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토욕혼의 자료에서 그 위치를 말해 주는 내용은 다음과 같이 14개 정도로 요약된다.
1) 토욕혼은 백란국 또는 하남국이라 한다. 아래 토욕혼자료를 보면, 토욕혼은 285년 모용토욕혼이 창시하였으며, 중국에서 하남국(河南國)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않아 백란(白蘭)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어 알려졌다.
2) 모용토욕혼은 말을 방목하는 문제로 모용외와 충돌을 빚자 본래 근거지인 요동을 떠나 서쪽의 음산(陰山) 일대로 이주하였다.[1] 이후 영가의 난(307~312) 시기에 다시 서쪽의 감송(甘松) 일대로 이동하였으며, 그 영역이 백란(白蘭) 일대에까지 달하게 되었다.
3) 건국 초기의 토욕혼은 유목생활을 하면서 주변의 강족 · 흉노 등의 세력과 융합하였다.그러나 그 과정에서 무력충돌도 적지 않아서 329년, 수장인 모용토연이 휘하에 거느렸던 강족인 강총(姜聰)의 배신으로 칼을 맞아 죽기도 하였다.
4) 371년에는 전진의 부견에게 말 1천 필과 금은 5백 근을 바치고 안원장군의 관작을 받았다.
5) 서진의 걸복건귀에게 조공을 하고는 백란왕의 작위를 받았다. 이후 토욕혼은 걸복건귀가 하사한 작위를 거부하고 충돌을 일으켰다가 걸복건귀의 침공을 받았고, 모용오흘제 때에 이르러서는 장안을 점령한 걸복건귀의 국경을 약탈하였다가 다시 침공을 받고 크게 패하여 1만여 명에 달하는 인구를 잃었다.
6) 토욕혼은 모용아시 때(417~424)에 이르러 주변의 저족과 강족의 부락들을 합병함으로써 그 영토가 사방으로 수천 리에 달하여 강국으로 불리게 되었다.
7) 또한 모용모괴 때(424~436)에 이르러 진주 · 양주의 유랑민 및 강족을 비롯한 여러 이민족들을 흡수하여 남쪽으로는 촉한과 통하였고, 북쪽으로는 양주 · 대하와 통하는 등 그 세력이 크게 확장되었다.
8) 431년에는 북위와 연합하여 대하를 공격하여 그 마지막 황제인 혁련정을 사로잡고는 북위로 압송하였다.
9) 이후 북조의 북위와 남조의 유송은 토욕혼을 서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외교전을 전개하였는데, 토욕혼은 대체로 유송과 더욱 사이가 가까웠다.
10) 이후 439년, 북위는 북량을 멸망시키고 화북을 통일한 후에 토욕혼을 제압하기 위하여 444년 6월에는 토욕혼 내의 권력투쟁에 개입하였으며, 446년 8월에는 마침내 직접 토욕혼을 침략하여 서쪽으로 밀어냈다.
11) 그러나 451년에 집권한 모용섭인은 북위와 유송 사이에서 양다리 외교를 펼쳤고, 북위는 460년 4월에 다시 토욕혼을 공격하였다. 토욕혼은 북위의 공격을 받을 때마다 유목민족의 특성을 살려 먼 거리를 이동하여 이를 피하는 식으로 대응하였고, 북위는 끝내 토욕혼을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12) 그러나 470년 이후로도 북위가 수차례 토욕혼을 공격하여 초토화작전을 펼쳤고, 유송의 도움을 받지 못한채 기근에 시달리던 모용섭인은 결국 473년 8월에 북위에 항복하고 해마다 조공하였다.
13) 모용섭인의 뒤를 이은 모용부연수는 492년 7월, 북위 효문제에 의해 "사지절 · 도독 · 서수제군사 · 정서장군 · 영호서융중랑장 · 서해군개국공 · 토욕혼왕"에 책봉되기도 하였다.
14) 이처럼 토욕혼은 북위의 번국을 자처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서》에 따르면 "새표(塞表) 내에서 부강한 나라로 불러지며, 거의 천조(天朝, 북위)에 준하는 관사(官司)를 두고 여러 나라에 칭제(稱制)하여 스스로 대국(大國)임을 자랑하였다."고 할 정도로 주변 지역 내에서는 독자적인 세력과 위상을 구축하였다.
"토욕혼의 창시자는 모용 토욕혼이며, 그의 이복동생은 전연의 시조인 모용외이다. 기록에 따르면 토욕혼은 모용외와 다투다가 남쪽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토욕혼은 285년 모용 토욕혼이 창시하였으며, 중국에서 하남국(河南國)으로 알려지게 된다. 티베트에서는 아시(阿柴, Azha)라고 불렸다. 얼마 지나자 백란(白蘭)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어 알려졌다. 수도는 칭하이 호의 서쪽에 있었으며, 부사(伏俟)라고 불렸다.
토욕혼의 시조인 모용토욕혼은 본래 모용선비의 수장인 모용섭귀의 서자로, 아버지로부터 부락민 1700가(家)를 물려받았다. 이후 아버지 모용섭귀가 죽고 285년에 적자인 모용외가 그 지위를 계승하였는데, 모용토욕혼은 말을 방목하는 문제로 모용외와 충돌을 빚자 본래 근거지인 요동을 떠나 서쪽의 음산(陰山) 일대로 이주하였다.[1] 이후 영가의 난(307~312) 시기에 다시 서쪽의 감송(甘松) 일대로 이동하였으며, 그 영역이 백란(白蘭) 일대에까지 달하게 되었다. 모용토욕혼은 317년, 72세의 나이로 죽었는데, 토욕혼이라는 국호가 바로 그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건국 초기의 토욕혼은 유목생활을 하면서 주변의 강족 · 흉노 등의 세력과 융합하였다.[2] 그러나 그 과정에서 무력충돌도 적지 않아서 329년, 수장인 모용토연이 휘하에 거느렸던 강족인 강총(姜聰)의 배신으로 칼을 맞아 죽기도 하였다.[3]
오호십육국시대
한편 토욕혼은 오호십육국시대에 이르러서는 화북의 이민족 국가들과 교류를 하였는데, 371년에는 전진의 부견에게 말 1천 필과 금은 5백 근을 바치고 안원장군의 관작을 받았다. 또한 서진의 걸복건귀에게 조공을 하고는 백란왕의 작위를 받았다. 이후 토욕혼은 걸복건귀가 하사한 작위를 거부하고 충돌을 일으켰다가 걸복건귀의 침공을 받았고, 모용오흘제 때에 이르러서는 장안을 점령한 걸복건귀의 국경을 약탈하였다가 다시 침공을 받고 크게 패하여 1만여 명에 달하는 인구를 잃었다. 이후에도 걸복건귀와 그 아들 걸복치반에게 수차례 충돌했으나 패하였는데, 모용수락간은 이로 인해 분을 참지 못하고 병에 걸려 죽었다.
남북조시대
토욕혼은 모용아시 때(417~424)에 이르러 주변의 저족과 강족의 부락들을 합병함으로써 그 영토가 사방으로 수천 리에 달하여 강국으로 불리게 되었다.[4] 또한 모용모괴 때(424~436)에 이르러 진주 · 양주의 유랑민 및 강족을 비롯한 여러 이민족들을 흡수하여 남쪽으로는 촉한과 통하였고, 북쪽으로는 양주 · 대하와 통하는 등 그 세력이 크게 확장되었다. 이 시기에 이르러 토욕혼은 중국 남조의 유송에 사자를 수차례 파견하여 교류하였다. 또한 북조의 북위와도 교류를 시작하여, 431년에는 북위와 연합하여 대하를 공격하여 그 마지막 황제인 혁련정을 사로잡고는 북위로 압송하였다.
이후 북조의 북위와 남조의 유송은 토욕혼을 서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외교전을 전개하였는데, 토욕혼은 대체로 유송과 더욱 사이가 가까웠다. 이후 439년, 북위는 북량을 멸망시키고 화북을 통일한 후에 토욕혼을 제압하기 위하여 444년 6월에는 토욕혼 내의 권력투쟁에 개입하였으며, 446년 8월에는 마침내 직접 토욕혼을 침략하여 서쪽으로 밀어냈다. 그러나 451년에 집권한 모용섭인은 북위와 유송 사이에서 양다리 외교를 펼쳤고, 북위는 460년 4월에 다시 토욕혼을 공격하였다. 토욕혼은 북위의 공격을 받을 때마다 유목민족의 특성을 살려 먼 거리를 이동하여 이를 피하는 식으로 대응하였고, 북위는 끝내 토욕혼을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그러나 470년 이후로도 북위가 수차례 토욕혼을 공격하여 초토화작전을 펼쳤고, 유송의 도움을 받지 못한채 기근에 시달리던 모용섭인은 결국 473년 8월에 북위에 항복하고 해마다 조공하였다.
모용섭인의 뒤를 이은 모용부연수는 492년 7월, 북위 효문제에 의해 "사지절 · 도독 · 서수제군사 · 정서장군 · 영호서융중랑장 · 서해군개국공 · 토욕혼왕"에 책봉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토욕혼은 북위의 번국을 자처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서》에 따르면 "새표(塞表) 내에서 부강한 나라로 불러지며, 거의 천조(天朝, 북위)에 준하는 관사(官司)를 두고 여러 나라에 칭제(稱制)하여 스스로 대국(大國)임을 자랑하였다."고 할 정도로[5] 주변 지역 내에서는 독자적인 세력과 위상을 구축하였다."
(자료 : 토욕혼, 위키백과, 필자의 블로그 paul-park.com, 카테고리, 토욕혼-토번, 펌글 참조)
본 글에서는 이 중에서 백란, 하남국, 감송지역이란 칭호를 가지고 토욕혼의 위치를 가늠해 보고자 한다.
1) 백란국의 위치
백란은 백목련을 말한다. 높이는 15m정도 되는 낙엽교목이다. 영어, 불어, 스페인어로 모두 Magnolia라 한다.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Galicia지역, 그리고 스페인지역에서 펴져 있다.
Magnolia (source : Wikipedia)
Southern magnolia in Galicia, Spain
Southern magnolia in Galicia, Spain
Southern magnolia in Granada, Andalusia, Spain
Southern magnolia in Cordova, Andalusia, Spain
Southern magnolia in Serville, Andalusia, Spain
반면 중국(현 중공)에서의 Yulan magnolia가 있다 한다. 옥란화 라고 하는 백색의 목련인데, 백란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꽃나무는 불교사원에서 키워졌다고 한다. 600년이후 당나라의 궁정 정원에 심어졌다 한다. 순백색으로 purity의 상징이라 한다. 현재 상하이시의 상징꽃이라 한다. 그러나 토욕혼 관련 티베트 관련 언급은 없다. 불교사원에서 키워졌다는 언급이 티베트불교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Yulan magnolia는 키가 작은 정원수로서 적당하다. 백란이 우거져 백란국이란 칭호가 있으려면 울창한 삼림이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위의 스페인지역이나 Galicia지역의 고목나무가 더 백란국일 가능성이 높다.
Yulan Magnolia (= Magnolia denudata)
2) 토욕혼 하남국의 위치
하남국의 하남은 강의 남쪽이라는 뜻이다. 어느 강인지는 언급되지 않았다. 그런데 현재 중공에는 하남성(허난성)이 있다. 그래서 하남성의 위치를 찾아 보니 현 중공의 중부에 위치해 있다. 황하의 아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티베트지역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들이 말하는 토욕혼 위치와도 거리가 멀다.
중국 하남성 위치
중공 하남성 위치 (자료 : 두산백과)
아래 지도의 토욕혼지역과 위지도의 하남성의 위치와는 거리가 멀다.
위진 남북조시대의 토욕혼 영역
3) 음산과 감송 지역
토욕혼은 요동에서 서쪽의 음산으로 옮겼다가 다시 서쪽으로 감송일대로 옮겼다 하며 결국 영역이 백란일대에까지 이르렀다 한다. 음산은 요동의 서쪽이니 요수 근처의 산악지대로 추정된다.
다시 서쪽의 감송일대로 옮겼다 하는데, 감송일대가 어딘지 추정해 보자. 감송은 영어로 spikenard라 한다. 또는 Nard라 하기도 한다. 아래 브리타니카자료에 의하면, 히말라야에서 나는 허브로 oil을 추출하는데, 향료로 쓰이며, 종교적인 의례에 쓰였다고 했다. 북미에서는 인삼과에 속한다 한다.
"spikenard, (Nardostachys jatamansi), perennial herb (family Caprifoliaceae) of the Himalayas and its fragrant essential oil. The plant and its oil have been used since ancient times in traditional medicines, and the oil, derived from its woody rhizomes, is used as a perfume and in religious ceremonies. It is listed as a critically endangered species by the IUCN Red List of Threatened Species.
Several members of the genus Aralia are also known as spikenard. American spikenard (A. racemosa) is a North American member of the ginseng family (Araliaceae). The plant is characterized by large spicy-smelling roots and is cultivated as an ornamental. It grows 3.5 metres (11 feet) tall and has leaves divided into three heart-shaped parts. The flowers are grouped into numerous clusters at the end of the central stem." (source : spikenard, Britannica)
그러나 위키피디아 자료는 다른 내용을 전한다. 네팔의 히말라야, 중공, 인도 등에서 자라며, 향료, 전통약재로 쓰이며, 인도에서 유럽까지 광범한 지역에서 종교적인 행사에 쓰인다고 했다. 유사종으로 Spanish lavender가 더 저렴한 향수 제조에 쓰인다 했다. 3000-5000m의 고산지대에서 자란다 한다.
또한 고대 로마에서 와인의 향료로 쓰였으며, 로마제국에서는 향수의 주요 재료가 되었다 한다. 역사학자 Pliny는 Natural History에서 향수로 쓰이고 매운 포도주를 만드는데 쓰였다 기록했다 한다. 유럽과 동지중해의 지역 herb로서, Nardus라 불리는데, Syrian nard, Gallic nard, Cretan nard, Celtic nard 등이 있다고 했다. Gallic nard 는 Valeriana celtica를 의미한다고 한다. (아래 자료 참조)
"Spikenard, also called nard, nardin, and muskroot, is a class of aromatic amber-colored essential oil derived from Nardostachys jatamansi, a flowering plant in the honeysuckle family which grows in the Himalayas of Nepal, China, and India. The oil has been used over centuries as a perfume, a traditional medicine, or in religious ceremonies across a wide territory from India to Europe. Historically, the name nard has also referred to essential oils derived from other species including the closely related valerian genus, as well as Spanish lavender; these cheaper, more common plants have been used in perfume-making, and sometimes to adulterate true spikenard.........
Nardostachys jatamansi is a flowering plant of the honeysuckle family that grows in the Himalayas of Nepal, China, and India. In bloom, the plant grows to about 1 meter (3 ft) in height and has small, pink, bell-shaped flowers. It is found at an altitude of about 3,000 to 5,000 m (9,800 to 16,400 ft). Its rhizomes can be crushed and distilled into an intensely aromatic, amber-colored essential oil with a thick consistency. Nard oil is used as a perfume, an incense, and as an herbal medicine.[2]
In ancient Rome, nardus was used to flavor wine, and occurs frequently in the recipes of Apicius.[3][4] During the early Roman empire, nardus was the main ingredient of a perfume (unguentum nardinum).[3]
Pliny's Natural History lists several species of nardus used in making perfume and spiced wine: Indian nard, a stinking nard called 'ozaenitidos' which is not used, a false nard ('pseudo-nard') with which true nard is adulterated, and several herbs local to Europe and the Eastern Mediterranean which are also called nardus, namely Syrian nard, Gallic nard, Cretan nard (also called 'agrion' or 'phun'), field nard (also called 'bacchar'), wild nard (also called 'asaron'), and Celtic nard. Celtic nard is the only species Pliny mentions which he does not describe when listing the species of nard in book 12 of Natural History suggesting it is synonymous with another species, probably with the species Pliny refers to as 'hirculus', a plant Pliny attests to growing in the same region as Gallic nard and which he says is used to adulterate Gallic nard. Both are widely assumed to be cultivars or varieties of Valeriana celtica.[5][6][7]
Indian nard refers to Nardostachys jatamansi, stinking nard possibly to Allium victorialis, false nard to Lavandula stoechas, Syrian nard to Cymbopogon nardus, Gallic nard to Valeriana celtica, Cretan nard to Valeriana italica (syn. V. dioscoridis, V. tuberosa), and wild nard to Asarum europaeum. Field nard, or 'bacchar', has not been conclusively identified and must not be confused with species now called "baccharises" referring to species native to North America.[5][6][7] "
(source : spikenard, wikipedia)
Spikenard for essential oil
Hymalayan spikenard for essential oil
감송은 고산지대에서 자라나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 면에서 히말라야에서 자라나는 감송이 일차적으로 기록된다. 그런데, 고대 로마시대부터 유럽에서도 널리 퍼진 향료라 했다. 즉 감송이 유럽에서도 있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고산지대라면 알프스산맥이나 피레네산맥이 있다. 특히 요동에서 서쪽으로 음산으로 이동하고 다시 서쪽으로 이동하여 감송일대에 도달했다는 토욕혼의 이동 경로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다시 백란일대에까지 영역이 이르렀다 했다. 유럽에서는 피레네산맥이 유력시된다. 그래서 찾아 보니, 아니나 다를까 Valeriana Pyrenaica가 존재한다. (아래 그림 참조) 위의 위키피디아 자료에서 Gallic nard가 Valeriana celtica로 불린다 했다. 즉 Valeriana pyrenaica는 피레네산맥에서 나는 Valeriana이다. 즉 피레네산맥의 감송이라는 것이다. 즉 감송지역이 피레네산맥의 고산지역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래가 Galicia지역이며, 필자가 추정한 토욕혼의 서해지역에 인접한 Suebi 왕국 즉 선비족인 모용토욕혼족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남국이란 칭호는 피레네산맥 아래 있는 강의 남쪽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이는 황허강과는 거리가 멀다. 황허와 장강 사이에 있는 회하의 남쪽이 아닐까 한다. 따라서 하남국은 스페인의 Ebron river의 남쪽이나 프랑스의 Garonne river남쪽이 아닐까 한다. 이곳이 백란국이며 하남국인 토욕혼이 있던 장소가 아닐까 한다.
Valeriana Pyrenaica
필자는 요수를 론강으로 추정했다. 론강에서 서쪽으로 이동하여 고산지대에 다다른다면 피레네산맥이다. 그리고 백란일대는 그 남쪽 Galicia지방이나 이베리아반도가 된다. 이는 위에서 살펴 본 백란, magnolia의 이베리아반도나 Galicia지방에 있는 것과 일치한다.
Map of Galicia (source : Wikipedia)
반면 히말라야산맥을 고려하면 그 남쪽에 백란국이 있어야 하는데, magnolia가 이 지역에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 그리고 이는 현 중공의 요하를 요수로 본다 해도, 이 지역까지 이동하기에는 너무 멀다. 전 중공지역을 가로 지르는 이동인 것이다. 매우 비현실적이다. 아래 지도를 보아도 그렇다.
5호16국시대 중공사가들이 추정한 지도 (자료 : 두산백과)
또한 토욕혼은 저족, 강족과 융합했다고 했다. 필자는 강족이 강주지역, 강거지역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이베리아 반도지역이라 추정했다. (본 블로그 필자의 글, '강거는 중앙아시아가 아니라 이베리아반도에 있지 않았을까?' 참조) 그러나 중공 사학자들은 강거지역, 강주지역을 중앙아시아지역으로 추정하고 있다. 필자는 강주가 고구려, 후백제, 신라, 고려의 지역임을 사료를 통해 검증했다. 또한 해양세력인 왕식렴의 지배지역이라 하여 바닷가에 접한 지역이라 했다. 중앙아시아는 이들과 거리가 멀다.
중공사가들은 강족지역은 강주지역과 다르게 중공서부로 추정했다. 즉 이들은 현재의 중공땅을 중국사의 지역으로 하기 위한 역사왜곡을 자행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안록산은 아버지가 강씨이므로 성이 강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강족의 강씨 성이다. 즉 강족의 지역출신이다. 상기 지도의 강족지역출신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당나라 양귀비의 총애를 받은 안록산의 지역으로 보이지 않는다. 안록산에 대해서는 후에 더 검토가 있을 것이다.
또 하나 토욕혼지역은 광개토태왕비에 점령한 지역으로 기록되었다. 위의 지도에서 고구려의 토욕혼 정벌이 가능한가? 그러나 필자가 추정하는 이베리아 반도의 토욕혼 지역은, 광개토태왕으로 추정되는 Alaric I 고트족왕이 이미 진출한 이베리아 반도지역이다. 그리고 이베리아지역은 장수왕 시기에 고구려로 보이는 서고트왕국이 이미 진출한 Suebi족(Vandals, Alans) 북아프리카로 이동시키고 점령했으며, Galicia지역의 Suebi왕국(토욕혼으로 추정)은 고구려로 추정되는 서고트왕국에 585년 포함되었다.
마지막으로 토욕혼왕은 북위 효문제로부터 492년 '서해군개국공'이라는 직책을 책봉 받았다. 즉 토욕혼은 서해에 접했다는 것이다. 필자가 추정한 Suebi왕국은 대서양에 접해 있다. (필자의 글, '토욕혼과 토번은 현재의 티베트가 아닌 서유럽의 대서양변에 있었다', '토욕혼은 포루투갈에 있었던 Suebi왕국이다' 참조, paul-park.com ). 반면 중공사가들이 주장하는 토욕혼은 중공 내륙에 있어 바다에 접할 수가 없다. 즉 중공사가들의 토욕혼 위치 주장은 역사적 기록과 위치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으로 백란국, 하남국, 감송 등의 지역이름을 이용한 토욕혼의 위치 추정 분석을 마치고자 한다. 즉 필자가 추정한 이베리아 반도 대서양 연안의 토욕혼 위치 추정은 이러한 조건을 모두 만족 시킨다. 반면, 중공사가들이 주장하는 토욕혼의 위치에서는 이러한 검토에서 들어 맞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현재 중공지역은 과거 중국사의 지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택동이 왜 중국 역사기록을 모두 지우고 중공인들에게 역사교육을 못하게 했는지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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