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역사/고려 4

왕건의 해상세력은 누구인가?

왕건의 해상세력은 그 아버지 왕륜부터 해상무역을 통한 세력으로 부를 쌓은 세력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고구려의 유민들이었다 한다. (아래 나무위키 자료 참조) "왕건의 먼 조상은 패서 지역에 정착한 고구려 유민 출신이다.[2][3] 서긍이 북송의 사신으로 고려에 와서 저술한 《고려도경》에서는 왕건의 조상이 고려[4]의 대족(大族)[5]이었다고 한다. 왕건의 출신지인 송악군은 고(구)려 장수왕의 475년 한성 함락 사건 이후부터 668년까지 고구려가 거의 200여년 영토로 경영했던, 동비홀(冬比忽), 부소갑(扶蘇岬)을 합친 군이다. ​ 정황상 고구려 유민이 많이 참여한 평로치청번진, 즉 이정기 일가의 제나라와도 일정 부분 무역을 통한 관계가 유지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훗날 왕건을 고려 왕으로 책봉하는 후..

고려의 강동6주는 독일의 엘베강 동쪽에 있었다.

필자는 얼마 전 '요나라의 역사는 신성로마제국의 역사에 숨어 있다"라는 글에서 요나라의 지역이 프랑스 론강인 요수 주위에 있었다 주장했다. 그리고 이 당시 서양사의 역사는 신성로마제국을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신성로마제국의 역사에서 고려와 거란의 3차에 걸친 전쟁의 역사가 어떻게 기술되었는지 살펴 보고자 한다. 그러면서 고려가 거란과의 전쟁에서 확보한 강동6주 지역은 어디인지 추정해 보고자 한다. 방법론상으로는 먼저 신성로마제국의 역사를 살펴 보면서 이에 해당하는 고려사를 대비하며 검토하고자 한다. I. 여요 전쟁 시기와 신성로마제국의 전쟁 시기의 유사성 먼저 여요전쟁 시기는 1차 전쟁이 993, 2차 전쟁이 1010년, 3차 전쟁이 1018년 시작했다. 이와 유사한 시기에 신성로마제국 역사에서도..

후백제의 견훤은 불가리아 1제국의 Simeon왕인가?

필자는 비잔틴제국을 백제라 판단했다. 서로마제국도 일부는 백제로 판단했다. 단 비잔틴제국은 백제 멸망 후에는 신라로 판단했다. 통일신라의 세력은 유럽 역사에서 무슬림으로 나타난다. 스페인지역의 무슬림화는 통일 신라가 고구려의 남부인 서고트왕국의 점령으로 판단된다. 위키피디아는 750년경 우마이야왕조가 아바스왕조에게 쫓겨 나서 스페인지역으로 갔다고 했으나, 필자는 이런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한다. 망명 일부 세력이 다른 지역을 점령할 힘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약간의 연대 차이도 난다. 우마이야 왕조가 막을 내린 것은 750년경이고, 스페인의 서고트왕국은 8세기 초까지 존재했다. 고구려 멸망 후 이 지역까지 신라가 점령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고구려도 부흥운동이 있었으니까. 발해고를 보면 ..

드네프로강은 태봉(후고구려) 궁예의 한탄강인가?

드네프로강은 태봉 (후고구려) 궁예의 한탄강인가? 한탄강은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수도 철원을 한탄강 옆에 두었다 했다. 그런데 한탄강은 대탄강이라고도 하는데, 큰 여울이 많다는 뜻이라 한다. (아래 나무 위키 참조) “한탄강(漢灘江) 이름의 유래는 궁예가 왕건의 쿠데타 당시 도망가던 도중 이 강을 건너면서 한탄을 했다는 민간전승에서 유래했다고 잘못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크다는 의미의 순우리말 한, 여울 탄(灘)의 '큰 여울이 있는 강'이라는 뜻을 지녔으며, 김정호의 대동지지를 보면 대탄강(大灘江)으로 적혀 있다. 한국지리에서 주요 강을 표시할 때는 이름을 찾아볼 수 없지만 철원군 - 평강군 용암대지를 흐르며 그 지역의 벼농사를 가능하게 해주는 강이기에 비중은 어느 정도 차지하고 있다. 후삼국시대 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