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한수, 한성은 요서인 프랑스 동부에 있었고, 백제의 한산과 한강은 북부 이태리에 있었다.

2023. 1. 24. 08:26한민족 역사/백제

부제: 백제의 수도(capital) 한성(漢城) 및 한수(漢水)는 요서(遙西)인 프랑스 동부에 있었다

부제 : 백제의 한산과 한산성, 신라의 북한산주는 이태리 북부에 있었다.

 

부제 : 횡악은 알프스산맥이다. 

 

 

백제의 한성은 한수, 한산과 연관이 있을까? 모두 한수 한(漢)자이다. 필자는 이 한(漢)이 한나라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즉 한나라가 위치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두 가까운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산은 온조가 백제를 세운 지역이며, 한성도 온조왕 시기에 언급된다. 또한 한산과 한수는 근초고왕 시기에 다시 언급된다. 한산으로 수도를 옮겼으며, 한수이북의 백성을 동원하여 성을 쌓았다 했다. 한성백제가 475년 망할 때에 수도 한성이 함락된 지역이며, 이후 동성왕시에 다시 한성을 회복하여 순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무령왕 시기에도 한성이 언급된다. 고구려 문자왕은 507년 한성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고 횡악에 머물렀다 했다. 이후 신라 진흥왕은 백제 성왕과 함께 고구려와 싸워, 한수 유역을 회복하였으나, 신라 진흥왕이 이 지역을 차지하였다. 일본 서기에도 한성을 신라 진흥왕이 취하였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백제 동성왕 시기에 북위와의 전쟁이 있었다고 하는 것은 백제가 요서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지역에 대한 추정은 많은 의미를 가진다. 

 

I. 백제 온조왕-구수왕 시기의 한산, 한성, 한수, 횡악 언급 자료 검토

 

1) 《삼국사기》 백제 시조 온조왕 (BC 18 - AD 28, 46년) 본기

 

"...마침내 오간·마려 등 10명의 신하와 함께 남쪽 지방으로 떠났다. 백성 가운데 그들을 따르는 자가 많았다. 그는 한산에 도착하여 부아악에 올라가 거주할 만한 곳을 찾았다. 비류는 바닷가에 거주하기를 원하였다. 10명의 신하가 간하여 말했다.

"이곳 하남 땅만이 북쪽으로는 한수가 흐르고, 동쪽으로는 높은 산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비옥한 들이 보이고, 서쪽은 큰 바다로 막혀 있습니다. 이러한 천험의 요새는 다시 얻기 어렵습니다. 이곳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비류는 듣지 않고 백성들을 나누어 미추홀로 가서 터를 잡았다.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10명의 신하로 하여금 보좌하게 하고, 국호를 십제라고 하였다. 이때가 전한 성제 홍가 3년이었다. 비류는 미추홀의 토지가 습기가 많고, 물에 소금기가 있어 편히 살 수가 없다고 하여 위례성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곳 도읍이 안정되고 백성들이 태평한 것을 보고는 부끄러워 하며 후회하다가 죽었다. 그의 신하와 백성들이 모두 위례로 돌아왔다. 그 후 애초에 백성들이 즐거이 따라왔다고하여 국호를 백제로 바꾸었다." (자료: 온조왕, 나무위키)

 

하남 위례성의 위치는 북쪽으로는 한수가 흐르고, 동쪽으로는 높은 산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비옥한 들이 보이고, 서쪽은 큰 바다로 막혀 있다. 필자가 한수를 중국 장강으로 보는 프랑스 르와르강으로 본다면, 하남 위례성은 프랑스의 동쪽, 르와르강 우편에 있는 강의 남쪽에 있다고 판단된다. 프랑스의 디종(Dijon) 정도의 위치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단지 서쪽으로 큰 바다가 있는데, 대서양까지 다소 거리가 있는 점이 확인된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 시조 온조왕 조

十四年秋七月 한강 서북방에 성을 쌓고 주민을 이주시키다 (BC 5)

二十五年春二月 한성의 민가에서 이 를 낳다 (AD 7)

(자료: 온조왕, 나무위키)

 

이 자료에서는 한성의 위치가 나오지 않는다. 한성은 위례성이 아닌데, 한수 주위에 있는 성이 아닌가 한다. 위례성이 프랑스의 Dijon 정도라면, 한성은 Clermont Ferrand이므로 두 지역간에 다소 거리가 있다. 

 

BC 5년에, 한강 서북방에 성을 쌓았다 하고 주민을 이주 시켰다 했다. 여기서 한강은 한수와 다른 강일 수 있다. 한강을, 한나라 한(漢)의 한수가 아닌, 나라 한(韓)자를 쓴다면 한강이 포강(Po River)이 될 수 있다.

한강 서북방에 쌓은 성이 한산성이 아닌가 한다. 즉 한산성은 한강 서북방에 있는 성일 수 있다. 한강을 포강으로 한다면,  한산성은 밀라노 근처가 될 수 있다. 

 

2)  《삼국사기》 백제 다루왕 ( AD 28 - AD 77 : 49년) 본기

四年秋九月 횡악 아래에서 사슴을 사냥하다 (AD 31)

 
 

횡악은 피레네산맥 아니면 알프스산맥으로 보인다. 피레네 산맥이라면 그 아래로 가서 사냥을 했다는 것이 되는데, 피레네 산맥 위의 지역에 있는 한수라면 가능성이 작다. 따라서 횡악은 알프스산맥일 가능성이 더 크다. 즉 알프스산맥 아래 지역에 백제가 있었다는 추정이 된다. 

 

3) 《삼국사기》 기루왕 (AD 77 - 128, 53년) 본기

十七年秋八月 횡악의 큰 바위 다섯 개가 땅에 떨어지다 (AD 93)

二十一年夏四月 두 마리 용이 한강에 나타나다 (AD 97)

二十七年 한산에서 사냥하여 사슴을 잡다 (AD 103)

四十年夏六月 한강 물이 넘쳐 가옥이 유실되다 (116)

 

횡악, 한강, 한산이 모두 언급되는 시기이다. 사냥은 횡악 아래 한산에서 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산은 알프스산맥에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강이 한산과 횡악과 가깝다면, 한강은 포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포강이 한수가 되기는 힘들지 않을까? 한나라가 위치한 강이라 판단한다면 말이다. 만약 한수가 한강이 아니라면 의외로 문제가 쉽게 풀린다. 

 

단지 한강을 나라한(韓) 자를 쓴다면 포강으로 하는 것이 이해가 간다. 마한지역의 강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한산도 나라한 자가 될 수 있다. 즉 나라한 자를 쓰는 한산, 한강, 북한산성, 남한산성이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4) 《삼국사기》 개루왕 (128 - 166, 39년) 본기

 

四年夏四月 한산에서 사냥하다 (AD 131)
五年春二月 북한산성을 쌓다 (AD 132)

 

북한산성은 한산의 북쪽에 있는 산성으로 추정된다. 알프스산맥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5) 《삼국사기》 백제 초고왕 (166 - 214, 49년) 본기

 

167년 7월, 신라의 서쪽 변경을 공격. 2개 성을 함락시키고 남녀 1,000명을 사로잡아왔다. 신라는 다음 달인 8월 반격으로 일길찬 흥선이 2만 병력으로 백제 동쪽 여러 성을 공략했고 곧이어 신라 왕이 직접 정예기병 8,000명을 이끌고 한수(한강)까지 침입해 초고왕은 신라군 대군을 보고 점령했던 지역을 돌려주고 마무리지었다고 한다.

二十二年夏五月 서울의 우물과 한강이 마르다 (AD 187)

 
 

역시 한강은 나라한(韓) 자를 써서 포강으로 추정된다. 즉 신라와 백제가 한강인 포강을 두고 싸웠다는 것이다. 신라는 이태리 반도의 남쪽이 아닐까 한다. 

 

서울은 백제의 수도라면 한강에 가까이 있다는 표현이다. 그러나 백제에서 서울이란 표현이 없을 것인데, 원문이 그렇다면 일본의 조작일 가능성이 있다. 근초고왕때 수도를 한산으로 옮겼다 한다. 즉 여기서 서울은 포강 주위의 밀라노가 아닐까 한다. 로마제국 역사에서도 수도로 있었던 도시이다. 

 

6) 《삼국사기》 백제 구수왕 (214 - 234) 본기

 

八年秋八月 한수 서쪽에서 군사를 사열하다 (AD 221)

 

한수로 표현되었다. 이는 한나라 한(漢)자를 쓸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의 동쪽편에 있는 르와르강의 지류강일 지 모른다. 

 

 

II. 백제 근초고왕 - 비유왕 시기 (346-455) 한수, 한산

 

1) 근초고왕(346-375)시기의 한수, 한산 (수도) 언급

 

二十四年冬十一月 한수 남쪽에서 군사를 사열하다. (369)

二十六年冬十月 평양성에서 고국원왕을 죽이다. (371)

二十六年 수도를 한산으로 옮기다. (371)

 

수도를 한산으로 옮겼다. 나라한 자를 쓴 한산으로 보인다. 알프스 남쪽, 이태리 북부의 한 도시일 것이다.  밀라노나  라벤나가 될 수 있다.  

또한 한수 남쪽에서 군사를 사열했다. 당시 백제는 중국의 한수지역에도 있었고, 한산지역에도 있었다. 수도를 한산으로 옮겼다. 고구려 평양성에 가까운 알프스산맥지역으로 보인다. 

 

 

2) 《삼국사기》 침류왕 (384-385) 본기

二年春二月 한산에 절을 창건하고 승려에게 도첩을 주다 (AD 385)

 

한산에 절을 창건했다. 새로운 수도지역일 것이다. 

 

 

3) 《삼국사기》 진사왕 (385-392) 본기

七年秋七月 서해의 큰 섬에서 사냥하다 (AD 391)
七年秋八月 횡악 서쪽 지역에서 사냥하다 (AD 391)

 

횡악 서쪽 지역은 알프스산맥의 서쪽이며, 서해의 큰 섬은 코르시카나 샤르데냐 섬일 수 있다. 

 

 

4) 《삼국사기》 백제 아신왕 본기 (392-405)

 

六年秋七月 한수 남쪽에서 군대를 사열하다 (AD 397)

七年春三月 쌍현성을 축조하다 (AD 398)

七年秋八月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한산 북쪽에 이르다 (AD 398)

 

한산 북쪽에 고구려가 있다는 것이다. 즉 한산은 알프산산백에 있다는 것이다.  

한수 남쪽에 군대를 사열했다. 이 당시에도 중국의 한수지역에 백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5) 삼국사기》 백제 비유왕 본기 (427-455)

二十九年春三月 한산에서 사냥하다 (455)
二十九年秋九月 검은 용이 한강에 나타나고 비유왕이 죽다 (455)

 

검은 용은 고구려를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강에 나타나니 포강으로 추정된다. 즉 알프스산맥 위에 있는 고구려가 남으로 내려와 공격했다는 것이다. 한산도 근처에 있었을 것이다. 

한강과 한수가 백제 전반기에 자주 별도로 언급되는 것은 두 강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III. 475년 개로왕 시기 한성백제의 멸망 

 

《삼국사기》 백제 개로왕 본기 (455-475)

 

二十一年秋九月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살해되다 (AD 475)

 

 

475년 개로왕은 고구려 장수왕이 보낸 제중걸루 등에게 사로 잡혀 왕족과 왕이 살해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한성백제가 망했다고 기록된다.

 

그래서 문주왕이 웅진백제로 옮겼다고 한다.

 

필자는 위례성과 한성을 별도로 추정한다.

 

 

475년 서로마가 망한 해이므로 한성이 이태리반도의 어디인가 하는 의구심도 가졌었다. 그러나 한성의 한자는 한(漢)나라 한자이므로, 그동안 여러 분석을 통해 한(漢)나라의 위치를 라인강 서쪽으로 추정한 것과 이는 매칭되지 않는다. 그래서 고민하던차, 서고트족의 활동지역에서 Clermont이 한성일 가능성을 찾은 것이다.

 

"Clermont went through a dark period after the disappearance of the Roman Empire and during the whole High Middle Ages, marked by pillaging by the peoples who invaded Gaul. Between 471 and 475, Auvergne was often the target of Visigothic expansion, and the city was frequently besieged, including data-once by Euric. Although defended by Sidonius Apollinaris, at the head of the diocese from 468 to 486, and the patrician Ecdicius, the city was ceded to the Visigoths by emperor Julius Nepos in 475 and became part of the Visigothic kingdom until 507.

 

(source : Clermont, Wikipedia,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Goths, 펌글 참조)

 

즉 한성은 프랑스 클레르 몽페랑이다, 단지 횡악이 알프산맥일 것이다. 

 

IV. 고구려 문자왕 시기의 한성 언급

 

1) 고구려 문자왕시 백제 한성의 위치 가능성 : Clermont

 

한성백제의 한성(漢城)은 백제의 수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나라 한자가 들어가 있다. 그래서 필자는 한(漢)나라지역에 있던 도시라고 추측하고 있었는데, 그 실체를 파악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필자는 본 블로그 글, '한(漢)나라와 조선의 경계인 패수는 독일의 라인강이 아닌가?'에서 중국(衆國)지역이 라인강 서쪽인 지역이라 추정했다. 

 

필자의 이런 주장은 본 블로그 글, '압록수인 요수는 프랑스의 론강이다', '요수가 론강이라면 갈석산은 어디인가?', '동서로 천리에 걸쳐 뻗어 있는 백두산은 알프스산맥에 있다', '장수왕이 공격한 풍홍의 북연은 프랑스 Gaul지역에 있었다' 등의 글에서 이미 이러한 중국의 위치를 추정한 바 있다.

 

그동안 북위가 북연의 남쪽에 있으니, 북위가 프랑스지역 Toulouse를 수도로 하는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갈석산에서 군신들에게 잔치를 베푼 북위의 문성제의 황산궁은 그래서 Toulouse에 있지 않나 추정했다. 

 

백제는 동성왕시 484, 488, 490년에 걸쳐 북위와 전쟁을 하였다. 484년에 대패했지만, 488, 490년에는 크게 승리했다고 한다. 즉 백제는 그 영토의 일부가 북위와 인접하여 있었다는 것이다.

 

백제의 한성백제는 475년 고구려에 의해 점령 되었다고 삼국사기 장수왕 시기에 기록된다. 그러나 506년 문자왕 시기의 고구려는 한성에서 백제와 싸워 이기지 못했다고 다시 기록된다. 무령왕 시기의 백제가 다시 한수유역을 회복했다고 하는 기록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무위키).

 

그래서 필자는 고구려로 추정되는 서고트족의 기록을 더 자세히 살피게 되었다. 광개토태왕으로 추정되는 Alaric I 직계 계열인 Balt Dynasty는 서고트족의 가문 계보이다. 이들은 주로 Gaul지역 및 히스파니아지역을 점령한 서고트왕국을 이루고 있었다. (본 블로그 글, '남프랑스와 이베리아 반도에 있었던 서고트왕국은 고구려이다' 참조). 

 

서고트족은 475-507기간동안 프랑스의 Clermont (클레르몽)지역을 점령했었다. 이것이 동양사에서 어떤 사건에 해당하는지 검토하고자 한다.

 

첫째, 프랑스 클레르몽 점령사건이 고구려의 백제 한성을 점령한 사건인가 하는 분석이다. 한성인지 분석하려면 아래 내용을 검토해야 한다.

 

2) Clermont지역은 한성지역인가?

 

아래 기록을 보면 Clermont지역을 로마가 점령한 후, 도시 이름을 Augutus 이름을 딴 Augustonemetum으로 하였다고 기록된다. 그리고 Clermont은 로마 Gaul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고 한다. 한성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After the Roman conquest, the city became known as Augustonemetum sometime in the 1st century[BC or AD?], a name which combined its original Gallic name with that of the Emperor Augustus. Its population was estimated at 15,000–30,000 in the 2nd century, making it data-one of the largest cities of Roman Gaul."

 

(source : Clermont, Wikipedia,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Goths, 펌글 참조)

 

아래 Gergovie plateau에서 연을 날리고 있는 Cervolix 축제 사진을 보라. 서양에서 연을 날린다. 자고로 연(=kite) 날리는 것은 동양에서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다. 왜 이런 풍습이 아직도 남아 있는가? 왜 Clermont 주위에 이런 풍습이 있는 것인가? 필자가 한성지역이 이곳이 아닌가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Cervolix 2006 on Gergovie plateau near Clermont-Ferrand, France (source : Wikipedia)

 

Cervolix

"Cervolix" - an association of kite fliers and kite surfers on the plateau. It is also used, since 1995, by remote-controlled aircraft fliers.

 

507년 Battle of Vouille가 있었던 Poitiers지역은 Clermont지역이다. 그런데 이 지역은 Occitan지역이다.

 

3) 고구려 문자왕 시기의 백제의 한성 언급 (507년)

 

507년 문자왕 시기의 기록에 고구려는 한성에서 백제와 싸워 이기지 못했다는 기록이 있다.

 

"507년 고로(高老)를 시켜서 말갈군과 함께 백제의 한성(漢城)을 공격하려 하였으나, 횡악(橫岳)과 싸우다가 물러났다."

 

(자료 : 문자명왕, 위키백과,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고구려하, 인용글 참조)

 

상기 위키피디아 기록에서 서고트족은 Clermont을 475년 점령하여 507년까지 점하고 있었다고 한다. 즉 507년이후로는 서고트족이 점하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문자왕 시기의 한성기록 기록과 일치한다.

 

V. 동성왕 시기의 한산성 언급

 

《삼국사기》 백제 동성왕 본기 (479-501)

四年秋九月 말갈이 한산성을 습격하다 (AD 482)

 

五年 한산성으로 행차하여 군사와 백성을 위무하다 (AD 483)

 

동성왕 시기 말갈과 전쟁한 한산성은 알프스산맥에 있는 성으로 보인다. 

 

VI. 무령왕 시기의 한수, 한성 언급

 

《삼국사기》 백제 무령왕 본기 (501-523)

七年冬十月 고구려와 말갈이 연대하여 침입하다 (507)

 

507년 고로(高老)를 시켜서 말갈군과 함께 백제의 한성(漢城)을 공격하려 하였으나, 횡악(橫岳)과 싸우다가 물러났다. (자료 : 위키백과, 고구려 문자왕)

 

二十三年春二月 한수 이북의 백성을 징발하여 쌍현성을 쌓다 (523)
二十三年春三月 한성에서 돌아오다 (523)

 

한수와 한성은 프랑스의 지역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507년 고구려 문자왕의 한성 공격 경로는 알프스산맥의 말갈군과 함께 횡악을 건너 서쪽의 한성(Clermont Ferrand)을 공격하려 했으나 알프스산맥에서 머물렀다는 것으로 추정된다. 

 

무령왕 시 한수이북의 백성을 징발하여 쌍현성을 쌓은 것은 한성을 더욱 튼튼히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즉 한수와 한성은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VII. 신라 진흥왕-진평왕 시기의 북한산(주) 언급

 

<삼국사기> 신라 진흥왕 본기

十四年秋七月 신주를 설치하다 (AD 553)

(백제 성왕 : 三十一年秋七月 신라가 동북 변경을 획득하여 신주를 설치하다 (553))

 

十六年冬十月 북한산에 순행하다 (AD 555)
十六年冬十一月 북한산에서 돌아오다 (AD 555)

十八年 감문주와 북한산주를 설치하다 (AD 557)

 

진흥왕 시기의 신주, 북한산주는 이태리 북부지역으로 추정된다. 이는 롬바르디왕국의 점령지역이다. 필자는 롬바르디왕국을 진흥왕의 그것으로 추정한다.

 

《삼국사기》 신라 진평왕 본기 (579-632)

 

二十五年秋八月 고구려가 북한산성에 침입하다 (AD 603)

二十六年 북한산주를 다시 설치하다 (AD 604)

 

북한산성을 침입한 고구려는 알프스산맥 북쪽에 있는 고구려이다. 북한산주를 다시 설치한 신라는 이태리 북부를 점령한 롬바르디왕국으로 보인다. 이는 과거 백제와 신라가 다투던 지역으로 판단된다. 한산성은 주로 백제 지역으로 삼국사기에서 언급되고 밀라노 등 지역이라 추정했다. 이 보다 북쪽에 있는 북한산주는 롬바르디왕국이 점령한 스위스지역일 가능성도 있다. 이는 고구려 평양에 매우 가까운 지역일 것이다. 

 

VIII. 남조 진나라 시기의 한수 언급 

 

"진(陳, 557년 ~ 589년)은 중국 남북조 시대 강남 지방에 건국된 남조 최후의 왕조이다. 남진(南陳)이라고도 한다.

 

역사

 

진나라를 건국한 진패선(陳覇先)은 미천한 가문의 군인 출신으로 후경(後景)의 난에 유능한 지휘관으로 난을 진압하고, 원제의 휘하에서 무공을 세웠다. 북제(北齊)에게 동조한 소연명(蕭淵明)을 제위에 올린 동료 왕승변(王僧弁)을 타도하고 경제를 추대하였으나, 이후 경제의 선양을 받아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한수(漢水) 유역과 사천성은 서위를 이은 북주에게 정복당했고, 거기에 양자강 중하류를 사이에 두고 공방전을 벌였다. 사실상 양나라 때에 비해 영토가 크게 축소하여 남조 왕조 중 가장 국력이 약소했다.

 

진패선은 왕승변의 부장과 강남의 토호의 반란을 평정하다 죽고, 형 시흥왕 진도담의 아들 문제가 제위를 물려받아 영주를 확보하고, 북주를 비롯한 북제, 후량과 대치했다. 문제(文帝)는 내정에 전념하여 국내를 안정시켰다.

 

문제의 아들 임해왕 때 북주, 후량과 내통한 화교의 난을 평정했으나, 실권을 장악한 4대 선제(宣帝)가 그를 폐위하고 즉위하여 국력의 차이를 생각하지 않고 575년 명장 군사를 시켜 북제를 공격해, 숙적 왕림(王琳)을 죽이고 수양을 빼앗아 강북으로까지 영토를 넓혔다. 하지만 선비족에 의해 다시 영토를 잃게 된다.

 

이때 북제를 병합한 북주가 재빨리 남정을 계획하였고, 그동안 진나라는 후주가 즉위해 사치와 향략을 일삼아 국력이 피폐했다. 북제는 진왕 양광을 총지휘관으로 삼아 하약필한금호를 선봉으로 강을 건너 건강을 함락하고, 진나라를 멸망시켰다. 이로써 400년에 걸쳐 분열되었던 위진남북조시대가 종결되고 중국은 통일되었다."

(자료 : 남조 진나라, 위키백과)

 

남조 진나라가 빼앗긴 한수는 중국 장강의 우측에 있는 한수로 보인다. 즉 프랑스의 르와르강 우측에 있는 강이다. 즉 한수와 한강을 별도로 고려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자료이다.

 

 

IX. Theodoric the Great ( - 526)

 

아래 지도는 고트족왕  Theoderic the Great 임기시(523 AD)의 영토(붉은 색 지역)와 영향권 지역(분홍색)을 나타낸다. 필자는 Theodoric the Great 고트족왕은 고구려 문자왕과 안장왕 시기의 고구려왕으로 추정한다. 

 

프랑스지역의 분홍색지역은 부르군디언 지역이다. 고트족은 이들과 결혼동맹으로 우호관계를 가졌다. 507년 문자왕의 한성공격은 피레네산맥 쪽의 횡악이 아니라 알프스산맥쪽의 횡악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 지도를 통해 알 수 있다. 

 

필자는 이 프랑스의 분홍색지역이 557년이후 시기의 중국 남조의 진나라(557-589) 지역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이 진나라지역은 신라의 진흥왕(재위 540-576)이 차지한 한성지역(클레르 몽페랑)이라 판단한다. 일본서기에 한성을 신라 진흥왕이 취했다 기록되었다. 백제 성왕은 위례성과 한성을 포기했다고 일본서기에는 기록되었다.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위례성과 한성을 점령했다고 하고 아신왕이 항복한 것을 보면, 당시 중국의 장강 유역까지 진출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Dijon과 Clermont Ferrand을 점령한 것이다. 따라서 이보다 서쪽(아키텐지역 또는 포루투갈 북부지역)에 있는 토욕혼을 정복했다는 기록이 합리성을 갖는다. 

 

위의 백제 아신왕 시기에 초기에 한수지역과 한산지역이 언급된다. 즉 중국의 한수지역에 있는 한성과 위례성은 고구려와 전쟁에서 광개토태왕에게 빼앗기고, 이태리 북부지역인 한산에서 고구려와 전쟁한 것이 아닌가 한다. 당시 수도는 근초고왕이 옮긴 한산일 수 있다. 

 

 



Theodoric's empire at the height of its power in 523, with territory marked in red ruled directly by Theodoric and pink areas under his hegemony (source: Wikipedia)

(By File:Blank map of South Europe and North Africa.svg: historicair 23:27, 8 August 2007 (UTC)File:Empire of Theodoric the Great 523.gif: Howard Wisemanderivative work: SelfieCity - This file was derived from:Blank map of South Europe and North Africa.svg:Empire of Theodoric the Great 523.gif:,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18333089)

 

X. 맺음말

 

결국 한수(漢水), 한성(漢城)은 중국지역, 즉 프랑스의 지역이며 동시에 요서지역이며, 반면, 한산, 북한산, 한강 등은 나라한(韓) 자를 쓴 지역으로 이태리 북부지역으로 추정된다. 횡악은 알프스산맥지역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