 덕물도 등의 위치를 비정해 보고자 한다. 필자가 백제의 최후 항전지를 비잔틴제국에서 찾는 것은 필자가 본 블로그 글, ‘로마는 백제이다’, ‘사산왕조 페르시아는 신라이다’, ‘광개토태왕이 점령한 관미성은 흑해의 크리미아 반도에 있다’, ‘장보고의 청해진은 지중해 시칠리아섬과 샤르데냐섬에 있었다’, ‘김수로의 금관가야는 코카서스산맥 아래 아르메니아에 있었다’, ‘ 우마이야 왕조는 신라이다’,그리고..

로마제국은 백제이다

로마제국은 백제이다. 난 본 블로그에 올린 글 ‘고대사에서 안지역은 어디인가?’에서 훈족의 로마 정벌이 광개토대왕의 그것이 아닌가 추정한 바 있다. 신라의 구원요청에 응답하여 5만의 군사로 백잔을 친 것이 광개토대왕비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을 훈족의 로마 정벌에 비교한 것이다. 실제 난 본 볼로그에 올린 글 ‘사산왕조 페르시아는 신라이다’에서 신라가 사산왕조 페르시아임을 증명했다. 그러면 그 옆에 있는 비잔틴제국은 백제로 비정된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가정하에 백제의 큰 사건을 위주로 로마제국이 벡제인가에 대해 검토해 보고자 한다. 단 초기의 로마에 대해서는 그 검토를 추후로 미룬다. 1.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관미성 (백제) 함락 - 훈족의 로마 소속 크리미아 정복 난 본 블로그에 올린 글 '백제의 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